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왜 어려운가, 정법(正法)만나기가 왜 어려운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3. 9. 12. 17:48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왜 어려운가, 정법(正法)만나기가 왜 어려운가

 

 

 

개경게(開經偈)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라는 게송이 있다. ‘위없이 깊고깊어 미묘한 불법,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워라.’라는 뜻이다.  대승불교 경전을 독송할 때 개경게(開經偈)이라 하여 독송하기 전에 부처님 법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게송이다. 이어서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義)’라는 게송이 따라 붙는다. 내가 지금 보고듣고 받아지니오니, 여래의 진실한 뜻 알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개경게 를 설명할 때 흔히 맹구우목의 비유를 든다. 눈먼거북이 이야기이다. 눈먼 거북이가 넓고 넓은 바다에서 널판지 구멍에 목을 들이내밀 확률을 이야기하면서 부처님 법 만나기가 어려움을 설명한다. 그래서 백천만겁이라 하였다. 일겁도 많은데 백천만겁이라니! 도대체 백천만겁은 얼마나 되는 긴 시간일까?

 

백천만겁이란?

 

일 겁에 대한 설명은 상윳따니까야에 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모음(S15)’에서 산의 비유겨자씨의 비유로 설명된다. ‘산의 비유를 보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큰 바위산이 하나 있는데 길이가 일 요자나이고 넓이가 일 요자나이고 높이가 일 요자나이며 간격이 없고 균열이 없고 견고한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백년에 한번씩 까씨국의 옷으로 스치고 지나간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큰 바위산이 그러한 방법으로 소모 되어 없어져 버리는 시간이 있다. 한 겁은 그것보다 더욱 긴 시간이다.(S15;5)”라고 부처님이 말씀 하였다. 이것이 한 겁의 개념이다.

 

그런데 백천만겁의 시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오랜시간을 말한다. 백에다 곱하기 천을 하고 또 거기에다 곱하기 만을 하기 때문이다. 100 x 1000 x 10000 이 되어 10 9승 겁이 되는 것이다.

 

 

 

 

Galaxy Cosmos

 

 

여덟 가지 좋지 않은 시간과 좋지 않은 시기

 

부처님 법 만나기가 백천만겁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 한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치불난(値佛難) 설법난(說法難), 문법난(聞法難), 신수난(信受難) 등으로 설명한다. 부처님법을 만나기가 어렵고, 알아듣기 어렵고, 얻어 듣기 어렵고, 믿고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앙굿따라니까야에 따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에 대하여 여덟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대승에서 설명하는 것 보다 매우 구체적이다. 청정한 삶을 사는데 여덟 가지 좋지 않은 시간과 좋지 않은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여덟 가지는 무엇일까?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만 있기 때문에

 

첫번째 좋지 않은 시간이 있다. 다음과 같은 시기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러나 사람은 지옥에 태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이 세상에 수 많은 부처님이 출현 하였다. 전승기록에 따르면 25불이라 한다. 그러나 경전상에는 과거 7불이 설명되어 있다. 위빠시(Vipassī, 91겁전) 붓다, 시키(Sikhī, 31겁전)붓다, 웻사부(Vessabhū, 31겁전) 붓다, 까꾸산다(Kakusandha, 현겁) 붓다, 꼬나가마나(Koāgamana, 현겁) 붓다, 깟사빠(Kassapa, 현겁) 붓다, 고따마(Gautama, 현겁) 붓다 이렇게 일곱분의 과거 부처님을 말한다.

 

이와 같은 부처님이 출현 하였을 때 깨달은 내용은 한결 같이 똑 같다. 어느 부처님이 연기법을 깨달아 윤회하는 삶을 멈추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부처님이 출현하였을 때 만약 지옥에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경에서는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라고 설명 되어 있다.

 

지옥에서는 부처님이 출현하여도 가르침을 받아 들일 여건이 좋지 않음을 말한다.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만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접할 엄두가 나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지옥중생은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에 있기 때문에 가르침을 접할 수 없음을 말한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두 번째 좋지 않은 시간이 있다.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러나 사람은 축생으로 태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축생으로 태어났을 때 가르침을 만나기가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 어려운 것일까? 흔히 맹구우목의 비유를 드는데, 맹구우목 비유의 원본이 빠알리니까야에 있다. 다음과 같은 내영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 눈먼 거북이가 백년 마다 한 번씩 떠올라서 그 하나의 구멍이 뚫린 멍에에 목을 끼워 넣는 것이 수행승들이여, 한 번 타락한 어리석은 자가 사람의 지위를 획득 하는 것 보다 빠르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곳에는 여법한 삶, 평등한 삶, 선한 삶, 공덕을 짓는 삶이 없다. 수행승들이여, 그곳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삼키는데 강자가 약자를 먹어치운다.

 

(구멍의 경1, 상윳따니까야 S56:47, 전재성님역)

 

 

축생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약한자는 강한자의 먹이가 되어 먹이 사슬에 따라 생존하는 세계를 말한다. 그런 축생의 세계는 뭍에서 사는 것들 뿐만 아니라 물에서 사는 것들도 포함된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육지에 생겨나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물에서 생겨나는 뭇삶들은 매우 많다.(S56:65)”라고 하였다. 이는 TV의 다큐 프로에서도 알 수 있다. 물에서 태어나는 것들은 한꺼번에 수백 수천마리씩 태어난다. 암컷이 수백 수천개의 알을 낳으면 그위에 숫컷 물고기는 정액을 뿌려 수정이 된다. 그렇게 한 꺼번에 수천 수만마리가 태어난다. 그러나 태어나자 마자 먹이가 된다.

 

이렇게 한꺼번에 수 만마리씩 태어나고 동시에 수만마리씩 먹이가 되는 것이 축생의 세계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태어남이라 말하면 인간 이하 축생의 세계를 말한다. 태어남이란 사실상 축생세계에서나 적용 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축생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축생에서 태어난 뭇삶들이 인간이 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에 대하여 부처님은 눈먼 거북이 비유를 들었다. 이는 타락한 자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이다. 오계 등을 지키지 않고 신구의 삼업을 밥먹듯이 저지른 자는 타락하여 지옥이나 축생 등으로 떨어지는데, 타락한 자들 보다 비록 맹구우목의 비유를 들었지만 축생들이 차라리 인간의 몸을 획득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타락하여 축생등 인간 이하로 떨어지면 다시는 인간 되기가 어려움을 말한다. 인간이 되어야만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데 인간이 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부처님이 여러 명 출현해도 가르침과 인연이 없음을 말한다. 세세생생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먹고 먹히는 생을 반복할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세 번째 좋지 않은 시간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러나 이 사람이 아귀의 영역에 태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아귀가 되었을 때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 만나기가 힘든 것임을 말한다. 배는 남산만큼 크지만 입은 매우 작기 때문에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것이 아귀이다. 그런 상태에서 여러 명의 부처님이 출현하여 가르침을 펼쳐도 받아 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귀로 태어나도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라 하였다.

 

왜 천상에서 정법만나는 것이 어려울까?

 

네 번째 좋지 않은 시간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러나 이 사람이 어떤 수명이 긴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이번에는 신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들로 태어나는 것도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는데 있어서 좋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들은 오래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상에 사는 신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인간 바로 위에 있는 천상이 있다. 사대왕천이다. 사대왕천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인간의 오십 년이 네 위대한 왕의 하늘나라 신들의 하루 밤낮이고, 그러한 서른 밤이 한 달이고, 그러한 열 두 달이 일 년이고, 그러한 일년의 오백 년이 네 위대한 왕의 하늘나라 신들의 수명이다.

 

(여덟 고리의 포살에 대한 상세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42, 전재성님역)

 

 

인간과 달리 천상의 신들의 수명은 보장 되어 있다. 인간은 지은 업으로 인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수명이 따로 보장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믿음과 지계와 공덕을 쌓은 자들이 가는 천상에서는 수명과 복이 보장 되어 있다.

 

그런 수명도 천상마다 모두 다르다. 천상중에서도 가장 아래 천상으로서 인간 바로 위에 있는 사천왕천(네 위대한 왕의 하늘나라)의 경우 수명이 5백천상년이다. 이를 인간년으로 환산하면 9백만년이다. 아무리 낮은 천상이라고 하더라도 9백만년 사는 것이 보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천상은 어떠할까?

 

천상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천신들은 비상비비상처천이다. 수명은 84000겁이다. 1겁이면 우주가 성주괴공한다는데 우주가 8 4천번이나 생겨났다고 깨지곤 하는 한량없는 세월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상에서 사는 신들이 정법만나는 것이 왜 어려울까?

 

두가지로 들 수 있다. 하나는 너무 편해서 공부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자들이 너무 즐기는 삶만 살다 보면 즐거움에 빠져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오로지 행복만 있는 천상세계에서 현상을 무상, , 무아로 보아 존재에 대하여 염리하고 이욕하여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어도 받아 들이기 힘든 것을 말한다. 인간처럼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고 희로애락의 삶이 있어야 자극 받는데, 천상에는 그런 자극이 없으니 부처님이 여럿 출현해도 인연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하나는 정법이 머무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출현하여 가르침이 머무는 기간은 매우 짧다고 한다. 막막하고 컴컴한 공간에서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이 정법이라 한다. 그래서 과거에 부처님이 출현 하곤 했다.

 

과거불이 출현한 인터벌은 길다. 과거 7불중에 위빠시(Vipassī, 91겁전) 붓다와 시키(Sikhī, 31겁전)붓다는 무려 60겁의 차이가 있다. 위빠시붓다 출현이래  60겁 동안 정법이 존재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위빠시붓다가 출현하였지만 정법이 오래 머물지 않았음을 말한다. 다시 위빠시 붓다 이전의 정법이 없는 암흑시대로 되돌아 간 것이다. 그런데 우주가 60번 생겨나고 60번 깨진 후에 시키붓다가 출현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정법이 펼쳐졌다. 그런 정법도 오래 가지 못하였기 떄문에 이후 웻사부(Vessabhū, 31겁전)붓다, 까꾸산다(Kakusandha, 현겁)붓다, 꼬나가마나(Koāgamana, 현겁)붓다, 깟사빠(Kassapa, 현겁)붓다, 고따마(Gautama, 현겁)붓다에 이르기 까지 과거불이 출현 한 것이다.

 

정법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과거불이 출현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정법이 유지 되지 않고 소멸 되었기 때문에 긴 공백기간을 거쳐 드믄드문 부처가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현겁에만 까꾸산다붓다, 꼬나가마나붓다, 깟사빠붓다, 고따마붓다 이렇게 네 분의 붓다가 출현하였다. 그래서 현겁을 행운의 겁이라 한다. 하지만 고따마붓다가 출현하여 정법이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 소멸될지 모른다. 다시 예전처럼 정법이 없는 한량없는 암흑시대로 되돌아 갈 것이라 한다.

 

천상에서는 청정범행을 닦아 공부하기 위한 여건이 좋지 않다고 한다. 너무 고통스러워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 지옥과는 반대로 천상의 삶은 너무 행복해서 역시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명이 긴 신들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에 대하여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라 하였다.

 

변방의 오랑캐로 태어나면

 

다섯 번째 좋지 않은 시간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러나 이 사람이 그 곳에서는 수행승, 수행녀, 재가의 남자신도, 재가의 여자신도도 없는 변경지역의 무지한 야만인들 사이에 태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현재 정법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승되어 있고 팔정도를 실천하여 성자가 출현하면 정법의 시대로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도 정법을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나라의 중심지에 다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변방의 오랑캐 국가에 다시 태어나는 뭇삶은 매우 많다.(S56:62)”라 하였다. 여기서 중심지라 함은 고대인도에서 마가다를 중심으로 중부인도를 말한다. 변방이라 함은 남인도의 타밀이나 정글에 사는 종족, 서북 지방의 희랍인 등을 말한다. 정법이 전파 되지 않은 지역은 모두 변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변방에서 태어나면 정법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채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같은 불교라는 이름을 갖는 지역에서 조차 정법이 무엇인지 모른 채 생을 마감할 수 있다. 어떤 비구니 스님이 니까야가 뭐꼬?”라고 말하였다고 하듯이 부처님이 설한 원음을 접해 보지도 못하고 승려 생활을 하였다면 변방에서 정법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은 변경지역의 무지한 야만인들 사이에 태어난 자들에 대하여 좋지 않은 시간을 가졌다고 하였다.

 

인터넷시대 단멸론자들은

 

여섯 번째 좋지 않은 시간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러나 이 사람이 중앙에 태어나더라도 이와 같이 보시도 없고, 제사도 없고, 헌공도 없고,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화생하는 뭇삶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세상에서 올바로 살고 올바로 실천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없다.’라는 잘못된 견해와 관점을 갖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여섯 번째 이야기는 부처님 당시 육사외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아지따 께사깜발린유물론에 대한 것이다. 단멸론적 허무주의 견해를 말한다. 비록 정법시대에 중앙에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육체의 죽음과 함께 정신도 소멸되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단멸론적 견해를 가지면 정법과 인연이 없음을 말한다.

 

단멸론적 견해를 갖는 자들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을 무대로 활동하는 단멸론자들을 말한다. 단멸론을 전파하는 카페나 블로그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정법을 왜곡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단멸론자들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 윤회는 없다라는 슬로건이다. 윤회가 없어야 단멸론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세양중인과, 재생연결식, 업보 등을 내세와 윤회와 관련된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초기경전에 힌두교 사상이 유입되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후대에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멋대로 해석하여 넷상에 유포하고 다닌다. 바로 이런 자들이 부처님 당시 아지따 께사깜발린의 유물론자들과 하등의 다를 바 없다.

 

단멸론자들은 업과 과보를 부정한다. 그런데 인과를 부정하면 연기법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 삿된 견해를 가진 자들은 설령 정법이 살아 있더라도 정법과 인연이 없기 때문에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도된 인식을 가진 어리석은 자들

 

일곱 번째 좋지 않은 시간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러나 이 사람이 중앙에 태어나더라도 지혜가 없어 둔하고 어리석어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모른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정법이 살아 있는 중앙에 태어난 자라도 아둔하면 정법과 인연이 없음을 말한다. 어리석은 자들을 말한다. 어떤 자가 어리석은 자들인가?

 

맛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이 장자여, 그것은 이와 같다.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어나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M87)”라고 하였다.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외아들이 죽자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도박꾼들은 장자여, 그것은 그렇습니다. 장자여, 그것은 그렇습니다. 환희와 쾌락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어나고, 환희와 쾌락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납니다. (M87)”라고 부처님과 정반대로 말하였다. 이는 무상, , 무아를 상, , 아로 보는 것처럼 전도된 인식을 말한다. 이와 같은 전도된 인식은 어리석은 자들의 특징이다. 그래서 정법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정법시대에 살면서 정법을 가르쳐 주어도 이해를 못하는 자들이 있다. 맛지마니까야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악기베싸나여, 왕자 자야쎄나는 감각적 쾌락 속에서 살면서,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감각적 쾌락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감각적 쾌락의 열기에 불타면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러한 자가 욕망을 떠나야 알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볼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도달할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실현할 수 있는 그것을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Dantabhūmi sutta-길들임의 단계에 대한 경, 맛지마니까야 M125, 전재성님역)

 

 

새내기 수행승 아찌라바따가 숲속에서 마가다 빔비사라왕의 아들인 자야쎄나 왕자를 만났다. 왕자가 수행승에게 들은대로 터득한 대로 알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수행승은 나를 피곤하게할 뿐이라며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계속 요청하자 들은대로 터득한대로  알려 주었다. 그러나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젖어 사는 왕자에게 법문이 이해 될리가 없었다. 그래서 왕자는 존자 악기베싸나여, ‘이 세상에서 수행승들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면, 마음의 통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런 사실을 부처님에게 말씀 하자 부처님이 욕망을 떠나야 알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볼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도달할 수 있고, 욕망을 떠나야 실현할 수 있는 그것을 알고 또한 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탐진치에 절어 사는 자나 야생마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자는 정법을 알려 주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모르는 자는 정법과 인연이 없으므로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정법을 만나는 경우

 

마지막으로 단 하나 올바른 시간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리고 이 사람이 중앙지역에 태어나 지혜를 갖추어 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단 하나 올바른 시간, 올바른 시기이다.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앞서 일곱가지 예를 든 것은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말씀 하신 내용은 올바른 시간, 올바른 시기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중앙에 태어나고, 지혜를 갖추고, 구분할 줄 하는 자를 말한다. 이런 자가 정법을 만날 가능성이 많으므로 시기를 잘 타고 났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만이

 

정법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맹구우목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지만 초기경에 따르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지옥 중생부터 시작하여 축생, 아귀, 천신, 변방, 사견론자, 아둔한 자들은 정법을 만나기 힘들지만 정법이 있는 시대에 태어나 지혜를 갖춘자는 정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런 과정에 대하여 부처님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인간과는 다르게 다시 태어난 뭇삶들은 매우 많다.(S56:61)”라 하였다. 나라의 중심지에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변방의 무지한 오랑캐 국가에 태어난 뭇삶들은 매우 많다.(S56:62)”라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큰 대지와 내가 손톱 끝에 집어든 이 흙먼지와 어느 쪽이 더 큰가?

 

[수행승]

“세존이시여, 이 큰 대지가 훨씬 크고 세존께서 손톱 끝에 집어든 이 흙먼지는  아주 작습니다. 세존께서 손톱 끝에 집어든 흙먼지를 큰 대지와 비교한다면 수량에더 미치지 못하고 비교에도 미치지 못하고 부분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고귀하고 지혜로운 눈을 갖춘 뭇삶들은 매우 적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뭇삶들은 매우 많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1)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2)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

3)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4)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거룩한 진리이다.

 

(지혜의 경, 상윳따니까야 S56:63,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손톱끝에 있는 흙과 대지의 흙으로 비교하였다. 어리석은 자는 대지의 흙처럼 많지만 지혜로운 자는 손톱끝에 있는 먼지처럼 적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지혜로운 자가 정법을 접할 수 있는데 그 정법이 바로 사성제임을 말한다.  

 

지금은 정법시대

 

지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있지만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은 행위 때문이다. 그런데 한번 사람의 지위를 잃어 버려 축생으로 떨어지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기약이 없다고 한다. 경에서는 이를 눈먼 거북이 비유를 들고 있다. 이렇게 사람 몸 받기 어려워도 정법 만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 정법은 다름 아닌 부처님 가르침으로서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같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다. 설령 불교비슷한 것일지라도 사성제 등과 같은 근본 가르침을 접하지 않았다면 정법을 접하지 않은 것과 같다. 정법시대는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이 정의 되기 때문이다.

 

 

첫째,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이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수행을 할 수 있는 팔정도가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셋째, 깨달음을 통하여 열반을 성취한 성자가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지금은 정법시대이다. 부처님의 원음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법시대에서는 괴로움의 소멸과 윤회의 종식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정법시대는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정법이 오염되어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한량 없는 암흑기를 거쳐 마침내 부처가 또 출현 하게 되는데 경전에 따르면 마이뜨레야(미륵불)붓다라 한다. 그 때 당시 정법시대가 열릴 것이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이렇게 사람몸 받기도 힘들도 설령 사람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정법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세존]

 

인간으로 태어나

바른 가르침이 설해질 때에

올바른 시기를 얻지 못하면

그 시기를 지나치네.

 

길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시기들은 많다.

세상에 여래는

언젠가 어디선가 출현하는가?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을

눈앞에 보는 자

인간으로 태어남과

올바른 가르침의 교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자라면

마땅히 그것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리.

 

어떻게 올바른 가르침을 이해하고

올바른 시기를 놓치지 않을까

올바른 시기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네.

 

이 세상에서 올바른 법이 주는

해탈의 길을 잃은 자는

이익을 실현하지 못해

오랜 세월 후회하는 상인과 같네.

 

무명에 덮인 사람은

올바른 가르침을 어기고

생사의 윤회를

오랜 세월 겪어야 하리.

 

인간으로 태어나

올바른 가르침의 교시를 만나

스승의 말씀을 행했으니

미래에 행할 것이고 현재에 행하네.

 

여래가 선포한 길을

걷는 자는

올바른 시기를 알고

위없는 청정한 삶을 꿰뚫었네.

 

빛에서 생겨난

눈 있는 자가 가르쳐 준

수호 속에서 제어하여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번뇌 없이 지내네.

 

악마의 세계로 이끄는

모든 경향을 자르고

번뇌를 여윈 님들은

세상에서 피안에 도달하리.”

 

(Akkhaa sutta-좋지 않은 시간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29, 전재성님역)

 

 

 

 

2013-09-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