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자가 본 천주교 수리산성지

담마다사 이병욱 2013. 5. 2. 17:18

 

불자가 본 천주교 수리산성지

 

 

 

이제까지 관악산에만 다녔다. 산세가 크고 넒고 계곡이 많고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질리지 않는다. 또 능선길이 많아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너무 자주 다니다 보니 슬슬 싫증이 난다. 그래서 방향을 돌려 보기로 하였다.

 

관악산과 마주 보고 있는 수리산이다. 그런 수리산을 보면 젊음이 넘처 나는 것 같다. 항상 푸른 옷을 입은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수리산은 안양시와 군포시, 그리고 안산시와 시흥시 가운데 있다. 특히 안양 방면에서 바라보면 밑변이 긴 삼각형 모양으로 전형적인 산()자 모양이다. 소나무가 많아서 인지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바라보는 수리산은 온통 녹색일색이다. 바위와 큰 암벽이 없어서 산전체가 녹색을 띠고 있다. 그래서 언제 바라 보아도 청춘과도 같은 산이다.

 

그런 수리산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국립공원이 아니다. 도에서 지정된 도립공원이다. 풍광이 좋은 것도 아니고 유명한 전통사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높이 475미터에 불과한 평범한 산이다.

 

산에 가면 반드시 정상을 정복해야 할까?

 

산에는 왜 갈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면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간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산에 가면 정상을 목표로 한다. 산에 가면 반드시 정상에 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수리산 산행에서 그런 공식은 깨졌다. 그것은 처음 접해 보는 둘레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수리산길을 오르자 사람들이 천천히 느긎하게 걷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더구나 산길치고는 길도 넓어 험한 등산길과 대조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방향에 대하여 묻자 둘레길을 따라가면 나온다고 하였다.

 

처음으로 둘레길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다. 설명을 들으니 수리산 중턱에 나있는 길이라 한다. 수리산을 빙둘러 만들어진 길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많이 보였다. 넓은 길을 유유자적하게 걷는 모습을 보니 정상을 목표로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수리산을 정중앙으로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둘레길을 걷다 보니 병목안에 이르렀다. 안양방면 수리산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계곡마을이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수리산을 정중앙으로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보였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는 수리산을 두 번 관통한다. 첫 번째 터널을 통과한 후 이 병목안 계곡에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곧바로 두 번째 터널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수리산 부근의 위성 지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수리산이 국립공원도 아니고 전통사찰도 없다 보니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터널을 옆으로 비켜 뚫은 것도 아니고 정중앙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둘레길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다. 두 사람이 스쳤을 때 어깨가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넒은 길이다. 그런 길이 산허리를 띠처럼 감고 있다.

 

천주교 수리산 성지

 

안양 병목안 계곡 깊숙한 곳에  천주교 수리산 성지가 있다. 수리산을 관통하는 고속도로의 육교 바로 옆에 최경환성인을 기리는 천주교 성당이 있다.

 

 

 

 

 

 

 

 

 

 

 

안양8, 억지8

 

병목안에 천주교 성지가 있다는 것은 오래전에 알았다. 그것은 안양8경을 통해서이다. 그렇다면 안양8경은 무엇일까? ‘성시(聖市)화운동을 주도한 보수당 출신의 시장이 집권할 때 만들어진 안양8경은 다음과 같다.

 

 

안양8

1) 관악산 망해암일몰

2) 삼막사 남녀근석

3) 평촌 중앙공원

4) 삼막천 만안교

5) 수리산 최경환성지

6) 안양예술공원

7)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

8) 안양1번가

 

 

일반적으로 경승지라하면 전통과 경관이 어우러진 곳을 말한다.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안양8경 중에 망해암과 삼막사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이나 번화가를 집어 넣은 것은 끼워 맞추기식으로 보인다. 여덟가지를 맞추려 하다 보니 무리하게 집어 넣어 억지8으로 보인다.

 

안양8경중에 천주교성지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떻게 최경환 수리산성지가 8경에 포함 되었을까? 안양시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천주교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이기 때문이라 한다. 성지로 조성된지 불과 몇 년만에 8경에 들어 간 것이다.

 

 

 

 

 

 

 

최경환과 최양업

 

병목안 계곡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천주교 수리산성지, 최경환 성지는 어떤 곳일까?  자료를 보면 천주교 신자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  기해박해 중이던 1839 9 12일에 옥사 순교(34)한 후에 묻힌 곳이라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2000년에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지로 지정된 더 큰 이유는 최경환의 아들인 최양업(토마스, 1821-1861)신부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양업신부는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이었기 때문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최양업은 1836년 프랑스 선교사 모방의 천거로 김대건, 최방제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서 수학하였다고 한다. 1844년 김대건과 함께 부제서품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1845년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에 이어 촤양업은 1849년 청나라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두 번째 사제서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김대건은 피의 순교자라 하여 1984년 성인으로 추대 되었지만, 최양업은 순직이었기 때문에 시성명단에서 제외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부친이 최경환이다. 최경환이 이곳 수리산 병목안에서 피신해 살다 기해박해(1839)당시 순교하여 묻힌 장소라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수리산 일대를 성지로 지정하고 성역화 한 것이다. 지난 2000년의 일이다.

 

 

 

 

 

 

 

 

한국의 가톨릭성인 103

 

최경환은 기해박해 당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않고 순교함에 따라 성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가톨릭에서 성인이 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위키백과 한국의 가톨릭성인에 따르면 103명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 기해박해 당시 순교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이름앞에 ()’자를 붙이고, 여자에게는 성녀(聖女)’를 붙인다. 그래서 성 권득인 베드로 (기해박해)’ , ‘성녀 고순이 바르바라 (기해박해)’ 로 불리는 것이다. 보통사람에서 성스런 사람, 즉 성인(聖人)이 된 것이다.

 

이렇게 103명의 성인이 탄생하게 된 것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하여 여의도광장에서 시성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시성조건에 맞았기 때문이다.

 

천주교 성인의 조건은?

 

그렇다면 시성조건은 무엇일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들의 시성과정에는 시성의 필수 조건인 기적 심사가 모두 면제되었으며라는 구절이 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적을 보여 주어야함을 말한다. 그런데 성인이 되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순교이다. 자신의 종교적신념을 굽히지 않고 순교하면 성인의 조건에 들어 가는 것이다.

 

천주교에서 성인이 되려면 기적을 행하거나 순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103명은 모두 기해박해, 병오박해 등 조선말 순교함으로서 성인이 된 것이다.

 

천주교 보다 더 탄압 받은 불교

 

우리나라 천주교역사는 일반적으로 200여년이라 한다. 특히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18세기초에 탄압이 극에 달했다. 이때 사망한 사람들이 오늘날 천주교의 성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천주교탄압 못지 않게 불교 역시 조선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조선왕조 오백년동안 시종일관 탄압을 받은 것이다.

 

조선왕조가 시작 되면서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수많은 사찰과 승도는 통폐합되거나 환속당했다. 그나마 존속하였던 사찰과 승도는 양반관료제 사회 하에서 온갖 수탈을 겪어야만 했다. 그 강도는 천주교에서 당한 것 보다 몇 배 더 강했다.

 

이렇게 조직적이고 강력한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승려들은 왜란이 일어 났을 때 의승군을 만들어 국난을 극복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승려들이 희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 5백년 동안 승려의 지위는 개선되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조선왕조는 승려를 노예로 취급하여 4대문 안에 들어 오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온갖 잡역에 동원되어 온갖 수탈을 감당해야 했다. 이에 대한 내용이 불교신문에 게재 되어 있다. 옮기면 다음과 같다.

 

 

<목민심서>에 당시의 사찰이 겪었던 비참한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양반이 반나절을 즐기기 위해 사찰에 찾아오면 노승들은 삼일 동안 쉬기를 잊어야 했다. 하루는 휘장을 치고, 하루는 잔치에 참여하며 나머지 하루는 청소를 해야만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1837년(헌종 3) 은해사에서는 “관의 부역이 너무 심하고 빈객이 끊이지 않아 스님들은 온 힘을 다 쏟아도 여유가 없다”고 하였다.

 

19세기 중엽 법주사에서는 국가의 의승역과 잡역은 물론 메주.산채 등의 산물을 바쳐야했다. 양반관료가 행차할 때는 절에서 가마를 메야했고, 심지어 향교와 서원, 향청 등의 관리들도 버젓이 특산물을 요구하였다. 사대부들의 이러한 요구는 당연시되었고, 경내에서 음주와 소란, 사냥 등의 무법행위도 자행하였다.

 

( 48. 숭유억불 넘어선 조선불교, 불교신문 2007-12-15)

 

 

목민심서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조선시대 승려들의 비참한 현실이 기록 되어 있다고 한다. 성벽축성에 동원되고 , 종이를 만드는 지역(紙役) 등 온갖 공물을 만들어 바쳐야 했다. 불교세를 약화시키고 승려를 환속시키기 위하여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탄압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승려들이 죽어 나갔다. 환속해서 살면 될 것을 종교적 신념 때문에 갖은 고초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무수하게 죽어 나갔다. 만약 천주교처럼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죽어간 승려를 모두 성인으로 인정한다면 밤하늘의 별보다 더 많을 것이다.

 

불교에서 성인의 조건은?

 

그렇다면 불교에서 성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는 가장 고층 경전이라 불리우는 숫따니빠따의 라따나경에 표현 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Sahāvassa dassanasampadāya            사하-왓사 닷사나삼빠다-
Tayassu dhamm
ā jahitā bhavanti,       따얏수 담마- 자히따- 바완띠
Sakk
āyadiṭṭhi vicikicchitañca          삭까-야딧티 위찌낏치딴짜
S
īlabbata vāpi yadatthi kiñci,      -랍바땅 와-삐 야닷티 낀찌
Cat
ūhapāyehi ca vippamutto            짜뚜-하빠-예히 짜 윕빠뭇또
Cha c
ābhihānāni abhabbo kātu        차 짜-비타--니 아밥보 까-
Idampi sa
ghe ratana paīta       이담삐 상게 라따낭 빠니-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통찰을 성취함과 동시에,

개체에 실체라는 견해

매사의 의심, 계행과 맹세에 대한 집착의 어떤 것이라도,

그 세 가지의 상태는 즉시 소멸되고,

네 가지의 악한 운명을 벗어나고,

또한 여섯 가지의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참모임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 지이다.(Sn2.1)

 

 

라따나경 10번 게송이다. 게송에서 세 가지 조건을 말하고 있다. , 1)개체에 실체라는 견해(유신견, sakkāya-diṭṭhi), 2)매사의 의심(의심, vicikicchā), 3)계행과 맹세에 대한 집착(계금취견, Sīlabbata-parāmāsa) 이렇게 세 가지가 타파 되면 성인의 흐름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될 기본조건을 갖춘 것이다.

 

관용과 자애와 지혜가 강물처럼

 

완전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번뇌를 다 소멸 시켜야 한다. , 4)감각적 욕망(탐심, kāma-rāga), 5)적의(진심, paigha), 6)색계 집착(rūpa-rāga), 7)무색계 집착(arūpa-rāga), 8)자만(māna), 9)들뜸(uddhacca), 10)무명(치심, avijjā) 이렇게 모두 10가지 장애를 소멸하였을 때 거룩한 님, 아라한이 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성인은 단계적으로 완성된다.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순이다. 이 네 가지 단계 중에서 첫 번째 단계가 수다원으로서 성인의 흐름에 들어간 자라 한다. 1번부터 3번까지 세 가지 장애가 제거 된자를 말한다.

 

이렇게 네 가지 단계의 성인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첫 번째 항목인 유신견타파이다. 존재에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말한다. 이는 나 또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를 말한다. 나가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한 결코 성인이 될 수 없다.

 

나가 없는 것, 나가 죽은 것 그런 상태가 불교의 성인이다. 그래서 열가지 장애(번뇌)가 모두 제거 되었을 때 거룩한 자, 성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성인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완전히 소멸된 자이다. 그래서 탐욕대신 관용이, 성냄대신 자애가, 어리석음 대신 지혜가 넘쳐 흐른다. 이렇게 불교의 성인은 관용과 자애와 지혜가 강물처럼 넘처나는 거룩한 자를 말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성인의 조건이라 볼 수 있다.

 

순례온 사람들

 

새롭게 조성된 천주교성지에서 순례온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수녀의 인솔에 따라 성지를 참배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묘역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에는 계단마다 철판으로 된 표지가 붙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사람이름이다. 아마도 성지화 하는 과정에서 기부를 한 사람들의 명단이라 보여진다.

 

코스마다 고난의 십자가를

 

최경환성인의 묘역으로 가는 길에는 예수의 십자가를 볼 수 있다. 코스마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고난을 형상화 해 놓았다. 10여 코스로 되어 있는데 한 코스마다 멈추어서서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설명이 끝나고 나면 기도가 이어진다. 그리고 종이에 무언가를 붙이고 있다.

 

 

 

 

 

 

내용을 보니 자신의 소망을 적어 넣은 것이다. 도전, 가족, 성적, 외모 등 문구가 보인다.

 

예수 조형물 앞의 일반참배객

 

코스를 보면  십자가를 짊어진 고난에 찬 예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 고난에 찬 모습만 보아도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정도로 극적인 묘사로 되어 있다. 그런 예수 조형물 앞에 일반참배객도 보인다. 무언가 소리 내서 기도하고 있다.

 

 

 

 

 

탑에 합장하고 탑돌이하며

 

종교시설물 앞에 서면 누구나 경건해진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아름답다. 불교에서도 성지순례가면 합장하며 경건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불상이나 석탑, 전각 등 사찰에 있는 모든 것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절 자체가 성스런 곳이기 때문이다. 가장 성스런 대상 불상이지만 밖에 나와 있는 것으로 석탑을 들 수 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사리를 보관하기 위하여 탑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자들은 사찰순례를 가면 탑에 합장하고 탑돌이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천주교 수리산 성지 최경환성인의 묘역은 예수의 고난을 형상화한 10여 단계의 길을 지나야 한다. 마침내 묘역 가까이 다가 왔다. 그러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서 있다. 12번째 단계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하는 단계라 한다.

 

 

 

 

 

개신교나 천주교의 십자가를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고난을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우리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매달렸다고 말한다. 창조주가 예수로 화현하여 대신 죽어 간 것을 말한다. 이런 예수의 정신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을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섭기도 하고 섬찟 하기도 하다.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불자들이 법당에서 보는 부처님 상은 거룩하고 온화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온화한 이미지의 불상

 

인도에서 불상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만들어진 불상은 깨달음의 환희에 가득찬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불상만 바라 보고 있어도 기쁨과 환희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 어디에도 고통에 가득찬 불상은 없다.

 

 

 

4세기 인도 사르나트의 불상(Gautama Buddha)

 

 

 

최경환성인의 묘역

 

최경환성인의 묘역에 도착하였다. 봉분이 있고 그 뒤에 십자가상이 있다. 앞에는 봉헌함이 보인다. 참배객들이 묘역앞에서 기도를 하거나 무덤을 만져 보고 있다.

 

 

 

 

 

뒤편에는 마리상이 있다.

 

 

 

 

 

 

천주교 산상음악회

 

그런데 수리산 천주교성지에서도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산상음악회라 한다. 올해로 7회째 열릴 것이라 한다.

 

 

 

 

 

 

 

 

 

수리산산상악회

 

 

블로그에 실려 있는 사진과 글을 보니 매우 소박해 보인다. 불교의 산사음악회와 비교된다.

 

불교의 산사음악회

 

불교에서는 5월 부처님오신날 큰 절에서는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가장 큰 명절인 부처님오신날을 맞이 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기 때문에 매우 흥겹게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인기가수를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기독교를 믿는 가수, 간증을 한 가수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그런 산사음악회의 한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청계사 산사음악회(2012 부처님오신날)

  

 

문화도 다르고 정신세계도 다르지만

 

고속도로 터널이 정중앙을 관통하고 수레가 다닐 정도로 넓은 둘레길이 삥 둘러 나 있는 수리산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 수리산 계곡 깊은 곳에 천주교 성지가 있었다. 처음 가본 수리산 최경환성지는 천주교의 순례코스중의 하나이다.

 

천주교성지를 보면서 불교와 달리 이질적인 요소도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고난의 예수상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고난의 예수상에 참배하는 모습이 매우 진지하고 경건해 보였다. 불자들이 온화한 이미지의 불상에 참배하는 것과 다름 없이 경건한 모습이다. 비록 문화도 다르고 정신세계도 다르지만 성지에서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라 보여진다.

 

 

2013-05-0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