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대승불교와 초기불교는 원융할 수 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2. 14. 11:01

 

 

 

대승불교와 초기불교는 원융할 수 있을까

 

 

 

양복입고 갓을 쓴 것처럼

 

대승불교와 초기불교는 섞일 수 있을까. ‘섞인다를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하면 원융(圓融)한다라고 한다. 이처럼 같은 말이라도 한자어를 섞어 쓰면 좀 더 고상하고 품격있게 보인다.

 

대승불교와 초기불교 또는 선종과 테라와다는 알고 보면 전혀 다른불교이다.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와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는 부파불교를 비판하여 성립된 불교이고, 선종은 중국에서 중국의 문화와 전통을 불교와 접목하여 발생된 중국화된 불교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과 달리 종파불교가 아니라 모든 불교를 통섭한다는 의미의 통불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천수경을 들 수 있다.

 

천수경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부터 조사스님의 게송, 그리고 각종진언이나 다라니등과 같이 밀교적 요소가 혼재 되어 있어서 통불교적인 성격을 잘 보여 준다. 그래서 대승불교를 아끼는 사람들이나 1600백년 전통의 한국불교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 한국불교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초기불교의 유행에 대하여 내심 경계하면서도 한국불교의 전통에 녹아 들어 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초기불교를 접하면 한국불교의 전통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 초기불교를 접하면 접할수록 기존불교의 전통을 부정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기불교전통에 없는 타방부처와 보살사상, 그리고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요소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1600백년 전통의 한국불교 바탕위에서 초기불교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양복입고 갓을 쓴 것 같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대승불교와 초기불교는 어울릴 수 있을까

 

같은 불교라는 명칭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물과 기름과도 같이 어울릴 수 없는 것이 대승불교와 초기불교이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대승불교가 초기불교를 비판하고 성립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부처님 근본 교리를 달리 해석하여 보살사상과 공사상을 위한 별도의 경전을 결집하는 가 하면, 그 내용 또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소승이라고 폄하 하고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대승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소승이라는 표현은 도를 넘어서 초기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모욕적으로 느껴지고 부처님의 제자가 능멸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반야심경일 것이다.  

 

반야심경을 보면, 부처님의 10대제자이자 목갈라나존자와 더불어 상수(相首)제자인 법의 사령관이라 불리우는 사리뿟따 존자가 가공인물인 보살에게 한 수 배우는 구도로 설정된 것같은 것이 대표적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설정은 대승경전의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어느 법우님의 댓글에서

 

그런데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하여 초기불교가 알려 지고, 초기불교의 경전과 논장, 주석서가 번역되어 소개 됨에 따라 또 다른 불교가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에 따라 대승불교에 대한 신뢰는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그런 예를 블로그의 댓글에서 종종 보게 된다. 블로그에 댓글을 남긴 어느 법우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고 매체가 발달하여 정보를 접할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가르침을 주신 스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왜 점점 남방불교의 교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아느냐고..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댓글에서 법우님은 남방 테라와다 불교에 마음이 가는 것은 그 것이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남방불교 책을 권해 드렸더니 불교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았다고 했다 한다. 이처럼 초기불교를 접하고 환희를 느겼다는 식의 글을 많이 접한다.

 

주민총회도 교회에서

 

한국불교는 위기 상황이다. 도시에서 절을 구경할 수 없고 도처에 교회 천지이다. 공영 라디오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성경의 한 구절을 들어 말하는가 하면, 드라마에서는 유명한 ‘CCM이 불려지고 있고, 어린이들 학습지의 지문에 교회이야기가 나오고, 대담 프로에서 교회와 성당에 갈 때 슬리퍼에 반바지 입고 가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할 때 절에 대한 언급은 없다.

 

또 투표를 할 때 동네 교회에서 하는가 하면, 심지어 주민총회도 교회에서 한다는 플레카드가 붙어 있다. 이처럼 한국불교가 사람이 사는 곳에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사람사는 곳은 교회공동체가 되었다. 그래서 일요일 오전 풍경은 잘 차려 입고 교회 가는 사람과 등산복 입고 산에 가는 두부류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령 절이 있다고 할지라도 주민들의 등쌀에 대문 하나 마음대로 달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절의 대문을 단청하려 하는데 주민들이 반대로 몇개월째 작업이 중단 된 채로 있는 것이다. 교회의 유리창벽에 그려진 예수상이나, 성당에 서 있는 인물상은 허용 되는데 절에 단청하는 것 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단청조차 못하는 절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로 대문에 단청도 못하고 몇달째 방치되고 있다.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불교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여 마음을 사로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소통자체를 거부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요인은 한국불교에 있어서 구조적 문제라 본다. 출가를 한다는 것이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피하여 깊은 산속으로 숨어 버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님들의 출가 이야기를 들어 보면 생사 문제나 중생구제를 위하여 출가한 경우 보다 세상이 싫어서 한 평생 깊은 산속에서 살고 싶어 출가 하였다는 어느 스님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혐오하여, 세상이 싫어 출가 하였다면 세상에 되돌아 올 일도 없을 것이다. 도시에 절이 없고, 불교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지 않을까.

 

1910년 당시의 불교계는

 

사람사는 곳에 절이 없고, 불교가 없는 이유는 종단과 스님들의 책임이 크다. 한국불교가 스님과 사찰위주로 운영되고, 재가불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국불교는 대중불교가 아닌 스님들만을 위한 불교가 되었다. 그래서 종종 나오는 이야기가 불교유신론에 관한 것이다.

 

불교유신론은 만해스님이 처음으로 제창하였다.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이다. 그 때 당시 불교상황은 어떠 하였을까. 금년 조선불교유신론 집필 100주년 기념낭독 및 토론회청정불가를 위한 대중결사주체로 개최 되었다 한다. 그 자료를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여 확보 할 수 있었다.

 

 

“불교 유신”을 다시 생각하다..pdf

 

 

 

 

 

자료에서 동국대 김상현 교수의 한용운과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한 토론문을 보면 1910년 당시의 불교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만해는 불교계에 누적된 여러 폐단을 타파하는 것이 유신의 경이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당시 불교계가 안고 있던 폐단을 주저 없이 지적했다. 그는 당시의 불교계가 조선인 중에서도 가장 하하는 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보았고, 에 시리거나 신에 한 무리들이 흔히 승려가 되었기에 게으고 어리석고 나약하여 불교의 진상에 어두운 형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이 어아가는지도 모혼돈파가 전체 승려의 의 구나 되, 모든 승려가 하나도 방관자 아이 없다고도 했다. 당시의 불교는 많은 신을 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의식은 번잡 혼란하고 비열 박하여 도깨비연극에 가고 보았다.

 

그리고 나라 사들이 승려 보기를 소나 말이나 노예 같이 하여도 승려들은 이상하게 여기는 도 없다고 했다. 처럼 만해는 세월 불교계에 누적된 폐단이 극에 했다고 인식했다. 종교의 경이 치열하던 당시에 불교는 폐잔병마저 모으기가 어복의 깃발마저 세울 이 없는 실정이라고 했으, 거의 오늘 하기기 어려울 것 같은 형세에 있다고 보았다.

(상현 동국대 교수, 한용운과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한 토론문)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에도 종교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는 전혀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 조차 모를 정도이었다고 한다. 이는 승려의 질도 문제있을 뿐만아니라 불교의식이 미신적이고 우상적인 요소도 있음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다. 마치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하루 넘기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 하고 있다.

 

스님들만의 불교

 

이런 현실을 타개 하기 위하여 변화를 강조하여 내 놓은 것이 만해스님의 불교유신론이다. 그러나 불교유신론은 결국 실패로 돌아 갔다. 이에 대하여 김상현 교수는 해방이후의 상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대중불교를 지향하는 총무원과 비구 승을 지향하는 혁신 세력 간한 갈을 거쳐, 1950년대에는 이청담 이 주도하는 정화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에서는 만해가 선하고 김법린 등이 계승했던 불교의 대적 변용, 즉 대중불교는 철저배제되었다. 그리고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 그 동안 한국불교는 승려 중으로, 그리고 종교적 본주의로 전개되었다. 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소되었고,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범람 하는 타종교의 물결이 불교의 앞마당에까지 이고 있는 현실은 가불교 은 대중 불교의 건설은 다시금 절실하고 라서 만해가 주했던 불교유신 은 대중 불교의 의퇴색되지 않았다.

(상현 동국대 교수, 한용운과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한 토론문)

 

 

만해스님이 주창하였던 대중불교 대신 한국불교는 승려중심으로 전개 되어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사회적 역할도 축소 되었을 뿐만아니라 이제 타종교인들이 안마당, 안방까지 넘보는 시대가 되었다고 개탄하고 있다.

 

이처럼 스님들 위주의 불교는 찬불가에 귀의승(歸依)’스님들께 귀의 합니다라는 현대문으로 번역시키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하나의 횡포이자 희극으로 본다고 발제자중의 한사람은 말한다.

 

불교개혁을 주장해 보지만

 

불교가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고 은둔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그리고 불교가 스님들 위주로 흘렀을 때 불교의 위기가 닥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위기를 타개 하기 위하여 종종 불교개혁과 관련된 주장이 있었는데 법정스님이 1964년도에 작성한 부처님전상서와 같은 것이 최근에 교계인터넷신문에 소개 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 금년 조선불교유신론 집필 100주년 기념낭독 및 토론회에서 미황사주지인 금강스님은 21세기 한국불교유신론을 제창한다라는 제목으로 ‘2010년판 불교유신론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이외 이미 작고한 서경수교수와 이기영교수도 유신론을 제창하였다고 토론회에서 소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스님이나 교수들은 한결같이 만해스님의 불교유신론에 입각하여 기존의 한국불교를 변화시키고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혁명하자고 주장한 이는 없었다. 이는 대안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초기불교가 도입된 이래 대안이 생겼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을

 

이제는 불교개혁이 아닌 불교혁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100년간 개혁을 외쳐 왔지만 번번히 좌절 되고 오히려 더 퇴보 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전세계가 글로벌화한 시점에 모든 정보는 오픈되고 공유화 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더 이상 감출 것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다. 불교에 관한 정보를 스님들이 독차지 하는 시대는 지났고 제가 불자들도 검색만 하면 언제나 새로운 내용을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바로 이런 현상이 불교개혁이 아닌 불교혁명을 자연스럽게 주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향이어서 일까 100년전에 만해스님이 강조 하던 교육개혁이 이제야 이루어 지고 있다. 서당식 강원교육이 폐지되고, 또 한문경전 위주에서 한글경전으로 바뀌고, 초기불교 교리와 관련된 과목이 신설되는 것과 같은 강원교과과정이 300여년만에 전면 바뀐다는 것이다.

 

이대로 영원히!”

 

그렇다면 불교개혁은 스님들이나 종단에 맡겨 놓아서는 절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득권에 안주 하며 그 체제가 이대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보수적 속성 때문에 변화를 싫어 하고 개혁을 거부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급속하게 변해가는데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승가사회가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결국 기득권 수호때문이다. 기득권을 버렸을 때 변화와 개혁을 바랄 수 있는데, 기득권 세력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개혁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깍는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유도하기 힘들 다면 외부적 요인에 의하여 개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시대는 크게 바뀌어 개혁이 아닌 혁명을 요구 하고 있다. 잘못된 제도와 관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통째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집을 수리하여 사용하기 보다 그 집을  내버려 두고 집을 다시 짓는 것이다. 그런 집을 짓기 위한 토대공사가 현재 진행중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작업을 하는 이들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버릴 것도 없고, 계승할 것도 없다. 그런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재가불자들이다. 따라서 재가불자들이 많이 알고 익히고 배운다면 불교개혁이 아니라 불교혁명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2010-12-14

진흙속의연꽃

 

 

 

 

 

“불교 유신”을 다시 생각하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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