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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은 불교영화일까? 지혜 없는 자의 출가 ‘이루기 어려움의 경(S1.16)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0. 29. 16:38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불교영화일까?  지혜 없는 자의 출가 이루기 어려움의 경(S1.16)

 

  

지혜 없는 자가 출가하였을 때

 

깨닫는데 있어서 반드시 출가해야만 가능한 것일까? 출가하기만 하면 깨달음이 자동적이라 따라 오는 것일까? 절에 들어가 살기만 하면 깨닫게 되는 것일까? 만일 누구라도 절에서 살면 깨달음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라면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모두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초기경에 따르면 어리석은 자의 출가생활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누구나 사원에 살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Dukkarasutta

 

 Sāvatthiya-

 

(Devatā:)

Dukkara duttitikkhañca abyattena hi sāmañña,
Bah
ū ti tattha sambādhā yattha bālo visīdatīti.

 

(Bhagavā:)

Katiha careyya sāmañña citta ce na nivāraye,
Pade pade vis
īdeyya sakappāna vasānugo.
Kummo
va agāni sake kapāle samodaha bhikkhu manovitakke,
Anissito aññamahe
hayāno parinibbuto na upavadeyya12 kañcīti.

 

 

행하기 어려움 경

 

2.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어리석은 자에게 출가생활이란 것은

행하기 어렵고 견디기 어렵나니

거기에는 실로 많은 장애가 있어서

어리석은 그런 자는 쓰러지고 맙니다. 

 

만일 그가 마음을 단속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많은 날을 출가생활 하오리까?

[나쁜] 사유 지배 받아 이리저리 헤매면서

매 걸음 걸음마다 쓰러질 것입니다.

 

3. [세존]

거북이가 자신의 등딱지에 사지를 집어넣듯이

비구는 마음에 일어난 사유를 안으로 거두어 들여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남을 해코지 않으며

완전한 평화를 얻어 아무도 비난해서는 안되리.

 

(행하기 어려움 경, 상윳따니까야 S1.17, 각묵스님역)

 

 

이루기 어려움의 경

 

1. [하늘사람] “지혜가 없는 자에게 수행자의 삶은

이루기 어렵고 지키기 어렵네.

어리석어 타락하면

그곳에 참으로 장애가 많으리.

 

2. 마음을 길들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날을 수행자로 살 수 있을까?

생각의 노예가 되어,

걸음마다 타락에 빠져들리.

 

3. [세존] “거북이 자기의 등껍질에 팔다리를 당겨 넣듯,

수행승은 정신의 사유를 거두어 들이고

집착을 여의어 남을 헤치지 않고,

완전히 소멸하여 누구도 비난하지 않아야 하리.”

 

(이루기 어려움의 경, 상윳따니까야 S1.17, 전재성님역)

 

 

Difficult to Practise

 

 "The ascetic life is hard to practise

And hard for the inept to endure,

For many are the obstructions there

In which the fool founders."

 

 "How many days can one practise the ascetic life

If one does not rein in one's mind?

One would founder with each step

Under the control of one's intentions.

 

 "Drawing in the mind's thoughts

As a tortoise draws its Limbs into its shell,

Independent, not harassing others, fully quenched,

A bhikkhu would not blame anyone."

 

(CDB, Bhikkhu Bodhi)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의 출가생활은 어렵다고 하였다. 마음을 길들이지 않은 수행자가 출가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게송에서는 마음을 길들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날을 수행자로 살 수 있을까?”라 하였다.

 

상깝빠에 대하여

 

경에서 말하는 생각이란 빠알리어 상깝빠(sakappā)’를 말한다. 전재성님의 각주에 따르면 상깝빠는 사유, 의도, 목적, 계획, 사념, 허구의 뜻이라 하였다. 그래서 생각의 노예가 되어라고 번역하였다. 각묵스님은 상깝빠에 대하여 [나쁜] 사유라 하였다. 대괄호를 이용하여 나쁜이라는 뜻을 보충하여 주석적 번역을 하였다. 그런 상깝빠는 어떤 것일까?  빠알리사전을 찾아 보았다.

 

 

sakappā:

[m.] intention(의도); purpose(목적), thought(생각), 思惟目的

 

 

상깝빠는 의도, 생각, 목적, 사유 등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경에 언급된 상깝빠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다. 그래서 빅쿠 보디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Spk explains pade pade, in pada c, thus: "In each object (aramrnane arammane); for whenever a defilement arises in relation to any object, it is just there that one founders (visidati). But the phrase can also be interpreted by way of the modes of deportment (iriyripafha); if a defilement arises while one is walking, (standing, sitting, or lying down), it is just there that one founders. Intentions (sankappa) should be understood here by way of the three wrong intentions, i.e., of sensuality, ill will, and harming."

 

(each step  각주, 빅쿠 보디, CDB)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파다 C에 있는 pade pade에 대하여 설명한다: 각 대상(aramrnane arammane)에 있어서 어떤 대상과 관련하여 오염이 일어날 때 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발견자(visidati)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문구를 보면 태도의 형태들(iriyripafha)로 해석된다. 만일 누군가 걸을 때(서있을 때, 앉아 있을 때, 누워 있을 때) 오염원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발견자가 있을 뿐이다. 의도(sankappa)는 지금 세 가지 나쁜 의도들, 즉 감각적 욕망 , 사악한 생각, 그리고 해치는 것의 방법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

 

 

빅쿠보디에 따르면 상깝빠는 감각적 욕망(sensuality) , 사악한 생각(ill will), 그리고 해치는 것(harming) 이렇게 세 가지라 하였다. 상깝빠와 관련하여 각묵스님의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나쁜] 사유(sankappa)란 감각적 욕망(kama)의 사유, 악의

(vyapada)의 사유, 해코지(vihimsa)의 사유이다.(S.A.i36)

이 세 가지의 사유는 팔정도의 두 번째인 바른 사유와 반대되는 것이다.

 

(각주, 각묵스님)

 

 

상깝빠에 대하여 각묵스님은 빅쿠 보디의 각주와 같이 감각적 욕망(kama)의 사유, 악의(vyapada)의 사유, 해코지(vihimsa)의 사유라 하였다. 이런 주석의 영향인지 “[나쁜] 사유 지배 받아라고 나쁜을 강조 하여 번역하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불교영화일까?

 

수행자에게 있어서 나쁜 사유가 일어나면 왜 좋지 않을까? 앉으나 서나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 이성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속이 꽉 차 있다면 과연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최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유튜브 사이트에 들어 가면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중국어 자막과 함께 올려진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올린 것으로 보인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매우 유명하다. 2003년 작품으로서 국내외에서 각종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익히 알려진 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불교영화일까?

 

영화는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암자와 거기에서 사는 스님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구상되어 있다. 그런데 유튜브 동영상으로 본 영화는 불교영화가 아니었다. 과도한 섹스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에로영화로 보였다. 그 증거로서 중국에서 올린 여러 에로 영화 중의 하나로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천진한 동자승이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는 파란 많은 인생사가 신비로운 호수 위 암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 위에 그려진다.

1)
... : 장난에 빠진 아이, 살생의 업을 시작하다.

만물이 생성하는 봄. 숲에서 잡은 개구리와 뱀, 물고기에게 돌을 매달아 괴롭히는 짓궂은 장난에 빠져 천진한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잠든 아이의 등에 돌을 묶어둔다. 잠에서 깬 아이가 울먹이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노승은 잘못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 이른다.

 

 

2) 여름...욕망 : 사랑에 눈뜬 소년, 집착을 알게되다.

아이가 자라 17세 소년이 되었을 때, 산사에 동갑내기 소녀가 요양하러 들어온다. 소년의 마음에 소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차오르고, 노승도 그들의 사랑을 감지한다. 소녀가 떠난 후 더욱 깊어가는 사랑의 집착을 떨치지 못한 소년은 산사를 떠나고...

 


 

3) 가을... 분노 : 살의를 품은 남자, 고통에 빠지다.

절을 떠난 후 십여년 만에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산사로 도피해 들어온 남자. 단풍만큼이나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상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자 그를 모질게 매질하는 노승. 남자는 노승이 바닥에 써준 반야심경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고... 남자를 떠나보낸 고요한 산사에서 노승은 다비식을 치른다.

3)
겨울... 비움(
) : 무의미를 느끼는 중년, 내면의 평화를 구하다.

중년의 나이로 폐허가 된 산사로 돌아온 남자. 노승의 사리를 수습해 얼음불상을 만들고, 겨울 산사에서 심신을 수련하며 내면의 평화를 구하는 나날을 보낸다. 절을 찾아온 이름 모를 여인이 어린 아이만을 남겨둔 채 떠나고...

4)
그리고 봄... 새로운 인생의 사계가 시작되다.

노인이 된 남자는 어느새 자라난 동자승과 함께 산사의 평화로운 봄날을 보내고 있다. 동자승은 그 봄의 아이처럼 개구리와 뱀의 입속에 돌맹이를 집어넣는 장난을 치며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다음 영화,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2003)

 

 

절에 맡겨진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연유로 절에 맡겨져 자란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된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이를 참지 못하여 서로 접촉하는 사건이 발생된 것이다. 그것도  절에서 사춘기 청소년들의 불장난에 대하여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보여 준다.

 

영화를 보면 출가자에게 있어서 도저히 일어 날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도 불상이 있는 법당에서 벌어진 것이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인 감각적 욕망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비록 영화가 불교를 소재로 한 것일지라도 이성과의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 도저히 불교영화라고 볼 수 없다.

 

동진출가의 경우

 

영화에서 청소년기의 사미승은 같은 또래의 여학생을 보는 순간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절에 맡겨진 아이가 자라서 사춘기가 되었을 때 영화에서는 사미승 신분이다. 그럼에도 이성을 보자 마자 마음을 완전히 빼았겨 앉으나 서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여자 생각 뿐이라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사춘기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여기에서 동진출가자의 문제가 드러난다.

 

동진출가라는 말이 있다. 나이가 어려서 출가한 것을 말한다. 불교방송에서 스님들의 법문을 볼 때 자막으로 이력이 나오는데 어려서 출가한 스님들이 종종 있다. 10대 초반 또는 그 이전에 출가하여 절에서만 평생 산 케이스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서 출가한 경우 자신의 의지로 출가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대부분 절에 맡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보는 것과 같은 케이스이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란 경우 많은 정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다지 자비롭지 않은 절집에서 자랐을 때 청소년기가 되면 문제가 발현된다. 그래서 절에서 자란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대부분 절을 떠난 다고 한다. 그런데 절에 계속 남아 있는 경우 유독 세상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한다. 세상사람들도 그다지 큰 가치를 두지 않는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는 것 등 잡기에 대한 것들이다. 또 어려서 절에서 자란 경우 사랑의 결핍으로 인하여 은처를 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현재 한국불교 고위층에 있는 승려들의 은처행각을 보면 상당수가 어려서 출가한 경우이다.

 

어머니, 저의 출가를 방해 하지 마십시요

 

그러나 자발적으로 출가한 경우는 다르다. 자신의 의지대로 출가한 경우 비록 청소년기일지라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는 랏타빨라의 출가이유와 매우 유사하다. 랏타팔라의 출가이유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도 그렇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에 얻어맞아 누웠으나

현명한 자는 죽음과 만나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재산보다 탁월하고

지혜로 궁극적인 목표를 이룹니다.

 

생에서 생으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모태에 들어 저 세상으로 가니

다른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윤회합니다.

 

적은 지혜로써 그것을 신뢰하는 자

모태에 들어 저 세상으로 갑니다.

 

마치 도둑이 강도에 사로잡혀

악한 행위에 괴로워하듯이

사람들은 죽은 후에 다음 세상에서

악한 행위로 괴로워합니다.

 

감미롭고 즐거운 다양한 감각적 쾌락이

여러 가지 형색으로 마음을 교란시키니

감각적 쾌락의 묶임에서 재난을 보고

왕이여, 나는 출가를 택했습니다.

 

 (랏타빨라 경-Raṭṭhapalasutta, 맛지마니까야 M82,전재성님역)

 

 

랏타빨라의 출가이유를 보면 명확하다. 그것은 윤회의 종식을 위해서이다. 따라서 다시는 모태에 들지 않기 위하여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게송에서 감각적 쾌락의 묶임에서 재난을 보고 왕이여, 나는 출가를 택했습니다. (M82)”라 하였다. 이렇게 뚜렷한 출가이유가 있었을 때 탐진치로 대표되는 번뇌를 소멸하는 것 외에 달리 집중할 것이 없다.

 

청정도론에서도 출가이유에 대한 것을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풀잎 끝의 이슬이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듯이

인간의 수명도 그와 같습니다.

어머니, 저의 [출가를] 방해 하지 마십시요.”

(Ja.iv.122)

 

 

청정도론에서 죽음에 대한 명상(사수념)’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익은 과일은 떨어지고, 도공이 만든 옹기는 언젠가는 깨지고 말듯이 모든 생명 또한 끝내 죽고 만다. 모든 생명있는 존재가 늘 그렇듯이 운명적 파탄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나고 죽는 윤회의 삶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눈물로 만류 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의 출가를 방해 하지 마십시요.”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출가이유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쉽게 이성에게 넘어 가지 않을 것이다.

 

왜 정사유해야 하는가?

 

어떤 이유로 절에 맡겨졌다든가 먹고 살 궁리로 직업적 출가를 하였다면 머리 속에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끊임 없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몸은 절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속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행위에 대한 두려움과 윤회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자발적 출가자라면 감각적 욕망의 재난을 알기 때문에 영화속에서나 보는 것 같은 사건은 일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루기 어려움의 경(S1.17)’에서는 수행승은 정신의 사유를 거두어 들이고 집착을 여의어 (S1.17)”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올바른 사유를 하라는 말이다.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 이성에 대한 사유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여의는 사유를 말한다. 이는 다름 아닌 팔정도에서 정사유에 대한 것이다. 정사유에 대한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Katamo ca bhikkhave, sammāsakappo: yo kho bhikkhave, nekkhammasakappo avyāpādasakappo, avihisāsakappo, aya vuccati bhikkhave, sammāsakappo.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정사유(正思惟)]인가?

비구들이여,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불해(不害)]에 대한 사유

- 이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분석 경, S45.8,  초불연 각묵스님)

 

 

수행승들이여, 올바른 사유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1) 욕망을 여읜 사유를 하고

2) 분노를 여윈 사유를 하고

3) 폭력을 여읜 사유를 하면,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올바른 사유라고 한다.

 

(분별의 경, S45.8, 성전협 전재성님역)

 

 

이루기 어려움의 경(S1.17)’에서는 상깝빠에 대하여 감각적 욕망(sensuality) , 사악한 생각(ill will), 그리고 해치는 것(harming) 이렇게 불건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감각적 욕망이 하루 종일 앉으나 서나 머리에서 떠 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수행자로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몸은 출가하여 절에 있으나 마음은 세속에 있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세간의 원리인 팔정도에 따르면 올바른 사유, 삼마 상깝빠(sammāsakappa)’  대하여 욕망, 분노, 폭력을 여읜 사유라 정의 하였다.

 

여읨과 출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정사유에 대한 번역어를 보면 번역자마다 특징이 있다. 전재성님은 우리말로 풀어 사용하였고, 각묵스님은 한자어와 대괄호를 이용한 주석적 번역을 하였다. 이를 표로 비교해 보았다.

 

 

세 가지 정사유

전재성님역

각묵스님역

nekkhammasakappa

욕망을 여읜 사유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avyāpādasakappa

분노를 여윈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avihisāsakappa

폭력을 여읜 사유

해코지 않음[불해(不害)]에 대한 사유 

 

 

전재성님은 공통적으로 여의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그래서 nekkhammasakappa  대하여 욕망을 여읜 사유라 하였다. 이에 반하여 각묵스님은 출리라는 말을 사용하여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라 하였다. 그렇다면 여읨과 출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여의다의 사전적 의미는 일찍 사별하는 일을 겪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의다라는 뜻은 보내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딸을 시집보내는 것에 대하여 여의다라는 말을 한다. 이로 보았을 때 여의다는 떠나 보냄을 말한다.

 

출리(出離)’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 이말을 이해 하지 못하였다. 십바라밀 중에 출리바라밀이 있는데 출리라는 말을 이해 하지 못하여 매우 궁금하였던 때가 있다. 출리라는 말은 사전에 따르면 속세와 관계를 끊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마치 출가하여 세상을 등진 승려를 뜻하는 말같기도 하다.

 

정사유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라고 하였을 때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 힘들다. 이 출리 또는 여읨에 대한 빠알리어가 넥깜마(nekkhamma)’이다. Nekkhamma에 대하여 사전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Nekkhamma:

freedom from sensual lust, giving up the world, renunciation, 出離, 離欲

 

 

Nekkhamma 에 대한 빠알리 사전을 보면 nir + √kram 으로 되어 있다. Kama로부터 유래 되었음에도 정사유에서는 오염원으로부터 자유로움의 뜻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세상을 포기 하는 것(giving up the world),  자제(renunciation)의 뜻이 있다. 한문으로는 출리 또는 이욕의 뜻이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넥깜마에 대하여 여읨출리라는 번역어가 사용되고 있다.

 

거북이의 비유

 

‘이루기 어려움의 경(S1.16)’에서 ‘거북이의 비유’가 등장한다. 부처님이 “거북이 자기의 등껍질에 팔다리를 당겨 넣듯”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는 불건전한 사유를 거두어 들이라는 의미이다. 이 구절에 대하여 전재성님과 빅쿠 보디는 각주에서 S35:240를 보라고 하였다. S35:240를 찾아 보았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옛날에 거북이 한 마리가 저녁 무렵 강변을 따라 먹이를 찾아 나섰다. 수행승들이여, 승냥이도 저녁 무렵 강변을 따라 먹이를 찾아 나섰다. 수행승들이여, 거북이는 승냥이가 멀리서 먹이를 구하러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거북이는 팔다리와 목을 자신의 등가죽에 감추고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고 움추렸다.

 

수행승들이여, 승냥이도 거북이가 멀리서 먹이를 구하러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 거북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거북이가 있는 곳에 서서 이와 같이 이 거북이가 팔다리와 목 가운데 어떤 지체를 내어놓으면 그 때에 그것을 잡아서 찢어 먹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수행승들이여, 거북이가 팔다리와 목 가운데 어떤 지체도 내어놓지 않자 승냥이는 실망하여 거북이에게서 떠났다.

 

(거북이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40, 전재성님역)

 

 

거북이의 비유에 대한 경을 보면 마치 거북이 자기의 등껍질에 팔다리를 당겨 넣듯(S1.16)”구절의 근거가 되는 경처럼 보인다. 이처럼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한 구절의 게송도 다른 경과 연결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빠알리 니까야 전체는 마치 거미줄 처럼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경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거북이 비유를 들었을까?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 세상에서 수행승이 시각으로 형상을 보더라도 그 인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 연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약 시각능력을 이렇게 제어 하지 않으면, 그것을 원인으로 탐욕과 불만의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그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시각능력을 보호하고 시각능력을 수호한다.

 

(거북이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40, 전재성님역)

 

 

부처님이 거북이 비유를 든 것은 감각능력의 수호를 말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수행자에게 여인이라는 감각대상이 보였을 때 한눈에 여자다라고 인식한다면 이는 인상에 해당된다. 이를 다른 말로 총상또는 전체상이라 한다. ‘남자다’ ‘여자다’ ‘예쁘다라는 개념을 말한다. 이어서 눈, , , , 가슴 등 신체 부위로 시선이 옮아 간다. 이를 연상이라 하였다. 이를 다른 말로 세상또는 부분상이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전체상과 부분상에 집착하지 말고 감각능력을 수호하라고 하였다. 마치 거북이가 자신을 잡아 먹으려는 승냥이가 나타났을 때 자신의 머리와 팔다리를 딱딱한 거북 등 가죽속에 집어 넣듯이 수행자라면 자신의 감각능력을 보호 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경에서는 승냥이처럼 호시탐탐 먹이감을 찾는 것에 대하여 악마 빠삐만이라 하였다.

 

머리를 깍았다고 해서

 

지혜가 없는 자가 출가하였을 경우 머리속에서는 하루 종일 불건전한 생각만 일어날 것이다. 그것을 경에서는 상깝빠라 하였다. 그런 상깝빠는 사유, 의도, 목적, 계획, 사념, 허구의 뜻이지만 어리석은 자에게 있으서 사유는 대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사유가 되기 쉽다.

 

지혜가 없는 자가 이성을 보았다면 앉으나 서나 행주좌와어묵동정간에 온통 여자 생각만 날 것이다. 이런 사유가 일어나면 결국 오래가지 않아 더 이상 사원에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자라면 출세간의 도를 지향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사유이다. 팔정도에서 올바른 생각은 욕망을 여읜 사유, 분노를 여윈 사유, 폭력을 여읜 사유 이렇게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유를 하였을 때 승원에 남아 있는 것이다. 머리를 깍았다고 해서 모두 깨달음을 이룰 수 없고, 절에서 산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도와 과가 성취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013-10-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