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전연구원 번역서 특징 세 가지
“속상하고 열 받는”
가지고 있는 초기경전에서 깜짝 놀랄만한 문장을 발견하였다. 우연히 열어본 초기경전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눈에 띄었다.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이 문장은 ‘가려뽑은 앙굿따라 니까야’의 번뇌 경(A6:58)에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의 대림스님이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각묵스님이 감수한 것이다.
문장에서 ‘속상하고 열 받는 ’이라는 문구가 있다. 번뇌를 수식하는 용어로서 ‘속상하다’ 와 ‘열 받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런 용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특히 ‘열 받다’라는 말을 경전에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열 받다’라는 말을 인터넷사전에서 검색하자 영어로 ‘trouble’로 되어 있고,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이)어떤 일에 화가 나거나 흥분을 하여 몸이 달아오르다.”로 되어 있다. 앞사람이 너무 오래 공중전화를 사용하면 열받는 것이고, 세 시간 동안 낚시터에 앉아 있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을 때 열받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열 받는다’라는 말은 비속어에 가깝다. 저자거리에서 갑남을녀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로는 가능하지만 논문이나 경전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모든 번뇌의 경(M2)과 번뇌 경(A6:58)의 번역 비교
그렇다면 다른 번역서에서는 어떻게 쓰여졌을까.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서와 한국빠알리성전협의의 번역물을 비교해 보았다.
초기불전연구원의 ‘번뇌 경’은 대림스님이 번역한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려 있다. ‘가려뽑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경의 설명에 따르면 맛지마니까야의 삽바사와경(모든 번뇌의 경, M2)과 일치 되는 것이라 한다. 다만 일곱가지 번뇌 중 첫 번째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일치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맛지마니까에 실려 있는 삽바사와경(모든 번뇌의 경, M2)과 비교해 보았다.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번뇌의 경(M2)과 번뇌 경(A6:58)의 번역 비교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 원전 |
Katame ca bhikkhave āsavā bhāvanā pahātabbā? Idha bhikkhave bhikkhu
1)paṭisaṅkhā yoniso sati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3. 2)Paṭisaṅkhā yoniso dhammavicaya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3)Paṭisaṅkhā yoniso viriya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3. 4)Paṭisaṅkhā yoniso pīti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5)Paṭisaṅkhā yoniso passaddhi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6)Paṭisaṅkhā yoniso samādhi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7)Paṭisaṅkhā yoniso upekkhā sambojjhaṅgaṃ bhāveti vivekanissitaṃ virāganissitaṃ nirodhanissitaṃ vossaggapariṇāmiṃ.
Yaṃ hissa bhikkhave abhāvayato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bhāvayato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Ime vuccanti bhikkhave āsavā bhāvanā pahātabbā. |
모든 번뇌의 경(M2)
한국빠알리 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수행승들이여,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 수행승은
1)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써 열반으로 회향하는 새김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2)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써 열반으로 회향하는 탐구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3)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써 열반으로 회향하는 정진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4)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써 열반으로 회향하는 희열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5)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써 열반으로 회향하는 안온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6)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써 열반으로 회향하는 집중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하며, 7)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멀리 떠남에 의존하고 사라짐에 의존하고 소멸에 의존하고 보내버림으로써 열반으로 회향하는 평정의 깨달음 고리를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수행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을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라고 한다. |
번뇌 경(A6:58)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수행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수행으로 없애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1)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를 닦는다. 2)…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를 닦는다. 3)…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를 닦는다. 4)…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를 닦는다. 5)…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輕安覺支]를 닦는다. 6)…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를 닦는다. 7)…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행하면 없어지는 번뇌들이라서 수행으로 없애야 한다고 한다.” |
빠알리 원전의 경우 ‘THE TIPITAKA’ 에 실려 있는 빠알리 문헌을 참고 하였다. 빠알리 문헌을 참고한 결과 맛지마니까야와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려 있는 번뇌에 대한 내용은 동일함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빠알리원전과 영문해석이 포함된 전재성박사의 번역물과 대림스님의 번역물은 다음과 같다.
전재성박사의 ‘모든 번뇌의 경(M2)’:
대림스님의 ‘번뇌 경(A6:58)’:
표에서 원전과 번역물에 편의상 번호를 매겨 놓았다. 이는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가 ‘칠각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구문의 생략
번역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반복구문의 생략이다.
초불의 번역물을 보면 반복구문이 생략 되어 있다. 반면 성전협회의 번역물은 빠짐없이 기록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빠알리원전은 어떨까.
‘THE TIPITAKA’사이트에서 삽바와와경(Sabbāsavasuttaṃ , M2)과 아사와경(Āsavasuttaṃ, A6:58)을 검색해 보면 모두 빠짐 없이 기록 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는 표에서 빠알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초불의 경우 반복구문이 생략되어 있는데, 표를 보면 염각지(satisambojjhaṅgaṃ)하나만 원전대로 번역 되어 있고, 나머지에 대하여 ‘…’으로 대체 하여 놓았다. “…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식이다.
각묵스님의 댓글에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 간행된 논서나 경전을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식으로 반복구문이 생략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반복구문을 생략하여 놓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이런 현상에 더 자세하게 알고자 초불카페를 검색하여 보니 다음과 같은 각묵스님의 댓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의어의 나열과 정형구의 계속적인 반복이 초기경의 가장큰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경을 외워서 전하다보니 나열과 반복은 암기를 위한 필수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유행가 가사도 중요한 메시지?는 후렴구로 만들어서 반복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문자로 정착이 되면 이러한 나열과 반복은 오히려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되기가 쉽습니다.
처음에 읽은 문장이 계속해서 나오면 대부분 그냥 건성 건성 넘어가버리기 쉽상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아함경을 번역할때는 반복되는 정형구와 동의어 나열은 모두 생략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간략하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요 요즘 나오는 영어번역도 대부분 반복된 전형구는 생략하여 출간합니다. 이렇게 되면 글로써는 오히려 더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된다고 봅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도 이런 방법을 시도하려 생각해보았지만 경을 축약한다는것이 두렵고, 지금 단계에서는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하여서 원전에 나타나는 단어는 한자도 빼지 않고 옴겨야한다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하였습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경전번역이 거의 마무리되고 중요한 경들을 뽑아서 다이제스트 본이나 요약본을 낼때는 축약번역을 할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인연살이님의 좋은 제언에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고 다른 법우님들의 의견도 기다리겠습니다.
(각묵스님 댓글, Re 경에서의 끊어읽기를 위한 쉼표사용의 예문을 올립니다.2006.05.21. 09:33 http://cafe.daum.net/chobul/19wI/2553)
2006년도에 작성된 각묵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동어 반복구문이 메시지 전달에 방해 요인이 되기 쉽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한역 아함경의 경우 모두 생략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역경전의 특징 중의 하나가 동어가 생략된 점이다.
반야심경에서 ‘역부여시(亦復如是)’와 같이
불자들에게 익숙한 반야심경 역시 동어가 생략되어 있다.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에서 역부여시가 바로 동어 생략에 대한 것이다. ‘역부여시’에 대한 초불식의 번역이 “… ”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 법을 간택하는, … 정진의 깨달음의, … 희열의 깨달음의”의 식으로 하였을 것이다.
영문에서도 반복구문이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각묵스님의 댓글에 따르면 영어번역도 대부분 반복된 정형구는 생략하여 출간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THE TIPITAKA’사이트에 실려 있는 영문 아사와경(Āsavasuttaṃ, 번뇌 경, A6:58)을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스님의 말씀대로 다음과 같이 반복구문이 생략 되어 있었다.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에 대한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Bhikkhus, what are the desires that have to be dispelled by developing, which when developed gets dispelled?
Here, bhikkhus, the bhikkhu wisely thinking develops the enlightenment factor mindfulness, supported by, seclusion, disenchantment, cessation and maturing in surrender.
The bhikkhu wisely thinking develops the enlightenment factor investigating the Teaching, supported by, seclusion, disenchantment, cessation and maturing in surrender.
Wisely thinking develops the enlightenment factor effort, ... re ... joy, ... re ... delight, ... re ... concentration ... re ... and equanimity supported by, seclusion, disenchantment, cessation and maturing in surrender.
To the bhikkhu not developing these, desires, vexation and trouble might arise, to one developing these, such vexation and trouble does not arise.
Bhikkhus, these are the desires that have to be dispelled by development.
(Aṅguttara Nikāya , 006. Mahavagga. - The longer section , Aasavasuttaṃ - Desires)
영문번역을 보면 칠각지 중 염각지(mindfulness) 와 택법각지 (investigating)에 대해서만 완전한 문장이고, 이후 정진, 희열, 안온, 집중, 평정에 대한 것은 “effort, ... re ... joy, ... re ... delight, ... re ... concentration ... re ... and equanimity”식으로 처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초불번역 역시 이런 반복구문 생략 형식을 따랐다는 것이다.
왜 반복구문이 들어 갔을까
하지만 이와 같은 반복구문의 생략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전재성박사는 맛지마니까야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바라문교를 비롯하여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인도의 학파들이 진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억을 최상의 것으로 삼았던 데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문자로 쓰인 것은 사람들이 단어를 잘못 강조하거나 문장을 잘못 나누거나 문장을 잘못 베껴 쓰게 되면 너무도 쉽게 내용이 바뀔 수가 있지만, 배운 바 대로 암송하면 올바른 억양과 리듬, 올바른 배열을 통해서 문장의 내용을 충실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맛지마니까야 해제, 전재성박사)
전재성박사의 해제에 따르면 구전으로 된 경전은 암송하기 쉽게 정형화 되어 있고 반복구문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억양과 리듬을 넣어서 암송할 수 있는데, 이런 방법으로 훼손 없이 전승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교리에 대한 설명이 많은 맛지마니까야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스리랑카의 담마키띠 비구가 있다. 한국명상원 사이트에 빠알리어 강좌 사이트가 올려져 있는데, 담마키띠 비구는 맛지마니까야의 모든 번뇌의 경에 대하여 설명할 때 지금도 스리랑카에서는 구전의 전통에 따라 독특한 리듬과 억양과 운률에 따라 독송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반복구문 생략은 부당해 보인다. 반복 함으로서 의미를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데 반야심경의 역부여시와 같이 ‘…’ 처리 한다는 것은 경전 독송의 맛을 떨어 뜨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복구문은 생략해서는 안된다
반복구문이 아무리 지루하더라도 빠알리니까야에 고스란히 전승되어 온다면 부처님 말씀이다. 동어반복이라 하여 생략한다면 부처님의 말씀을 자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전재성박사는 상윳따니까야 개정판 해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다년간 번역 경험을 통해서 역자는 초기 경전들은 내용이 매우 정교하고 형식이 아름답게 갖추어진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맥에서 조사하나라도 충분히 숙고하여 번역하지 않으면 내용까지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다.
(쌍윳따니까야 개정판 해제, 전재성박사)
전재성박사에 따르면 빠알리어로 전승되어 온 경전에 대하여 함부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심지어 조사 하나에도 커다란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반복구문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비록 반복이 지겨울 수 있지만 반복어를 넣은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역부여시’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괄호치기
둘째, 대괄호치기로 보충어 사용하기이다.
초불번역문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빈번한 대괄호치기이다. 대괄호를 이용하여 보충어와 한자어를 삽입한 것이다. 번역에 있어서 빈번한 보충어와 한자용어 삽입이다.
표에서 염각지에 대한 것을 보면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를 닦는다.”라고 되어 있다. 이 문장에서 “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탐욕의’ 라는 말이 보충어이다. 빠알리 원전에 나오지 않지만 번역자가 독자를 위하여 대괄호([])를 이용하여 삽입 해 놓은 것이다. 이런 대괄호를 사용하는 것은 원전에 없는 말로서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와 같은 서비스는 한자용어 삽입에서도 볼 수 있다.
‘satisambojjhaṅgaṃ’에 대하여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라고 번역하였는데 친절하게도 대괄호를 이용하여‘[念覺支]’라는 한자용어를 삽입하여 놓았다. 그래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라는 우리말 풀이와 함께 간략화 된 한자용어인 염각지를 이중으로 설명해 놓았다. 이와 같은 보충용어와 한자용어 삽입에 대하여 ‘주석적 번역’이라고 칭한다. 이런 주석적 번역은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주석적 번역의 장단점
주석적 번역은 문장의 의미를 더 자세하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주석으로 처리해도 좋을 용어에 대하여 굳이 대괄호를 이용하여 삽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보충용어을 삽입함으로써 문맥의 의미를 살리고 , 한자용를 삽입함으로서 다시 한번 강조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주석적 번역은 초보자나 한자용어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빈번하게 사용되면 문장의 흐름이 끊어지기 쉽다. 마치 흐르는 시냇물에 돌이 있어서 흐름을 방해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런 주석적 번역은 게송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게송에서도 대괄호치기가!
일반적으로 산문보다 운문 번역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시구로 되어 있는 운문의 경우 의미가 함축 되어 있고 해석이 난해 하여 번역자들 마다 다르다고 한다. 하나의 시와 같은 게송은 운율로 되어 있어서 곡만 붙이면 아름다운 노래가 된다. 따라서 시나 게송에서는 좀처럼 군더기를 볼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게송에서도 주석적 번역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 하였다. 예를 든다면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무량한 자애를 닦는 마음챙기는 자는
족쇄들이 엷어지고 재생의 근거가 파괴됨을 보노라.
단 하나의 생명일지라도 타락하지 않은 마음으로
자애를 보내면 유익함이 있나니
모든 생명들에게 광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자는 공덕을 짓노라.
중생의 숲으로 된 땅을 정복한
왕이라는 선인(仙人)은 제사를 지내려고 작정하나니
말을 잡는 제사와 인간을 바치는 제사와
말뚝을 던지는 제사와 소마 즙을 바치는 제사와
[대문을 열고] 크게 공개적으로[無遮] 지내는 제사라네.
그러나 이것은 자애의 마음을 잘 닦는 자에게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마치 모든 별들의 무리가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리.
[스스로] 죽이지도 않고 [남을 시켜] 죽이지도 않고
약탈하지 않고 약탈하게 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가진 자
그에게는 어떠한 원한도 없노라.”
(멧따경-Metta sutta-자애 경, 앙굿따라니까야 A8:1, 대림스님역)
앙굿따라니까야 멧따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역시 개송에서도 대괄호를 이용한 보충어와 한자어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문번역에도 괄호치기가 있을까?
이와 같은 주석적 번역은 영문에도 있는 것일까. 현재 인터넷에는 몇 개의 빠알리 경전 사이트가 있다. 그 중에 ‘THE TIPITAKA’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에서 영문 번역을 보았으나 괄호를 이용한 주석적 번역은 볼 수 없었다. 또 다른 영문 빠알리어 번역 사이트가 있다. ‘accesstoinsight’사이트이다.
이 사이트에는 여러명의 영문번역자가 나오는데, 그 중 비구 보디(Bhikkhu Bodhi )나 타닛사로 비구(Thanissaro Bhikkhu)의 번역물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냐나포니까 테라(Nyanaponika Thera) 의 번역물에서 "When an untaught worldling is touched by a painful (bodily) feeling,~” 식으로 설명식 괄호가 종종 보인다.
이와 같이 초불번역물의 특징이 보충어와 한자어 삽입을 특징으로 하는 주석적 번역이라 볼 수 있는데, 이에 반하여 성전협회의 전재성박사의 번역물에는 괄호를 이용한 보충어나 한자어는 일체 보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순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언어 사용
셋째, 자극적인 언어사용이다.
표에서 초불번역을 보면 마지막 문구에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라고 표시 되어 있다. ‘속상하고 열 받는다’라는 말은 대단히 자극적인 용어이다. 특히 ‘열 받는다’라는 표현이 더 그렇다.
열 받는다라는 말이 사전에도 실려 있는 말로서 ‘어떤 일에 화가 나거나 흥분을 하여 몸이 달아오른’ 상태를 말한다. 주로 대화할 때 “아, 열받쳐!”하며 주로 비속어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열 받는다’는 말을 부처님이 말씀 하신 초기경전에 사용하였다는 것은 대단히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와 같은 자극적인 말을 경전에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데 초불번역물을 종종 발견 되는데, 하나의 예로서 각묵스님이 번역한 상윳따니까야 '아라한 경(S1:25)'이 있다. 매우 짤막한 경인데 말미에 “~이렇게 말할 수가 있사오리까?”라고 번역 하였다. 그런데 ‘있사오리까’라는 말은 사극에서나 사용되는 말로서 경전에 적용한다는 것은 부적절 해 보인다.
‘위가따빠릴라하(vighātapariḷāhā)’에 대한 번역어를 보면
‘속상하고 열받는다’는 말이 들어간 문장에 대하여 빠알리어와 영어와 다른 번역자의 것을 비교해 보았다.
구 분 |
내 용 |
비 고 |
빠알리어 |
Yaṃ hissa bhikkhave abhāvayato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bhāvayato evaṃsa te āsavā vighātapariḷāhā na honti. |
|
전재성박사 |
수행승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수행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
|
대림스님 |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
|
To the bhikkhu not developing these, desires, vexation and trouble might arise, to one developing these, such vexation and trouble does not arise. |
|
표를 보면 ‘속상하고 열받는다’ 뜻이 빠알리어로 ‘위가따빠릴라하(vighātapariḷāhā)’임을 알 수 있다. vighātapariḷāhā에 대하여 빠알리 사전을 찾아 보면 찾을 수 없다. 복합어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위가따(vighāta)를 찾으면 ‘fraught with great pain’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커다란 고통으로 가득찬’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재성 박사의 빠알리사전에는 ‘1. 파괴, 살육 2. 고뇌, 고민거리 3. 반론’ 등으로 표시 되어 있다. 나머지 뒤에 붙는 ‘pariḷāhā’는 찾을 수 없었다.
빠알리어 ‘위가따빠릴라하(vighātapariḷāhā)’의 영역은 vexation and trouble로 되어 있다. Vexation은 짜증나게하기, 신경질남 등으로 번역되고, trouble은 문제 또는 곤란함이라는 뜻이다. 어떤 난관에 부딪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태를 말한다.
이와 같은 뜻을 지닌 ‘위가따빠릴라하(vighātapariḷāhā)’에 대하여 초불에서는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라 번역하였고, 성전협회에서는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라 하였다. 모두 적절하게 잘 표현 하고 있지만 초불의 경우 대단히 ‘강렬하고 자극적인’ 용어사용이라는 것이다.
초불에서 맛지마니까야가 출간된다는데
불교계 소식에 따르면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맛지마니까야가 곧 출간 된다고 한다. 10월 말 경에 출간된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4부 니까야 완역판을 갖게 된다. 그래서 4부 니까야 완역에 대한 봉정법회를 11월 18일 코엑스에서 연다고 한다.
전재성박사의 4부 니까야 완역에 이어 두 번째로 완역된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서는 우리나라 불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왜냐하면 두 부류의 번역서가 각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근기에 맞게, 자신의 취미에 맞는 번역물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 준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불자들은 행운이라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번역서 두 개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부류의 번역서를 가지게 된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나온 성전협회의 번역과 초불의 번역 스타일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초불의 번역스타일은 앞서 언급한 대로 첫째로 ‘반복구문 생략’과 둘째로 ‘괄호치기에 따른 보충용어 삽입’과 셋째로 ‘강렬한 언어 사용’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스타일의 번역이 필요로 한 곳이 있을 것이다. 새로 출간되는 초불의 맛지마니까야도 이런 스타일의 번역인지 궁금하다.
2012-10-24
진흙속의연꽃
'담마의 거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범천)도 환희용약한 부처님의 불사(不死)진리, 초전법륜경에서 (0) | 2012.10.26 |
---|---|
빠알리 독송용 초전법륜경(Dhammacakkappavattana sutta) (0) | 2012.10.25 |
부처님의 하루일과 (0) | 2012.10.23 |
1973년 태국계맥의 전수, 쾌거인가 헤프닝인가 (0) | 2012.10.20 |
부처님의 즉문즉설, 빠따짜라(Patacara) 수행녀 이야기 (0) | 2012.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