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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친구 같은 아내인가? 왕족의 경(Khattiyasutta, S1.14)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0. 16. 20:21

 

왜 친구 같은 아내인가? 왕족의 경(Khattiyasutta, S1.14)

 

 

 

 

남녀평등시대이다. 부부간에 있어서 성별의 차이가 있음에도 평등만 이야기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여성상위시대가 될 것이다. 똑 같은 조건이라면 여성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부부사이는 어떤 조건일까? 어떤 아내가 가장 바람직할까? 이럴 경우 부처님은 어떻게 말씀 하셨을까?

 

왕족의 경(Khattiyasutta, S1.14)

 

 

Khattiyasutta

 

Sāvatthiya-

Ekamanta hitā kho s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 gātha abhāsi:

 

Khattiyo dipada5 seṭṭho balivaddo catuppada,
Kom
ārī seṭṭhā bhariyāna yo ca puttāna8 pubbajoti.

 

(Bhagavā:)

Sambuddho dipada seṭṭho ājānīyo catuppada,
Suss
ūsā seṭṭhā bhariyāna yo ca puttānamassavoti.

 

 

끄샤뜨리야 경

 

2.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끄샤뜨리야는 두발 가진 자들 가운데 으뜸이고

황소는 네발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며

어린 신부는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

장남은 아들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26}

 

3. [세존]

정등각자가 두발 가진 자들 가운데 으뜸이고

잘 길든 것이 네발 가진 자들 가운데 으뜸이며

말 잘 듣는 자가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

충실한 자가 아들들 가운데 으뜸이로다.  {27}

 

 (끄샤뜨리야 경, 상윳따니까야 S1.14, 각묵스님역)

 

 

왕족의 경

 

1. [하늘사람] “두 발 가진 자 가운데는 왕족이,

네 발 가진 것 가운데는 황소가,

아내 가운데는 젊은 부인이,

아들 가운데는 맏아들이 가장 낫네.”

 

2. [세존] “두 발 가진 자 가운데는 올바로 깨달은 님이,

네 발 가진 것 가운데는 잘 길들여진 것이,

아내 가운데는 유순한 부인이,

아들 가운데는 효자가 가장 낫네.”

 

(왕족의 경, 상윳따니까야 S1.14, 전재성님역)

 

 

The Khattiya

 

 "The khattiya is the best of bipeds,

The ox, the best of quadrupeds;

A maiden is the best of wives,

The first born, the best of sons."

 

 "The Buddha is the best of bipeds,

A steed, the best of quadrupeds;

An obedient woman is the best of wives,

A dutiful boy, the best of sons."

 

(CDB, Bhikkhu Bodhi)

 

 

 

작다고 깔보아서는 안되는 것 네 가지

 

게송에서 하늘사람이 두 발 가진 자 가운데는 왕족이가장 낫다고 하였다. 두발 가진 자라면 사람을 말한다. 사람 중에 가장 나은 자가 왕족이라 하였다. 여기서 왕족은 끄샤뜨리야를 말한다. 하지만 이는 산스크리트어 발음이다. 빠알리어로는 깟띠야(Khattiya)’라 한다.

 

두 발 가진 자가 가운데 왕족이 가장 낫다는 것에 대한 게송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대왕이여,

어리거나 작다고 깔보거나 어리거나 작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될 네 가지 존재가 있습니다. 그 네 가지 존재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왕족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리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대왕이여, 뱀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리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대왕이여, 불은 작다고 깔보거나 작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대왕이여, 수행승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리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대왕이여, 이 네 가지 존재는 어리거나 작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Daharasutta-젊은이의 경, 상윳따니까야 S3:1, 전재성님역)

 

 

왕족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

 

왕족, , , 수행승은 작다고 깔보아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왜 그럴까? 이어지는 게송에서 알 수 있다. 왕족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

 귀족으로 명예롭게 태어난

고귀한 가문의 왕족을

어리다고 깔보고

업신여겨서는 안되리.

 

귀족이 인간의 지배자로

왕의 지위에 오르고

그의 분노를 사면

처벌로써 맹렬히 공격당하리.

자기의 목숨을 지키려면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리.

 

(Daharasutta-젊은이의 경, 상윳따니까야 S3:1, 전재성님역)

 

 

왕족은 어리다고 깔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비록 어리지만 자라서 왕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깔보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조선말 상갓집 개라고 불리우던 대원군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원군은 그 때 당시 기세가 등등한 세도가 들로부터 살아 남기 위하여 일부로 미친척하였다. 그래서 안동김씨 등 세도가 들은 대원군을 상갓집에서 밥이나 얻어 먹는 개로 취급하며 무시하였다. 그러나 대원군은 왕족이기에 권력을 잡았다. 그래서 무시하고 깔본 자들은 크게 곤욕을 치루었다. 그래서 왕족은 어리다고 깔보거나 어리다고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라고 하였을 것이다.

 

젊은이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

 

젊은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별 볼일 없는 젊은이라고 하여 무시한다면 크게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젊은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 갈 날이 많은 젊은이의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래서 옛날에 신문을 돌리던 아이가 열심히 노력하여 재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예로부터 젊은 사람 무시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 논리라면 누구든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힘 없고 별볼일 없는 인간이라도 노력하면 누구나 괄목상대하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젊은 여자만 좋아 하면

 

게송에서 하늘사람이 아내 가운데는 젊은 부인이 가장 낫다라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아내 가운데는 유순한 부인이 가장 낫네라 하였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을까?

 

대체로 남자들은 젊은 여자를 좋아 한다. 특히 돈이 많아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는 부자가 그렇다. 그러나 너무 젊은 여자만 좋아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젊은 여자를 맞이 하였지만 만족시키지 못하였을 때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Atītayobbano poso āneti timbarutthani,
Tass
ā issā na supati ta parābhavato mukha.

 

“젊은 시절을 지난 남자가

띰바루 열매 같은 가슴의 젊은 여인을 유인하여

그녀를 질투하는 일로 잠 못 이룬다면,

그것이야말로 파멸의 문입니다.

 

(parabhavasutta-파멸의 경, 숫따니빠따 Sn1.6, 전재성님역)

 

경에서는 ‘띰발루(timbaru) 열매 같은 가슴’이라 하였는데, 이는 띰발루 열매가 여성의 가슴 처럼 풍만하게 생겼음을 말한다. 그래서 ‘띰발루 열매 같은 가슴의 젊은 여인’이라 하였다

 

젊은 여인과 사는 노인은 질투에 잠못이룰 것이라 하였다. 그런 질투는 어떤 것일까? 주석에서 이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흔히 고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부자집 노인이 젊은 여인을 후처로 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여인과 같이 사는 노인은 여인을 만족 시켜 주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후처가 늙은이를 향하여“힘도 없으면서”라고 경멸하듯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낀 늙은이는 여인의 말에 아무 대꾸도 못한다. 

 

후처로 들어 온 여자가 행실이 좋지 않다면 바람을 피울 수도 있다. 그럴 때 노인의 고민은 깊어 질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그녀를 질투하는 일로 잠 못 이루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나이 들어 젊은 여인을 취하는 것은 파멸의 문으로 들어 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아내 가운데는 유순한 부인이 가장 낫네

 

그렇다면 어떤 아내가 가장 좋을까? 부처님은 아내 가운데는 유순한 부인이 가장 낫네라 하였다. 이에 대한 빠알리어 구문이 ‘Sussūsā seṭṭhā bhariyāna이다. 빠알리 구문에서 하다는 뜻은 Sussūsā’이. 사전에 따르면 ‘[f.] wish to hear(듣기를 바라는); obedience(복종)’로 되어 있다. かんとする(들으려 한다), (순종의), 恭敬(공경한 마음으로 경청하는).’로 표현 되어 있다.

 

‘Sussūsā seṭṭhā bhariyāna’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말 잘 듣는 자가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이라 번역하였고, 빅쿠보디는 An obedient woman is the best of wives(아내들 가운데 최고는 순종하는 여자)”라 하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표현은 오늘날 남녀평등시대에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발끈할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순종하는 아내가 최고라 하였을까?

 

일곱가지 아내가 있는데

 

앙굿따라니까야에 일곱가지 아내의 경(A7.63)이 있다. 일곱 종류의 아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

쑤자따여,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아내가 있다. 일곱 가지란 무엇인가? 쑤자따여, 살인자와 같은 아내, 도둑과 같은 아내, 지배자와 같은 아내, 어머니와 같은 아내, 누이와 같은 아내, 친구와 같은 아내, 하인과 같은 아내이다. 쑤자따여,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아내가 있다. 쑤자따여, 그대는 이들 가운데 어떠한 아내인가?”

 

(일곱가지 아내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7.63, 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 부호인 아나타삔다까 가문에 쑤자타라는 며느리가 있었다. 그런데 쑤자타는 시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고 남편도 모시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이 쑤자타를 불러 놓고 일곱 종류의 아내에 대한 법문을 들려 주었다. 그리고 그대는 이들 가운데 어떠한 아내인가?”라고 묻는다.

 

가장 이상적인 아내는

 

일곱 종류의 아내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아내는 친구와 같은 아내이다. 이에 대한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

친구가 멀리서 오면 친구를 보고 기뻐하듯

여기 아내가 남편을 보고 기뻐한다.

고귀한 계행을 지닌 그녀는 남편에 충실하다.

이와 같은 아내가 있다면,

그녀는 친구와 같은 아내라고 불리네.

 

(일곱가지 아내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7.63,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친구와 같은 아내에 대하여 남편을 보고 기뻐하고, 남편에 충실하는 아내라 하였다. 이는 왕족의 경(S1.14)에서 부처님이 아내 가운데는 유순한 부인이 가장 낫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친구 같은 아내라고 하여 남편에 대하여 남자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와 같은 태도가 필요할까?

 

비구니는 비구를 공경하라 하였는데

 

고따미의 경(A8.51)에 따르면 백세된 비구니일지라도 이제 방금 구족계를 받은 비구에게 공경을 표하라라는 내용이 있다. 이는 팔경법 중의 하나로서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남녀차별법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 비구니 상가가 성립 되기 위한 필요 조건 이었다고  보여 진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서도 알 수 있다.

 

 

[세존]

예를 들면, 아난다여, 어떤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게 사는 집이 있다면 그 집을 도둑이 도둑질하러 침입하기 쉽듯이, 아난다여, 이와 같이 가르침과 계율 가운데 여인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것이 허락되면, 그 청정한 삶은 오래 가지 못한다.

 

(Gotamī sutta-고따미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8.51, 전재성님역)

 

 

경에서 여자들만 사는 집은 도둑이 침입하기 쉽다고 하였다. 여자라고 해서 만만히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빵마 상윳따(S20)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면

 

여자가 홀로 사는 위험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집이라도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면 도적이나 밤도둑의 해침을 받기 쉬운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수행승들이라도 자비스런 생각을 닦고 반복하여 마음의 해탈을 이루지 않는다면 그는 귀신의 해침을 받기가 쉽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집이라도 여자가 적고 남자가 많으면 도적이나 밤도둑의 해침을 받기 어려운 것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떠한 수행승들이라도 자비스런 생각을 닦고 반복하여 마음의 해탈을 이루면 그는 귀신의 해침을 받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비스러운 생각을 반복하여 닦고 수레로 삼고 토대로 삼고 입지로 삼아 쌓아나가고 성취하여 마음의 해탈을 이루리라.'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가정의 경, 상윳따니까야 S20.3, 전재성님역)

 

 

경에 따르면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면 도적이나 밤도둑의 해침을 받기 쉽다고 하였다. 요즘도 마찬가지이다여자만 사는 집만 골라 터는 도둑이 있다는 뉴스를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가 혼자 살거나 여자들만 사는 집은 도둑이나 강도의 타겟이 되기 쉽다. 고대인도에서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이 고따미의 출가를 허용함으로 비구니교단이 성립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은 비구니승가 성립 조건으로서 팔경법을 만들었다.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본다면 발끈할 내용이다. 하지만 여자가 사는 집이 공격 대상이라면 비구니상가 역시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 비구니상가를 누가 지켜 줄 것인가?

 

누가 비구니상가를 지켜 줄 것인가?

 

경에 따르면 비구가 비구니를 보호 해 주어야 한다. 그 대신 비구니는 비구를 공경하라 하였다. 비록 백세 된 비구니일지라도 갓 구족계를 받은 새내기에게도 공경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인터넷 논객으로 유명한 실론섬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겨 주셨다.

 

 

비구니 팔경법에 대한 글을 여러번 저도 올리고 댓글도 달았지만...
만약에 비구니 팔경법이라는 것을 제정하지 않았다면 당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출가는 불가능했을 것 입니다.
그만큼 붓다의 깊은 고뇌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정치적 입장에서 바라본 붓다의 일생(제에 올려져 있음)에서 여성 출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혀 놓았는데 아마도 정확할 것 입니다.

그리고 현재 왜 남방권에서는 비구니 승가가 없고, 왜 이를 복원하는데 비구들이 그토록 망설이는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비구니 팔경법을 잘 살펴보면 그 내용은 전부다 비구들에게 비구니를 안전하게 잘 살피라는 내용입니다.
즉 남자로써 여성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외간 남자들로부터 그리고 성폭행으로 부터...
다시 한 번 남자가 여성을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읽어 본다면 의미가 새롭게 다가 올 것입니다.

지금은 사회가 안정되고 보안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성들만 모여있는 특정 지역이 100% 안전할까요?
그럼 그 옛날 인도사회는..??

이곳은 전쟁과 혹독한 가뭄으로 인한 기근, 극성스러운 도둑들과 성폭행범들....
특히 전쟁으로 사찰이 파괴되고 비구니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붓다께서 비구들에게 비구니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도록 부탁을 받은 비구들의 심정은 과연 어떡했을까요?
그러한 피눈물나는 고통과 붓다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죄를 범하지 않을려고
비구들은 두번 다시 비구니 승가를 복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남방권에서도 비구니 승가 복원에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복원이 되겠지요.
하지만 비구니 팔경법을 남녀차별 등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 편협된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은 비구들에게 남자로써 비구니를을 안전하게 보호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구니들은 비구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못하게 했지요..

 

(실론섬님)

 

 

현재 스리랑카에 거주 하며 무역을 하고 있는 실론섬님은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2000년부터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누구 보다도 현지 사정에 밝기 때문에 팔경법에 대한 이해 역시 수긍할 만하다.

 

실론섬님에 따르면 ‘비구니 팔경법이라는 것을 제정하지 않았다면 당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출가는 불가능 하였을 것’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여성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에서 언급된 대로 “어떤 집이라도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으면 도적이나 밤도둑의 해침을 받기 쉬운 것과 같다.(S20.3)”라 하였다.

 

비구니를 일차적으로 보호 해 주어야 하는 대상은 비구승가이다. 그래서 비구승가 가까이에 있게 하여 혹독한 가뭄으로 인한 기근, 극성스러운 도둑들과 성폭행범들로부터 보호 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팔경법이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모성본능에 따른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하여

 

또 한편 팔경법이 나오게 된 동기는 여성의 모성본능에 따른 자만심을 경계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묘원법사에 따르면 “비구니가 비구한테 절을 하도록 한 것도 비구니는 모든 사람들을 내자식이라고 보는 모성본능 때문에, 부처님이 그런 모성 본능에 본질적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본능적인 것을 제거하게 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절을 하라고 그런 거에요. (BBS 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 : 50 지금은 수행시대:아플 때의 수행,말,순수 위빠사나,느낌과 화살)”라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 역시 수긍이 간다.

 

부부간에 주고받기식 사랑을 한다면 여자에게 유리 할 것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 주도권이 여성으로 넘어 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 그럴까? 그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자식을 내가 낳았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배자와 같은 아내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나왔다. 이는 가정에서 자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자식을 자신이 낳은 것으로 생각하는 아내는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집착이 발전되면 지아비를 무시하게 된다. 또 돈을 벌어 오지 못하면 경멸하게 된다. 그런 결과 남편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런 아내는 어떤 스타일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일하기를 좋아 하지 않고 게으르고 게걸스럽고

거칠고 포악하고 조악한 말을 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남편을 제압하며 지낸다.

이와 같은 아내가 남자에게 있다면,

그녀는 지배자와 같은 아내라 불리네.

 

(일곱가지 아내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7.63, 전재성님역)

 

 

지배자와 같은 아내는 남편을 제압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돈을 벌어 와도 고마운 줄 모른다. 더구나 게으르고 욕심이 많고 거칠고 포악하기 까지 하다. 지배자와 같은 아내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과연 보호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까?

 

아내를 지켜 주는 남편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방지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의 가르침에 답이 있다. 아내로 하여금 남편을 공경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비구니가 비구를 공경하게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비구상가가 비구니상가를 지켜 주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고, 또 집착으로 인한 모성본능을 억압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해 주기 위한 방편으로 공경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남편과 아내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남편이 있다는 것은 아내를 지켜 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남편이 있는 집에는 도둑이 침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도둑이나 강도, 성폭력 등으로부터 보호 된다. 더구나 남편이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면 계획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남편을 공경할 수 있다.

 

또 한편 아내가 남편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모성본능에 따른 집착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은 여성본능이다. 그런 집착이 너무 강하게 되면 안하무인이 된다. 그래서 남성을 무시하거나 경멸하거나 지배하려 드는 것이다. 이는 일곱 가지 아내의 경(A7.63)’에서 지배자와 같은 아내, 어머니와 같은 아내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왜 친구 같은 아내인가?

 

부처님은 아내 가운데는 유순한 부인이 가장 낫네(S1.14)”라 하였다. 그런데 일곱 가지 아내의 경(A7.63)’에 따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쑤자타는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저를 남편에 대하여 하인과 같은 아내로 새겨주십시요. (A7.63)”라 하였다. 이는 쑤자타가 그동안 자신이 행한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아내상은 친구와 같은 아내이다. 친구와 같은 아내는 게송에서 표현된 대로 친구를 보고 기뻐하듯 아내가 남편을 보고 기뻐하는 아내일 것이다.

 

 

 

 

2013-10-1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