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스님이 한 말이라고 해서 모두, 유명인과 국민멘토

담마다사 이병욱 2013. 4. 28. 10:14

 

스님이 한 말이라고 해서 모두, 유명인과 국민멘토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책일까? 시중 서점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놓은 베스트셀러나 넷상에서 대문에 나오는 잘 팔리는 책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시류에 편승한 글일 수 있고, 조작에 따른 순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책은 꾸준히 읽혀 지는 책이다. 그런 책을 고전이라 한다.

 

조회수가 높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글일까? 다음뷰에 대문으로 실려 있는 포스팅이라 하여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들어가 보면 각종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플레시 광고로 요란 하다. 읽어 보면 정치이야기, 연예인 동정, 스포츠스타 이야기등 시류에 편승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스님들이 누구냐 하면

 

많이 보고 많이 접속하는 글이 좋은 글일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글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늘 하는 말이 유명하다고 해서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법우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스님들이 누구냐 하면 혜민 스님 법륜 스님 또 지금은 약간 주춤?하지만 현각 스님 등등입니다.

 

(금강승)

 

 

인터넷 필명 ‘금강승’님이 작성한 글이다. 거두절미하고 필요한 부분만 인용한 것이다.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유명스님은 모두 훌륭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각묵 스님이나 미산 스님 등등에게 여쭤보세요.”라고 글을 올려 놓았다. 경전을 근거로 작성한 글에 대한 반론을 하면서 유명스타스님들에게 물어 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댓글에서면 대승의 남진제 북송담 다 모시고 통역?을 위해 두루 통한 김열권 법사나 전재성 박사, 미산 스님 모시고 상좌불교의 묘원 법사님 등등의 분들과 끝장토론을 한번 했으면 싶습니다.^^ 김용옥 교수나 김형효 교수 같은 분들도 참가하면 더 좋구요.”라는 글을 올렸다.

 

K법우님이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언론과 방송, 인터넷에서 알려져 있는 유명인들이다. 빠알리 니까야를 근거로 하여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유명스님과 유명인사들이 참여하여 끝장 토론을 하여 결론을 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명스님들의 말이라고 하여 모두 진실일까?

 

국민멘토 스님

 

불자들은 물론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법륜스님일 것이다. 그래서 전국을 순회하며 불자뿐만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특강을 한다. 주제는 행복에 대해서이다.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는 즉문즉설이다. 질문하면 즉석에서 답변하는 것이다. 주로 불교적 해법을 제시한다. 그런 해법의 기반은 금강경에 실려 있는 무유정법(無有定法)정신이라 하였다. ‘특별히 정해진 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명스타스님은 법륜스님만이 아니다. 최근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국민멘토라 하여 법륜스님, 혜민스님, 마가스님, 정목스님 이렇게 네 명의 스님을 언급하였다. 5월 27일부터 30일까지 조계사에서 ‘힐링콘서트’를 연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명스타스님들은 불자멘토에서 이제 국민멘토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혜민스님은 법륜스님 못지 않은 인기스타스님이다. 영화배우 뺨치는 준수한 용모와 하바드 박사 타이틀과 미국대학 교수 등 스타스님이 될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그런 스님이 전국순회 법문을 하면 구름청중을 몰고 다닌다. 그렇다면 이들 스타스님이 하는 말들이 모두 다 훌륭한 것일까?

 

법륜스님과 혜민스님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강연이나 기고문등을 넷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소감을 여러 차례 올린 바 있다. 주로 비판적 시각이다. 빠알리 니까야를 근거로 하여  비교해 보았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은 내용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불교방송 불교강좌 시간의 송담스님의 법문이나 진제종정스님의 법문내용도 역시 비판하였다. 역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이 이루어질 때 마다 반발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마다 우리스님이 한 이야기인데..”라든가, “국민멘토스님이 한 말인데..” 라든가, “고위직에 있는 스님이 한 말인데..”  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명하고 고위직에 있는 스님이 한 말이면 모두 옳다고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님이 말하면 모두 옳다고 보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승보개념때문이라 본다.

 

스님을 승보(僧寶)로 간주하는 한국불교

 

우리나라에서 법회할 때 삼귀를 한다. 이때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한다. 삼보의 대상이 스님인 것이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함께 스님을 삼보중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니라라에서는 스님을 승보로 간주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스님을 승보로 보는 것은 귀의불(歸依佛), 귀의법(歸依法), 귀의승(歸依僧)을 한글화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이라 본다. 아마 1970년대 초반 한글 삼귀의가 보급되면서 부터라고 여겨진다. 1947년 봉암사 결사 당시 성철스님에 의하여 제안 되었다고 하는 스님에 대한 삼배역시 스님을 승보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을 부처님과 가르침과 동급으로 보았기 때문에 불법승 삼보에 절하듯이 스님에게 삼배를 하는 것이다. 이는 땅에 떨어진 스님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조치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초기불교가 소개 되고 빠알리니까야가 널리 읽히고 있는 시대에 스님을 승보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스님이 승보가 아니라 승가공동체가 승보인 것이다. , 상가를 말한다. 그것도 거룩한 상가, 성승가(聖僧伽)를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여 도와 과를 이루신 성자의 공동체가 승가인 것이다. 그래서 삼귀의에서 귀의 대상은 스님이 아니라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 수준의 말이란?

 

이와 같이  스님을 승보로 보다보니 스님이 한 말이면 모두 옳다고 보는 것이다. 법륜스님이 즉문즉설에서 한 마디 하는 것도 틀림 없는 사실이고, 혜민스님이 힐링콘서트에서 한말도 마치 부처님 말씀 처럼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빠알리니까야를 근거로 한 글쓰기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묵 스님이나 미산 스님 등등에게 여쭤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명하다고 해서 다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유명스님이 한 말이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말은 아니다. 만일 “각묵 스님이나 미산 스님 등등에게 여쭤보세요.”라든가 “김열권 법사나 전재성 박사, 미산 스님 모시고 상좌불교의 묘원 법사님 등등의 분들과 끝장토론을”라고 말한다면 매우 유치한 발상이다. 마치 신문기사를 보고 “여기 보면 미국 유럽 불교의 주류가 티베트 불교라고 나오죠?”라고 단정하는 것과 같다. 신문기사에 낫기 떄문에 유명스님이 한 마디 했기 때문에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믿는것과 같다.

 

이렇게 신문기사에 의존하거나 유명스님이 말한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여 말한다면 마치 초등학생이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를 동경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스님이 말했다고 하여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다면 초등학생 같은 말을 한다라는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깔라마경(A3:65)에서

 

불자로서 “초등학생 같은 소리 한다”라든가  “생각하는 것이 유치하다”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철저하게 경전을 근거로 해야 한다. 유명스타스님들이 하는 말이 경전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파악 해야 한다. 경전을 근거로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그 스님의 ‘견해(ditthi)’에 지나지 않는다. 스님의 개인적 견해에 대하여 스타스님이 말했다고 하여 “각묵 스님이나 미산 스님 등등에게 여쭤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유치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깔라마들이여,

 

1)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2)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3)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4)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5) 논리적이라고 해서,

6) 추론에 의해서,

7)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8)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9)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10)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

 

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 경- Kālāma Sutta , 앙굿따라니까야-A3:65, 대림스님역)

 

 

 

 

Vedas

 

 

 

깔라마경에서 부처님은 열 가지에 대하여 경계의 말을 하고 있다. 이 중 아홉 번째인 “9)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말한 것이나 신문에 난 기사라 하여 진실로 받아 들이는 것과 같다. 또 열 번째인 “10)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구절은 스타스님이 말한 것이라 해서 모두 진실로 받아 들이려는 것과 같다.이렇게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은 유명하다고 하여 반드시 훌륭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회의론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네 번째인 “4)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라는 문구를 악용하는 것이다. 빠알리니까야에 써 있는 내용이라도 진실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회의론자들이 경전을 읽어 보지 않고 단지 추론으로 하는 말이다. 경에서 말하는 성전은 빠알리니까야가 아니라 부처님 당시 브라만교의 베다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구를 빠알리니까야를 의심하여 후대에 삽입되었다든가 조작되었기 때문에 빠알리니까야도 선별해서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대단히 악의적이다. 일반적으로 단멸론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엇에 의지하라고 하였을까?

 

부처님은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S22:43)” 하였다. 이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빠알리니까야에 의지하라는 것이다. 깔라마경에서 말하는 네 번째인 4)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의 그 성전이 빠알리니까야가 아닌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부처님은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에서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뒤에 내가 가르치고 제정한 가르침과 계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Yo vo, ānanda, mayā dhammo ca vinayo ca desito paññatto, so vo mamaccayena satthā.)”라고 말씀 하셨다. 이 경우 역시 부처님은 가르침에 의지하라고 하였다.

 

스님이 한 말이라고 해서

 

이와 같이 부처님은 빠알리니까야 도처에서 가르침에 의지하라고 하였다. 그런 가르침을 모아 놓은 것이 빠알리니까야이다. 이처럼 부처님이 마지막 열반하는 순간까지 법과 율을 준수하라고 신신당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회의론자들은 부처님의 말씀 보다 유명스타스님의 말을 더 믿는 것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스님이 이런 말을 해서라든가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서등의 말을 한다. 부처님의 말씀 보다 스타스님이나 신문기사를 더 신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스님들이 누구냐 하면 혜민 스님 법륜 스님..”라는 말이나, “각묵 스님이나 미산 스님 등등에게 여쭤보세요.”라는 말이나, “김열권 법사나 전재성 박사, 미산 스님 모시고 상좌불교의 묘원 법사님 등등의 분들과 끝장토론을라는 말이나, 신문기사를 인용하여 여기 보면 미국 유럽 불교의 주류가 티베트 불교라고 나오죠?”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 같은 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경전에 근거하여 말해야 한다. 스타스님이 한 말이라 하여 모두 진실로 받아 들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하면 받아 들이고, 다른 말을 하면 스님의 견해로 보면 된다.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스님이 한 말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201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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