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한국불교에 승가는 없는가, 한글 삼귀의와 스님귀의

담마다사 이병욱 2013. 5. 1. 13:13

 

한국불교에 승가는 없는가, 한글 삼귀의 스님귀의

 

 

 

“존경하는 이천만 불자 여러분!”

 

우리나라 불자들 숫자는 얼마나 될까? 매년  부처님오신날  존경하는 이천만 불자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총무원장스님의 경축사를 보면 이천만명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터넷검색에 따르면 불기2540(1996) 부처님오신날 봉축사에서도 이천만불자이었다. 그러나 문광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5년 불교인구는 1,072만명으로 집계되었다. 2천만 불자라고 말하는 것은 속된 말로 뻥튀기한 것이다.

 

언필칭 2천만 불자로 호언했던 불교신도수가

 

불자인구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논문을 발견하였다. 1996년도에 발간된 동국대 석사 학위 논문인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눈에 띄였다.

 

 

이때의 조사결과는 불교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먼저 언필칭 2천만 불자로 호언했던 불교신도수가 8백만 명 대로 나타남으로써 '2천만 명'이 허수였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며,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한 기독교인이 835만 명 을 넘어섬으로써 불교세가 서구종교세에 추월당한 결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佛敎布敎 있어서의 大衆媒體 活用 硏究, , 東國大學校 佛敎大學院 布敎學 專攻, 1996學年度 碩士學位 論文)

 

 

1985년도에 작성된 종교조사에 대한 것이다. 그 때 당시 정부가 전국민을 상대로 직접조사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그 이전까지 봉축법요식과 같은 불교행사에서 불교지도자들은 한결같이 2천만 불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부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800만명 밖에 되지 않아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8년전의 자료에 대한 이야기이다.

 

골드크로스와 데드크로스

 

종교통계는 매 10년 마다 발표된다. 지난 2005년 발표 되었으니 앞으로 2년이 지나면 2015년에 새롭게 발표될 것이다. 2005년의 문광부 통계를 보면 불교인구 1072만명, 개신교가 860만명, 천주교가 514만명으로 되어 있어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인 1985년과 비교하면 불교와 개신교는 정체된 반면 천주교가 186만명에서 514만명으로 급격하게 증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천주교의 교세가 매우 두드러진다. 상승각도가 매우 가파르다. 불교는 정체 되어 있고 천주교의 교세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면 혹시 역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이다. 서울과 인천, 경기에서 3대 종교인구 비율을 보면 다음 표와 같다.

 

 

서울, 인천, 경기의 종단별 인구

불교

개신교

천주교

인구

서울

1,642,667(16.8%)

2,222,831(22.7%)

1,382,264(14.1%)

9,762,546

인천

348,361(13.8%)

563,433(22.3%)

345,843(13.7%)

2,517,680

경기

1,741,401(16.8%)

2,260,594(21.8%)

1,286,104(12.4%)

10,341,006

출처; 2005 문화관광부 한국의 종교현황

 

 

이 표는 2005년 문광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표를 보면 불교인구와 천주교인구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경우 불과 2.7%이고, 경기도는 4.4%이다. 그런데 인천의 경우 0.1%차이로 앞서 있을 뿐이다.

 

2015년에 어떤 변화가 발생될까? 역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천주교의 상승기세가 이를 말해 준다. 그래서 불교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하고, 천주교는 ‘골드크로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된다면 전체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불교는 3등 종교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168개로 난립된 종단

 

이와 같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천주교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있는 불교는 여러모로 비교된다. 불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정체는 커녕 퇴보가 우려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원인중의 하나가 ‘종단난립’이라 본다. 문광부 종교통계자료에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글을 발견하였다.

 

 

 

불교의 경우, 주소와 연락처가 확보된 교단 수가 전체 168개였는데 그 가운데 103개 교단 현황이 파악하였다. 개신교에 대해서는 125개 교단의 협조 자료를 확보하였다. 천주교의 경우는 관련 책자와 홈페이지를 참조하되 보완할 부분에 대해 전화 통화나 이메일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였다.

(한국의 종교현황, 문화체육관광부)

 

  2009-3-17한국의종교현황(up).hwp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연구용역을 종교문화연구원이 수임하여 수행된 자료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조사를 하면서 일종의 애로사항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글을 보면 불교의 경우 종단(교단)이 무려 168개에 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연락이 된 곳은 103곳에 지나지 않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등록은 되어 있으나 유명무실하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런데 천주교는 단일 교단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단지 홈페이지 실려 있는 통계만으로도 충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내용이 정확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천주교에서 밝힌 통계는 믿을 만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경우 어떨까?

 

불자수가 4천만명이라고?

 

자료에 따르면 불교의 경우 등록된 종단은 총 168개이다. 이중 연락이 된 곳이 103개라 한다. 나머지 65개는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파악된 103개 종단의 신도는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39,581,983명으로 통계가 나와 있다. 3,958만명이다. 거의 4천만명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명으로 보았을 때 80%가 불교신자라는 이야기이다.

 

불자수가 4천만이라는데 믿을 수 있는 수치일까? 그러나 국가의 용역을 받아 조사한 자료 86쪽에 그대로 살려 있다. 대체 어떻게 이런 통계가 나올 수 있을까? 103개 종단 중에서 주요 종단의 통계를 다음과 같다. 다음과 같은 표가 잘 말해 준다.

 

 

번호

종단

사찰수

교직자수

신도수

44

조계종

2,444

7,155

6,421

13,576

 -

 -

20,000,000

98

태고종

3,121

6,404

1,974

8,378

2,070,000

2,760,000

4,830,000

49

천태종

165

150

250

400

 -

47

진각종

123

91

101

192

357,700

634,400

992,100

 

 

한국불교 4대 종단의 자료이다. 먼저 조계종을 보면 사찰수 2,444곳에 교직자수가 13,576명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신도수를 보면 20,000,000명으로 되어 있다. 영으로 똑 떨어지는 2천만명이다.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할 때 총무원장 스님이 이천만 불자 여러분!”할 때, 2천만명이다. 이는 4천만 불자의 절반에 해당된다.

 

태고종의 경우 3,121개의 사찰수에 교직자수는 8,378명이다. 신도수는 4,830,000명이다, 483만명이다. 천태종의 경우 사찰수 165에 교직자수 400명이다. 신도수는 나타나 있지 않다. 진각종의 경우 사찰수 123에 교직자수 192명이다. 신도수는 99만명으로 되어 있다.

 

4대 종단의 통계를 보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수치이다. 그러나 수긍이 되는 통계도 보인다. 대체적으로 부풀려 있다. 특히 신도숫자가 그렇다.

 

400% 부풀려진 불교통계

 

그렇다면 다른 종단의 경우는 어떠할까? 신도수가 많은 종단을 보면 대한융화불교 34만명, 대한불교관음종 71만명, 대한불교미타종 164만명, 대한불교원융종 118만명, 도솔천유마종 76만명, 불교조계종삼화불교 260만명, 한국불교원효종 40만명 으로 되어 있다. 이외 수 많은 종단의 신도수 역시 수십만명이라고 등재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한국불교는 총168개 종단에 등재된 교직자수는 5만명이고, 총신도수는 4천만명이다. 그렇다면 이웃종교 개신교와 천주교는 어떠할까?

 

자료에 따르면 개신교의 경우 124개의 교단으로 되어 있다. 불교보다 낮은 수치이다. 그리고 교회수는 58,612개이고, 교직자수는 95,596명으로 되어 있다. 총신자수는 1,2010,657명으로 되어 있다. 1,200만명이다. 2005년 통계 자료 860만명과 비교하면 340만명이 더 많고 40%가 부풀려져 있다.

 

천주교는 어떠할까? 자료에 따르면 본당은 1,511개이고, 공소는 1,084개이다. 교직자수는 14,597명이고, 신자수는 4,888,109명으로 되어 있다. 488만명이다. 이 수치는 2005년 문광부 통계자료인 514만명 보다 오히려 26만명이 더 적다.

 

이로 보았을 때 천주교에서 제출한 자료가 가장 정확하고, 다음으로 40%가 부풀려진 개신교 자료이다. 불교의 경우 무려 400%가 부풀려져 있다. 개신교의 열배에 달한다.

 

왜 뻥튀기 통계가 발표되었을까?

 

자료에서 왜 불교의 신도수가 무려 4천만에 달하고 400%까지 부풀려 진 것일까? 이는 조사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각 종단에 팩스를 보내서 자료를 보내 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단에서 보내 준 자료를 가감없이 그대로 실은 것이라 본다. 그러다 보니 불교의 경우 무려 400%가 부풀려지고, 개신교는 40%가 부풀려 졌다. 천주교는 오히려 줄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또 다른 이유는 불교와 개신교는 교단이 난립되어 있어서 통제가 되지 않아서라고 본다. 반면 천주교의 경우 단일 교단이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자료 만으로도 충분하였다고 한다.

 

뻥튀기통계자료를 보면서 정부의 용역을 받아 자료를 발간한 종교문화연구원의 무책임이 엿보인다. 또한 무려 400%를 뻥튀기 하게 만든 불교종단의 불성실한 답변태도 역시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처럼 양쪽에서 무책임으로 일관함에 따라 자료에 그대로 반영되어 불교의 허상을 남김 없이 보여 주었다.

 

불교신자수가 40%도 아니고 무려 400% 뻥튀기 된 것은 종단의 난립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불교가 천주교처럼 단일종단이었다면 절대로 400% 뻥튀기가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종단이 168개로 늘어 났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대한불교OO조계종 창종행사

 

불교TV사이트 특집프로그램에서 창종행사를 보았다. ‘()대한불교OO조계종이라 하였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명칭사이에 종단이름을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런데 창종식에 참가한 일부스님들의 모습을 보니 금빛찬란하다. 빨갗고 노란 컬러풀한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많이 보이고, 종정스님의 경우 모자에서부터 가사에 이르기까지 온통 황금색이다.  소규모 종단일수록, 새로 창종되는 종단일수록 가사의 빛깔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늘 새롭게 종단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종단이 168개나 되었을 것이다.

 

창종식에서 유심히 본 것이 있다. 그것은 삼귀의례이다. 새로 창종된 종단에서 삼귀의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조계종과 다르지 않았다. 똑 같은 내용이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내용 역시 똑 같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대한민국 어느 종단에서나 삼귀의문 내용은 같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세 번째 항인 스님들께 귀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스님귀의를 특징으로 한 한글삼귀의문

 

한국불교에 무려 168개나 되는 종단이 있는데 모두 승가공동체가 있는 것일까? 승가가 있다면 승가에 귀의한다고 해야 할것이다. 만약 승가가 없다면 어디에 귀의해야 할까? 스님만 있고 승가가 없다면 귀의해야 할 대상은 스님밖에 없다. 그래서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한글삼귀의문을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스님에게 귀의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한글삼귀의문이 나온 것은 1970년이다. 43년전의 일이다. 1970년이라면 조계종에서 분리된 태고종이 창종되던 해이다. 비구와 대처의 싸움에서 대처측의 태고종이 창종되어 나감으로서 정화가 일단락된 해이다. 그해 공모를 통해 한글삼귀의문이 발표 되었다. 조계종단에서는 찬불가 형식으로 된 한글삼귀의문을 적극적으로 배포 하고 법회의식에 사용하였다. 그결과 오늘날까지 법회가 열릴 때 마다 스님귀의를 특징으로 한 한글삼귀의문이 독송되고 있다.

 

종단이 난립된 이유는?

 

한글삼귀의문이 나온 시점인 1970년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불교종단은 몇 개 되지 않았다. 통합종단으로 불리운 조계종과 창종되어 떨어져 나간 태고종, 1966년에 개창된 천태종, 1953년에 창종된 진각종 등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168개나 되는 종단이 난립되어 있고 더구나 새로운 종단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절을 빼앗기기 싫어서

 

첫째는 승려들의 이해관계로 본다. 이는 다름아닌 탐욕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힘으로 불사를 일으켜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는데 권라를 빼앗기기 싫어서 일것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신도수가 확보 되어 어느 정도 교세를 이루었을 때 종단으로부터 간섭을 받기 시작한다. 분담금을 요구한다거나 인사에 관여한다거나 이런 저런 지시를 하는 것이다. 설령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놓았다고 할지라도 종단의 재산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쉽게 탈종해 버린다. 그리고 사단법인 또는 재단법인 형태로 새로운 종단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새로운 종단이 탄생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이른바 똑똑한 스님, 스타스님, 인기스님, 재력스님이 주도한다. 신도수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신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하여 땅투기도 하고 부동산 투기도 예사로 한다. 그렇게 한 없이 탐욕을 부리다가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본인은 물로 신도들까지 패가망신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플레이 능한 스님이 있을 경우 승가공동체가 있을 수 없다.

 

둘째, 한글삼귀의 영향 때문에

 

둘째는 한글삼귀의 영향으로 본다. 왜 그런가. 한글 삼귀의문에 스님을 귀의처로 해 놓았기 때문이다. 승가가 귀의처가 아니라 스님을 귀의처로 해 놓으니 스님은 부처님과 동급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은 스님에게 삼배를 하고 스님을 부처님처럼 믿고 따른다. 때로 부처님 보다 스님을 더 따른다. 그래서 창종하면 따라 가는 것이다. 1970년 당시 한글삼귀의문이 발표 되었을 당시 몇 개 되지 않는 종단숫자와 현재 168개로 난립된 종단 숫자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종단이 새로 생겨나는 요인은 삼귀의문에서 스님을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해 놓았기 때문이라 본다. 그래서 새로 창종되었을 때 스님을 따라 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그러나 승가를 귀의처로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함부로 스님을 따라 가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이는 부처님 보러 절에 가지 스님보고 절에 가나?”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삼귀의 원형 마하나마경(S55:37)

 

종단이 난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승려의 탐욕과 한글삼귀의문에도 요인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특히 한글삼귀의문에서 스님을 귀의의 대상으로 하였는데, 부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을까?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떻게 말씀 하셨을까? 빠알리니까야를 찾아 보았다.

 

재가불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나라의 경우 절에서 소정의 과정을 거친 다음 계를 받고 연비를 받고 나면 정식으로 불자가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계를 준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자가 된다는 것은 삼보에 귀의 하고 오계를 준수하는 것이다. 

 

빠알리니까야에서도 재가불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말씀 하셨다.

 

 

[마하나마]

“세존이시여, 재가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존]

Yato kho mahānāma,

buddha saraa gato hoti,

dhamma saraa gato hoti,

sagha saraa gato hoti,

ettāvatā kho mahānāma, upāsako hotīti.

 

“마하나마여,

부처님에게 귀의 하고

가르침에 귀의 하고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재가신자가 됩니다.

 

(Mahānāmasutta -마하나마의 경, 상윳따니까야 S55;37(4-7),전재성님역)

 

 

부처님이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승원에 머물고 있을 때 사끼야족의 마하나마가 부처님에게 재가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여쭙고 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부처님(Buddha)’가르침(dhamma)’상가(sagha)’에 귀의하면 재가신자(upāsaka)’가 된다고 하였다. 삼귀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문장이다.

 

상강사라낭(sagha saraa)

 

경을 보면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귀의하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 한글삼귀의에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는 표현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상강사라낭(sagha saraa)이라 하였다. 상가에 귀의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붓다, 담마, 상가 이렇게 삼보에 귀의하면 재가불자, 즉 우빠사까(upãsaka, 優婆塞, 재가남자신도, 청신사)와 우빠시까(upāsika,  優婆夷, 재가여자신도, 청신녀)가 된다고 하였다.

 

재가신자의 계행

 

그런데 부처님은 삼귀의와 더불어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마하나마]

“세존이시여, 재가신자가 계행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존]

마하나마여, 재가신자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범하는 것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곡주나 과일주 등 취기있는 것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재가신자는 계행을 갖춥니다.”

 

(Mahānāmasutta -마하나마의 경, 상윳따니까야 S55;37(4-7),전재성님역)

 

 

재가신자가 되려면 삼보에 귀의해야 한다. 그 다음에 해야 할일은 계를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오계이다. 재가자는 물론 출가자도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계행이다.

 

재가신자의 믿음

 

이렇게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까지 준수하고 난 다음 재가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마하나마]

“세존이시여, 재가신자가 믿음을 갖춘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존]

마하나마여, 세상에 재가신자가 믿음이 있다면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잘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입니다.’라고 여래의 깨달음을 믿습니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재가신자는 믿습니다.”

 

(Mahānāmasutta -마하나마의 경, 상윳따니까야 S55;37(4-7),전재성님역)

 

 

재가신자의 믿음에 대하여 부처님의 열가지 별호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런데 삼보 중에 부처님(Buddha)님에 대해서만 언급하였다. 가르침과 상가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이나 가르침을 실천하여 도와 과를 이루신 성자들의 공동체인 상가에 대한 믿음 역시 확고할 것이다. 

 

부처님의 단계적인 가르침

 

다음으로 보시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마지막으로 지혜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지혜와 관련하여 부처님은 마하나마여, 세상에 재가신자는 발생과 소멸에 대한 고귀하고 통찰력 있는 지혜를 갖추고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지혜를 성취합니다.”라고 말씀 하셨다. 사성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부처님은 재가신자들에게 삼귀의-오계-믿음-보시지혜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가르침을 펼치셨다.

 

스님들을 귀의처로 삼으라고 한 적이 없다

 

마하나마경에 따르면 삼귀의 대상은 붓다, 담마, 상가이다. 한국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 가르침, 스님들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한국불교에서 조석으로 매일 낭송되고 있는 한글삼귀의문은 잘못된 것이다. 부처님은 출재가를 막론하고 모든 불자들에게 상가를 의지처로, 귀의처로, 피난처로 삼으라고 하였지 결코 스님들을 귀의처로 삼으라고 한 적이 없다.

 

한국불교에 승가는 없다

 

스님귀의를 특징으로 하는 한글삼귀의문은 마치 잘못 끼워진 단추와 같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채 옷을 입었을 때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이듯이 한국불교가 그런 모습과도 같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이 보이고, 포대기는 있는데 엉뚱한 남의 아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출발부터 잘못되었으니 많은 문제가 발생되었다. 1970년 한글삼귀의문이 나온 이래 불교종단은 168개가 되었고 매년 새로운 종단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 종단에 승가공동체가 있을 리 없다. 승가공동체가 없으니 서로 잘못을 지적해 주는 빠와라나(Pavāraa , 自恣)와 계본을 외우는 우뽀사타(uposatha, 說戒) 역시 있을 수 없다.

 

1970년 이래 한국불교에서 한글삼귀의문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에서도 기타 군소 종단에서도 모두 한글삼귀의문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 삼귀의문에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로 되어 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혹시 우리나라에 승가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승가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스님들만 있다고 보아야 할까?

 

승가귀의를 스님귀의로 바꾸어 사용하는 경우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상가귀의라고 하였고, 테라와다 불교국가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상가귀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스님귀의를 고집한다면 넌센스이다.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사용하고자 한다면 우리나라에 더 이상 승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13-05-01

진흙속의연꽃

2009-3-17한국의종교현황(up).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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