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살처분과 공범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0. 12. 24. 10:58

 

 

나는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살처분과 공범자

 

 

 

 

제가 직업을 잘못 선택했나봐요라디오에서 아침에 방송 하는 뉴스브리핑시간에 들은 말이다. 경기도 북부 지역에 구제역이 발생하여 소를 ()처분하기 위하여 독약이 든 주사를 놓은 여성 방역자가 하던 말이라 한다.

 

살생을 하지 말라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살인(殺人)을 금하고 있다. 도둑질, 거짓말등과 함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데 이를 오계 또는 십계라 하여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계율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살인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살생(殺生)을 하지 말라고 하여 타종교 보다 더욱 더 엄격하게 규정한다. 그런 규정은 초기경전에 수 없이 나타나는데 그 중 고층에 속하는 마하왁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살생을 하지 말라.

2.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

3. 음행을 하지 말라.

4. 거짓말을 하지 말라.

5. 술 마시지 말라.

6. 때 아닌 때 먹지 말라.

7. , 노래, 음악을 멀리하라.

8. 화환, 향수, 화장품으로 치장하지 말라.

9. 높고 큰 침상을 사용하지 말라.

10. 금과 은을 받지 말라.

(마하왁가 1 56)

 

 

이 경은 사미를 위한 열 가지 계율이다. 10가지 중에 1번 부터 5번까지가 재가불자들에게 적용 되는 것을 오계라 한다.

 

오계를 보면 가장 먼저 지켜야 될 사항이 살생을 하지 말라이다. 이는 타종교와 비교해 보았을 때 생명관에 있어서 가장 차별 되는 부분이다. 기독교의 경우 살생을 하지 말라아니라 살인을 하지 말라라고 하는데 가장 첫 번째로 실천해야 덕목은 아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먼저 계율을 지켜야 하는 것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와 같이 자신의 신 이외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살인을 하지말라는 몇 번째에 해당할까.

 

개신교의 경우 여섯번째 해당하고, 천주교의 경우 다섯번째에 들어 가 있다. 이처럼 살인을 하지말라라는 계율이 10계 중에 중간쯤에 위치 하는데, 개신교의 경우 1번 부터 4번까지는 신의 섬김에 대한 이야기이고, 천주교의 경우 1번 부터 3번까지 역시 신과 관련된 계율이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불교의 오계는 종교와 인종과 성별에 관계없이 인류가 실천해야할 보편적인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그 것도 가장 먼저 실천해야 될 사항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여서는 안된다는 생명중시사상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다.

 

양쪽 세계에서 모두 고통받는

 

불교에서 불살생을 오계로 금하고 있는데, 실제로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는 행위를 악행으로 보고, 그 에 대한 과보를 반드시 받는다고 믿고 있다. 이는 도둑질, 음행과 더불어 몸으로 짓는 업(身業)에 속하는데, 이것은 내생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무거운 업(重業)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을 죽여서는 왜 안될까. 이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명을 죽이는 사람은 그런 행동으로 인하여 현생과 내생에 두려움과 증오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괴로움과 슬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죽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증오가 가라앉습니다.

(상윳따 니까야: 12 나다나 상윳따 41)

 

 

생명을 죽였을 때의 두려움과, 죽임을 당했을 때의 증오는 매우 강렬한 것이어서 이는 내생에 악처에 태어 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악행을 되새길 때마다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그 마음을 가지고 죽으면 결국 악처에 태어나게 되어, 현생에서도 고통 받고 또 내생에서도 고통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은 살생에 대한 과보이야기는 법구경의 게송에도 나타난다.

 

 

Idha socati pecca socati,                   이다 소짜띠 뺏짜 소짜띠

pāpakārī ubhayattha socati                  빠아빠까아리 우바얏타 소짜띠

So socati so vihannati,                      소 소짜띠 소 위한나띠

disvā kammakiliṭṭham attano                디스와아 깜마낄릿탐 앗따노

 

 

이 세상에서도 그는 비탄에 빠지고

다음 세상에서도 그는 비탄에 빠진다.

이처럼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은

양쪽 세상 모두에서 괴로움을 겪는다.

그가 더욱 괴로운 것은

고통을 겪으며 자기 악행을 보고 되새기는 것이다

(법구경 15번 게송)

 

 

이 게송에 대한 인연담은 쭌다수까리까(Cundasukarika)는 백정이 죽어 갈때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행한 악행을 되새기는 것이다. 이 세상사람 모두를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이 행한 악행은 속일 수 없기 때문에 그 악행을 되새길 때마다 정신적 고통을 겪고, 그 악행하는 장면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다음생에 태어날 곳의 표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한다. 그것도 병이 없이 오랫동안 살고 싶어 한다. 그런 살고 싶은 욕구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두가 해당된다. 누군가 나의 생명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였다.

 

 

장자들이여,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살핍니다. ‘나는 살고 싶고 죽고 싶지 않으며 즐거움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나의 생명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기분 나쁜 일이며 유쾌한 일은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살기를 원하고 죽고 싶지 않으며 즐거움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내가 만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기분 나쁜 일이며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나에게 기분 나쁘고 유쾌한 일이 아닌 것은 남에게도 기분 나쁘고 유쾌한 일이 아니다. 나에게 기분 나쁘고 유쾌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남에게 행하랴!’이와 같이 살펴보기 때문에 그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으며,

남에게도 죽이지 않도록 권하고,

죽이지 않는 것을 찬탄합니다.

 

이 세가지에 의해 몸의 행위는 깨끗해집니다.

(상윳따니까야 55)

 

 

누군가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다면 기분 나쁜일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기분 나쁠 것이다. 나는 살고 싶고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되고, 죽이라고 명령해서도 안되고, 죽이는 것을 찬탄해서도 안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중섭의 소

사진

http://www.changhyun.es.kr/zb41/view.php?id=g_03_2&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0

 

 

 

하지 말아야 할 직업은

 

이처럼 살생업은 매우 무겁다. 그래서 불교윤리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는 팔정도에서도 살생은 도둑질, 음행과 더불어 몸으로 짓는 행위로 간주 하고 다음과 같이 바르게 행동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바른 행동인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덟가지 바른길, 상윳따 니까야:45 막가 상윳따8)

 

 

팔정도에서 살생과 관련된 항목은 바른 행동이다. 이를 한자어로 정업(正業)’이라 하고, 영어로 ‘Right action’, 빠알리어로 삼마깜만따( sammā-kammanta) 라 한다.

 

이처럼 몸으로 짓는 행위는 매우 무거운 업인데, 이런 업을 짓지 않으려면 바르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업을 짓지 않기 위해서 바른 직업을 가지는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팔정도에서는 이를 바른 생활수단(正命, Right livelihood, sammā-ājīva)이라 한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바른 방법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금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들고 있다.

 

 

1. 무기와 관련된 직업

2. 노예나 매춘에 관련된 직업

3. 동물을 도살하는 직업

4. 독약이나 술이나 마약을 거래하는 직업

 

 

위 직업의 내용을 살펴 보면 주로 몸으로 짓는 업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살생, 도둑질, 음행이 몸으로 짓는 업인데, 무기와 도살과 관련된 직업은 살생과 연관이 있고, 매춘에 관한 직업은 음행과 관련이 있고, 술과 관련된 직업은 오계에서 술을 마시지 말라라는 계율과 연관이 있다.

 

도둑질과 관련된 직업은 도둑과 사기등에 해당될 것이다. 굳이 그런 직업을 들라면 투기나 사행성 오락과 관련된 직업들일 것이다.

 

이처럼 불교에서 금하는 직업은 오계와 관련 되어 있고 특히 몸으로 짓는 업인 신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직업은 안전할까.

 

나의 직업은 안전할까

 

핸드폰을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핸드폰이 범죄나 매춘을 하기 위하여 활용된다면 그 직업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또 농사짓는 사람이 생산하는 쌀로 밥을 해 먹고 사는 무기제조업체나 술파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도살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농민은 또 얼마나 자유로울까. 옷을 만드는데 종사하는 사람, 주택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직업이든지 모두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 금하는 살생업을 비롯한 도둑질, 음행등 오계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오직 불도를 닦는 수행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결론이다.

 

하루에 한끼만 먹고, 그것도 탁발에 의존하며 모든 감각적 욕망을 내려 놓은 수행자만이 이 우주의 엔트로피를 증가 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행자가 탁발에 의존 하지 않고, 미래를 위하여 노후를 위하여 재산을 축적한다면 세속의 사람과 하등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모두가 공범자

 

구제역으로 인하여 주사기에 독약을 넣고 살처분에 참여한 방역 여직원이 제가 직업을 잘 못 선택했네요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 보던 축산업을 하는 가족 또한 죽어 가는 소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뉴스에서 전한다. 왜 이런 비극이 발생되는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려면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이런 경쟁은 기업간에, 국가간에도 치열하다. 많은 매출을 올려야 기업이 유지 되고, 매년 경제성장을 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그러다 보니 자원을 많이 확보하여 많이 만들어 팔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축산도 산업이다. 소나 닭, 돼지의 살코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산을 해야 한다.

 

마치 공장의 콘베이어 벨트에서 물건이 출하 되듯이 닭이나 돼지, 소가 농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가축은 물건이나 다름없다. 비록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살코기를 제공하는 제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생산제품에 품질문제가 발생되면 불량품이 된다. 상품으로 가치가 없는 불량품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쓰레기통에 버려져 소각된다. 마찬가지로 소나 돼지, 닭들 또한 생산품이기 때문에 먹지 못할 정도가 되면 마치 불량품 처럼 폐기 처분 될 것이다.

 

그런데 생명이 있는 것은 공산품과 다르기 때문에 먼저 죽여야 한다. 그것도 수천, 수만마리를 동시에 처분 하는 것이다. 이를 살처분이라 한다.

 

 

 

 

 

 

사진: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1130165418300&p=newsis

 

 

 

살처분 하는 과정에서  방역여직원이 독이 든 주사기를 들었는데 이 정도는 그래도 잘 보내주는 측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닭이나 돼지 같은 경우 산채로 생매장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직접 죽인 사람이나,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사람이나, 살코기를 사먹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나 모두 살생업을 저지른 공범자라고 볼 수 있다.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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