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알리니까야 선물을! 앙굿따라니까야를 구입하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3. 6. 29. 12:27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알리니까야 선물을! 앙굿따라니까야를 구입하고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겼다. 그래보아야 몇 십만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더니 통장에 돈을 넣어준 것이다.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사례한 것이라 생각된다.

 

앙굿따라니까야를 구입하고

 

입금된 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그대로 둘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증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사기로 했다. 그 동안 망설여 왔던 앙굿따라니까야를 사기로 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가장 많이 참고하는 책이 상윳따니까야이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하나만 있어도 글을 쓰는데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참고해야 할 자료도 많아 졌다. 그래서 디가니까야, 숫따니빠따, 법구경 등을 갖추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사부 니까야중 앙굿따라니까야 하나만 빼고 모두 갖추게 되었다.

 

앙굿따라니까야 구입을 주저한 것은 비용때문이다. 전재성박사역의 경우 모두 9책 12권으로 되어 있는데 20만원대이다. 큰 마음을 먹지 않는 한 구입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돈이 입금되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책을 구입한 김에 ‘이띠붓다까(여시어경)’와 ‘법구경’도 구입하였다. 이띠붓다까를 추가로 구입한 것은 전재성박사가 번역한 책을 빠짐없이 모두 갖추기 위함이다. 그리고 법구경을 구입한 것은 사례한 이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이다. 나중에 만나서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면 되지만 나중에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비용에 해당되는 법구경을 산 것이다.

 

컬러풀한 니까야모음

 

오전 일찍 주문한 책이 당일 오후에 도착하였다. 앙굿따라니까야 9책 12권에 이띠붓따까와 법구경을 합한 커다란 박스가 도착하였다. 개봉을 하고 책을 보았다. 앙굿따라니까야의 경우 진노랑색의 하드커버로 되어 있다. 이를 책꽂이 꼽아 놓으니 니까야가 컬러풀하게 보인다.

 

 

 

 

 

 

 

 

 

 

 

 

 

 

 

 

 

 

 

 

 

 

앙굿따라니까야는 재가용일까?

  

앙굿따라니까야는 어떤 성격의 경전일까? 머리말을 읽어 보았다. 눈에 띈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심리적 측면이나 윤리적 측면을 재가신도의 일상적인 관심과 연결시키는 교육적 측면에서 고려된 짧은 경전들로 편성되었다.”라는 말이다. 재가신도에 적합한 경전이라는 것이다. 이는 철학적 이론과 수행의 주요한 구조를 명확히 표현해 주는 짦은 경들로 이루어진 상윳따니까와 비교  되는 것이라 한다.

 

두 개 다 짧은 경전군에 속하지만 앙굿따라니까야는 재가신도에게 적합한 것이고, 상윳따니까야는 출가수행자에게 적합한 것이라는 뉘앙스로 받아 들여진다. 그래서일까 어느 수행처에서는 재가자에는 앙굿따라니까야 위주로 법문한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부처님의 말씀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대승불교에 가까운 색채를 띠는

 

머리말에 따르면 사부니까야 중에 앙굿따라니까야가 가장 나중에 편집된 것이라 한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풍부해지고 대승불교에 가까운 색채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빛나는 마음이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빛나는 마음과 관련하여 1권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Pabhassaramida bhikkhave citta,

tañ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nti.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마음은 빛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다가오는 번뇌로 오염된다.(A1:49)

 

 

이 구절에 대한 각주를 보면 “대승불교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라고 하였다. 능가경에서 “여래장은 청정한 모습을 지녔지만, 객진번뇌에 의해 오염되어 부정하다”라는 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라 한다. 여기서 ‘객진번뇌’라는 말은  게송에서 ‘다가오는 번뇌’와 같은 뜻으로 이해된다고 한다.

 

게송에서 ‘마음은 빛나는 것’이라 하였다. 이 때 빛나는 마음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심본정설이나 자성청정심과 다른 것이라 한다. 빠알리 주석에 따르면 마음(citta)은 바왕가의 마음(bhavangacitta, 유분심)를 말한다. 이를 ‘잠재의식’이라고도 하는데, 한 존재에 있어서 존재를 특징지우는 마음의 흐름을 말한다.

 

누구나 바왕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 성향이 다르고 얼굴이 다른 것이다. 그런 바왕가의 마음이 ‘다가오는 번뇌로 오염된다’고 하였다. 다가오는 번뇌란 다름 아닌 순간적으로 발생되는 탐진치를 말한다. 따라서 빛나는 청정한 마음(바왕가의 마음)과 다가 오는 번뇌의 오염’은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차제에 따른 것이라 한다. 이러한 이해가 대승불교와는 이해방식이 다른 것이지만, 대승불교와 선불교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비교적 번역의 완성도가 높은 것

 

머리말에 따르면 전재성박사는 쌍윳따니까야의 개정판 출간을 위해 정밀한 교정작업을 병행하면서 탄생된 것이라 비교적 번역의 완성도가 높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번역된 것일수록 정확도가 높다는 것이다. 앙굿따라니까야가 2006년도에 번역되어 2007년도 출간 된 것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전재성박사가 번역한 사부니까야의 발행순서를 보면 상윳따니까야, 맛지마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 디가니까야순이다. 가장 고층이자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상윳따니까야를 가장 먼저 번역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번역한 것이 그다지 만족스러운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개정판을 내 놓았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처음 나온 물건은 만족스럽지 않다. 전자제품도 그렇다. 처음 개발되어 필드에 뿌려 졌을 때 생각지도 못한 에러나 실수, 그리고 현지에서 문제점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즉각적으로 보완작업에 들어 간다. 모든 문제점을 해결한 후에 다시 시장에 내 놓는다. 그러면 더 이상 하자가 없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 내 놓은 책 역시 생각지 못하던 실수나 오역, 탈역 등 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날 것이다. 그럴 경우 보완을 하고 윤문을 하여 모든 문제점을 잡아 나갈 것이다. 전자제품 출하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개정판이 나왔을 때 더 이상 클레임은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전재성박사의 상윳따니까야가 그런 케이스라 보여진다. 그래서 어떤 책이든지 개정판이 나와야 진정한 책의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앙굿따라니까야가 비록 초판이긴 하지만 상윳따니까야 개정작업을 통하여 동시에 번역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번역의 완성도가 높다’라고 편역자가 스스로 말하였다.  상당히 기대되고 안심이 되는 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두 개의 번역서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두 개의 빠알리 번역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빠알리성전협회의 전재성박사의 번역물이고, 또하나는 초기불전연구원의 대림스님과 각묵스님의 번역물이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의 경우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먼저 출간 되었다. 그것도 4개월 차이이다. 초기불전연구원의 앙굿따라니까야가 처음 출간 된 것은 2006년 8월이고, 빠알리성전협회의 앙굿따라니까야가 출간된 것은 2007년 1월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4개월 앞서 출간된 초기불전연구원의 앙굿따라니까야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라 볼 수 있다.

 

깔라마의 경(A3:65)을 비교해보니

 

초기불전연구원과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앙굿따라니까야는 어떻게 다를까? 번역비교를 해 보았다. 깔라마의 경(A3:65)에서 일부를 비교하였다.

 

 

초기불전연구원 깔라마의 경(A3:65)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당연히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러울 것이다. 미덥지 못한 곳에 의심이 일어난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깔라마경, 앙굿따라니까야 A3:65, 대림스님역)

 

 

 

한국빠알리성전협회 깔라마의 경(A3:65)

 

[세존]

“깔라마들이여, 당신들이 미심쩍어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의심스러운 것은 미심쩍은 일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 인상이나 ‘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요.

 

깔라마들이여, 이러한 것들이 악하고 건전하지 못하고, 이러한 것들이 잘못된 것이고, 이러한 것들은 식자에게 비난받을 만하고,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여 받아 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깔라마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3:65, 전재성박사역)

 

 

“유명하다고 해서 모두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깔라마경에서는 소문, 전승, 여론에 끄달려 다니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도, 그것이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라면 버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번역스타일에 차이

 

양번역을 보면 번역스타일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괄호치기이다. 초불연(초기불전연구원)의 경우 대괄호를 이용한 괄호치기가 이곳 저곳에서 보인다. 그리고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처럼 괄호치기를 이용하여 보충설명을 해 놓았다. 종종 한자어를 넣기도 한다. 이런 괄호치기 방식은 독자들에게 뜻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조치한 친절한 배려로 본다.

 

그러나 괄호치기는 독자에 따라 걸림이 될 수 있다. 마치 흐르는 냇물에 바윗돌이 있어 흐름을 방해 하는 듯한 느낌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전재성박사의 번역을 보면 괄호치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한자어를 넣는 경우는 있다. ‘불사(不死)’ 같은 것이다. 전재성박사가 괄호치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문맥으로 읽어라는 말과 같다. 실제로 전재성박사는 해제글에서 경은 문맥으로 읽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단어에 집착하기 보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문맥으로 이해해야 함을 말한다.

 

어느 번역이 좋은지는 독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다. 어떤 이는 괄호치기에 따른 주석적 번역을 선호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문맥을 통한 물흐르듯한 번역을 선호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번역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일 것이다라는 표현은

 

다음으로 경어 사용에 대한 것이다. 초불연 번역을 버리도록 하라라고 명령어로 되어 있고, 전재성박사는 버리십시오라고 경어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기조는 번역문 전체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또 초불연에서는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러울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부적절한 번역이라 보여진다. 일반적으로 글씨쓰기를 할 때  “~일 것이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빠져 나갈 구멍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일 것이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번역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무상정득각자로서의 부처님,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일체지자로서의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전재성박사는 미심쩍어하고 의심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라고 표현 하였다. 빠져 나갈 여지를 남겨 두지 않은 확신에 찬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유명하다고 하여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

 

깔라마경에서 핵심이 되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문구일 것이다.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a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o no garū'ti.

 

 

깔라마들이여,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대림스님)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 인상이나 ‘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요. (전재성박사)

 

 

문구에서 주요한 단어를 든다면, 소문(anusasava), 전승(paramparā), 여론(itikirā), 성전에 대한 권위(piakasampadā), 그럴듯한 가능성(bhabbarūpatāya)을  들 수 있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전재성박사

대림스님

 

anusasava

소문에 끄달리지 말고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소문의 권위

paramparā

전승에 끄달리지 말고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전승의 권위

itikirā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여론의 향배

piakasampadā

성전의 권위에 끄달리지 말고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경전의 권위

bhabbarūpatāya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요.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스승의 권위

 

 

 

이말은 무엇을 뜻할까? 한마디로 “유명하다고 하여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과 같다.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는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가 유명하긴 하지만 모두 다 훌륭하다고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종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유명한 스님이라 하여 다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생불로 추앙받고 있는 달라이라마틱낫한 스님이 유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불교전통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본불교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크게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명하다고 하여 다 훌륭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초등학생 같은 발상이라 볼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것과 다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승용차 한 대 보다 더 값어치 있는

 

생각지 못한 돈이 생겨 앙굿따라니까야를 모두 구입하였다. 그래서 전재성박사가 번역한 모든 책을 갖추게 되었다. 상윳따니까야 7권, 앙굿따라니까야 9권, 디가니까야1, 맛지마니까야1, 법구경1, 숫따니빠따1, 우다나1, 이띠붓다까1 하여 모두 22권이다. 주옥 같은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책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백만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승용차 한 대 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승용차는 사는 순간 중고로 바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그 가치가 낮아져 결국 폐차 되는 것으로 끝나지만, 책은 한 번 사 놓으면 다 닳아 없어지지 않는 한 끝까지 남게 된다. 그리고 책을 보면 볼수록 더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것 같다.

 

노란색 형광메모리펜으로

 

책을 볼 때 낙서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접지도 않는다. 부처님 말씀이 담겨 있는 소중한 경전을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용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노란색 형광메모리펜이다. 그래서 중요한 구절은 색칠을 한다. 그런 색칠이 많으면 많을수록 읽었다는 것을 표시한다. 또 중요한 부위는 포스트잇을 사용하여 구분하여 놓는다. 그래서 책에 절대로 글씨를 쓰지 않는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도움을 준 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법구경을 구입하였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는 초보불자나 교리에 대하여 지식이 부족한 불자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책은 결코 비싸지 않다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통장에 잔고가 있다고 하여 내것이라 볼 수 없다. 돈은 들락날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다. 그런 돈을 묶어 둘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좋은 것이 책을 사두는 것이다. 한 번 두면 절대로 도망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놀고 즐기는 것에 열중한다. 그러나 책을 사는 것에는 인색한다. 또 책값이 비싸다고 한다. 그러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서 조금만 아낀다면 책을 사 볼 수 있다. 그런 책은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니까야를

 

책을 한 번 사 두면 보기에도 좋다. 지금 당장 읽지 않더라도 거실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보기가 좋은 것이다. 벽장에 양주나 와인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 보다 보기가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또 책을 사 두면 언젠가는 읽게 된다. 한번쯤 떠 들어 보게 되는 것이다. 설령 본인이 보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포교라 볼 수 있다. 존경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니까야를 선물해 보자.

 

 

 

2013-06-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