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가보(家寶)나 다름 없는 쌍윳따니까야 개정판 전7권을 구입하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2. 9. 28. 12:28

 

가보(家寶)나 다름 없는 쌍윳따니까야 개정판 전7권을 구입하고

 

 

 

 

무엇에 의지해야 하나

 

불자들에게 있어서 의지처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있을 수 있지만 담마에 의지하는 것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한국불교가 처한 현실에서 그렇다. 이는 부처님이 말씀 하신 내용으로 알 수 있다. 먼저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Attadīpā bhikkhave,

viharatha attasaraā anaññasaraā.

Dhammadīpā dhammasaraā anaññasaraā.

 

[세존]

수행승들이여,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앗따디빠경-Attadīpa sutta , 자신을 섬으로의 경- S21. 1. 5. 1)

 

 

부처님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고 자신에 의지 (attasaraā)’ 하고 가르침에 의지 (dhammasaraā)’고 하였다.

 

관세음보살정근을 하여

 

최근 미디어붓다에서 제공하는 정각원 토요법회 동영상을 보았다. 사이트에 올려진 동영상 법문중에 H스님에 대한 법문이 있었다. 스님은 법문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스님은 처소에서 잠을 자다 처소가 벼락으로 인하여 처소가 무너졌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차서 갇히게 되자 죽을 지도 모른다는 극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때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정근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4시간 동안 사투하다 시피 일념 염불한 결과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대승불교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불교에서 생과 사의 위기기 닥쳤을 때 의지할 것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등 원력보살이나 내세의 부처님일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이 닥쳤을 때

 

그렇다면 곧 죽을지도 모르는 극한 공포와 두려움이 닥쳤을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였을까. 초기경에 다음과 같이 부처님이 말씀 하셨다.

 

 

Araññe rukkhamūle vā suññāgāreva1 bhikkhavo,
Anussaretha sambuddha
bhaya tumahāka2 no siyā.

No ce buddha sareyyātha lokajeṭṭha narāsabha,
Atha dhamma
sareyyātha niyyānika sudesita.

No ce dhamma sareyyātha niyyānika sudesita,
Atha sa
gha sareyyātha puññakkhetta anuttara.

Eva buddha sarantāna dhamma saghañca bhikkhavo,
Bhaya
vā chambhitatta vā lomahaso na hessatīti.

 

[세존]

숲속의 나무 밑이나 빈집에서 수행승들이여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을 생각하라. 그대들에게 공포는 사라지리라.

 

만약에 이 세상에서 최상이며 인간 가운데 황소인 깨달은 님을 생각할 수 없으면

그때는 해탈로 이끄는 잘 설해진 가르침을 생각하라.

 

만약에 해탈로 이끄는 잘 설해진 가르침을 생각할 수 없다면

그때는 최상의 복전이 되는 참 모임에 관해 생각하라.

 

이와 같이 그대들이 깨달은 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을 마음에 새기면

공포나 또는 전율이나 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리라.”

 

(다작가경-깃발경-Dhajaggasutta, 상윳따니까야 S11.1.3, 전재성님역)

 

 

숲속이나 빈집등에서 홀로 머물 때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할 때 부처님과 담마와 상가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털이 곤두서는 듯한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질 것이라 하였다.

 

어떻게 부처님을 생각해야 하나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부처님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공포를 떨처야 할까.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한다.

 

 

Itipi so bhagavā        이띠삐 소 바가와

araha                    아라항

sammāsambuddho             삼마삼붓도

vijjācaraasampanno       윗자짜라나삼빤노

sugato                     수가또

lokavidū                   로까위두

anuttaro                   아눗따로

purisadammasārathi satthā  뿌리사 담마사라티 삿타

devamanussāna            데와마눗사낭

buddho                     붓도

bhagavā                  바가와

 

이처럼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지혜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에 존귀하신 님이다.”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날 때 여래 진실로여래 십호를 명호하면 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라 한다.

 

그래도 두려움이 일어난다면

 

그래도 두려움이 일어난다면 잘 설해진 가르침을 생각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스왁캇또 바가와따 담모

sandiṭṭhiko                       산딧티꼬

akāliko                          아깔리꼬

ehipassiko                       에히빳시꼬

opanayiko                        오빠나이꼬

paccatta veditabbo viññūhī   빳짯땅 왜디땁보 윈뉴히

 

 세존께서 잘 설하신 이 가르침은

현세의 삶에 유익한 것이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고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이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로생각하면 털이 서는 듯한 공포나 전율, 두려움은  역시 사라질 것이라 한다.

 

이번에는 상가를 생각해야

 

그래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에는 상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다음과 같은 방법이다.

 

 

supaipanno bhagavato sāvakasagho.   수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Ujupaipanno bhagavato sāvakasagho.    우주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Ñāyapaipanno bhagavato sāvakasagho.   냐야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Sāmīcipaipanno bhagavato sāvakasagho. 사미찌빠띠빤노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Yadida cattāri purisayugāni,          야디당 짜따리 뿌리사유가니

aṭṭha purisapuggalā,                     엣타 뿌리사뿍갈라

esa bhagavato sāvakasagho              에사 바가와또 사와까상고

āhuneyyo                                아후네이요

pāhuneyyo                               빠후네이요

dakkhieyyo                             닥키네이요

añjalikaraīyo                          안잘리까라니요

anuttara puññakkhetta lokassā     아눗따랑 뿐냐켓땅 로깟사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은 훌륭하게 실천한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은 정직하게 실천한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은 현명하게 실천한다.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은 조화롭게 실천한다.

 

이와 같은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은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참 사람으로 이루어졌으니

공양받을 만하고

대접받을 만하며

보시받을 만하고

존경받을 만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이렇게 진실로성스런 상가를 생각하면 털이 서는 듯한 공포와 전율,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라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다.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불자들이 의지할 곳은 크게 붓다와 담마와 상가 이렇게 삼보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도 진실로 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고부처님과 가르침과 상가에 의지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불자들이 현실적으로 불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가르침이다.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알려 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하였던 다른 것에 의지하는 일이 벌어진다. 부처님이 가르침이 훌륭함을 안다면 불자들이 결코 다른 것에 의지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 자료를 올렸더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자료를 보시해 준 이가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하면서 인터넷에 자료를 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법우님으로부터 요즈음은 연꽃님 때문에 책값이 많이 절약됩니다.   더군다나 엑기스만을 뽑아주시니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와 같은 글을 받았다.

 

글에 대하여 공감하는 격려의 글을 올려 주신 것은 고맙지만 너무 인터넷에 의존하려는 듯한 글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글을 올리는 이유는 불자들이 될 수 있으면 번역된 니까야를 많이 사 보아 경전 읽기가 생활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부작용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글쓰기 행태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되었다. 단지 가지고 있는 자료만을 의지하여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다. 그래서 현재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전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차츰 모든 경전을 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상윳따니까야를 먼저 구입하기로 하였다.

 

상윳따니까야를 구입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상윳따니까야를 구입하였다. 최저가를 표방하는 사이트도 있지만 문제는 전권을 다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신뢰할 만한 도서전문 사이트에서 구매 하였다. 전재성박사의 쌍윳따니까야 개정판 전 7권을 구입한 것이다.

 

 

 

 

 

 

 

 

전재성박사의 쌍윳따니까야는 신청한지 하루 만에 택배로 도착 되었다. 빨간색 하드 커버에 두툼하고 무게가 나가는 책들은 보기에도 달라 보였다. 책을 열어 보았다. 글씨체가 큼지막하다. 폰트사이즈 12정도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노안인 사람들도 읽기 편한 명조체 글씨이다. 주석의 글씨체는 작아서 노안이 있는 사람들은 별도의 돋보기가 필요하리라 본다.

 

 

 

 

서문을 읽어 보니

 

서문을 읽어 보았다. 그중 개정판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고귀한 부처님의 말씀을 역자가 번역하게 된 동기는 역자가 쓴 거지성자라는 책자에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의 25년전에 돈연스님의 부탁으로 1991년에 초역한 이 <<쌍윳따니까야>>의 초고의 일부는 경전연구소의 화재로 영원히 분실되는 줄 알았습니다. 숯더미가 된 화재의 현장에서 망연자실하며 헤매다가 불타다가 남은 원고를 간신히 발견하였습니다. 그 원고를 다시 보완해서 주석을 달은 지 8년 만에 실상사 도법스님을 비롯한 여러스님들과 재가의 후원자의 도움으로 1999년 출간을 시작해서 만 3년만인 2002년 초에 완간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초역 전집에는 <<쌍윳따니까야>> 5편을 초판본 한글판 11권 전집으로 엮어내어 순차적으로 낼 때만 하더라도 번역조건이 너무나 열악한 나머지 교정진 조차 없이 발간하는 바람에 많은 오타, 착간뿐만 아니라 간혹 오역도 발견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고귀한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훼손하지나 않았나 하는 송구스러움이 있었는데, 이책을 사랑하여주신 많은 독자의 성원에 힘입어 초판본 완간 4년 만에 2년간의 교정과정을 거쳐 꼼꼼히 교정하고 편집을 새로 하고 주석을 증보한 개정판을 내게 되었습니다.

 

(전재성박사, 쌍윳따니까야 머리말)

 

 

구입한 책은 전 7권으로 되어 있는 개정판이다. 머리말에 따르면 초판 11권이 나온 이래 일부 오류를 바로 잡고 2년간의 교정 끝에 나온 것이라 한다.

 

무엇이든지 처음 나온 것은 만족스럽지 않다

 

무엇이든지 처음 나온 것은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나중에 오류가 발견되었을 경우 그렇다. 이는 책 뿐만이 아니다. 개발된 제품도 그렇다.

 

제품이 개발 되어 시장에 뿌려 졌을 때 생각지도 못한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사용자가 사용중에 발견하는 오류도 있지만 현지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필드에서는 개발단계에서 발견할 수 없는 오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드에서 발생된 오류를 수집하여 다시 보완 작업에 들어 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보완하여 다시 필드에 뿌려 졌을 때 왠만한 문제는 해결되어 잘 팔리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빠알리 니까야와 같이 방대한 번역서의 경우 초판에 오류가 없다고 보장할 수 없다. 더구나 소승불교 서적이라 하여 한국의 주류불교에서 그다지 관심을 가져 주지 못한 열악한 환경속에서, 또한 교정조차 보아줄 상황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제품이 다 그렇듯이 책 역시 수정하고 보완함으로써 완전한 것이 된다. 전재성박사의 쌍윳따니까야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이라 본다.

 

가보(家寶)’나 다름 없는 빠알리 니까야

 

책은 사 두면 남는다. 음식이나 술과 같이 먹고 마셔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여 버려야 하는 음식도 아니다. 일단 사 두면 닳아서 없어지지 않는 한 끝까지 남을 것이다. 더구나 부처님의 원음이 담겨 있는 빠알리 니까야라면 가보(家寶)’나 다름 없다.

 

그런 가보를 하나 둘 씩 사 모을 예정이다. 번역된 모든 책을 사 모아 놓으면 책장에 하나 가득 될 듯하다. 그래서 유리문이 달린 고급책장을 구입하여 책을 모셔 놓으려 한다.

 

 

 

 

Tipitaka

 

 

 

책장 앞에 작은 부처님 상도 모셔 놓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부처님 상 앞에 작은 꽃을 올려 놓고 매일 공양올리는 것도 좋은 신행생활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012-09-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