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위밧자, 해체인가 분별인가? 십이연기와 위방가경(S12:2)

담마다사 이병욱 2013. 7. 17. 12:40

 

위밧자, 해체인가 분별인가십이연기와 위방가경(S12:2) 

 

 

법우님이 글을 주었는데

 

분별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어느 법우님이 글을 하나 올려 주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 좋은 글 감사합니다. 부처님 원음의 가르침을 전하시는 노고에 감격합니다.
<분별>을 초불에선 <해체>라고 번역을 하고있습니다.
두 번역의 차이가 아주 큽니다.
아마 대승불교 출가승이라서 분별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해체로 한 것같습니다.
영미문학계에선 해체라는 단어에 대한 별도의 학문적 입장이 있습니다. (예, 해체주의)
저는 아직 두 단어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다만, 분별이 인문학적이라면 해체는 물리적 느낌이 강합니다.
분별이 지각적이고 인식론적이라면, 해체는 반응적이고 운동역학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W법우님)

 

 

이 글을 접하고 분별이라고 번역 되는 빠알리 원어 위방가에 대하여 또 다른 번역어거 있음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해체라는 용어이다. 해체라는 말은 이미 초기불교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듣던 말이기 때문이다.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해체라는 말은 초기불교 전도사라 불리우는 각묵스님이 각종 기고문이나 강연 등에서 늘 하던 말이다. 그래서 스님은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연상된다. 법을 해체해서 보지 않으면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해체에 대한 스님의 기고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쯤에서 초기불교의 핵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초기불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이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며 시작(詩作)에 능했던 왕기사 존자는 <천 명이 넘음 경>(S8:8)에서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빠위밧자(pavibhajja)나 위밧자(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각묵스님, [초기불교산책5]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2010.02.08 )

 

 

각묵스님은 해체해서 보기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 해체라는 말은 빠알리어 빠위밧자(pavibhajja)나 위밧자(vibhajja)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근거가 되는 경으로서 천 명이 넘음 경(S8:8)’을 들고 있다.

 

근거로 든 경을 보았더니

 

각묵스님은 또 다른 기고문에서 해체라는 용어에 대한 근거 문구를 제시하였다. 그것이 bhāgaso pavibhajja 이다. 이문구를 근거로 하여 부처님에 대하여 “부분들로 해체해서(bhāgaso pavibhajja) 설하시는 분”라 하였다. 부처님은 해체를 설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근거로 드는 경이 있으면 찾아 보게 된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상윳따니까에서 ‘천명이 넘음 경(S8:8)’을 찾았다. 경에서 위밧자와 관련된 게송은 다음과 같다. 

 

 

Ummaggapatha2 mārassa abhibhuyya

carasi pabhijja khilāni,
Ta
passatha bandhapamuñcakara

asita bhāgaso pavibhajja.

 

[방기싸]

죽음의 신의 사악한 길을 극복하여

마음의 황무지를 부수고 지내네.

속박에서의 해탈을 이루고

집착없이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 그를 보라.

 

(Parosahassasutta-천명 이상의 경, 상윳따니까야 S8:8,전재성님역)

 

 

전재성박사가 번역한 것에 따르면 해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문구 ‘bhāgaso pavibhajja’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부분들로 해체해서’ 라고 번역하였으나, 전재성 박사는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이라고 번역하였다. 두 번역의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

 

 

위밧자(Vibhajja), 분별인가 해체인가?

 

위밧자는 어떤 내용일까? 빠알리 사전을 찾아 보았다. 먼저 ‘bhāgaso pavibhajja에 대하여 Bhāgaso는 ‘나누어서 ([adv.] in parts; by portions.。)’ 라는 뜻이다. Pavibhajja는 빠알리 전자사전(洲下点一, Pali Canon E-Dictionary Version 1.94 (PCED))에 따르면 ‘pa + vibhajja + a’로 분해 된다.

 

핵심어 위밧자(Vibhajja)에 대한 풀이는 다음과 같다.

 

 

vibhajja:

[abs. of vibhajati] having divided or analysed. adv.

[vibhajati の ger.] ちて, 分別して.

 

(전자빠알리 사전, 洲下点一, Pali Canon E-Dictionary Version 1.94 (PCED))

 

 

영어에서는  분리되어 가진(having divided), 분석된 (analysed)’을 가지고 있고, 일본어에서는 구분하여(ちて), 분별하여(分別して)’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하여 분리하고 나누고 분석하여 관찰함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오온을 들 수 있다.

 

오온이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크게 다섯가지 파트로 나눈 것이다. 특히 마음과 관련하여 느낌, 지각, 형성, 정신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나눈 것은  이제까지 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이 사실을 알고 보니 내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 나눔에 대한 용어가 빠알리어로 위밧자(Vibhajja)’인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데 있어서 전재성박사는 분별이라 하였고, 초불연 각묵스님은 해체라 하였다.

 

분별과 해체의 사전적 의미는?

 

위밧자(Vibhajja)에 대하여 한편에서는 분별이라 하고, 또 한편에서는 해체라 한다. 이에 대하여   W법우님은 분별이 지각적이고 인식론적이라면, 해체는 반응적이고 운동역학적인 느낌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분별과 해체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인터넷 국어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분별 [分別]

 

1) 서로 다른 사물을 종류에 따라 나누어 가름.

2) 세상의 물정이나 돌아가는 형편을 사리에 맞도록 헤아려 판단함.

3) 어떤 일에 대하여 배려하여 마련함.

4) [화학] 여러 물질로 섞여 있는 혼합물을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성질의 차이를 이용하여 차례차례 단계적으로 분리함.

 

 

해체 [解體]

 

1) 단체나 조직 등을 흩어지게 하거나 없어지게 함.

2) 여러 가지 부속으로 맞추어진 기계 따위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거나 분리함.

3) 구조물 따위를 헐어서 무너뜨림.

4) [생물] 생물체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절개하여 그 내부를 조사하는 일.

5) [철학]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Derrida, J.)의 용어의 하나. 단순한 부정이나 파괴가 아니라, 토대를 흔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숨겨져 있는 의미와 성질을 발견하는 일이다. 서양 형이상학의 종말을 지향하는 후기 구조주의의 전략으로 제창한 것이다.

 

 

서전적 정의에 따르면 분별은 대체적으로 정신적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보이고, 해체는 덩치가 큰 것, 또는 육체에 대한 현상을설명으로 보여진다.

 

사량분별이라는 말 때문

 

그렇다면 각묵스님은 왜 해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스님이 남겨 놓은 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위밧자(vibhajja)라는 술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이런 상좌부 불교를 일본학자들은 분별상좌부라 부른다. 분별이란 말이 사량분별이라는 용어에 익숙한 우리의 어감으로는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강의자는 해체나 분석이라고 옮긴다. vi-는 분리접두어고 √bhaj는 to divide의 뜻이다.

 

 (각묵스님, 초기불교의 교학과 수행 해체해서 보기, 2008)

 

 

스님의 글에 따르면, 위밧자를 해체라 번역한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분별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것은 사량분별이라는 말 때문이라 한다. 흔히 선가에서 “분별하지 마라”라고 하는데, 그 분별이 바로 머리로 헤아려 생각해서 사량분별이라 한다. 분별이라는 말이 한국불교에서 부정적으로 쓰여 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다 보니 해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용어에 대하여 서로 다른 번역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빠알리어 위밧자에 대하여 분별과 해체라고 번역되어 있다. 어느 번역이 좋은 것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분별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아비담마 칠론에서 위방가가 있는데 이를 해체론이라 하지 않고 분별론(分別論)’이라 번역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초불연의 번역서 청정도론에서도 테라와다 교단에 대하여 위밧자와딘이라 하여 분별을 설하는 교단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럼에도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라고 해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분별과 차별화 하기 위한 것이라 보여진다.

 

분별의 경분석 경

 

전재성박사의 번역을 보면 위밧자에 대하여 분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분별의 경(Vibhagasutta)’이라는 이름의 경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S45:8과 S12:2를 들 수 있다. 전자는 팔정도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십이연기에 대한 것이다.

 

분별경S45:8에서는 수행승들이여,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설하고 분별해 보이겠다. (Ariya vo bhikkhave, aṭṭhagika magga desissāmi, vibhajissāmi, S45:8)”라 하여 분명히 분별을 말씀 하였다. 또 다른 분별경 S12:2에서도 역시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에게 연기를 분별하여 설하겠다. (Paiccasamuppāda vo bhikkhave, desissāmi. Vibhajissāmi. S12:2)”라고 하여 분별을 말씀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구속의 vibhajissāmi’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어떻게 번역하였을까? “해체해서 설하겠다라고 하였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두 개의 경과 관련된 초불연 번역을 검색하였다. 위밧자에 대하여 해체라 하였으므로 당연히 경의 이름이 해체 경인줄 알고 해체를 키워드로 검색하였다. 그러나 해체 경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분석 경이 보였다. S45:8 S12:2에 대하여 해체 경이라 하지 않고 분석 경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두 종류의 번역서가 있다. 성전협회(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번역서와 초불연(초기불전연구회)의 번역서이다. 이와 같은 두 종류의 번역서를 갖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 있어서 행운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역서는 어떻게 다를까? 이에 대하여 빠알리 원문과 함께 비교해 보았다. 십이연기에 있어서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위방가경(Vibhagasutta , S12:2)’을 보면 다음과 같다.

 

 

위방가경(Vibhagasutta,  S12:2) 번역

 

 

1.

Paiccasamuppāda vo bhikkhave, desissāmi. Vibhajissāmi. Ta suātha. Sādhuka manasikarotha. Bhāsissāmī'ti. Eva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 Bhagavā etadavoca: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연기(緣起)를 분석하리라.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에게 연기를 분별하여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새기도록 해라. 내가 설하겠다.”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행승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2.

Katamo ca bhikkhave, paiccasamuppādo? Avijjāpaccayā bhikkhave, sakhārā. Sakhārapaccayā viññāa. Viññāapaccayā nāmarūpa. Nāmarūpapaccayā saāyatana. Sa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hā. Tahāpaccayā upādāna.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a,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연기인가?

    비구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연기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1

Katamañca bhikkhave, jarāmaraa? Yā tesa tesa sattāna tamhi tamhi sattanikāye jarā jīraatā khaṇḍicca pālicca valittacatā āyuno sahāni indriyāna paripāko, aya vuccati jarā

Katamañca bhikkhave, maraa? Yā tesa tesa sattāna tamhā tamhā sattanikāyā cuti cavanatā bhedo antaradhāna maccumaraa kālakiriyā khandhāna bhedo kalebarassa3 nikkhepo jīvitindriyassa upacchedo. Ida vuccati maraa. Iti ayañca jarā idañca maraa, ida vuccati bhikkhave, jarāmaraa.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늙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 가운데서 이런저런 중생들의 늙음, 노쇠함, 부서진 [치아], 희어진 [머리털], 주름진 피부, 수명의 감소, 감각기능[]의 쇠퇴 - 이를 일러 늙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죽음[]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저런 중생들의 종말, 제거됨, 부서짐, 사라짐, 사망, 죽음, 서거, 오온의 부서짐, 시체를 안치함, 생명기능[命根]의 끊어짐 -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이것이 늙음이고 이것이 죽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늙음·죽음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세존]

1) 수행승들이여, 늙음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낱낱의 뭇삶의 유형에 따라 낱낱의 뭇삶의 늙고 노쇠하고 쇠약해지고 백발이 되고 주름살이 지고 목숨이 줄어들고 감역이 노화되는데, 이것을 늙음이라고 한다. 낱낱의 뭇삶의 유형에 따라 낱낱의 뭇삶이 죽고 멸망하고 파괴되고 사멸하고 목숨을 다하고 모든 존재의 다발이 파괴되고 유해가 내던져진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늙음과 이와 같은 죽음을, 수행승들이여, 늙음과 죽음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2

Katamā ca bhikkhave, jāti? Yā tesa tesa sattāna tamhi tamhi sattanikāye jāti sañjāti okkanti nibbatti abhinibbatti, khandhāna pātubhāvo āyatanāna pailābho, aya vuccati bhikkhave, jā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태어남[]인가?

    이런저런 중생들의 무리로부터 이런저런 중생들의 태어남, 출생, 도래함, 생김, 탄생, 오온의 나타남, 감각장소[]를 획득함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태어남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2)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낱낱의 뭇삶의 유형에 따라 낱낱의 뭇삶이 출생하고 탄생하고 강생하고 전생하고 모든 존재의 다발들이 나타나고 감역을 얻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태어남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3

Katamo ca bhikkhave, bhavo? Tayome bhikkhave, bhavā: kāmabhavo, rūpabhavo, arūpabhavo. Aya vuccati bhikkhave, bhavo.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존재[]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존재가 있나니 욕계의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의 존재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존재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3)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존재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존재, 즉 감각적 욕망계의 존재, 미세한 물질계의 존재, 비물질계의 존재가 있다.  이것을 존재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4

Katamañca bhikkhave upādāna? Cattārimāni bhikkhave, upādānāni: kāmūpadāna, diṭṭhūpādāna, sīlabbatūpādāna, attavādūpādāna. Ida vuccati bhikkhave upādāna.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취착[]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취착이 있나니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취착, 자아의 교리에 대한 취착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취착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4)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집착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집착, 즉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규범과 금기에 대한 집착, 실체의 이론에 대한 집착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집착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5

Katamā ca bhikkhave tahā? Chayime bhikkhave, tahākāyā: rūpatahā saddatahā gandhatahā rasatahā phoṭṭhabbatahā dhammatahā. Aya vuccati bhikkhave tahā.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갈애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갈애의 무리[六愛身]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갈애, 소리에 대한 갈애, 냄새에 대한 갈애, 맛에 대한 갈애, 감촉에 대한 갈애, 법에 대한 갈애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갈애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5)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갈애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갈애의 무리, 즉 형상에 대한 갈애, 소리에 대한 갈애, 냄새에 대한 갈애, 맛에 대한 갈애, 감촉에 대한 갈애, 사실에 대한 갈애가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갈애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6

Katamā ca bhikkhave vedanā? Chayime bhikkhave, vedanākāyā: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Aya vuccati bhikkhave vedanā.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느낌[]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가 있나니 눈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노의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느낌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6)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느낌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 즉 시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청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후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미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촉각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 정신의 접촉에서 생기는 느낌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느낌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7

Katamo ca bhikkhave phasso? Chayime bhikkhave, phassakāyā: cakkhusamphasso, sotasamphasso, ghāasamphasso jivhāsamphasso, kāyasamphasso, manosamphasso. Aya vuccati bhikkhave, phasso.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접촉[]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무리가 있나니 형색에 대한 감각접촉, 소리에 대한 감각접촉, 냄새에 대한 감각접촉, 맛에 대한 감각접촉, 감촉에 대한 대한 감각접촉, 법에 대한 감각접촉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각접촉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7)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접촉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접촉의 무리, 즉 시각의 접촉, 청각의 접촉, 후각의 접촉, 미각의 접촉, 촉각의 접촉, 정신의 접촉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접촉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8

Katamañca bhikkhave saāyatana? Cakkhāyatana sotāyatana ghāāyatana jivhāyatana kāyāyatana manāyatana. Ida vuccati bhikkhave, saāyatana.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섯 감각장소[六入]인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노의 감각장소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여섯 감각장소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8)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여섯 감역이란 무엇인가? 그것들 가운데는 여섯 가지 감역의 무리, 즉 시각의 감역, 청각의 감역, 후각의 감역, 미각의 감역, 촉각의 감역, 정신의 감역이 있으니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여섯 감역이라고 부른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9

Katamañca bhikkhave nāmarūpa? Vedanā saññā cetanā phasso manasikāro, ida vuccati nāma. Cattāro ca mahābhūtā, catunna ca mahābhūtāna upādāyarūpa, ida vuccati rūpa. Iti idañca nāma, idañca rūpa, ida vuccati bhikkhave, nāmarūpa.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정신·물질[名色]인가?

    느낌, 인식, 의도, 감각접촉, 작의(주의) - 이를 일러 정신이라 한다. 그리고 네 가지 근본물질과 네 가지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 - 이를 일러 물질이라 한다. 이것이 정신이고 이것이 물질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정신·물질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9)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명색이란 무엇인가? 그것에는 느낌, 지각, 의도, 접촉, 정신활동이 있으니 이것을 명이라고 부르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 또는 네 가지 광대한 존재에서 파생된 물질을 색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10

Katamañca bhikkhave viññāa? Chayime bhikkhave, viññāakāyā: cakkhuviññāa sotaviññāa ghāaviññāa jivhāviññāa kāyaviññāa manoviññāa. Ida vuccati bhikkhave, viññāa.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알음알이[]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알음알이의 무리가 있나니 눈의 알음알이, 귀의 알음알이, 코의 알음알이, 혀의 알음알이, 몸의 알음알이, 마노의 알음알이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알음알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10)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의식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의식, 즉 시각의식, 청각의식, 후각의식, 미각의식, 촉각의식, 정신의식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의식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11

Katame ca bhikkhave sakhārā? Tayome bhikkhave, sakhārā: kāyasakhāro vacīsakhāro cittasakhāro. Ime vuccanti bhikkhave, sakhārā.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의도적 행위들[]인가?

    비구들이여, 세 가지 의도적 행위가 있나니 몸의 의도적 행위, 말의 의도적 행위, 마음의 의도적 행위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의도적 행위들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11)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형성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형성, 즉 신체적 형성, 언어적 형성, 정신적 형성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형성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12

Katamā ca bhikkhave avijjā? Ya kho bhikkhave dukkhe aññāa, dukkhasamudaye aññāa, dukkhanirodhe aññāa, dukkhanirodhagāminiyā paipadāya aññāa, aya vuccati bhikkhave, avijjā.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무지이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명이라 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12)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무엇을 무명이라고 하는가?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알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13

Iti kho bhikkhave avijjāpaccayā sakhārā, sakhārapaccayā viññāa. Viññāapaccayā nāmarūpa. Nāmarūpapaccayā saāyatana. Sa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hā. Tahāpaccayā upādāna.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a,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 sambhav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13)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생겨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3-14

Avijjāya tveva asesavirāganirodhā sakhāranirodho. Sakhāranirodhā viññāanirodho. Viññāanirodhā nāmarūpanirodho. Nāmarūpanirodhā saāyatananirodho. Saāyatananirodhā phassanirodho.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Vedanānirodhā tahānirodho. Tahānirodhā upādānanirodho.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Bhavanirodhā jātinirodho. Jātinirodhā jarāmaraa,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irujjh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ī'ti.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초불연 각묵스님역, 분석 경, S12:2)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고,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성전협 전재성님역, 분별의 경, S12:2)

 

분별의 경 (S12-2)-전재성님역.docx

분석 경(S12-2)-각묵스님.docx

 

 

 

 

마하시 사야도의 빠띳짜사뭅빠다(Patticcasamuppada, 緣起)

 

위방가경은 상윳따니까야 니다나상윳따(S12)에서 두 번째에 등장하는 경이다. 인연상윳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니다나상윳따에는 총 9 92, 40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경은 모두 연기법에 대한 부처님의 교설이다. 그 중에서도 십이연기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한 경이 바로 위방가경(S12:2)이라 본다. 이는 각 단계마다 정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보면 부처님은 감각적 욕망계의 존재(kāmabhavo), 미세한 물질계의 존재(rūpabhavo), 비물질계의 존재(arūpabhavo)가 있다고 하였다. 불자들이 잘 알고 있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다.

 

이처럼 각 단계마다 용어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런 용어에 대한 풀이 또는 해석에 대한 법문이 있다. 마하시 사야도의 빠띳짜사뭅빠다(Patticcasamuppada, 연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법문집은 현재 십이연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지난 2009년 당시 초기불교 수행처에서 약 50회 가량 우리나라 법사로부터 법문을 들은 바 있다. 이 교재로 인하여 초기불교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 초기불교 공부를 스스로 하는 계기가 된 법문집이다.

 

  12연기법문-마하시사야도.hwp

 

 

“니까야가 뭐꼬?”

 

이와 같은 빠알리 니까야가 번역서가 이미 유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니까야를 아는 불자들이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다. 심지어 스님들 조차 니까야를 알지 못하여 어느 노비구니스님은 “니까야가 뭐꼬?”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처럼 니까야에 대하여 무지하다 보니 대승경전에 있는 문구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인 것처럼 여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천수경이다.

 

무명(avijjā)이란?

 

천수경을 보면 참회게에 ‘치암중죄금일참회(癡暗重罪今日懺悔)’ 가 있다. 이 문구에 대한 해석을 보면 “어리석어 지은 죄업 오늘 모두 참회하옵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어리석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무엇이 어리석음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빠알리 니까야에 따르면 어리석음, 즉 무명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다. 위방가경(S12:2)에서 ‘무명(avijjā)’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경에서는 무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무엇을 무명이라고 하는가?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해 알지 못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S12:2, 전재성님역)

 

 

빠알리 니까야에 따르면, 무명은 사성제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라 하였다. 사성제를 모르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헤어 날 수 없고 세세생생 윤회하는 것이라 본다. 십악참회의 원형이라 볼 수 있는 열가지 항목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열 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인 무명에 대하여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어느 경우이든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라 하였다.

 

삼세양중인과 재생연결식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성제로 요약된다. 그런데 사성제가 좀 더 확장된 것이 십이연기이다. 이런 십이연기는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윤회의 종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십이연기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삼세양중인과’로 해석한다.

 

 

 

 

 

 

Patticcasamuppada

 

 

 

하지만 12연기라 하여 모두 삼세양중인과로 해석되는 것 같지 않다. 12연기에서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Viññāapaccayā nāmarūpa)” 라는 연결고리가 있는데, 이때 의식(Viññāa)을 재생연결식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재생연결식은 어떻게 설명될까?

 

12지 연기에서 의식을 재생연결식으로 보는 근거경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그 때 수행승들이여, 내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이 있으면 의식이 있고, 무엇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는가?’ 그 때 수행승들이여, 나는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일으켜 지혜로 꿰뚫었다. ‘명색이 있으면 의식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난다.’

 

 (나가라경-Nagarasutta-도시의 경, 상윳따니까야 S12:65,전재성님역)

 

 

나가라경에서 부처님은 보살로서의 삶을 살았을 때의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들려 주고 있다. 전생회고담이라 볼 수 있다. 

 

경에서 부처님은 “명색이 있으면 의식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난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12지 연기는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라고 순차적으로 설명되나, 나가라경에 따르면 의식과 명색의 관계는 ‘동시발생적’이다. 그래서 “명색이 있으면 의식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난다.”라고 하였다. 이를 한자용어로 말하면 ‘식연명색(識緣名色)과 명색연식(名色緣識)’이 된다.

 

어떻게 윤회하는가?

 

의식(식)식과 명색의 상호의존 관계는 갈대의 경(S12:67)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명색을 의존하여 의식이 생겨나고 명색연식(名色緣識), 의식을 의존하여 명색이 생겨나며(識緣名色)”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이때 의식(식, Viññāa)를 재생연결식으로 보는 것이다.

 

재생연결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나가라경에서 다음과 같이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으로 알 수 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

그때 수행승들이여, 내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의식은 여기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명색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와 같이 태어나서 늙어서 죽고 세상을 떠나 다시 태어나야 한다. 명색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난다.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해서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생겨난다.’

 

(나가라경-Nagarasutta-도시의 경, 상윳따니까야 S12:65,전재성님역)

 

 

경에서 “이 의식은 여기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명색을 넘어서지 못한다 (paccudāvattati kho ida viññāa, nāmaråpamhā na para gacchati).”라는 문구가 있다. 이것이 의식과 명색과의 관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때 식은 재생연결식으로서의 식(의식)을 말한다.  이 문구에 대한 각주를 보면 여기서 되돌아 오는 의식이란 재생의식(patisandhivinnana)과 통찰지(vipassananana)를 말한다. 재생의식은 조건으로부터 되돌아오고 통찰지는 대상으로부터 되돌아온다. 그것은 명색을 넘어서지 못하고 더 나아가지 못한다.(전재성박사)”라고 설명되어 있다.

 

경에서 “의식은 여기서 되돌아오고”라고 하였는데, 이는 조건이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조건이 남아 있는 한 그 조건을 대상으로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윤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돌아 오는 의식은 명색을 넘지 못하므로 윤회하는 것이라 본다.

 

이처럼 경에서는 십이지 연기에서  의식과 명색의 관계가 ‘식연명색(識緣名色)과 명색연식(名色緣識)’로 설명되어 있는데, 이 때 식은 명색과 상호의존적 관계로서 명백히 ‘재생연결식’을 의미한다고 주석가들은 말한다.

 

알기 어려운 심오한 법 네 가지

 

불교에 알기 어려운 심오한 법 네 가지가 있다. 5세기 청정도론의 저자 붓다고사에 따르면 그 네 가지 심오한 법은 ‘1)사성제, 2)업의 법칙, 3)재생, 4)연기라 하였다. 그래서 진리의 눈을 가진 자만이 알 수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의 눈이라 법안(法眼)’을 말한다. 이 법안을 잘 설명한 문구가 초전법륜경의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 ya kiñci samudayadhamma sabbanta nirodhadhammanti, S56:11)”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꼰단냐 존자에게서 진리의 눈, 법안(dhammacakkhu)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담마짝꾸를 법안 또는 진리의 눈이라 한다. 이 진리의 눈이 생긴 자가 알기 어려운 심오한 법 네 가지를 이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연기의 법칙은 깊고도 심원하다

 

연기법은 알기 어려운 심오한 법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에게 “이 연기의 법칙이 얼마나 깊고도 심원한 것인지. 그렇지만 저에게는 완전히 명백한 것으로 드러납니다.(S12:60)”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아난다의 경솔함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이 연기의 법칙은 깊고도 심원하다. 아난다여, 이 법칙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뭇삶들은 방치된 편물처럼 뒤죽박죽이 되고 실타래처럼 엉키고 잘못 배열된 갈대나 골풀같아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으로 태어나는 윤회를 벗어나기 어렵다.

 

(니다나경-Nidanasutta-인연의 경, 상윳따니까야 S12:60,전재성님역)

 

 

 

 

2013-07-17

진흙속의연꽃

 

분별의 경 (S12-2)-전재성님역.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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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경(S12-2)-각묵스님.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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