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부처님가르침에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는 없다, 다니야경(Sn1.2)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 4. 11:23

 

부처님가르침에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는 없다, 다니야경(Sn1.2)

 

 

 

 

다니야경

Dhaniya sutta (*1)

 

 

주해(*1)

 

이 경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사왓티에 계실 때에 소치는 다니야는 마히 강변 언덕에 살고 있었다. 그는 원래 과거불인 깟싸빠 부처님 시대에 이만 년에 걸쳐서 매일매일 승단을 위해 20인분의 식사를 보시했다.

 

그는 죽어서 하늘나라에 태어나 부처님이 없는 시대를 지내다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 다니야는 비데하(Videha)왕국에 속해있는 빰바뜨랏타 지방에 있는 담마콘다 시의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3만 마리의 황소가 있었고, 27천 마리의 소에서 젖을 짰다. 원래 소치는 일은 정주하기 곤란해서 우기의 4개월은 고지대에 머물고 다른 8개월은 풀이나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하천변이나 호숫가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그는 건기에는 마히 강의 분기점에서 형성된 섬에서 살았고 우기에는 고지대의 집에서 살았다.

 

그는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과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소치는 자는 우기의 징조를 알고 있었다. 새들이 집을 나무의 가지 끝에 짓고 게가 물 가까이에 있는 구멍을 막고 육지 가까이에 있는 입구를 드나들면 ‘많은 비가 올 것이다’라고 판단했고 반대로 새들이 낮은 곳 수면 가까이에 집을 짓고 게들이 육지 가까이 있는 입구를 막고 물 가까이의 구멍을 드나들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비가 내릴 징조를 안 다니야는 섬에서 나와 49일간 비가 내려도 침수되지 않는 지역을 찾아 우사를 짓고 거처를 마련하여 목재나 풀 등을 모아 놓았다. 사방팔방에서 검은 구름이 모여들었다. 그는 젖소에서 젖을 짜고 송아지들을 우리에 묶고 소들을 위해 사방에 연기를 피우고 모든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모든 준비를 끝내고 여기저기 등불을 밝히고 자신도 우유로 식사를 하고 큰 침상에 누워 행복을 누리며 만족하면서, 사방에서 뇌성벽력이 칠 때에 이 경에 나오는 자신의 시를 읊었다.

 

부처님은 700요자나 (1요자=14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왓티 시에서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신통력으로 다니야의 처소에 몸을 나투었다. 다니야가 노래부를 때 마다 부처님은 그 각각의 노래에 댓구가 되는 시들을 첨가했다. 이 노래가 끝나자 다니야의 아내와 두 딸이 진리의 흐름에 든 님(예류자)이 되었다. 그 때에 부처님이 자태를 드러내자 다니야와 그의 아내가 승단에 가입했다.

 

그 첫 12개의 시들은 농부 다니야와 부처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시들은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에서는 다니야의 농경생활의 유익함을 노래하고 뒤에서는 부처님이 유사한 유형으로 자신의 명상적 삶의 탁월성을 노래한다.

 

 

1. [소치는 다니야]

“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고, 마히 강변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불이 켜져 있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2.

[세존] “분노하지 않아 마음의 황무지가(*1) 사라졌고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내 움막은 열리고 나의 불은 꺼져 버렸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주해 (*1)

 

 - 마음의 황무지 -

 

“수행승들이여, 세 가지 황무지가 있다. 어떠한 것이 세 가지 인가?

탐욕의 황무지, 성냄의 황무지, 어리석음의 황무지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것이 세 가지 황무지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황무지를 잘 알고 두루 알고 소멸시키고 버리기 위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을 닦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경에서는 다섯 가지 마음의 황무지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곧 삼보에 대한 의심과 학문에 대한 의심, 동료 수행자에 대한 의심을 뜻한다.

 

 

3. [소치는 다니야]

“쇠파리들이나 모기들이 없고,

소들은 강 늪에 우거진 풀 위를 거닐며,

비가 와도 견디어 낼 것이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4.[세존]

“내 뗏목은(*1) 이미 잘 엮어져 있고,

거센 물결을(*2) 이기고 건너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더 뗏목이 소용없으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주해(*1)

 

- 뗏목 -

 

뗏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는데 커다란 홍수를 보았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고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는데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으로 가는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내가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면 어떨까?’ 그래서 그 사람은 수행승들이여, 풀과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를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두 손과 두 발로 노력해서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갔다.

 

그가 저 언덕에 도달했을 때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내가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갈 곳으로 가 버릴까?’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은 이와 같이 해서 그 뗏목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행했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 해야 할일을 행하는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그때 그 사람이 저 언덕에 도달했을 때 이와 같이 생각했다.

 

‘이제 나는 이 뗏목을 육지로 예인해 놓거나 물속에 침수시키고 갈 곳으로 가버릴까?’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하면 그 사람은 뗏목에 대해 해야 할 일을 행한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건너가기 위하여,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뗏목의 비유를 설했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뗏목의 비유를 아는 너희들은 법()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非法)이라”

 

 

주해(*2)

 

- 거센 물결 -

 

윤회의 바다에서 생사가 거듭되는 것을 거센 물결(暴流)에 비유한다.

열반은 그러한 거듭되는 윤회가 끝나 파도가 미치지 않는 해안을 뜻한다.

또 거센 물결에는 감각적 쾌락의 거센 물결, 견해의 거센 물결, 무지의 거센 물결이 있다.

거센 물결의 경에 따르면, 하늘사람과 세존의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

 

“스승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너셨습니까?

 

“벗이여, 나는 참으로 머무르지 않고 애쓰지도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다.

벗이여, 내가 머무를 때에는 가라앉으며 내가 애쓸 때에는 휘말려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처럼 머무르지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거센 물결을 건넜던 것이다.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는 머물고 애쓰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서 머물지 않고 애쓰지도 않는다는 것은 수수께끼 같은 것이지만

잘못 인도된 의지와 노력은 운명적 파탄을 초래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올바른 귀의와 올바른 수행을 통해서 힘들이지 않고 윤회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다.

 

 

5. [소치는 다니야]

“내 아내는 온순하고 탐욕스럽지 않아(*1)

오랜 세월 함께 살아도 내 마음에 들고

그녀에게 그 어떤 악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6. [세존]

“내 마음은 내게 온순하여 해탈되었고(*2)

오랜 세월 잘 닦여지고 아주 잘 다스려져,

내게는 그 어떤 악도 찾아 볼 수 없으니(*3)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주해(*1)

 

- 온순하고 탐욕스럽지 않아 -

 

‘온순한’이라는 말은 ‘충고를 잘 듣는’의 뜻이다. 그리고 여인은 다섯 가지 탐욕을 지니고 있다.

 

1)음식에 대한 탐욕.

2)치장에 대한 탐욕.

3)타인에 대한 탐욕.

4)재물에 대한 탐욕.

5)유람에 대한 탐욕.

 

그러나 여기서 다니야의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주해(*2)

 

- 해탈 되었고 -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떠나 해탈 한 것‘이다.

 

 

주해(*3)

 

- 어떤 악도 찾아 볼 수 없으니 -

 

신체적 악행, 언어적 악행, 정신적 악행을 하지 않고, 청정한 신체적 행위, 청정한 언어적 행위, 청정한 정신적 행위를 갖춘 것을 의미한다.

 

 

7. [소치는 다니야]

“나 자신의 노동의 댓가로 살아가고,

건강한 나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니,

그들에게 그 어떤 악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8. [세존]

“나는 누구에게도 댓가를 바라지 않아,

내가 얻은 것으로 온 누리를 유행하므로,

댓가를 바랄 이유가 없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9. [소치는 다니야]

“다 자란 송아지도(*1) 있고,

젖먹이 송아지도(*2) 있고,

새끼 밴 어미 소 뿐만 아니라

성년이 된 암소도(*3) 있고,

암소의 짝인 황소 또한 있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10. [세존]

“다 자란 송아지도(*4) 없고,

젖먹이 송아지도(*5) 없고,

새끼 밴 어미 소(*6) 뿐만 아니라

성년이 된 암소도(*7) 없고,

암소의 짝인 황소(*8) 또한 없으니(*9),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 소치는 다니야의 소가 의미하는 것

 

주해 (*1)

다 자란 송아지 - 길들여지지 않은 다 자란 송아지.

 

주해 (*2)

젖먹이 송아지 - 젖을 빠는 어린 송아지

 

주해 (*3)

성년이 된 암소 - 성년이 되어 황소와 함께 교접이 가능한 소

 

 

 

- 세존의 게송에 나오는 소가 의미하는 것

 

주해 (*4)

다 자란 송아지 - 편견에 사로잡힌 것을 의미한다.

잠재의식이 이것에 의해서 현실적으로 행동까지 옮겨져 위범하게 된다.

 

주해 (*5)

젖먹이 송아지 - 잠재적 경향성.

 

주해 (*6)

새끼 밴 어미 소 - 여러 가지 공덕에 대하여 지식에 바탕을 둔 축적의 의도를 말한다.

 

주해 (*7)성년이 된 암소 - 갈애를 말한다.

 

주해 (*8)

황소 - 유위적인 조작의식 또는 축적의식을 말한다.

유위적 조작이란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는 자아관념에 의한 조작을 말한다.

 

주해 (*9)

없으니 - 이러한 다섯 가지 소들에 대한 비유는 전통적으로 인도 문헌에서 다섯 가지 감각 능력( )을 비유하는데 쓴 것이다. 따라서 이런 다섯 감각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뛰어넘은 것을 말한다.

 

 

 

 

 

 

India Cow

  

 

 

11.[소치는 다니야]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고,

문자 풀로(*1) 만든 새 밧줄은 잘 꼬여 있어,

젖을 먹는 어린 소가 끊을 수 없을 것이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12.[세존]

“황소처럼 모든 속박들을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넝쿨을(*2) 짓밟아,

나는 다시 모태에 들지 않을 것이니(*3)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주해(*1)

 - 문자 풀 : 문사초(文邪草)라는 풀로 만든 밧줄.

 

 

주해(*2)

 

- 냄새나는 넝쿨 -

 

우리의 아름다운 몸이 실제로는 ‘썩은 냄새나는 몸’인 것을 의미한다. 몸에 대한 관찰로 중요한 것은 몸의 실제적 모습을 분석적으로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먼저 부정물(不淨物)로 가득찬 신체에 대한 관찰은 갈애에 수반되는 육체적 쾌락이나 성적 충동을 제어하고 소멸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육체적인 매력은 피상적인 관찰에서 유래하며 부정관은 사실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한다. 경전은 마치 두개의 구멍을 가진 푸대자루에 여러 가지 곡물이 들어있듯이 이 신체를 32가지 부정물로 가득차 있는 푸대자루처럼 하나하나씩 그 내용물을 열거하면서 분석적으로 그 부정(不淨)함을 관찰할 것을 권하고 있다.

 

 

주해(*3)

 

- 모태에 들지 않는다. - 윤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다야 경에 다음과 같은 세존의 말씀이 있다.

 

"목우는 자꾸만 젖을 짜고,

송아지는 자꾸만 어미를 찾네.

사람들은 자꾸만 지치고 두려워하고,

어리석은 자는 자꾸만 모태에 드네.

 

 

13. 골짜기와 언덕을 채우면서

갑자기 커다란 구름이 비를 뿌리니,(*1)

하늘이 뿌리는 빗소리를 듣고,

다니야는 이와 같은 말을 했다.

 

14. [소치는 다니야]

“우리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2)

눈을 갖춘 님이시여,(*3)

당신께 귀의하오니,

우리의 스승이 되어 주소서, 위대한 성자시여.

 

15. 아내도 저도 순종하면서

행복한 분 곁에서 청정한 삶을 살겠으니

태어남과 죽음의 피안에 이르러

우리로 하여금 괴로움을 끝내게 하소서.

 

 

주해 (*1)

비를 뿌리니 -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감로의 법우(甘露法雨)를 말한다.

 

주해 (*2)

14. 15의 두 시()는 다니야와 그 아내의 대화를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계시니 청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찬탄하는 것이다.

 

 

주해 (*3)

 

부처님에게는 다섯 가지의 눈이 있다.

 

1)자연의 눈(性眼)

2)하늘의 눈(天眼)

3)지혜의 눈(慧眼)

4)보편의 눈(普眼)

5)부처의 눈(佛眼)이다.

 

대승의 금강경에서는 자연의 눈이 육안(肉眼)으로, 보편의 눈이 법안(法眼)으로 바뀌었다.

 

 

16. [악마 빠삐만](*1)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2) 사람에게 기쁨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없습니다.

 

17. [세존]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슬퍼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인해 사람에게 슬픔이 있으니,

집착이 없는(*3)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

 

 

주해(*1)

악마 빠삐만 - 악마는 모든 경우에 부저님을 유혹하는 반대편에 선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의 악마와는 달리 대조적인 견해를 드러내서 깨달음의 길을 분명히 하는데 이용된다.

 

 

주해(*2)

 

집착의 대상으로 - 열반은 모든 집착의 버림'이다. 네 가지 집착의 대상이 있다.

 

1)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愛取).

2) 존재의 다발들에 대한 집착(蘊取).

3) 오염된 번뇌에 대한 집착(煩惱取)

4) 존재의 다발들을 실체를 지닌 것으로 조작하는 것에 대한 집착(爲作取)이 있다.

 

여기서는 첫 번째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주해(*3)

집착이 없는 - 집착의 대상을 포기하고 세속의 생활을 버리는 것이다.

 

 

- 다니야의 경이 끝났다.-

  

(다니야경(Dhaniya sutta, 숫따니빠따 Sn1.2, 전재성박사역)

 

다니야경(Dhaniya sutta, 숫따니빠따 Sn1.2, 전재.pdf 다니야경(Dhaniya sutta- 숫따니빠따 S1.2.docx

 

 

 

그러니 신이여

 

1 1 EBS에서 법정스님의 영상기록물인 법정스님의 의자를 방영하였다. 스님의 생전의 모습을 영상을 통하여 볼 수 있었는데, 스님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처럼 만들어진 영상기록물에는 불교의 게송도 종종 선 보였다. 그런 게송중에 숫따니빠따의 다니야경(Dhaniya sutta, Sn1.2)’에 실려 있는 후렴구인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거든 비를 소서라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이 문구만 놓고 보았을 때 불교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에 충분하다. 부처님이 신이여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은 일반적으로 유일신교의 신을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불교에 대하여 하는 일반적인 상식은 불교는 무신론이고 부처님은 깨달은 자라고 보통 말하는데 부처님이 신을 찾는 것에 대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

 

불교에서도 신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신은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것 처럼 원인을 갖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며 세상만물을 만들었다는 창조주를 말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은 어떤 신일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 박사는 숫따니빠다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devataa : 원래 devataa는 인도의 민간 신앙에 따르면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의 주변에 사는 나무나 샘의 님프, 숲과 밭과 들과 가축과 가옥의 수호신을 의미하는 정신적 존재이다. 하늘사람도 인간이나 짐승처럼 육도윤회하는 존재로 파악했다.

 

(전재성박사, 숫따니빠따 파멸의 경-paraabhavasutta주석에서)

 

 

데와따(devata)는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라면 작은 신으로서 정령같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신을 데와(deva)라 부른다. 여신은 데비(deva)라 한다. 그런데 전재성박사의 주석에 따르면 불교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육도윤회하는  중생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숫따니빠따의 다니야경에서 보는 후렴구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거든 비를 소서에서 보는 신은 육도윤회하는 중생으로서 신이다.

 

이 문구에 대한 빠알리어 표기는 앗타 쩨 빳타야시 빠왓사 데와(Atha ce patthayasi pavassa deva)”로 되어 있다. 문구에서 데와(deva)’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에 대하여 법정스님은 자신의 저서 숫타니파타에서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전재성박사는 이 구절에 대하여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라고 하였다.

 

하늘, 하늘사람, 하늘님

 

법정스님의 책 숫타니파타는 일본의 남전대장경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하여 전재성박사의 것은 빠알리 원전을 직접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deva에 대하여 법정스님은 으로 번역하였고, 전재성박사는 하늘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게 하늘로 번역한 것에 대하여 전박사는 상윳따니까야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도리천(삼십삼천 tavatimsa)

인도 전통의 우주론에서 말하는 천국의 하나. 욕계의 여섯 하늘나라 가운데 두번째 해 당. 도리천의 제왕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제석천(석제환인. 환인)이며 선견성에 거주한다. 인도 전통의 우주론의 '하늘( deva)' 개념은 불교 윤회 및 수행 과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수용되어 정착하게 된다.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三界)로 정리되며, 각 계에는 수행의 차이에 따라 각각 상응되는 하늘이 있다.

 

(전재성박사, 상윳따니까여 거센물결경- Oghataraasutta, S1.1.1.1.1)

 

 

전재성박사의 니까야에 등장하는 하늘사람이나 하늘님, 하늘등은 불교의 삼계에 있어서 천상에 대한 것이다. 특히 욕계천상중 도리천의 제석천은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에 대비된다고 한다.

 

그런데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하늘, 하늘사람, 하늘님등은 모두 윤회하는 존재로서 제도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니야경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신이나 하늘은 윤회하는 존재로서의 신인 것이다.

 

진제(眞諦) 와 속제(俗諦)

 

다니야경은 소치는 재가불자와 부처님과의 대화이다. 대화이야기를 보면 마치 한폭의 아름다은 서정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부처님은 재가불자와 대화할 때 처음부터 어려운 법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계율과 보시에 대한 실천을 말씀 하였는데, 이를 잘 실천하면 하늘에 날 수 있다고 가르침을 폈다는 것이다. 이는 거친 삶을 살아가는 재가자가 부처님의 심오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가자 오계를 준수하고 삼보에 귀의 하는 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 수준이 되었다고 판단 되었을 때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인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를 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초기경을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법의 눈이 열려 예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다니야경에서도 그런 대목이 눈에 띈다. 경의  15번 게송중에 “~태어남과 죽음의 피안에 이르러 우리로 하여금 괴로움을 끝내게 하소서.”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으로 보았을 때 출가자의 가르침 따로, 세속에서의 가르침 따로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진제(眞諦) 와 속제(俗諦)에 관한 것이다. 초기경 그 어디에도 진제와 속제에 대한 구별도 없고 용어 자체도 보이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해탈하여 열반을

 

부처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해탈하여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다.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초기경 도처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들이 독송하고 암송하는 예불문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숫따니빠따와 쿳다까빠타에 공통적으로 실려 있는 라따나경, 까라니야멧따경, 망갈라경이다. 이들 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14.

Khīa purāa nava natthi sambhava       -낭 뿌라-낭 나왕 낫티 삼바왕
Virattacitt
ā āyatike bhavasmi                     위랏따찟따- -야띠께 바와스밍
Te
īabilā avirūhicchandā                           떼 니나빌라- 아위루-리찬다-
Nibbanti dh
īrā yathāyampadīpo,                      닙반띠 디-- --얌빠디-
Idampi sa
ghe ratana paīta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그에게 과거는 소멸하고 새로운 태어남은 없으니,

마음은 미래의 생존에 집착하지 않고,

번뇌의 종자를 파괴하고 그 성장을 원치 않으니,

현자들은 등불처럼 꺼져서 열반에 드시나니,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

 

(라따나경-Ratana Sutta, 보배경, 寶石經, 숫따니빠따(Sn 2.1) 와 쿳다까빠타 (Khp 7), 전재성님역)

 

 

 

 

10.

Diṭṭiñ ca anupagamma                                  딧띤 짜 아누빠감마
s
īlavā dassanena sampanno                          실라와- 닷사네나 삼빤노
K
āmesu vineyya gedha                               -메수 위네이야 게당
na hi j
ātu gabbhaseyya punaretī                   나 히 자-뚜 갑바세이양 뿌나레띠

 

삿된 견해에 의존하지 않고 계행을 갖추고,

통찰을 갖추어 감각적인 욕망을 다스리면,

결코 다시 윤회에 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까라니야멧따경-Karaniya Metta Sutta- 자애경, 숫따니빠따 (Sn 1.8)와 쿳다까빠타 (Khp 9)>, 전재성님역>

 

 

 

269.

Tapo ca brahmacariyañca ariyasaccānadassana,
Nibb
ānasacchikiriyā ca eta magalamuttama.

 

감관을 수호하여 청정하게 살며,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이루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망갈라경-Magalasutta-위대한 축복의 경, 행복경, 숫따니빠따(Sn 2.4)와 쿳다까빠타(Khp 5), 전재성님역 >

 

 

 

테라와다불교의 예불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 개의 경을 보면 공통적으로 열반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열반에 든다거나 윤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진제와 속제로 구별하여 속제는 유일신교에 대응되기 때문에 그들의 교리도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2-01-04

진흙속의연꽃

 

 

 

 

다니야경(Dhaniya sutta- 숫따니빠따 S1.2.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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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야경(Dhaniya sutta, 숫따니빠따 Sn1.2, 전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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