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의 불편한 진실과 빠알리삼장
어느 해 여름 가야산 산행을 가게 되었는데 장마철이라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산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야산 산행을 포기하고 그 대신 해인사관람을 하였다.
처음 가 본 해인사는 천년고찰의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넉넉하고 고즈넉하였다. 무엇보다 말로만 듣던 팔만대장경이 있어서 관심있게 지켜 보았다. 법당에서 삼배를 마친후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는데 팔만대장경이 있는 사찰이어서일까 대장경탁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지에 탁본된 것을 보니 반야심경과 금강경이었다. 그 중 반야심경을 여러장 구입하였다.
반야심경 탁본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국보 제32호. 목판본은 1,516종에 6,815권으로 총 8만 1,258매이다.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이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뒤 1236년(고종 23) 당시의 수도였던 강화에서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다.
탁본으로 반야심경을 보니 마치 대장경을 손에 넣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260여자에 달하는 반야심경을 보니 눈에 익숙한 문구이다. 그런데 요즘 쓰이지 않는 글자도 발견되었다. 무(無)자를 하늘천자 비슷하게 쓴 것이다. 탁본의 말미에 ‘무술년 고려국대장도감발주조’라는 글자가 눈에 띄였는데 마치 그 때 당시 팔만대장경을 주조하던 시대가 상상 되었다.
“ 고려대장경은 모두 가짜다”
이렇게 팔만대장경이라 불리우는 고려대장경은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이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인류문화재로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매우 도발적인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의 제목은 “ 고려대장경은 모두 가짜다”라는 것이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자 불교계에서 자랑할 만한 법보인 고려대장경이 가짜라니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그 것도 불교관련인터넷신문에서 난 기사제목이다.
기사의 내용을 읽어 본 뒤 포털에서 고려대장경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여 보았다. 뉴스에 두 건이 떳는데, 하나는 한국일보에서 보도한 것으로 제목은 “[인터뷰] 대장경 제작 1000년…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저자 오윤희”에 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고려대장경, 중국 것 베낀 짝퉁?”이라는 제목으로 경기일보에서 난 기사이었다.
그렇다면 불교계 인터넷신문에서는 이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주요 6개 사이트를 조사해 보았다.
No |
인터넷신문 |
고려대장경 관련 기사 제목 |
비 고 |
1 |
붓다뉴스 |
"고려대장경은 모두 가짜다" |
한마음선원 |
2 |
법보신문 |
천년된 고려대장경이 진화된 짝퉁이라고? |
|
3 |
불교포커스 |
대장경에 성경이 들어 있다면? |
|
4 |
미디어붓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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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불교닷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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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불교신문 |
- |
조계종 종립신문 |
2월 중에 붓다뉴스와 법보신문, 불교포커스에서 고려대장경 관련 기사를 보도 하였지만 미디어붓다, 불교닷컴, 불교신문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보도된 기사의 제목을 보면 “가짜” “짝퉁” “성경” 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대체 고려대장경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길래 이와 같은 용어가 등장하는 것일까.
어떤 내용이 들어 있길래
기사내용은 이렇다. 고려대장경연구소 오윤희소장이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불광출판사)’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그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대장경은 ‘짝퉁’이라고 표현 하였다. 왜 짝퉁인가. 고려대장경은 중국것을 베꼇으니 짝퉁이라는 것이다.
흔히 중국을 짝퉁의 원조라고 한다. 전 세계의 명품브랜드가 중국에 들어가면 짝퉁이 되어서 나오는데, 이는 진품과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에도 그런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불교의 경전을 중국인들의 문화와 그 시대에 맞도록 편찬 하였는데, 후대에 이를 ‘위경’이라 부른다. 그런 위경과 서역에서 들어온 불교경전, 각종 논서들을 결집하여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 ‘개보대장경’인데 송나라때의 일이다.
그런데 고려시대 이 개보대장경을 엎어 놓고 베낀 것이 ‘초조대장경’이라 한다. 이 초조 대장경을 다시 베낀 것이 지금 해인사에서 보는 팔만대장경인데 이를 ‘재조대장경’이라 한다.
책의 저자 말대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중국 대장경을 엎어 놓고 베낀 짝퉁이라 한다면 이는 맞는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붓다뉴스의 기사제목대로 “고려대장경은 모두 가짜다”라고 뽑은 것은 지나치다. 타 기사의 내용을 보아도 가짜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대장경에 성경과 같은 외도문헌이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에서 외도의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것은 다음과 같다.
금칠십론(金七十論) :인도 육파 철학의 하나인 수론종 상키야 학파의 문헌
승종십구의론(勝宗十句義論) : 육파철학의 하나인 승론종 바이세기카 학파의 문헌
두 문헌은 힌두교와 관련된 문헌으로서 왕 앞에서 논쟁이 진행된 것을 적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불교는 이 논쟁에서 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헌이 대장경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기독교의 성경일부가 대장경에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1912∼1925)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당나라 당시 기독교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의 성서중 3종의 문헌이 신수대장경에 들어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고 한다.
서청미시소경(序聽迷詩所經)
경교삼위몽도찬(景教三威蒙度讚) : 삼위는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
경교삼위몽도찬(景教三威蒙度讚) ; 곡을 부쳐 찬송가로 사용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문으로 번역된 기독교 성경들은 역시 한문으로 번역된 불전들과 아주 닮았다고 한다. 이들 성경과 불경들은 서역을 통하여 들어 왔는데, 당나라 시절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던 분위기, 그리고 지적이고 종교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고려대장경의 가치는
단지 지적호기심으로, 또는 개방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힌두교와 같은 외도 문헌이 포함되어 있고, 더구나 기독교의 성경이 내용까지 포함 되어 있는 짝퉁의 원조 중국에서 만든 대장경을 그대로 베낀 결과 오늘날과 같은 대장경의 실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분위기라면 앞으로 천년후의 대장경의 모습은 어떠할까. 아마도 대장경 안에 ‘신약성서’라든가 ‘코란’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을지 모르고, 또 종교간의 대화내용 또한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장경이 중국의 것을 베낀것에 불과하고, 외도의 문헌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결코 평가절하된 것은 아니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글자가 정연하다거나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낯 부끄러운 이야기라 한다. 대장경의 가치는 13세기 강화도에서 전쟁통에 5만2천자에 달하는 글자와 1천5백여종에 달하는 문헌에 대하여 교정을 보고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전쟁통에 불과 16년만에 교정을 본 것에 대하여 고려대장경의 우수성이 있다고 기사는 전한다.
불설과 친설
고려대장경에 대하여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난 후 새삼스럽게 ‘빠알리삼장’에 대하여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장경과 빠알리삼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불설’과 ‘친설’의 차이일 것이다.
불설은 깨달은 사람이 말을 하면 모두 불설로 간주한다는 뉴앙스가 있다. 반면 친설은 부처님의 원음으로 보는 것이다. 다불과 다보살을 주장하는 대승불교에서 위경이 많은 이유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불설’로 간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대승논사들이 자신의 체험을 마치 부처님이 말한 것처럼 가탁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장경에는 위경을 포함하여 온갖 논서가 들어가 있고, 기사에서 보는 것처럼 외도의 문헌도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친설을 고수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의 원음이 훼손 되지 않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 오늘날 까지 원본의 훼손없이 고스란히 빠알리삼장이 전승되어 왔는데, 이에 대하여 유럽의 지성들은 빠알리삼장에 대하여 향후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줄 20세기 최대의 발견이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신흥사조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되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청정도론의 역자 대림스님은 청정도론의 해제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인도대륙의 변화무쌍한 학파난립과 신흥사상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실제 그것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다른 신흥사상과 섞지 않고 전승할 수 있다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림스님, 청정도론 ‘해제’글에서)
3차 결집후 빠알리삼장이 완성되고 난 후 아소까대왕은 전 세계에 이 법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전법사를 파견하는데 그 중 한 곳이 지금의 스리랑카이었다.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빠알리삼장을 원본의 훼손없이 지켜내기 위하여 노력은 지난 한 것이었다. 가장 경계하였던 것은 신흥사조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대륙에서 일어난 대승불교나 힌두교와 새로운 사조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격변을 겪자 위기를 느꼈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빠알리삼장을 싱할리어로 가두는 것이었다. 이때가 BC3세기이다. 이 때 부터 AD5세기 까지 무려 700년간 싱할리어로 가두어 놓은 결과 대륙의 새로운 사조에 전혀 물들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보는 빠알리 삼장은 3차 결집당시의 원문 그대로이고 부처님의 원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고려대장경과 빠알리삼장
세상의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하는 듯한 고려대장경과 부처님의 원음을 고수하는 빠알리삼장은 여로모로 비교된다. 그렇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려대장경이 만들어질 당시 그 때의 상황과 환경을 생각한다면 그런 대장경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글로벌화하는 현 시점에 있어서 불자들이 빠알리삼장을 접하는 것은 행운이다. 그것은 부처님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빠알리경전을 읽다 보면 부처님이 마치 면전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부처님이 바로 옆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2011-02-2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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