담마의 거울

아눌라 스님의 ‘마땅히 해야 할 자비경(자애경)’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2. 13. 20:07

 

 

아눌라 스님의 마땅히 해야 할 자비경(자애경)’

 

 

 

천상과 지옥은 있을까. 천성과 지옥은 어떤 곳일까. 어떤이는 분명히 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 천상과 지옥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상에

 

부처님이 가장 경계한 것이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이다. 상견은 이 세상과 자아가 영원하다는 것이고, 단견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견과 단견 그리고 감각적 욕망이 모두 자아가 있다라고 생각해서 발생되는 갈애로 보고 있다.

 

이 갈애가 있음으로 해서 업을 짓고 그 업을 조건으로 식이 발생하는데 다음생에서 몸과 마음이 일어나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갈애를 일으켜 행위를 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지 태어 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곳이 인간계일 수 도 있고, 천상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는데 분명한 사실은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상에 태어난다고 경전과 주석서에  언급되고 있다. 그런 세상은 어떤 곳일까.

 

육문으로 인지 하는 느낌에 따라

 

아눌라 스님의 법문에 따르면 천상은 항상 즐거움만 있는 곳이라 한다. 천상에 태어난 존재는 전생에 선한 일을 많이 하여서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아눌라 스님의 법문

[이해법문02_카르마와 윤회B]

출처 : http://cafe.daum.net/kalyanamitta/KnDg/5

 

 

 

그런 즐거움은 6문으로 인지 되는 세계가 모두 좋다는 의미이다. 감각접촉이 일어 났을 때 좋은 느낌, 나쁜 느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 이렇게 세가지인데 천상에서는 오로지 좋은 느낌만인지 되기 때문에 항상 기쁘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좋은 느낌, 나쁜 느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 이렇게 세가지를 모두 인지 하는데, 나쁜 느낌 보다 그래도 좋은 느낌이 더 많다고 한다. 아수라계 역시 세가지느낌을 모두 느끼는 데 인간과 반대로 좋은 느낌 보다 나쁜 느낌을 더 많이 인지하는 것이 다르다. 동물계는 어떨까.

 

동물계는 배설물속에서 살고, 더러움 속에 살고, 항상 먹이를 찾아 다녀야 하고, 누군가 해치지 않을까 두려움 속에 산다. 따라서 비천하게 행동하는 사람, 그런 의식을 가진자,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욕망이 시키는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동물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로서 죽어서 동물계에 태어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귀계는 욕심만 많고 공덕이 없는 존재들이 가는 곳이다.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는 고통을 겪는 세계이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남을 도와 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자신만 생각하는 존재들에게 적합한 세계이다.

 

지옥은 어떤 곳일까. 천상과는 정반대의 세계이다. 인지 되는 모든 것이 고통스럽고, 괴롭고, 불만족 스럽고, 불쾌한 세계이다.

 

의식의 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지옥이나 천상은 땅속이나 하늘이라는 특정한 장소에 있다기 보다 의식세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와 공간을 함께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것과 개가 느끼는 것이 다른 것으로 설명 될 수 있다. 이는 의식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듯이 기쁨을 누리는 의식들이 있는 곳이 천상이다. 반대로 고통을 느끼는 의식들이 있는 곳이 지옥이다. 그런데 살아 가면서 우리는 수시로 천상과 지옥을 경험한다.

 

고통만 느낄 때는 순간적으로 거기가 지옥이고, 또 어느 순간 행복한 경우 그 순간은 천상에 있게 된다. 그런 시공속에 있는 것이 천상과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모든 존재는 지은 업이 남아 있는 한 자신이 지은 적합한 세계에 태어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육도윤회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세계에 어떻게 태어나는 것일까.

 

죽을 때의 마지막 마음과 표상

 

초기불교에서 자신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업이 소멸 되지 않고 남아 있는한 업을 연하여 식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죽음과 재생으로 설명한다. 죽음의 과정과 태어남의 과정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죽을 때의 마지막 생각이

태어 날 때의 첫 번째 생각이다.”

 

 

이는 죽을 때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잘 죽는 다는 것은 죽는 순간에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몸이 아프면 좋은 생각이 일어 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이란 모든 에너지가 소진 되어 탈진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각도 마음대로 못한 다는 것이다.

 

임종직전에 아미타불을 염하면 극락에 태어 난다고 하지만 평소에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일일것이다. 그 대신 평소에 하던 대로 했던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표상으로 떠 오르게 되는데, 아눌라 스님은 이를 코끼리의 비유를 들어 설명 하였다.

 

 

코끼리 사냥꾼이 있었는데 그는 일류 사냥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흰코끼리 사냥을 하다가 놓쳤다. 일류 사냥꾼의 자존심에 먹칠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 코끼리를 언젠가 잡아서 죽여야 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그러다 임종을 맞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평상시에 늘 생각하고 있었던 흰 코끼리가 떠 오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 생에 코끼리로 태어 났다.”

 

 

이는 실제로 미얀마의 파옥수행센터에서 연령퇴행하여 전생을 보는 훈련 과정에 있어서 실례라 한다. 이처럼죽을 때의 마지막 생각이 태어 날 때의 첫 번째 생각이다라는 말은 초기불교 용어로 재생연결식이라 한다.

 

이는 마음이 한 순간에 하나의 일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과 재생연결식 역시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조건 지워져 일어 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재생연결되는가

 

초기불교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을 환생(reincarnation)한다고 말하지 않고, 재생(rebirth)된다고 말한다. 이는 어떤 변치 않는 자아나 영혼을 인정하지 않고, 연기법칙에 따라 순간 순간 조건 지워져 상속 되는 흐름으로 보기 때문에 무아라 하고, 이는 그 순간에 있어서 업의 상속자를 자아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논리로 죽음이후에 곧 바로 일어나는 식이 재생으로 연결 되기 때문에 재생연결식이라 한다. 그런데 재생연결식이 일어나게 하는 대상은 죽음의 순간에 일어난 그 표상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단지 조건을 얻은 그 법이

다음생으로 갈 뿐이다.

이것은 과거로 부터 윤회해온 것도 아니고

원인이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청정도론, 3 104p)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가는 것이 영혼이 아니라 조건이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것은 세세생생 윤회해온 영혼도 아니고, 또 원인 없이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죽는 순간에 무거운 업이나 임종 직전에 생각난 것을 대상으로 하여 다음 생에 태어날 표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거운 업이란 아비담마에 따르면 살인업이나 선정수행업과 같은 것을 말한다.

 

살인업을 저질렀다면 가장 강력하게 평상시 마음을 지배하여 문득 문득 떠 오를 것이기 때문에 임종직전에 자신도 모르게 생각날 것이다. 그 표상이 끔찍한 불기둥과 같은 것이라면 재생되었을 때 그 불기둥 또한 보게 되어서 그 업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난 다는 것이다.

 

선정수행을 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하였다면 그 마음이 평소의 마음을 지배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색계천상에 태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죽음과 재생연결식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쪽 언덕의 나무에 매달려있던 줄을 의지하여 강을 건너려던 사람처럼 이전의 의지처를 버리고 업에서 생긴 다른 의지처를 잡던지 혹은 잡지 못하던지 하면서 대상의 조건에 의해 일어난다.

 

 

양쪽 언덕이 있는데 건너가기 위해서는 줄을 타고 가야 할 것이다. 줄을 타고 다 건넜을 때 저쪽 언덕은 죽음이고, 이쪽 언덕은 재생이라는 것이다.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연결 시켜 주는 줄을 재생연결식으로 본다.

 

그런데 그 줄이라는 것이 과거생으로 부터 온 것도 아니고, 원인 없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알음알이의 흐름으로 보는 것이다. , 갈애에 밀리고, 상카라()에 의하여 던져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외 청정도론에서 죽음과 재생에 대하여 메아리, 씨앗, 빚보증의 비유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재생연결식은 청정도론의 12연기 해설에서 매우 상세하게 설명 하고 있다.

 

행위의 두려움을 보는 자

 

공덕을 많이 쌓아 천상에 태어나 즐거움만 누리고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 공덕이  다하면 어디에 태어 날지 모른다. 이렇게 육도를 오르락 내리락 윤회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이처럼 육도를 윤회하다 보니 지금 즐겁고 행복해도 이 행복이 보장 되지 않는다. 형성된 모든 것들이 변하다 보니 안주할 곳이 없게 된다. 이 것을 아는 존재는 윤회의 두려움을 알게 된다. 그래서 윤회로 부터 벗어나고자 결심하는 것이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윤회의 두려움을 보는자를 비구라 하였다. “윤회에서(sasāre) 두려움을(bhaya) 보기(ikkhati) 때문에 비구(bhikkhu)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윤회의 두려움을 보는자는 비구 뿐만이 아닐 것이다.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행자도 윤회의 두려움을 보는자라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윤회의 두려움이라는 것은 곧 행위의 두려움을 뜻한다. 그래서 악행은 물론 공덕이 되는 행위도 짓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공덕이 되는 행위를 뿐냐(puñña, )’라 하는데, 이는 중생이 윤회하는 삶속에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공덕이 되는 행위를 하면 죽어서 천상에 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윤회의 두려움을 보는자는 어떤 행위를 할까.

 

아상가 교수에 따르면 탐진치로 행하지 않는 행동일 때라 한다. 이런 행위를 빠알리어로 꾸살라(kusala, )’라 한다. 부처나 아라한은 행동하는데 있어서 탐진치가 없기 때문에 뿐냐행을 하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해도 어떤 기대도 없이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자비 그 자체일 것이다.

 

아눌라 스님의 자애경

 

자비 그 자체에 대하여 아눌라 스님은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자신의 목숨처럼 보호하듯 모든 존재들을 가없는 마음으로 보살피는 것이라고 표현 하고 있다. 그런 자애경은 어떤 것일까. 아눌라 스님이 번역한 자애경을 소개 한다.

 

 

 

마땅히 해야 할 자비경

          

 

          닙바나를 궁극적 평화로 이해하고

          삶을 안녕케 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행함이니,

 

          유능하고 정직하고 곧아야 하며

          바른 말을 받아들이고 온유하며 교만하지 않음이요.

          지족하여 받들기 쉬워야 하며

          일이 적어야 하고 소박한 삶을 영위할지니

          감관은 고요하고 지혜로우며

          뻔뻔하지 않아야 하고, 속인과의 만남에 애착 없이하여 

          지혜로운 이가 비난할 그 어떤 작은 행동도 하지 않음이로다.

          (그런 다음, 이와 같이 마음을 계발함이니,)

          모두 행복하고 안전하기를

          모든 존재들의 가슴에 행복이 넘쳐나기를 !

 

          어떤 형태의 생명이든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길거나 짧거나

          중간이거나 큰 것이거나

          거대하거나 미세하거나,

          보이는 존재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거나

          멀리 있는 존재거나 가까이 있는 존재거나

          태어난 존재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거나

          모든 존재들의 가슴에 행복이 넘쳐나기를 !

 

          그 어떤 경우라도, 그 누구라도,

          서로를 속이지 말 것이며  경멸하지 말 것이며

          악의와 증오로 다른 이가 고통에 빠지기를 바라지 말 것이요,

          마치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자신의 목숨처럼 보호하듯

          모든 존재들을 가없는 마음으로 보살핌이요,

          위로 아래로 사방으로 모든 세상을

          미움과 적의에서 벗어나 막힘없이

          가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보살핌이니,

          서있거나 걷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게으름 없이

          이렇게 마음-깨어있음을 향상시킬지니

          이것을 ‘성스러운 삶’이라고 말함이요.

 

          사견에 빠지지 않고 계를 지키며

          올바른 궁극의 견해로

          감각적 욕망을 모두 버리니

          실로

          다시는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음이로다.

 

          -아눌라 스님 번역-

 

 

 

 

 

 

 

 

사진 http://www.bodhicitta.net/Metta%20Sutra.htm

 

 

 

 

이 자애경에 대한 빠알리는 다음과 같다.

 

 

 

자애경(慈愛經)

Karaniya Metta Sutta

 

 

1.

Karanīyam atthakusalena                          까라니-야 앗따꾸살레나
yan ta
santa pada abhisamecca:       얀 땅 산땅 빠당 아비사멧짜
Sakko uj
ū ca sūjū ca                                 삭꼬 우주- 짜 수--
suvaco c'assa mudu anatim
ānī,                수와쪼 짜싸 무두 아나띠마-.

 

2.

Santussako ca subharo ca                       산뚜싸꼬 짜 수바로 짜
appakicco ca sallahukavutti                      
압빠낏쪼 짜 살라후까웃띠
Santidriyo ca nipako ca                             
산띠드리요 짜 니빠꼬 짜
appagabbho kulesu ananugiddho,             
압빠갑보 꿀레수 아-나누깃도

 

 

3.

Na ca khudda samācare kiñci                  나 짜 쿡당 사마-짜레 낀찌
yena viññ
ū pare upavadeyyu                   나 윈뉴 빠레 우빠와데이융
Sukhino v
ā khemino hontu                         수키노 와- 케미노 혼뚜
sabbe satt
ā bhavantu sukhitattā:               삽베 삿다- 바완두 수키땃따-

 

 

4.

Ye keci pāabhūt' atthi                              께찌 빠---땃띠-
tas
ā vā thāvarā vā anavasesā                    따사-   - -와라- -나와세사-
D
īgha vā ye mahantā vā                             디가- - 예 마한따- -
majjhim
ā rassakā aukathūlā                     맛지마- 랏사-까 아누까툴--

 

 

5.

Diṭṭhā vā ye vā addiṭṭhā                             딧타- - 예 와- 아딧타-
ye ca d
ūre vasanti avidūre                         짜 두-레 와산띠 아위-두레
Bh
ūtā vā sambhavesī vā                            -- - 삼바웨시 와-
sabbe satt
ā bhavantu sukhitattā                삽베 삿따- 바완뚜 수끼땃따-

 

 

6.

Na paro para nikubbetha                         나 빠로 빠랑 니꿉배타
nâtimaññetha katthacina
kañci                -나띠만녜타 깟타찌낭 깐찌
Vy
ārosanā paighasaññā                           위야-로사나- 빠띠-가산냐-
n
āññamaññassa dukkham iccheyya          냐만냐싸 둑카밋체이야.

 

7.

Mātā yathā niya putta                           -- 야타- 니양 뿟땅
āyusā ekaputtam anurakkhe                      -유사- 에까뿟당 아누락케
Evam pi sabbabh
ūtesu                              에왐 삐 삽바부-때수
m
ānasam bhāvaye aparimāa                 -나삼 바-와예 아빠리마-

 

 

8.

Mettañ ca sabbalokasmi                         멧딴 짜 삽바-로까스밍
m
ānasam bhāvaye aparimāa                  -나삼 바-와예 아빠리마낭
Uddha
adho ca tiriyañ ca                        웃당 아도 짜 띠리얀 짜
asamb
ādha avera asapatta               아삼바-당 아왜랑 아사빳땅

 

 

9.

Tiṭṭha cara nisinno vā                           띳딴짜랑 니신노 와-
say
āno vā yāvat' assa vigatamiddho          사야-노 와- -와따싸 위가따밋도
Eta
sati adhiṭṭheyya                             에땅 사띵 아딧테이야
brahmam eta
vihāra idha-m-ahu           브라흐맘 에땅 위하-랑 이다마-

 

 

10.

Diṭṭiñ ca anupagamma                               딧힌 짜 아누빠감마
s
īlavā dassanena sampanno                      실라와- 닷사네나 삼빤노
K
āmesu vineyya gedha                           -메수 위네이야 게당
na hi j
ātu gabbhaseyya punaretī               나 히 자-뚜 갑바세이양 뿌나레띠

 

 (숫타니빠따 게송14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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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ee Ooi(黃慧音)의 Karaniya Metta Sutta(자애경)

 

 

 

 

 

2010-12-1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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