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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지한 듯 자연과 합일을 이룬 수행자, 선시(禪詩)같은 숲 소리의 경(S1.15)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0. 24. 11:39

 

시간이 정지한 듯 자연과 합일을 이룬 수행자, 선시(禪詩)같은 숲 소리의 경(S1.15)

 

 

 

하얀 여백을 대하면

 

매일 하얀여백을 대한다. 엠에스워드(MS Word)를 띄어 놓고 하얀 여백을 대하면 순간적으로 막연해진다. 어떻게 써 내려 갈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시나리오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것이지만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수 년간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 힘이 붙은 것 같다. 마치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근육이 생기듯이 글도 매일 쓰다 보니 글쓰는 근육이 붙은 것 같다.

 

보통불자의 일상은 단순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리나케 일터로 달려가는 삶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산뜻한 마음과 함께 하얀 여백을 대한다. 그래서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려 가듯이 여백을 매꾸어 나간다. 그리고 글쓰기가 끝나자 마자 그때 서야 이메일을 열어 보고 못다한 일을 처리한다. 이런 일상이 거의 매일 똑 같은 패턴으로 반복 되고 있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의 일상도 똑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선시(禪詩)를 보는 듯한 게송

 

숲속에 머물면서 탁발을 하고, 탁발이 끝나면 명상을 하는 등 매일 같은 일의 연속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수행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게송이 있다.

 

 

Sanamāna1 sutta

 

Sāvatthiya -

(Devatā:)

hite majjhantike kāle sannisīvesu pakkhisu,
Sanateva brahārañña
4 ta bhaya paihāti manti.

(Bhagavā:)

hite majjhantike kāle sannisīvesu pakkhisu,
Sanateva brahārañña
sā ratī paibhāti manti.

 

 

스치는 소리 경

 

2.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정오에 이르자,

새들마저 조용히 쉬고 있는데

광활한 숲 스치는 소리가 있어

저에게는 두려움이 생겨납니다.”

 

3. [세존]

정오에 이르자,

새들마저 조용히 쉬고 있는데

광활한 숲 스치는 소리가 있어

나에게는 즐거움이 생겨나도다.”

 

(스치는 소리 경, S1.15, 초불연 각묵스님역)

 

 

숲 소리의 경

 

1. [하늘사람] “한낮 정오의 시간에

새는 조용히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불어 큰 숲이 울리니

나에게 두려움이 생겨나네.”

 

2. [세존] “한낮 정오의 시간에

새는 조용히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불어 큰 숲이 울리니

나에게 즐거움이 생겨나네.”

 

(숲 소리의 경, S1.15, 성전협 전재성님역)

 

 

 

 Murmuring

 

When the noon hour sets in

And the birds have settled down,

The mighty forest itself murmurs:

How fearful that appears to me!

 

When the noon hour sets in

And the birds have settled down,

The mighty forest itself murmurs:

How delightful that appears to me!

 

(CDB, Bhikkhu Bodhi)

 

 

 

Bamboo

 

 

이 게송을 보면 마치 선시를 보는 듯 하다. 선가에서 선승이 지어낸 게송처럼 보인다. 바쁠 것 없이 한가한 선승들의 일상을 보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동양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시간이 정지된 듯, 자연과 합일을 이룬 수행자

 

언젠가 법보신문에서 어느 선승의 참선하는 사진을 보았다. 사진이 인상적이어서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찾아 보니 거장들이 렌즈에 담은 ‘한국 불교 매그넘’이라는 기사이다.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들이 한국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거장들이 본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기사에서는 한 장의 사진을 소개 하고 있다. 어느 선승이 자연속에서 죄선하고 있는 모습니다.

 

 

 

 

스티브 매커리 ‘장성’. Magnum Photos.

 

 

 

사진을 보면 수행자가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 자연의 일부가 된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달았다.

 

 

한 스님이 깊은 산 속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의 이 작품 앞에 서면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과 함께 고요한 수행의 깊이까지 느껴지는 듯 하다. 좌선을 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은 이미 세속을 떠나 자연과 합일을 이루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려는 수행자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또한 절제된 구도와 조화를 이루는 색감은 수행자의 내면과 일치하는 듯 해 편안함과 차분함을 동시에 선사한다는 호평을 얻고 있다.

 

(거장들이 렌즈에 담은 ‘한국 불교 매그넘’, 법보신문 2008-07-05)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가 찍은 장성이라는 사진작품에 대한 평가이다. 자연속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아 보이고, 그럼에 따라 자연과 명상수행자가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 하고 있다.

 

()의 일곱가지 정신

 

무비스님의 강의에 따르면 선의 정신이 있다. 무비스님은 서장강의에서 선에는 일곱가지 정신이 있다고 하였다. 그 일곱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간소(簡素)

2) 탈속(脫俗)

3) 자연(自然)

4) 유현(幽玄)

5)고고(枯高)

6) 정적(靜寂)

7) 변화(變化)

 

 

선은 소박하고 간단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세속적인 것에서 멀리 떠나 고요한 분위기에서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런 것이며, 동시에 변화무쌍한 것이라 한다. 이것이 선의 특징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매그넘 포토에 실린 참선하는 수행자의 모습이 선의 일곱가지 특징을 모두 표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빅쿠보디의 각주를 보면

 

숲 소리의 경(S1.15)’에서 각주를 보면 자세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초불연의 경우 단지 경의 제목을 어떻게 정했는지에 대한 내용만 짤막하게 보일 뿐 게송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성전협의 각주에서도 큰소리가 바람소리를 의미한다고 역시 짤막하게 설명 되어 있다. 그래서 위 게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빅쿠 보디의 영역 CDB를 찾아 보았다. 각주에 게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보인다. 초불연과 성전협에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만 것과 대조적이다. 빅쿠 보디의 각주중에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Spk: In the dry season, at high noon, when the animals and birds are all sitting quietly, a great sound arises from the depths of the forest as the wind blows through the trees, bamboo clusters, and hollows. At that moment an obtuse deva, unable to find a companion with whom to sit and converse amiably, uttered the first stanza. But when a bhikkhu has returned from his alms round and is sitting alone in a secluded forest abode attending to his meditation subject, abundant happiness arises (as is expressed in the rejoinder).

 

(각주, 빅쿠 보디, CDB 350 page)

 

 

이 각주는 빅쿠 보디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 것이다. 그래서 Spk라고 되어 있다. 빅쿠 보디의 영역 각주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동물들과 새들이 모두 조용히 앉아 있는 건조한 계절의 정오이다. 그 때 저 깊은 숲속 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그 큰 소리는 바람에 대나무숲이 출렁임에 따라 일어난 것이다. 그 때 아둔한 하늘사람은 누군가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없음을 알고 중얼 거린 것이 첫 번째 게송이다. 그러나 어느 빅쿠는 탁발을 하고 난후 외딴 숲에 홀로 머물며 자신의 명상주제를 챙기고 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 일어났다.

(진흙속의연꽃 역)

 

 

 

 

bamboo sound

 

 

 

빅쿠 보디의 설명을 보면 게송은 빅쿠의 깨달음의 순간을 설명한 것이라 보여 진다. 마치 선승들이 화두를 들고 있다가 어떤 소리에 화두가 타파 되는 듯한 장면을 설명한 것 처럼 보인다.

 

빅쿠 보디 설명에 따르면 명상주제(meditation subject)’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따스하고 한가한 정오의 시간에 숲속에서 갑자기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일어 났을 때 범부들은 공포를 느끼지만, 명상주제를 받아 한 대상에 집중하고 있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대나무 스치는 커다란 소리는 명상주제와 하나가 되었음을 말한다

 

사마타 명상주제 40가지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에 대하여 무상, , 무아를 통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타 수행은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대상과 하나가 되는 사마타 수행에서는 명상주제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런 명상주제는 어떤 것이 이 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40가지 명상주제가 소개 되어 있다.

 

 

사마타 명상주제 40가지

No

사마타 명상주제

선의 경지

 

1

지변

(地遍흙 수행대상, Pahavī kasia)

초선-5

십변

(十遍,

10가지 수행대상

2

수변

(水遍물 수행대상 , Āpo kasia)

초선-5

3

화변

(火遍불 수행대상, Tejo kasia)

초선-5

4

풍변

(風遍바람 수행대상, Vāyo kasia)

초선-5

5

청변

(靑遍청빛 수행대상, Nīla kasia)

초선-5

6

황변

(黃遍황빛 수행대상, Pīta kasia)

초선-5

7

적변

(赤遍적빛 수행대상, Lohita kasia)

초선-5

8

백변

(白遍백빛 수행대상, Odāt kasia)

초선-5

9

광명변

(光明遍밝은 빛 수행대상, Āloka kasia)

초선-5

10

한정허공변

(限定虛空遍제한된 허공, 공간 수행대상, Paricchinnâkāsa kasia)

초선-5

11

시체의 부품

(Uddhumātaka asubha, The bloated)

초선

부정상

(十不淨, 10가지 부정관

12

시체의 색깔이 검푸르게 변함

(Vinilaka  asubha, The livid)

초선

13

시체가 곪아터짐

(Vipubbaka asubha, The fastering)

초선

14

시체가 분열됨

(Vicchiddaka  asubha, The cup up)

초선

15

시체가 동물들에게 갉아 먹힘

(Vikkhayitaka  asubha, The gnawed)

초선

16

시체가 여기저기로 흩어짐

(Vikkhittaka asubha, The scattered)

초선

17

시체가 잘게 잘라져서 흩어짐

(Hatavikkhittaka asubha,The hacked and scattered)

초선

18

시체에 피가 여기저기 덮여 엉망이 됨

(Lohutaka  asubha,  The bleeding)

초선

19

시체에 온통 벌레가 가득함

(Puluvaka asubha, The worm-infested)

초선

20

마지막에 남은 해골과 뼈들

(Atthika  asubha, The Skeleton)

초선

21

()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佛隨念, Buddhanussati)

없음

십수념

(十隨念,十念)

22

()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法隨念, Dhammanussati)

없음

23

()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僧隨念, anghanussati)

없음

24

()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戒隨念 Sīlaussati)

없음

25

관용보시()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捨 隨念, Cāgânussati)

없음

26

신성(神性)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天隨念, Devatassati)

없음

27

죽음()에 관한 지속적인 생각

(死隨念,  Maraânussati)

없음

28

()에 관한 지속적인 생각

(身至念,Kāyagatāsatī)

초선

29

호흡에 관한 지속적인 생각

(出入息念,  Ānāpānasati)

초선-5

30

평화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寂止隨念. Upasamânussati)

없음

31

자애계발

(, Mettā  : Mettābhāvanāvaṇṇanā)

초선-4

사범주

(四梵住, 四無量心)

32

연민계발

, Karuā : Karuābhāvanāvaṇṇanā)

초선-4

33

기뻐함계발

(, Muditā) : Muditābhāvanāvaṇṇanā)

초선-4

34

평정계발

(, Upekkhā : Upekkhābhāvanāvaṇṇanā)

5선만 가능

35

공무변처

(Akasananca yatana)

초선-5

사무색

(四無色)

36

식무변처

(Vinnanana yatana)

초선-5

37

무소유처

(Akincanna yatana)

초선-5

38

비상비비상처
(Nevasanna nasanna yatana)

초선-5

39

음식의 혐오스러움을 관하는 수행

(Aāhrepaikkūlabhāvanā)

없음

식염상

(食厭想)

40

사대를 구분하는 수행

(몸을 地 4가지로

구분하여 각각을 관하는 수행

(Catudhātuvavatthānabhāvanā)

없음

사계차별

(四界差別)

 

 

표에서 5선이라고 표기한 것은 아비담마 분류에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은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 중의 기질에 따라 또는 자신의 근기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수행한다.

 

성내는 기질이 있는 자는 사무량심을 주제로 하는 것이 좋고, 탐하는 기질이 있는 자는 열 가지 부정상 수행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 신심을  내기 위해서는 불수념이나 법수념, 승수념등이 좋고, 지적인 기질이라면 죽음에 대한 명상인 사수념이나 음식혐오를 관하는 식염상이 좋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의 기질이나 근기에 맞게 명상주제를 선택하면 된다. 이것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40가지 사마타명상주제이다.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몰록 깨치니

 

선사들의 오도송을 보면 한순간에 홀연히 깨달았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계기에 따른다.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알 수 없는 의심이 우연한 계기로 인하여 화두가 타파 된 것이다. 남이 하는 말을 무심히 들었다거나 어떤 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았을 때, 또 넘어질 뻔 하였을 때,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한 순간에 일어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경허선사의 오도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忽聞人語無鼻孔( 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 (돈각삼천시아가)

六月燕岩山下路 (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 (야인무사태평가)

 

문득 사람이 말하길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몰록 깨치니 삼천세계가 그대로 내 집일세.

유월이라 연암산을 내려오는 길에,

야인이 일이 없어 태평가를 부르네.

 

(경허스님 오도송)

 

 

경허선사의 오도송을 보면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문득 깨달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우연한 계기로 인하여 대상과 하나가 됨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합일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 오도송이다.

 

순간적으로 하나가 됨을

 

숲소리의 경(S1.15)’에서도 역시 합일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평화롭고 고요한 숲속에서 사마타 명상을 하고 있는 수행승에게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 듯 대숲에서 바람이 일어 큰 소리가 났을 때 순간적으로 하나가 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대하여 게송에서는 바람이 불어 큰 숲이 울리니 나에게 즐거움이 생겨나네.(S1.15)”라 하였다. 숲속에서 나는 소리는 범부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만 명상 수행자에게는 깨달음의 기연으로 이끌어 주는 즐거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2013-10-2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