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머물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 부처님의 중도사상

담마다사 이병욱 2012. 10. 27. 17:53

 

머물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부처님의 중도사상

 

 

 

봄비와 가을비

 

가을비가 내린다.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데 노랗고 빨갗게 물든 나뭇잎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이런 가을비는 모든 것을 떨어 뜨릴 뿐만 아니라 춥고 외로운 계절을 예고 하는 듯하다. 이는 봄비와 대조적이다.

 

봄에 내리는 비는 모든 생물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비가 내림으로 인하여 초목에 싹이 트일 뿐만 아니라 초목을 의지하여 살아 가는 뭇생명 또한 활력에 넘친다. 주어진 시간 내에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비는 모든 것을 떨어뜨려 버린다. 초목에 의지 하여 살아가던 뭇생명들 역시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 가을비는  봄비와 달리 뭇생명들에게 있어서 재난이다.

 

봄이 새로운 약동의 계절이라면,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고, 가을은 조락 (凋落)의 계절이고,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다. 이렇게 일년 사계가 매년 반복되어 흘러 간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계절이 다 똑 같지는 않다.

 

작년의 봄과 올해의 봄이 같지 않듯이 매년 다른 계절이다. 단지 반복되는 패턴이 똑 같은 것이다. 이런 반복에 대하여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간다느니 또는 세월이 간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나 세월이 따로 있어서 흘러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느낄 뿐이다.

 

만일 이 세상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세월이 흘러 간다고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가고 계절은 바뀌어 간다.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내일이 어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을 살아 간다. 집과 일터를 왕복하는 삶이다. 그러다 보니 그날이 그날 같다. 그래서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내일이 어제인지…”분간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서 갖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쉽게 풀리는 문제도 있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종교에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자신의 힘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신에게 의지하거나 떠넘기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불교는 어떨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종의 구원론이다. 지금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해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에 대한 것이다. 오로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가르침이 빠알리니까야에 있다.

 

상윳따니까야의 첫번째 경

 

상윳따니까야에서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경은 무엇일까. 상윳따니까야 육차결집본에 따르면 총 6,646개의 경이 있다. 이 중 가장 첫번째로 나오는 경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띠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어떤 하늘사람이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제따바나를 두루 밝히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예배를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섰다.

 

한쪽으로 물러서서 그 하늘사람은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어보았다.

 

[하늘사람]

스승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너셨습니까?”

 

[세존]

 벗이여,

나는 참으로 머무르지 않고 애쓰지도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습니다. 벗이여, 내가 머무를 때에는 가라앉으며 내가 애쓸 때에는 휘말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처럼 머무르지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거센 물결을 건넜던 것입니다.”

 

[하늘사람]

 머물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어

참 열반에 도달한 거룩한 님을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친견하네

 

이와 같이 하늘사람이 말했다. 스승께서는 가상히 여기셨다. 그 때 그 하늘사람은 '나의 스승이 가상히 여기신다'고 알고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돌고 나서 바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오가따라나경-Oghataraasutta -거센 흐름을 건넘의 경, 상윳따니까야 S1;1, S1.1.1, 전재성님역)

 

 

이것이 방대한 상윳따니까야에서 첫번째로 나온 오가따라나경(거센 흐름을 건넘의 경)이다. 경에서는 거센 흐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거센 흐름이란 무엇일까.

 

거센 흐름이란 무엇인가

 

거센흐름은 빠알리어로 오가(Ogha)’이다. 한자어로 폭류(暴流)’라 한다.  사나운 물결, 거센물결, 거센흐름 등으로 번역된다.

 

이 때 거센물결 또는 거센흐름, 폭류는 무슨 의미일까.  숫따니빠따 다니야경 주석에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거센 물결

 

거센물결이란 윤회의 바다에서 생사가 거듭되는 것을 거센 물결(暴流)에 비유한다.

열반은 그러한 거듭되는 윤회가 끝나 파도가 미치지 않는 해안을 뜻한다.

 

(다니야경 -Sn1.2 주석, 전재성박사)

 

 

거센물결이란 윤회의 바다에서 생사가 거듭되는 것이라 한다. 그런 거센물결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감각적 쾌락의 거센 물결, 2)존재의 거센 물결, 3)견해의 거센 물결, 3)무지의 거센 물결 이렇게 네 가지이다. 이런 거센 물결에 휩쓸리면 윤회할 수 밖에 없는데, 열반은 이러한 거센 물결이 미치지 않는 해안을 뜻한다고 한다.

 

오온을 폭류로 보았을 때

 

이와 같이 거센물결 즉 폭류와 열반은 반대 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 있다. 전재성박사의 논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조건지워진 것들은 폭포수와 갗이 흐른다고 한다. 전 우주를 폭포수의 폭류와 같다고 정의 했다. 불교에서 이를 규정하기를 다섯가지의 복잡한 작용으로 규정한다.

 

물질현상, 감수작용, 인식작용, 의지작용과 의식(잠재의식도 포함)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자신이 생명체라 알고 있는 것은 참다운 생명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폭류처럼 흘러가는 물질현상과 마찬가지로 정신현상도 동시에 폭류처럼 흐르고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개별적으로는 참된 자아라 할 수 없으며 무아라고 한다.

 

(불교사상과 환경문제, 전재성박사)

 

  불교사상과 환경문제.docx

 

 

 

전재성박사는 모든 조건 지워진 것을 폭포수와 같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과 마음도 폭포수와 같다는 것이다. 이를 다섯가지로 볼 수 있는데, 물질현상, 감수작용, 인식작용, 의지작용과 의식작용의 폭포수라 한다. 이런 폭포수를 다른 말로 폭류 또는 거센물결이라 한다. 오온을 폭류로 본 것이다. 그래서 마치 바다의 거센 파도처럼 쉴새 없이 물결치고, 폭포수 처럼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폭류가 정지 되었을 때

 

그렇다면 열반은 어떤 것일까.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생명현상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마치 산 위에서 굉장한 속도로 폭류가 되어 흐르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그 밑에는 폭포수로 고여서 일순 정지하게 되는데 정지될 때에 말하자면 엔트로피도 감소되고 이것이 바로 생명현상이라는 것이다.

 

생명현상은 물질현상과 반대로 움직이며 엔트로피가 증가할수록 물질현상이 되며 혼란도가 감소할수록 생명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떨어진 폭포의 물이 고여 정지된 상태가 가장 고도로 생명현상이 충만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사상과 환경문제, 전재성박사)

 

 

 

 

 

 

 

춘천 청평사 구송폭포

 

 

 

열반상태라는 것이 정지된 상태라 한다. 거센폭류가 폭포수가 되어 낭떨어지에 떨어지게 될 때 고인 물이 일순 정지 해 보이는데 그런 상태가 열반과 같다고 본다.

 

수수께끼 같은 말 머물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

 

거센파도가 밀려 오지만 파도가 밀리지 않는 해안과도 같은 곳이 열반이라 한다. 그렇다면 거센물결, 폭류를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에서는 머물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Appatiṭṭha anāyūha) 건넜다라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다.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거센 물결을 헤쳐 나가는 데는 머물고 애쓰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서 머물지 않고 애쓰지도 않는다는 것은 수수께끼 같은 것이지만 잘못 인도된 의지와 노력은 운명적 파탄을 초래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올바른 수행을 통해서 힘들이지 않고 윤회의 바다를 건너갈 수 있다.

 

Srp.I.19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발을 바닥에 밀착시키고 건너야 하는 장소에 애를 쓰면서 거센흐름을 건너야 하는데 부처님의 대답은 모순적이지만 번뇌 때문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조건적인 발생이나 의도적 형성에 매이지 않도록 애써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오가따라나경 주석, 전재성박사)

 

 

감각적 쾌락의 거센 물결, 존재의 거센 물결, 견해의 거센 물결, 무지의 거센 물결을 건너기 위해서는 머물지도 말고 애쓰지도 말라고 한다.

 

왜 휘말려 드는가

 

그런데  거센물결에 머물려고 하면 가라앉게 되고, 애쓸 때 휘말려 든다고 한다. 이 말은 무슨뜻일까. 주석에 따르면 여섯가지로 하고 있다.

 

 

첫째, 번뇌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조건적인 발생과 의도적인 형성 때문에 애쓰고 휘말리게 된다.

 

둘째, 갈애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견해 때문에 애쓰고 휘말리게 된다.

 

셋째, 영원주의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허무주의 때문에 애쓰고 휘말리게 된다.

 

넷째, 해태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혼침 때문에 애쓰고 휘말리게 된다.

 

다섯째, 감각적 쾌락에 대한 몰두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자기학대에 대한 몰두  때문에 애쓰고 휘말리게 된다.

 

여섯째, 모든 악하고 불건전한 의도적인 형성 때문에 머무르고 가라앉게 되고, 모든 세속적인 착하고 건전한 의도적 형성 때문에 애쓰고 휘말리게 된다.

 

(오가따라나경 주석, 전재성박사)

 

 

폭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머물려 하거나 애쓸수록 더욱더 휘말려 들어 벗어 날 수 없는 여섯가지 이유에 대한 것이다. 마치 수렁에 빠진 자가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점점 더 빠지는 것과 같고, 주식을 하는 자가 단타매매를 해 보지만 거래를 하면 할수록 까지는 것과 같고, 애인에게 가까이 가려 노력하지만 가까이 가려 하면 애인은 더 멀어져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표로 정리 하여 보면

 

이를 다시 표로 정리 하여 보았다.

 

 

 

머무르고 가라앉는 이유

애쓰고 휘말리는 이유

1

번뇌

조건적인 발생과 의도적인 형성

2

갈애

견해

3

영원주의

허무주의

4

해태

혼침

5

감각적 쾌락에 대한 몰두

자기학대에 대한 몰두

6

모든 악하고 불건전한

의도적인 형성

모든 세속적인 착하고 건전한

의도적 형성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은 놓아 버리라고 하였다. 머무르지 하려고도 하지 말고 애쓰지도 말라고 하였다. 머무르고 가라 않는 이유가 번뇌, 갈애, 영원에 대한 집착, 게으른 것, 감각적 쾌락추구, 악행에 대한 것이고, 애쓰면서 휘말리는 것이 의도적인 행위, 견해, 허무주의, 흐리멍덩한 것, 자기 학대, 의도적인 착한 행위라 한다.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몸부림을 칠 것이 아니라 놓아 버렸을 때 빠져 나올 방법이 있을 것이고, 주식에서 까지지 않으려면 거래를 중단 하여야 하고, 애인을 가까이 오게 하려면 스토킹 같은 행위를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초기경 도처에도

 

그래서 부처님은 머물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 거센물결을 건넜다고 하였다. 그런데 거센물결, 거센흐름에 대한 이야기는 초기경전 도처에 있다. 숫따니빠따에서 거센흐름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22.

[야차 헤마와따]

“누가 거센 물결을 건넙니까?

누가 큰 바다를 건넙니까?

의지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는 심연에 누가 가라앉지 않습니까?

 

23.

 [세존]

“언제나 계행을 갖추고, 지혜가 있고, 삼매에 들고,

성찰할 줄 알고, 새김이 있는 사람만이

건너기 어려운 거센 물결을 건넙니다.

 

(헤마와따경-Hemavata sutta, 숫따니빠따 Sn1.9, 전재성박사역

 

 

헤마와따경에서는 윤회의 거센물결을 건너는데 있어서 계행, 지혜, 삼매, 성찰, 새김(알아차림)을 들고 있다.

 

 

9.

[야차 알라와까]

“사람은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넙니까?

어떻게 커다란 바다를 건넙니까?

어떻게 괴로움을 뛰어 넘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완전히 청정해질 수 있습니까?

 

10.

[세존]

“사람은 믿음으로써 거센 물결을 건너고,

방일하지 않음으로 커다란 바다를 건넙니다.

정진으로 괴로움을 뛰어넘고

지혜로 완전히 청정해집니다.

 

(알라와까경-Āavakasutta, 숫따니빠따 Sn1.10, 전재성박사역)

 

 

알라와까경에서는 믿음으로써 거센물결을 건너는 것으로 묘사 되고 있다. 믿음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4.

[존자 멧따구]

“우리가 물은 바를 당신은 설명해주셨습니다.

다른 것을 또 묻사오니 또한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현자들은 거센 물결,

태어남과 늙음, 슬픔과 비탄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까?

성자시여, 그것을 제게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대의 가르침은 이처럼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5.

[세존]

“멧따구여, 현세에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닌

이 법칙을 나는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그 법칙을 듣고 새김을 확립하여

유행하며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으십시오

 

(멧따구경-Mettagusutta- 학인 멧따구의 질문에 대한 경,숫따니빠따 Sn5.4, 전재성박사역)

 

 

멧따구 존자가 부처님에게 어떻게 해야 이 거센 물결을 건널수 있는지 묻자, 부처님은 알아차림(새김)을 강조 하고 모든 것을 놓아 버릴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바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거센물결을 건너는데 있어서 방법을 게송으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상윳따니까야에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바다경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바다, 바다라고 배우지 못한 범부들은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거룩한 이의 규범에는 그것은 바다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커다란 물의 더미요, 커다란 물의 홍수이다.

 

수행승들이여,

시각은 인간의 바다로서 그 거센 물결은 형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 형상으로 이루어진 거센 물결을 견디어낸다면 그는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나찰이 많은 시각의 바다를 건너 그것을 뛰어넘어 피안에 도달하여 대지위에 선 고귀한 자라고 불린다.

 

(사뭇다경-Samuddasutta-바다로 경1, 상윳따니까야 S35:228, S34.18.1, 전재성님역)

 

  사뭇다경(바다로 경-S.35.228).docx

 

 

 

부처님은 시각(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신)인간의 바다로서, 그 거센 물결은 형상(소리, 냄새, , 감촉, 사물)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 형상으로 이루어진 거센 물결을 건너야 한다고 하였다. 형상에 대하여 상어 등이 있는 거센물결로 비유한 것이다.

 

부처님의 중도사상

 

상윳따니까야에서 가장 첫번째로 나오는 경인 오가따라나경(거센 흐름을 건넘의 경, S1:1)은 부처님의 중도 사상을 잘 표현 한 것이라 한다. 하늘사람이 거센흐름을 건너는 방법을 묻자 부처님은 머무르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 건넜다.”라고 말씀 하였는데, 이 말이 부처님의 중도사상을 잘 표현 문구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견해나 태도나 행위에 있어서 모든 극단을 피하는 중도에 있기 때문이다.

 

 

 

2012-10-27

진흙속의연꽃

 

불교사상과 환경문제.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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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다경(바다로 경-S.35.228).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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