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단계 호흡수행과 사마시사(samasisa), 마하라훌로와다경(M62) 번역 비교
승려의 노후불안
출가수행자들의 설문조사가 있었다. 지난 2008년 불교신문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님들 중 65.4%가 노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였다. 이 중 23.8%는 매우 심각하게 우려 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노후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미래가 불투명하여 수행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 너도 개인재산 축적과 사설사암 증가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한다.
출가수행자가 노후불안을 염려 한다는 말은 재가자의 입장에서 이해 되지 않는 말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수행자가 노후 불안이 염려 되어 재산축적에 전념한다면 재가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가자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까.
좌탈입망(坐脫立亡)
불교용어에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는 말이 있다. 일 것이다. 앉거나 선 자세로 열반하는 것을 일컫는 불교용어이다. 이는 죽음은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번뇌가 없어지는 적멸(寂滅)의 순간인 동시에 법신(法身:영원한 몸)이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예부터 선사나 고승들은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하였다는 말이다. 이는 수행하다 죽는 것을 말한다. 보통 법력이 높은 고승들이 죽을 때 택하는 방법으로, 죽음마저도 마음대로 다룬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말이다.
어느 수행처에서 법사는 “수행하다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대부분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중에 죽는다면 이는 알아차림을 유지 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태어남이 없는 열반에 들 것이라 한다.
마하라훌로와다경(Mahārāhulovāda sutta, M62)
수행에 대한 경이 있다. 마하라훌로와다경(Mahārāhulovāda sutta, M62)이다. 한국성전협회의 맛지마니까야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큰 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초불사이트에서 이 경에 대한 또 다른 번역을 접하였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 최근 발행된 맛지마니까야의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이라는 제목이다.
글을 올린 이는 이 경의 마지막 부분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소멸할 때에도 [멸한다고]안다. 그것을 모른 채 멸하지 않는다.”라는 문구에 감동을 받아 옮겼다고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4부 니까야가 완역 되어 있다. 하나는 빠알리성전협회의 전재성박사의 번역이고, 또 하나는 초기불전연구원의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의 번역이다. 특히 초불에서 맛지마니까야가 이번에 번역 됨으로서 11월 18일 대대적인 4부 니까야 봉헌법회가 예정 되어 있다.
국빠알리성전협회 맛지마니까야(단권, 개정판)
초기불전연구원 맛지마니까야(전4권)
두 그룹의 4부 니까야 완역
빠알리 니까야는 전재성 박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하였다. 1999년 쌍윳따니까야를 시작으로 맛지마니까야를 차례로 번역 하였는데, 이에 뒤질세라 초기불전연구원에서도 각묵스님의 디가니까야와 대림스님의 앙굿따라니까야를 번역 하였다.
이후 전재성 박사가 디가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를 번역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최초로 4부 니까야 완역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초불에서는 각묵스님의 상윳따니까야와 이번 11월 대림스님의 맛지마니까야가 번역 됨에 따라 초불 역시 4부 니까야 번역을 완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재성 박사가 먼저 번역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초불에서는 별도의 번역을 하게 되었을까. 이것이 가장 궁금하였다.
왜 초불에서는 별도의 번역을 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왜 초불에서 후발로 번역에 착수하였는지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10월 종단5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각묵스님의 논문을 보고 대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한국불교와 초기불교와의 본격적인 만남도 당연히 빠알리 삼장의 한글번역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게 되었다. 더군다나 한국의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지인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한 근본교리를 봉체’하기 위해서는 석가세존의 원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빠알리 삼장의 역경불사를 봉행하는 것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고요한 소리>(1987)와 <경전읽기 모임>(1989)과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1999) 등을 거쳐서 2002년 <초기불전연구원>이 창립되어 빠알리 삼장 역경불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물론 한국에서 처음으로 빠알리 삼장의 번역을 시작한 분으로는 한국 빠알리 성전협회의 전재성 거사님이 있다. 그는 1999년에『쌍윳따 니까야』를 완역한 이후로 지금까지 4부 니까야를 완역해 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승려가 아니다. 통합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승려들이 빠알리 삼장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초기불전연구원(원장: 대림스님, 지도법사: 각묵스님)의 설립 때부터이다. 그래서 발제자는 통합종단의 초기불전 번역사업의 보기로 초기불전연구원의 역경불사를 들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전연구원은 ‘빠알리 삼장의 한글완역’을 발원하여 2002년 10월에 설립되었다. 통합종단 출범 후 40년이 되는 해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설립 당해에 제일 먼저『아비담마 길라잡이』(아비담맛타상가하 상․하)를 번역하여 2011년에 제9쇄를 인쇄하였다. 그 후 2004년에는『청정도론』(전3권, 4쇄 2011년)을 번역․출간하였고, 2006년에는『디가 니까야』(전3권, 3쇄 2010년)를, 2007~2008년에는『앙굿따라 니까야』(전6권)를, 2009년에는『상윳따 니까야』(전6권)를, 올해 2012년 10월에는『맛지마 니까야』(전4권)를 번역․출간하였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초기불교의 토대가 되는 4부 니까야를 완역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 전법활동도 하여서 초기불전연구원 까페(http://cafe.daum.net/chobul)의 회원 수는 6500명이 넘으며 동호회를 만들어서 매달 한 번씩 서울과 장유의 보리원과 지리산 실상사에서 각각 별도의 공부모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초기불교의 눈으로 본 통합종단 50년 소고, 발제자: 각묵스님)
초기불교의 눈으로 본 통합종단 50년 소고-각묵스님.docx
각묵스님은 빠알리니까야의 최초 번역자로서 전재성 박사를 들고 있다. 그러나 박사라는 타이틀 대신 일반남자 신도를 뜻하는 ‘전재성 거사’라고 칭하여 거사임을 강조 하였다.
“그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승려가 아니다”
전재성 박사가 1999년 최초로 쌍윳따니까야를 번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불에서는 별도의 번역작업에 들어 갔는데 가장 큰 이유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문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승려가 아니다.”
이 한마디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출가승려가 아닌 재가자의 번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래서일까 조계종 소속의 승려들이 빠알리 삼장 번역을 발원하였고 그 결과 2002년 초기불전연구원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점이 미흡했길레
그렇다면 어떤 점이 미흡해서 발원한 것일까. 이어지는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근거 있는 불교, 근거 있는 번역’을 주장한다. 이러한 근거로 초기불전연구원은 주석서 문헌을 중시하고 주석서 문헌의 중심에 있는『청정도론』을 노둣돌로 삼고『청정도론』을 이해하는 방법론이 되는『아비담마 길라잡이』(아비담맛타 상가하)를 의지한다. 왜 근거 있는 번역을 해야 하는가? 번역은 단순한 단어나 문장을 한글로 치환하는 사전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경전의 번역은 자신의 사적인 견해를 배제해야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직계제자들의 말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고 더군다나 소설도 수필도 아니다. 경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체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전(正典)이다. 경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언어학적 소양만으로는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중학교 일학년 학생이 막 영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실력으로 섹스피어의『햄릿』을 번역해보리라 한다면 그것은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경에 나타나는 특정한 술어와 특정한 구문과 특정한 배경과 특정한 문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경은 부처님의 직계제자들로부터 비롯되어 전승되어온 경에 대한 안목을 빌지 않고서는 결코 심도 깊게 이해될 수 없다.
(초기불교의 눈으로 본 통합종단 50년 소고, 발제자: 각묵스님)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원칙에 대한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박사의 번역과 비교하여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근거있는 번역, 자신의 사적인 견해를 배제한 번역, 소설이나 수필이 아닌 번역임을 강조 하고 있다. 더구나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예로 들기도 하였는데, 이는 외국어를 아는 실력만 있다고 부처님의 말씀을 번역을 잘 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출가한 승려만이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는 말로 보여 진다. 그래서일까 승가사회에서는 전재성박사의 번역을 인정하려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초기불교에 대한 교재는 출가승려가 번역한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전협회의 번역물이 오류 투성이 인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번역비교를 해 보면
과연 그럴까. 마하라훌로와다경에 대하여 성전협회의 맛지마니까야 개정판과 이번에 새로 출간된 초불의 맛지마니까야를 비교 해 보았다.
1.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Evaṃ me sutaṃ. Ekaṃ samayaṃ bhagavā sāvatthiyaṃ viharati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 Atha kho bhagavā pubbanhasamayaṃ nivāsetvā pattacīvaraṃ ādāya sāvatthiyaṃ piṇḍāya pāvisi. Āyasmāpi kho rāhulo pubbanhasamayaṃ [PTS Page 421] [\q 421/] nivāsetvā pattacīvaraṃ ādāya bhagavantaṃ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i. Atha kho bhagavā apaloketvā āyasmantaṃ rāhulaṃ āmantes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싸왓티 시의 제따와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걸치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 탁발하러 싸왓티 시로 들어가셨다. 존자 라훌라 또한 아침 일찍 법의를 걸치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 세존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존자 라훌라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사왓티로 탁발을 가셨다. 라훌라 존자도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세존을 뒤따라갔다.
|
영역 |
I heard thus. At one time the Blessed one was living in the monastery offered by Anāthapiṇḍika in Jeta's grove in Sāvatthi. Then the Blessed one put on robes in the morning and taking bowl and robes entered Sāvatthi for alms.
Venerable Rāhula too putting on robes, taking bowl and robes followed the Blessed one close behind. Then the Blessed one looked back and addressed venerable Rāhula: |
출처:
1)빠알리 원전: 62 Mahārāhulovāda suttaṃ
2)성전협회 맛지마니까야: 개정판
3) 초불 맛지마니까야: [서경]함께 독송할 경【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
4) 영역: (62) Advice to Venerable Rāhula —The Longer Discourse
마하라훌로와다경(라훌라를 가르친 큰 경-M62)-전재성님.docx
2.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Yaṃ kiñci rāhula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nti. Rūpameva nu kho bhagavā, rūpameva nu kho sugatāti. Rūpampi rāhula, vedanāpi rāhula, saññāpi rāhula, saṅkhārāpi rāhula, viññāṇampi rāhulā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3. [세존] “라훌라여, 어떠한 물질이든지 과거이건, 미래이건, 현재이건, 내적인 것이건, 외적인 것이건, 거친 것이건, 미세한 것이건, 열등한 것이건, 수승한 것이건, 먼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라훌라] “세상에서 존경받는 님께서는 오직 물질만을 언급하신 것입니까?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오직 물질만을 언급하신 것입니까?” [세존] “라훌라여,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라훌라여, 지각도 마찬가지이다. 라훌라여, 형성도 마찬가지이다. 라훌라여, 의식도 마찬가지이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3. 그러자 세존께서는 뒤를 돌아보시면서 라훌라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라훌라야,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오직 물질만 그러합니까, 세존이시여? 오직 물질만 그러합니까, 선서시여?” “라훌라여, 물질도 그러하고, 느낌도 그러하고, 인식도 그러하고, 심리현상들도 그러하고, 알음알이도 그러하다.” |
영역 |
“Rāhula, whatever matter, in the past, in the future, or at present, internal or external, coarse or fine, unexalted or exalted, far or near, all matter is not mine, that is not me, that is not my self. This has to be seen as it really is with right wisdom.” “Blessed one, is it only matter?” “Rāhula, feelings also, perceptions also, determinations and consciousness too.' |
라훌라를 부를 때 전박사는 ‘라훌라여’라고 한 반면, 초불의 경우 ‘라훌라야’라고 하였다. 이는 미성년자를 부를 때 호칭의 차이라 보여진다.
Sammappaññāya(삼마빤냐)에 대하여 성전협회는 ‘올바른 지혜’로 , 초불은 ‘바른 통찰지’로 하였다.
빠알리어 daṭṭhabba는 ‘보아야 할’이라는 뜻이다.
오온에 대하여 번역어를 보면 다음표와 같다.
오온 |
성전협회 |
초불 |
Rūpa(색) |
물질 |
물질 |
Vedanā(수) |
느낌 |
느낌 |
Saññā(상) |
지각 |
인식 |
saṅkhārā(행) |
형성 |
심리현상들 |
viññāṇa(식) |
의식 |
알음알이 |
루빠(색)와 웨다나(수)의 경우 번역이 모두 동일하다. 느낌의 경우 전재성 박사의 개정판 이전에는 ‘감수’라고 되어 있었으나 개정판 이후 모두 ‘느낌’으로 바뀌었다.
산냐(상), 상카라(행), 윈냐나(식)의 번역어는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초불의 경우 상카라에 대하여 ‘심리현상들’이라 하여 복수를 사용하였고, 또 윈냐나에 대하여 ‘알음알이’라 하여 선가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3.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Atha kho āyasmā rāhulo 'kona'jja bhagavatā sammukhā ovādena ovadito gāmaṃ piṇḍāya pavisissatī'ti tato paṭinivattitvā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īd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Addasā kho āyasmā sāriputto āyasmantaṃ rāhulaṃ aññatarasmiṃ rukkhamūle nisinnaṃ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Disvāna āyasmantaṃ rāhulaṃ āmantesi: ānāpānasati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Ānāpānasati rāhula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4. 그래서 존자 라훌라는 ‘오늘 세존으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았는데, 어찌 마을로 탁발하러 들어가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돌아와서 한 나무 밑에 앉아서 몸을 바로 세우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가부좌했다. 존자 싸리뿟따는 존자 라훌라가 한 나무 밑에 앉아서 몸을 바로 세우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고 가부좌한 것을 보고 존자 라훌라에게 말했다.
[싸리뿟따] “라훌라여, 호흡새김을 닦으십시오 (ānāpānasati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호흡새김을 닦고 반복하면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이 있습니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4. 그러자 라훌라 존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누가 세존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오늘 마을로 탁발을 가겠는가?” 그래서 그는 되돌아와서 어떤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았다.
5. 사리뿟따 존자는 라훌라 존자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어떤 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를 보고 라훌라 존자에게 말했다. “라훌라여,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라훌라여,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실로 큰 결과와 큰 공덕이 있다.” |
영역 |
Then it occurred to venerable Rāhula, advised by the Blessed one, “What is the use of going for alms today?” Venerable Rāhula, stopped short, and sat with legs crossed at the root of a certain tree, the body straight and mindfulness established in front. Venerable Sāriputta saw venerable Rāhula seated cross-legged at the root of a certain tree, the body straight and mindfulness established in front of him. He said, “Rāhula, develop in-breathing and out-breathing. When, in- and out-breathing is developed and made much, it brings good results and benefits.” |
Ānāpānasati(아나빠나사띠)에 대하여 성전협회는 ‘호흡새김’이라 하였고, 초불은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 하였다. 호흡과 들숨과 날숨은 어떻게 다를까.
호흡의 사전적 의미는 ‘숨을 내쉬거나 들이쉼’이다. 따라서 ‘호흡’이나 ‘들숨과 날숨’은 같은 말이라 볼 수 있다. 단지 sati(사띠)에 대하여 ‘새김’과 ‘마음챙김’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번역상의 가장 큰 차이라 볼 수 있다.
4.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Atha kho āyasmā rāhulo sāyanhasamayaṃ patisallānā vuṭṭhi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rāhulo bhagavantaṃ etadavoca:
kathaṃ bhāvitā nu kho bhante ānāpānasati kath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5. 그후 존자 라훌라는 저녁 무렵에 홀로 명상하다가 일어나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앉았다. 한 쪽으로 앉아서 존자 라훌라는 세존께 말했다.
[라훌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호흡새김을 닦고 어떻게 반복하면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이 있습니까?”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6. 그러자 라훌라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에서 일어나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라훌라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7. “세존이시여, 어떻게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지으면 실로 큰 결과와 큰 공덕이 있게 됩니까?” |
영역 |
In the evening, venerable Rāhula got up from his seclusion, approached the Blessed one, worshipped, sat on a side and said, “Venerable sir, developed and made much, in which ways do in-breaths and out-breaths bring good results and benefits?” [1] |
‘저녁 무렵’과 ‘해거름’이 있다. 해거름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해가 서쪽으로 넘어 걸 무렵’이라는 뜻으로 저녁 무렵과 같은 의미이다. 초불의 ‘[낮 동안의]’라는 말은 원전에 없는 말로서 대괄호치기를 이용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삽입한 것이다.
5.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Yaṃ kiñci rāhula ajjhattaṃ paccattaṃ kakkhalaṃ kharigataṃ upādinnaṃ, seyyathīdaṃ: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ahārū aṭṭhī aṭṭhimiñjā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kakkhalaṃ kharigataṃ upādinnaṃ,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paṭhavī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paṭhavīdhātu yā ca bāhirā paṭhavīdhātu paṭhavīdhāturevesā.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PTS Page 422] [\q 422/]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paṭhavīdhātuyā nibbindati. Paṭhavīdhātuyā cittaṃ virāje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6. [세존] “라훌라여, 무엇이 땅의 세계인가? 땅의 세계에는 몸 안의 것과 몸 밖의 것이 있을 것이다. 라훌라여, 몸안에 있는 것으로 각각 거칠고 견고한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것, 예를 들어 머리카락, 몸털, 손톱, 이빨, 피부, 고기, 근육, 뼈, 골수, 신장, 심장, 간장, 늑막, 비장, 폐, 창자, 장간막, 위장, 똥, 그리고 기타의 각각 거칠고 견고한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것은 모두 라훌라여, 모두 몸안의 땅의 세계이다. 이러한 몸 안의 땅의 세계와 몸 밖의 땅의 세계를 땅의 세계라고 한다. 그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것을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땅의 세계를 멀리 떠나 땅의 세계로부터 마음을 정화시켜야 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8. “라훌라야,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딱딱하고 견고하고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땅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머리털․몸털․손발톱․이․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근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 속의 음식․똥과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고 딱딱하고 견고하고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땅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땅의 요소든 외적인 땅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땅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 보아 땅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땅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한다.[離慾]” |
영역 |
“Rāhula, all that's in this body. That are hard and rough and thought are yours, such as hair of the head and body, nails, teeth, skin, flesh, veins, bones, bone marrow, kidneys, heart, liver, pleura, spleen, lungs, intestines, small intestines, stomach and excreta, or anything else that is internal, your own, hard and rough is called `internal earth element'. This internal earth element and the external earth element, all that goes as the earth element. “All this, is not mine, that is not I, it is not my self. This has to be seen as it really is, with right wisdom. Seeing it as it really is, the mind should be detached from the earth element, and the interest should be cut. |
성전협회의 문구 중에 “땅의 세계에는 몸 안의 것과 몸 밖의 것이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주석에 따르면 “빠알리 원문에는 이 문장이 생략 되어 있으나 문맥상 반드시 넣어야 뜻이 통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초불의 경우 대괄호치기를 이용하여 “[이를 일러 내적인 땅의 요소라 한다.]”라는 문구를 넣어 설명하였다.
빠알리어 원문에 없는 문장이 삽입된 것은 소설적 번역이라는 빌미를 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문맥상 필요하다면 삽입 가능한 것이라 보여지고 더구나 주석에 기입 되어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보여진다.
paṭhavīdhātuyā nibbindati에 대하여 ‘땅의 세계를 멀리 떠나’와 ‘땅의 요소를 염오하고’로 되어 있다. 여기서 빠알리어 nibbindati는 첫째로 ‘충분하다’ 와 ‘만족하다’의 뜻과 함께, 둘째로 ‘싫증나다’ 와 ‘혐오하다’의 뜻이 있다.
이에 대하여 전박사는 ‘멀리 떠나다’는 뜻으로 번역하였지만, 초불의 경우 ‘염오하다’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는 초불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인 ‘염오-이욕-해탈’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뒤 이어진 문구에서 ‘탐욕이 빛바랜다’는 말이 나온다.
탐욕의 빛바램을 초불에서는 ‘이욕’이라는 말로도 사용한다. 그래서 대괄호치기를 이용하여 [離慾]이라는 용어를 삽입해 놓은 것이다. 성전협회에서는 ‘마음을 정화시킨다(cittaṃ virājeti)’라고 번역하였다.
6.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Katamā ca rāhula āpodhātu: āp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āpo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āpo āpogataṃ upādinnaṃ, seyyathīd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lo siṅghānikā lasikā muttaṃ,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āpo āpogataṃ upādinnaṃ,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āpo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āpodhātu, yā ca bāhirā āpodhātu āpodhāturevesā.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āpodhātuyā nibbindati. Āpodhātuyā cittaṃ virāje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7. 라훌라여, 물의 세계란 어떠한 것인가? 물의 세계에는 몸 안의 것과 몸 밖의 것이 있을 것이다. 라훌라여, 몸 안에 있는 것으로 각각 액체나 액체적인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것, 예를 들어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임파액, 침, 점액, 관절액, 오줌, 그리고 기타의 액체나 액체적인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라훌라여, 몸안의 물의 세계이다. 이러한 몸 안의 물의 세계와 몸 밖에 있는 물의 세계를 물의 세계라고 한다. 그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것을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물의 세계를 멀리 떠나 물의 세계로부터 마음을 정화시켜야 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9.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물의 요소인가? 물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라훌라여,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물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물과 액체 상태로 된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물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쓸개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과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물과 액체 상태로 된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물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물의 요소든 외적인 물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물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 보아 물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물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한다.” |
영역 |
“Rāhula, what is the water element? There is internal water element and external water element. Rāhula, what is the internal water element? All that's in this body that is watery and thought is yours such as bile, phlegm, pus, blood, sweat, oil of the skin, tears, fat, saliva, snot, oil of the joints, and urine, or anything else, that is internal, all things of watery nature and thought is yours is called `internal water element'. This internal water element and the external water element, go as the water element. “All this is not mine, that is not I, it is not my self. This has to be seen as it really is, with right wisdom. Seeing it as it really is, the mind should be detached from the water element, and the interest should be cut. |
담즙과 쓸개즙, 임파액과 [피부의]기름기가 차이를 보인다. 담즙은 “척추동물의 간에서 만들어지는 소화액. 보통 쓸개에 저장되었다가 십이지장으로 분비된다. 알칼리성을 띠며 지방의 소화를 돕는다.”라고 설명 되어 있다. 쓸개즙도 같은 의미이다.
임파액은 “고등 동물의 조직과 조직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무색의 액체”라 되어 있다. 이를 [피부의]기름기라 하였는데, 빠알리어는 ‘vasā’이다. 와사에 대한 인터넷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vasā telañ ca: fat or oil in general’ 로 되어 있다. 그리고 영문번역에 fat로 되어 있다. Fat에 대한 영어사전을 찾아 보면 ‘지방, 뚱뚱한, 살찐, 비만한, 기름’으로 되어 있다.
척추동물의 간에서 만들어지는 소화액척추동물의 간에서 만들어지는 소화액
7.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Katamā ca rāhula tejodhātu: tej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tejo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tejo tejogataṃ upādinnaṃ, seyyathīdaṃ: yena ca santappati, yena ca jīrīyati, yena ca pariḍayhati,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sammā pariṇāmaṃ gacchati.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tejo tejogataṃ upādinnaṃ,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tejo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tejodhātu, yā ca bāhirā tejodhātu tejodhātu revesā.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tejodhātuyā nibbindati. Tejodhātuyā cittaṃ virāje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8. 라훌라여, 불의 세계란 어떠한 것인가? 불의 세계에는 몸 안의 것과 몸 밖의 것이 있을 것이다. 라훌라여, 몸안에 있는 것으로 각각 열 및 열에 관계된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것, 예를 들어 열을 내거나 노쇠하거나 화를 내거나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완전히 소화시키는 것, 그리고 기타 각각 열 및 열에 관계된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것은 모두 라훌라여, 몸안의 불의 세계이다. 이러한 몸 안의 있는 불의 세계와 몸 밖에 있는 불의 세계를 불의 세계라고 한다. 그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것을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불의 세계를 멀리 떠나 불의 세계로부터 마음을 정화시켜야 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0.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불의 요소인가? 불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불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불과 뜨거운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불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그것 때문에 따뜻해지고 늙고 타버린다거나 그것 때문에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완전히 소화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불과 뜨거운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불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불의 요소든 외적인 불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불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 보아 불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한다.” |
영역 |
“Rāhula, what is the fire element? There is internal fire element and external fire element. What is the internal fire element? All that internal fire, the firey nature, that is your own. Such as the burning, the decaying of the tasted, drunk, eaten, enjoyed, is thoroughly digested or any internal fire, or burning nature that is yours is called `internal fire element'. This internal fire element and external fire element go as the fire element. “All this is not mine, that is not I, that is not, my self. This has to be seen as it really is, with right wisdom. Seeing this as it really is, the mind should be detached from the fire element, and the interest should be cut. |
Dhātu에 대하여 ‘세계’와 ‘요소’라 하였다. 영역은 element로 되어 있다. Element는 ‘[…의] 요소, 성분, 구성 분자[in, of ‥]; [화학] 원소; (보통 단수형) […의] 소량, 기미[of ‥]’라는 뜻이다.
8.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Katamā ca rāhula vāyodhātu: vāyo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vāyo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vāyo vāyogataṃ upādinnaṃ, seyyathīdaṃ: uddhaṅgamā vātā adhogamā vātā kucchisayā vātā koṭṭhasayā1 vātā aṅgamaṅgānusārino vātā assāso passāso iti.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vāyo vāyogataṃ upādinnaṃ,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vāyodhātu. Yā ceva kho pana ajjhattikā vāyodhātu, yā ca bāhirā vāyodhātu vāyodhāturevesā.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PTS Page 423] [\q 423/]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vāyodhātuyā nibbindati. Vāyodhātuyā cittaṃ virāje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9. 라훌라여, 바람의 세계란 어떠한 것인가? 바람의 세계에는 몸 안의 것과 몸 밖의 것이 있을 것이다. 라훌라여, 몸 안에 있는 것으로 각각 기체나 기체적인 것과 그것에서 파생된 것, 예를 들어 상방으로 부는 바람, 하방으로 부는 바람, 창자에 부는 바람, 위에 부는 바람, 사지로 부는 바람, 날숨, 들숨, 그리고 기타 각각의 기체나 기체적인 것, 그것에서 파생된 것은 모두 라훌라여, 몸 안에 있는 바람의 세계이다. 이러한 몸 안의 바람의 세계와 몸 밖에 있는 바람의 세계를 바람의 세계라고 한다. 그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것을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바람의 세계를 멀리 떠나 바람의 세계로부터 마음을 정화시켜야 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1.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바람의 요소인가? 바람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바람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바람과 바람 기운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바람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올라가는 바람, 내려가는 바람, 복부에 있는 바람, 창자에 있는 바람, 온몸에 움직이는 바람, 들숨과 날숨이다.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바람과 바람 기운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바람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바람의 요소든 외적인 바람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바람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 보아 바람의 요소를 염오하고 마음이 바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한다.” |
영역 |
“Rāhula, what is the air element? There is internal air element and external air element. What is the internal air element? All that internal air, that is yours, the airy nature, with up-coming air, down-going air, air in the stomach, air in the bowels, and air running up and down limbs large and small, to this is called `internal air element'. This internal air element and the external air element, it all goes as the air element. “That is not mine, that is not I and that is not my self. This has to be seen as it really is, with right wisdom. Seeing this, as it really is, the mind should be detached from the air element, and the interest should be cut. |
9.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Katamā ca rāhula ākāsadhātu: ākāsadhātu siyā ajjhattikā, siyā bāhirā. Katamā ca rāhula ajjhattikā ākāsadhātu: yaṃ ajjhattaṃ paccattaṃ ākāsaṃ ākāsagataṃ upādinnaṃ, seyyathīdaṃ kaṇṇacchiddaṃ nāsacchiddaṃ mukhadvāraṃ,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ajjhoharati yatth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santiṭṭhati, yena ca asitapītakhāyitasāyitaṃ sāyitaṃ adhobhāgā2 nikkhamati. Yaṃ vā panaññampi kiñci ajjhattaṃ paccattaṃ ākāsaṃ ākāsagataṃ upādinnaṃ3 ayaṃ vuccati rāhula Ajjhattikā ākāsadhātu. Yāceva kho pana ajjhattikā ākāsadhātu yā ca bāhirā ākāsadhātu, ākāsadhāturevesā.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isvā ākāsadhātuyā nibbindati. Ākāsadhātuyā cittaṃ virāje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0. 라훌라여, 공간의 세계란 어떠한 것인가? 공간의 세계에는 몸 안의 것과 몸 밖의 것이 있을 것이다. 라훌라여, 몸 안에 있는 것으로 각각 공간이나, 공간과 같은 것이나, 그것에서 파생된 것으로 예를 들어 귓구멍, 콧구멍, 구강과 그것을 통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을 본 것을 삼키고, 그것을 통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을 보고 삼킨 것을 하복부에서 배설하는 것 및 기타의 다른 안에 있는 것으로 개체적인 것이나, 공간이나, 공간과 같은 것이나, 그것에서 파생된 것은 모두 라훌라여, 몸 안에 있는 공간의 세계라고 한다. 이러한 몸 안의 공간의 세계를 공간의 세계라고 한다. 그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것을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공간의 세계를 멀리 떠나 공간의 세계로부터 마음을 정화시켜야 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2.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허공의 요소인가? 허공의 요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라훌라야, 그러면 무엇이 내적인 허공의 요소인가?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허공과 허공에 속하는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은 무엇이건 이를 일러 내적인 허공의 요소라 한다. 예를 들면 귓구멍, 콧구멍, 입이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넘어가는 목구멍과,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머무는 곳,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나가는 곳이다. 그 외에도 몸 안에 있고 개개인에 속하는 허공과 허공에 속하는 것과 업에서 생긴 것을 일러 내적인 허공의 요소라 한다. 내적인 허공의 요소든 외적인 허공의 요소든 그것은 단지 허공의 요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통찰지로 보아 바람의 요소를 염오하고 허공이 바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한다.” |
영역 |
“Rāhula, what is the element of space? There is internal and external space element. What is internal space? All internal space such as the spaces in the, ear holes, nostrils, mouth, where the food tasted, drunk, enjoyed, is accepted and stored and through which it comes out is called internal space. This internal and external, space element goes as the element of space. That is not mine, that is not I, that is not my self. This has to be seen as it really is, with right wisdom. Seeing it as it really is, the mind should be detached from the space element to cut all interests. |
10.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Paṭhavī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ti, paṭhavī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Seyyathāpi rāhula paṭhaviyā sucimpi nikkhipanti, asucimpi nikkhipanti, gūthagatampi nikkhipanti, muttagatampi nikkhipanti, kheḷagatampi nikkhipanti, pubbagatampi nikkhipanti, lohitagatampi nikkhipanti. Na ca tena paṭhavī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evameva kho tvaṃ rāhula paṭhavīsamaṃ bhāvanaṃ bhāvehi. Paṭhavī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1. 라훌라여, 땅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땅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쾌-불쾌의 접촉이 생겨났더라도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라훌라여, 마치 땅에 깨끗한 것을 버리더라도, 더러운 것을 버리더라도, 똥을 버리더라도, 오줌을 버리더라도, 침을 버리더라도, 고름을 버리더라도, 피를 버리더라도, 그 때문에 땅이 번민하거나 수치스러워하거나 기피하는 것이 없듯, 그와 같이 라훌라여, 그대는 땅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땅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이미 생겨난 즐겁거나 괴로운 감촉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3. “라훌라야, 땅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땅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라훌라야, 예를 들면 땅에 깨끗한 것을 던지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던지기도 하고 똥을 누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고 고름을 짜서 버리기도 하고 피를 흘리기도 하지만, 땅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그와 같이 땅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땅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
영역 |
“Rāhula, develop a mind similar to earth.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earth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your mind and stay. Rāhula, on the earth is dumped the pure and the impure, excreta, urine, saliva, pus, blood; the earth does not loathe those. In the same manner develop a mind similar to earth.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earth,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the mind and stay. |
‘땅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와 ‘땅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의 경우 닮는 이라는 말이 다르다. 영문에서 ‘develop a mind similar to earth’로 되어 있는데, similar가 ‘유사한, 비슷한, 닮은’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초불을 경우 ‘수행을 닦아라’ 하였는데 이는 ‘동어 반복’으로 보인다.
11.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Āpo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āpo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Seyyathāpi rāhula āpasmiṃ sucimpi dhovanti, asucimpi dhovanti, gūthagatampi dhovanti, muttagatampi dhovanti, kheḷagatampi dhovanti, pubbagatampi dhovanti, lohitagatampi dhovanti. Na ca tena āpo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evameva [PTS Page 424] [\q 424/] kho tvaṃ rāhula āposamaṃ bhāvanaṃ bhāvehi. Āpo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2. 라훌라여, 물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물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쾌-불쾌의 접촉이 생겨났더라도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라훌라여, 마치 물에 깨끗한 것을 씻더라도, 더러운 것을 씻더라도, 똥을 씻더라도, 오줌을 씻더라도, 침을 씻더라도, 고름을 씻더라도, 피를 씻더라도, 그 때문에 물이 번민하거나 수치스러워 하거나 기피하는 것이 없듯, 그와 같이 라훌라여, 그대는 물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물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이미 생겨난 즐겁거나 괴로운 감촉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4. “라훌라야, 물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물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라훌라야, 예를 들면 물에 깨끗한 것을 씻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씻기도 하고 똥을 씻기도 하고 오줌을 씻기도 하고 침을 씻기도 하고 고름을 씻기도 하고 피를 씻기도 하지만, 물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그와 같이 물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물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
영역 |
“Rāhula, develop a mind similar to water.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water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your mind and stay. Rāhula with water the pure and the impure are washed; excreta, urine, saliva, pus, and blood, are washed. Water does not loathe those. In the same manner develop a mind similar to water.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water,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the mind and stay. |
aṭṭīyati & aṭṭita] :distressed, tormented, afflicted; molested, plagued, hurt
harāyati : to blush, to be shy; to feel conscientious scruple, to be ashamed
Jigucchati [Desid. of gup]: to shun, avoid, loathe, detest, to be disgusted with or horrified
Jigucchati은 피하다 (avoid),, 구역질나다( to be disgusted)의 뜻인데, 각각 ‘기피하는’과 ‘넌더리치는’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넌더리치다’의 사전전 의미는 ‘몹시 싫어서 생기는 귀찮고 지긋지긋한 느낌이나 생각’을 말한다.
12.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Tejo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tejo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Seyyathāpi rāhula tejo sucimpi ḍahati,1 asucimpi ḍahati, gūthagatampi ḍahati, muttagatampi ḍahati, kheḷagatampi ḍahati, pubbagatampi ḍahati. Lohitagatampi ḍahati . Na ca tena tejo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evameva kho tvaṃ rāhula tejosamaṃ bhāvanaṃ bhāvehi. Tejo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3. 라훌라여, 불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불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쾌-불쾌의 접촉이 생겨났더라도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라훌라여, 마치 불에 깨끗한 것을 태우더라도, 더러운 것을 태우더라도, 똥을 태우더라도, 오줌을 태우더라도, 침을 태우더라도, 고름을 태우더라도, 피를 태우더라도, 그 때문에 불이 번민하거나 수치스러워하거나 기피하는 것이 없듯, 그와 같이 라훌라여, 그대는 불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불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이미 생겨난 즐겁거나 괴로운 감촉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5. “라훌라야, 불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불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라훌라야, 예를 들면 불이 깨끗한 것을 태우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태우기도 하고 똥을 태우기도 하고 오줌을 태우기도 하고 침을 태우기도 하고 고름을 태우기도 하고 피를 태우기도 하지만, 불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그와 같이 불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불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
영역 |
“Rāhula, develop a mind similar to fire,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fire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your mind and stay. Rāhula, fire burns the pure and the impure, burns excreta, urine, saliva, pus, and blood. Fire does not loathe those; in the same manner develop a mind similar to fire.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fire,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the mind and stay. |
13.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Vāyo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vāyo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2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Seyyathāpi rāhula vāyo sucimpi upavāyati, asucimpi upavāyati, gūthagatampi upavāyati, muttagatampi upavāyati, kheḷagatampi upavāyati, pubbagatampi upavāyati, lohitagatampi upavāyati . Na ca tena vāyo aṭṭīyati vā harāyati vā jigucchati vā evameva kho tvaṃ rāhula vāyosamaṃ bhāvanaṃ bhāvehi. Vāyo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4. 라훌라여, 바람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바람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쾌-불쾌의 접촉이 생겨났더라도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라훌라여, 마치 바람에 깨끗한 것을 날리더라도, 더러운 것을 날리더라도, 똥을 날리더라도, 오줌을 날리더라도, 침을 날리더라도, 고름을 날리더라도, 피를 날리더라도, 그 때문에 바람이 번민하거나 수치스러워하거나 기피하는 것이 없듯, 그와 같이 라훌라여, 그대는 바람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바람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이미 생겨난 즐겁거나 괴로운 감촉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6. “라훌라야, 바람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바람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라훌라야, 예를 들면 바람이 깨끗한 것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더러운 것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똥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오줌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침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고름을 불어 날리기도 하고 피를 불어 날리기도 하지만, 바람은 그 때문에 놀라지도 않고 모욕을 당하지도 않고 넌더리치지도 않는다. 라훌라야, 그와 같이 바람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바람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
영역 |
(미싱되어 있음) |
14.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Ākāsasam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ākāsa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seyyathāpi rāhula ākāso na katthaci patiṭṭhito, evameva kho tvaṃ rāhula ākāsasamaṃ bhāvanaṃ bhāvehi. Ākāsasam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uppannā manāpā'manāpā phassā cittaṃ na pariyādāya ṭhassan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5. 라훌라여, 공간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공간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쾌-불쾌의 접촉이 생겨났더라도 그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라훌라여, 마치 공간이 아무 것에도 한정지어지지 않듯, 그와 같이 라훌라여, 그대는 공간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공간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이미 생겨난 즐겁거나 괴로운 감촉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7. “라훌라야, 허공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허공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라훌라야, 예를 들면 허공이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것처럼 그와 같이 허공을 닮는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허공을 닮는 수행을 닦으면 마음에 드는 감각접촉과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접촉이 일어나더라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
영역 |
“Rāhula, develop a mind similar to space,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space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your mind and stay. Rāhula, space does not settle anywhere. In the same manner develop a mind similar to space. When you develop a mind similar to space, arisen contacts of like and dislike do not take hold of the mind and stay.
|
15.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Mett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Mett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vyāpādo so pahīyissati. Karuṇ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Karuṇ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ā vihesā sā pahīyissati. Mudit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Mudit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ā arati sā pahīyissati. Upekkh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Upekkh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paṭigho so pahīyissa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6. 라훌라여, 자애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자애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무릇 성냄이 끊어질 것이다. 17 . 라훌라여, 연민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연민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무릇 적의가 끊어질 것이다. 18 . 라훌라여, 기쁨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기쁨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무릇 불쾌가 끊어질 것이다. 19 . 라훌라여, 평정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평정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무릇 혐오가 끊어질 것이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18. “라훌라야, 자애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자애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악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19. “라훌라야, 연민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연민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잔인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20. “라훌라야, 더불어 기뻐함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더불어 기뻐함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싫어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21. “라훌라야, 평온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평온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적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
영역 |
“Rāhula, develop loving kindness; when it is developed, anger fades. Rāhula, develop compassion; when it is developed, anger fades. Rāhula, develop intrinsic joy; when it is developed discontentment fades. Rāhula, develop equanimity; when it is developed aversion fades. Rāhula, develop the thought of loathesomeness; when it is developed greed fades. Rāhula, develop the perception of impermanence; when it is developed the conceit `I be' fades. |
사무량심에 대한 내용이다. 네 가지 거룩한 마음과 이와 반대 되는 마음이 열거 되어 있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무량심
구분 |
성전협회 |
초 불 |
영 역 |
Metta |
자애 |
자애 |
loving kindness |
Karuṇa |
연민 |
연민 |
compassion |
Mudita |
기쁨 |
더불어 기뻐함 |
joy |
Upekkha |
평정 |
평온 |
equanimity |
사무량심과 반대의 마음
구분 |
성전협회 |
초 불 |
영 역 |
vyāpāda |
성냄 |
악의 |
anger |
Vihesā |
적의 |
잔인함 |
anger |
arati |
불쾌 |
싫어함 |
discontentment |
paṭigha |
혐오 |
적의 |
aversion |
서로 번역이 제각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적의라는 말은 성전협회에서는 Vihesā 의 번역어로 쓰였지만, 초불에서는 paṭigha 의 번역어로 쓰였다.
네 번째 paṭigha에서, 이는 위 빠알리어 문장 ‘yo paṭigho so pahīyissati’인데,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paṭigha는 감각접촉이 아니라 분노나 혐오의 의미로 쓰인 것이라 한다. 영문의 경우 Aversion인데, 역시 혐오 또는 반감의 뜻이다.
어떤 사람이 성공하였는데 이를 함께 기뻐하고 축하 해 준다면 역시 수희공덕을 짓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 한다면 이는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기쁨(Mudita)’ 의 반대가 ‘불쾌(arati)’ 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았을 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기경에 따르면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에 대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자에 대하여 혐오를 갖는다면 마음의 평정은 깨질 것이다. 그래서 ‘평정(Upekkha)’ 의 반대가 ‘혐오(paṭigha)’ 라고 볼 수 있다.
16.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Asubh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Asubh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rāgo so pahīyissati. Aniccasaññ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PTS Page 425] [\q 425/] aniccasaññaṃ 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asmimāno so pahīyissa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20 . 라훌라여, 부정(不淨)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부정을 인식하는 명상을 닦으면, 무릇 탐욕이 끊어질 것이다.
21 . 라훌라여, 무상 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무상을 인식하는 명상을 닦으면, 무릇 ‘나는 있다.’는 자만이 끊어질 것이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22. “라훌라야, 부정하다고 인식하는[不淨想]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부정하다고 인식하는 수행을 닦으면 어떤 탐욕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23. “라훌라야, 무상을 인식하는[無常想]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무상을 인식하는 수행을 닦으면 나라는 자만은 모두 제거될 것이다.” |
영역 |
(미싱되어 있음) |
전재성박사의 번역을 보면 가급적 한글로 풀어 쓰고 여간해서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간혹 한자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위의 부정(不淨)이나 불사(不死)가 대표적이다.
초불의 경우 한자용어를 대괄호치기로 하여 ‘[不淨想]’ [無常想] 이라 하여 주석적 번역을 하였다.
17.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Ānāpānasatiṃ1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Ānāpānasati rāhula2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Kathaṃ bhāvitā ca rāhula ānāpānasati kath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22. 라훌라여, 호흡새김에 대한 명상을 닦아라. 라훌라여, 호흡새김을 수행하고 반복하면,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이 생겨난다. 라훌라여, 어떻게 호흡새김을 닦고 어떻게 반복하면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이 있는가?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24. “라훌라야,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라훌라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거듭거듭 행하면 실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라훌라야, 그러면 어떻게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어떻게 거듭거듭 행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게 되는가?” |
영역 |
“Rāhula, develop mindfulness of in-breaths and out-breaths, when it is developed and made much there are good results and many benefits. Developed and made much in which manner does mindfulness of in-breaths and out-breaths bring good results and many benefits? |
Bahulīkatā의 경우 Bahul는 ‘많은, 풍부한, 열중하는’의 뜻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Bahulīkaroti가 있는데, 이는 ‘진지하게 행하다, 헌신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초불의 경우 ‘거듭거듭 행하면’이라 하였는데, 이는 구어체로서 경전에 적합한 용어가 아닌 것으로 보여 진다.
18.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idha rāhula bhikkhu araññagato vā rukkhamūlagato vā suññāgāragato vā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23. 라훌라여, 세상에서 숲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빈 집으로 가서 가부좌를 한 채 몸을 바로 곧게 세우고 얼굴 앞으로 새김을 확립하여 깊이 새겨 숨을 들이쉬고 깊이 새겨 숨을 내쉰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25. “라훌라야, 여기에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
영역 |
“Here, Rāhula, the bhikkhu gone to the the forest, or to the root of a tree, or to an empty house, sits cross-legged, with the body erect, and the mind established in front of him. He breathes in and out mindfully. |
19.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1)So satova assasati, sato passasati, dīghaṃ vā assasanto dīghaṃ assasāmīti pajānāti, dīghaṃ cā passasanto dīgh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2)rassaṃ vā assasanto rassaṃ assasāmīti pajānāti, rassaṃ vā passasanto rassaṃ passasāmīti pajānāti, 3)sabbakāy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abbakāy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4)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kāy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 길게 숨을 들이쉴 때는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숨을 내쉴 때는 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2) 짧게 숨을 들이쉴 때는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숨을 내쉴 때는 나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3) 신체의 전신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고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4) 신체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고 신체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26.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영역 |
Breathing in long he knows, `I breathe in long;' breathing out long he knows, `I breathe out long.' Breathing in short he knows, `I breathe in short;' breathing out short he knows, `I breathe out short.' the bodily determination; I breathe out, appeasing the bodily determination.' |
kāyasaṅkhāra에 대하여 ‘신체의 형성’과 ‘몸의 작용[身行]’이라 번역하였다.
20.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5)pīti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pīti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6)Sukh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sukh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7)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saṅkhār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iti sikkhati, 8)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passambhayaṃ cittasaṅkhār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5) 희열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희열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6) 행복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행복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7) 마음의 형성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의 형성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8)마음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27. “⑤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⑥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⑦ ‘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⑧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영역 |
] He trains, `I breathe in, experiencing joy; I breathe out, experiencing joy.' He trains, `I breathe in, experiencing pleasantness, I breathe out, experiencing pleasantness.' He trains, `I breathe in, experiencing the mental determination; I breathe out, experiencing the mental determination.' [3] He trains, I breathe in, calming the mental determination, I breathe out, calming the mental determination. |
Sikkhati에 대하여 각각 ‘전념한다’와 ‘공부짓는다’로 되어 있다. 전재성박사의 주석에 따르면 Sikkhati는 전념하다, 노력하다(ghatati, vayamati) 의 의미라 한다. 이에 대한 영문은 train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훈련하다, 교육하다, 연습하다’의 의미이다.
21.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9)cittapaṭisaṃvedī assasissāmīti sikkhati, cittapaṭisaṃvedī passasissāmīti sikkhati, 10)abhippamod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abhippamod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11)samādah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samādah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12)vimocayaṃ cittaṃ assasissāmīti sikkhati, vimocayaṃ cittaṃ passasissāmīti sikkhati,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9) 마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10)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11) 마음을 집중시키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집중시키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12) 마음을 해탈시키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해탈시키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28. “⑨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⑩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영역 |
[4] He trains, `I breathe in, experiencing the mental state; I breathe out, experiencing the mental state.' [5] He trains, `I breathe in, the mind rejoicing; I breathe out, the mind rejoicing.' He trains, `I breathe in with a concentrated mind; I breathe out with a concentrated mind.' He trains, `I breathe in with a released mind; I breathe out with a released mind. |
‘마음을 경험하면서’ 와 ‘마음을 경험하면서’는 완전히 같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와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역시 같다. ‘마음을 집중시키면서’와 ‘마음을 집중하면서’는 매우 유사하다. ‘마음을 ‘해탈시키면서’ 와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22.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13)anicc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anicc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14)virā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virā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15)nirodh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nirodh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16) paṭinissaggānupassī assasissāmīti sikkhati, paṭinissaggānupassī passasissāmīti sikkhati. |
빠알리저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3)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무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14)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15) 소멸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소멸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16) 완전히 버림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완전히 버림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29. “⑬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람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⑯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영역 |
. [6] He trains, `I breathe in seeing impermanence; I breathe out seeing impermanence.' He trains, `I breathe in, detached; I breathe out, detached.' He trains, `I breathe in seeing cessation; I breathe out seeing cessation.' He trains, `I breathe in seeing the giving up; I breathe out seeing the giving up.' |
Virāgānupassī에 대하여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와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로 되어 있다. Virāgā는 색깔이 바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초불의 경우 탐욕을 덧붙여 ‘탐욕의 빛바램’으로 번역 하였다.
23.
번역자 |
내 용 |
빠알리원전 |
Evaṃ bhāvitā kho rāhula ānāpānasati ev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evaṃ bhāvitāya kho rāhula ānāpānasatiyā [PTS Page 426] [\q 426/] evaṃ bahulīkatāya yepi te carimakā assāsapassāsā1 tepi viditāva nirujjhanti no aviditāti.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rāhul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Mahārāhulovādasuttaṃ dutiyaṃ. |
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박사
|
19. 라훌라여, 이렇게 호흡새김을 닦고 이렇게 반복하면 커다란 과보와 커다란 공덕이 있다. 라훌라여, 이렇게 호흡새김을 닦고 이렇게 반복하면, 심지어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사라질 때에도 알아차려지는 것이고 모른 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20. 이처럼 말씀하시자 존자 라훌라는 만족하여 세존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기뻐하여 받아들였다.
라훌라에 대한 가르침의 큰경 끝났다.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
30. “라훌라야, 이와 같이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이와 같이 거듭거듭 행하면 실로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잇다. 라훌라야, 이와 같이 들숨과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이와 같이 거듭거듭 행하면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소멸할 때에도 [멸한다고]안다. 그것을 모른 채 멸하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였다. 라훌라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이 끝났다. |
영역 |
“Rāhula, mindfulness of in breaths and out breaths developed in this manner brings good results and many benefits. Rāhula, when mindfulness of in breaths and out breaths are developed and made much in this manner, even the last breath leaves with your knowledge.” [7] The Blessed one said thus and venerable Rāhula rejoiced in the words of the Blessed one. |
마하라훌로와다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문구가 ‘yepi te carimakā assāsapassāsā1 tepi viditāva nirujjhanti no aviditāti’ 라는 문장이다. 이에 대하여 성전협회의 경우 “심지어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사라질 때에도 알아차려지는 것이고 모른 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 하였고, 초불의 경우 “거듭거듭 행하면 마지막 들숨과 날숨이 소멸할 때에도 [멸한다고]안다. 그것을 모른 채 멸하지 않는다”라 하였다. 이는 무슨 말일까. 전재성박사의 주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되어 있다.
이것은 죽음을 최후로 하는 입출식이다.
수행자가 죽을 때에 새김과 알아차림으로 고요히 죽는 것을 말한다.
(마하라훌로와다경 주석, 전재성박사)
수행하다 죽는 것을 말한다. 수행중에 자신의 호흡을 보면서 임종을 맞았을 때 다시 태어남이 없을 것이다.
사마시시(samasisi)와 Samasisa(사마시사)
수행처에서 경행과 좌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종 ‘와선’도 하기 때문이다. 와선은 누워서 하는 수행을 말한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가장 강한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경우 가장 강한 대상은 호흡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것도 배의 호흡이다. 그래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지켜 보는데, 그런 상태를 지속하다 보면 잠이 들게 되어 있다.
이때 끝까지 호흡을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만약 임종시에 호흡을 끝까지 알아 차리면 다음 마음이 일어 나지 않아 죽음과 동시에 아라한이 되어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라 한다. 이를 ‘사마시시(samasisi)’라 한다.
빠알리 사전에 따르면 Samasisa(사마시사)는 ‘두 결과를 동시에 성취하는 님’ 또는 ‘제수잔(齊首者)로서 갈애와 목숨을 동시에 소멸시키는 님’으로 설명 되어 있다.
수행중에 죽는다는 것은 영광이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노후걱정을 하여 개인재산을 축적하거나 노후보장용으로 사설사암을 갖기에 열중이라는 것은 출가수행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 진다. 그래서 “수행자는 수행하다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라고 수행처에서 말한다.
16단계의 호흡수행
마하라훌로와다경에 실려 있는 16단계의 호흡수행은 네 가지 새김의 토대와 연관된 네 가지 방식으로 분류 된다. 이 16단계의 수행에 대하여 표로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16가지 호흡의 단계
No |
16가지 호흡의 단계 |
비 고 |
1 |
길게 숨을 들이쉴 때는 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숨을 내쉴 때는 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
길게 |
2 |
짧게 숨을 들이쉴 때는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숨을 내쉴 때는 나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
짧게 |
3 |
신체의 전신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고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신체의 전신을 경험 |
4 |
신체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고 신체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신체의 형성을 그침 |
5 |
희열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희열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희열을 경험 |
6 |
행복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행복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행복을 경험 |
7 |
마음의 형성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의 형성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마음의 형성을 경험 |
8 |
마음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의 형성을 그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마음의 형성을 그침 |
9 |
마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마음을 경험 |
10 |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마음을 기쁘게 함 |
11 |
마음을 집중시키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집중시키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마음을 집중시킴 |
12 |
마음을 해탈시키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마음을 해탈시키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마음을 해탈시키킴 |
13 |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무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무상함을 관찰 |
14 |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사라짐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사라짐을 관찰 |
15 |
소멸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소멸함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소멸함을 관찰 |
16 |
완전히 버림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며 완전히 버림을 관찰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
완전히 버림을 관찰 |
승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와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번역된 맛지마니까야 마하라훌로와다경에 대해서 번역 비교를 해 보았다. 비교해 보니 우리나라 승가에서 우려 하였던 ‘근거 없는 번역, 자신의 사적인 견해에 따른 번역, 소설적 번역’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철저하게 원전에 근거한 번역이었음을 알 수 있었고 주석에 바탕에 둔 번역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재가자가 번역하였다고 하여 염려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바탕으로 하여 영어, 독일어, 티벳트어 등에 능통하고 이들 원전을 참조한 번역이 더 신뢰성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외국어만 잘 한다고 해서 훌륭한 번역가라고 볼 수 없다. 번역자는 다방면에 걸쳐서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행에 대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포함하여 계율에 대한 가르침, 자비실천의 가르침, 수행의 가르침, 평등의 가르침, 현실직시의 가르침 등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승가뿐만 아니라 재가자에 대한 가르침도 있고, 청소년을 위한 우정의 가르침, 아픈자를 위한 가르침 등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래서 부처님의 법문이 뭇삶(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설해지다 보니 8만4천가지나 되었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가르침에 대하여 오로지 승가의 스님만의 번역이 바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다양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재가자 번역하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다. 이는 까라니야멧따경(자애경, Sn1.8)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이라는 문구에서와 같이 부모가 되어 보아야 그 심정을 알 수 있듯이 세상에서 다양한 체험을 한 재가자의 번역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승가의 오만과 편견
삶의 과정에서 수 많은 문제에 봉착하며 살아 간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되지만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그럴 경우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하며 경전을 떠 들어 보았을 때, 신기하게도 그 안에 답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8만4천이나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생활과 관련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빠알리어 번역이 승가가 번역한 것은 정당한 것이고 재가가 번역한 것은 인정될 수 없다는 승가의 분위기는 오만과 편견이라 본다. 더구나 세익스피어의 햄릿 이야기를 들면서 “영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실력으로 섹스피어의『햄릿』을 번역해보리라 한다면 그것은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재가번역자에 대한 인격모독이나 다름 없다.
이제 두 출판사에서 4부 니까야가 완역 되었다. 번역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있다. 재가자가 번역한 것은 문제가 있고, 출가자가 번역한 것만 바른 것이라는 생각은 대단히 경솔한 처사라 보여진다.
2012-11-12
진흙속의연꽃
'담마의 거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한의 인생관 (1) | 2012.11.16 |
---|---|
개뼈다귀와 같은 감각적 욕망, 알라갓두빠마경 (뱀에 대한 비유의 경, M22) (0) | 2012.11.15 |
부처님 말씀도 상품화 하다니! 불교방송의 ‘오늘의 부처님 말씀’ (0) | 2012.11.10 |
부처님에게 청원한 하느님, 아리야빠리예사나경 (고귀한 구함의 경, M26) (0) | 2012.11.09 |
내 등에 짐이 있기에, 바라경(짐의 경, S22:22) (0) | 2012.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