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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왜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가? 아들과 같은 것은 없음의 경(S1.13)

담마다사 이병욱 2013. 10. 14. 12:16

 

남보다 왜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가?  아들과 같은 것은 없음의 경(S1.13)

 

 

 

인터넷으로 사경한 것을 많이 본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블로그와 카페에 경전을 사경하는 것이다. 초기경전도 마찬가지이다. 초기경전 중에서도 법구경이나 숫따니빠따처럼 짤막한 게송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경의 대상이다. 상윳따니까야의 경우 1권에 해당된다. 그러나 대부분 특정 번역본만 취급하고 있다.  

 

아들과 같은 것은 없음의 경(Natthiputtasutta,  S1.13)

 

상윳따니까야 1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짤막한 게송으로 드러나 있다. 하늘사람(데와따, S1), 하늘아들(데와뿟따, S2), 악마(마라, S4), 하느님(브라흐마, S6) 등 초월적인 존재를 등장시켜 부처님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초월적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활용된다. 다음과 같은 경도 대표적인 예이다.

 

 

Natthiputtasutta

 

Sāvatthiya -

Ekamanta hitā kho s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 gātha abhāsi:

Natthi puttasama pema natthi gosamita dhana,

Natthi suriyasamā4 ābhā samuddaparamā sarāti.

(Bhagavā:)

Natthi attasama pema natthi dhaññasama dhana,

Natthi paññāsamā ābhā vuṭṭhi ve paramā sarāti.

 

 

아들에게 비견하지 못함 경

 

2.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아들 향한 애정만한 것 없고

  소떼만한 재산이란 없으며

  태양만한 광명 또한 없나니

  바다는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입니다.

 

3. [세존]

  자신 향한 애정만한 것 없고

  곡식만한 재산이란 없으며

  통찰지와 같은 광명 없나니

  비야말로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로다.

 

 (아들에게 비견하지 못함 경, 상윳따니까야 S1.13, 각묵스님역)

 

 

 

아들과 같은 것은 없음의 경

 

1.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어떤 하늘사람이 한 쪽에 서서 세존의 앞에서 이처럼 시를 읊었다.

 

2. [하늘사람] “아들과 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소와 같은 재산이 없으며

태양괴 같은 밝음이 없고,

바다는 흐름 가운데 으뜸이리.”

 

3. [세존] “ 자기와 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곡식과 같은 재산이 없으며

지혜와 같은 밝음이 없고

비야말로 흐름 가운데 으뜸이리.”

 

(아들과 같은 것은 없음의 경, 상윳따니까야 S1.13, 전재성님역)

 

 

None Eqtinl to That for a Son

 

At Savatthi. Standing to one side, that devata spoke this verse in

the presence of the Blessed one:

 "There is no affection like that for a son,

No wealth equal to cattle,

There is no light like the sun,

Among the waters the ocean is supreme."

[The Blessed one:]

 "There is no affection like that for oneself,

No wealth equal to grain,

There is no light like wisdom,

Among the waters the rain is supreme."

"When this was said, bhikkhus, a certain devata replied to

that devatii in verse:

 

(CDB, Bhikkhu Bodhi)

 

 

경의 제목은 ‘Natthiputta’이다. 문자그대로 해석하면 아들없음이다. 초불연에서는 아들에게 비견하지 못함 경이라 하였고, 성전협에서는 아들과 같은 것은 없음의 경이라 하였다. CDB의 빅쿠보디는 None Eqtinl to That for a Son’라 하여 아들과 동등한 것은 없음이라 하였다.

 

파격적인 부처님의 가르침

 

경을 보면 하늘사람과 부처님의 말씀 하시는 것이 대조적이다. 하늘사람은 세속적인 것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부처님은 출세간에 대하여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가지 예를 든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하늘사람은 아들과 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소와 같은 재산이 없으며라 하였다. 이는 세속적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아들이 많고 소가 많다는 것은 든든하기 때문이다.

 

아들이 많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농경이나 목축을 하는 사회에서는 노동력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늘사람은 아들과 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Natthi puttasama pema)라 하였다. 또 소가 많다는 것은 농사를 짓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재산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그래서 하늘사람은 소와 같은 재산이 없으며(natthi gosamita dhana)라 하였다.

 

하지만 부처님은 다르게 해석하였다. 아들 대신 자기를 치환하여 자기와 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Natthi attasama pema)”라 하였다. 이는 파격적이다. 이제까지 들어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대부분 자신 보다 남을 사랑하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기사랑은 빠알리니까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 나는 것이 말리까부인 이야기이다. 

 

그대에게는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다른 사람이 있소?

 

상윳따니까야에 말리까의 경(mālikasutta,S3:8)’이 있다. 3상윳따인 꼬살라상윳따에 실려 있는데,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과의 대화에 대한 것이다.

 

꼬살라국의 국왕 빠세나디는 다음과 같이 왕비 말리까에게 묻는다.

 

 

[빠쎄나디]

 “말리까여,

그대에게는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다른 사람이 있소?

 

[말리까]

“대왕이시여,

나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런데 전하께서는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말리까경- mālikasutta, 상윳따니까야 S3:8(1-8),전재성님역)

 

 

 

 

재스민

재스민(영어: jasmine ← 페르시아어: yasmin,

"신의 선물"이라는 뜻)은 재스민속(Jasminum)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이다.

한자로 말리(茉莉)라고 하며, 산스크리트 의 말리카(mallikā)가 어원으로,

원래는 말리화(茉莉花)라고 불렀다.(위키 백과)

 

 

 

경에서 말리까 왕비는 자주 나온다. 주석에 따르면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자따까에 실려 있다. 자따까에 따르면, 그녀는 꽃다발을 만들어 파는 가난한 집의 딸이었다. 16세 때에 부처님을 만나 부처님께 유미죽 공양을 드렸다고 한다. 부처님은 그녀가 왕비가 될 것을 예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부처님과의 인연이 있는 말리까가 현세에 빠세나디를 만나는 것은 전쟁 때문이었다. 빠세나디가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다니다가 그녀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제일의 왕비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말리까가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빠세나디 왕은 자신이 가난한 소녀를 왕비로 만들어 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나보다 사랑스럽소”라는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 본 것이다.

 

그러나 말리까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다. 말리까는 현명하였기 때문에 정직하게 “자신보다 사랑스런 것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물어 본 빠세나디 왕 역시 “말리까여, 나에게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다른 사람은 없소.(S3:8)”라고 말한 것이다.

 

남보다 왜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가?

 

 말리까경에서 왕과 왕비의 대화를 보면, 왕비가 더 지혜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은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왕비가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왕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남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될까.

 

상윳따니까야에서 빠세나디왕과 부처님의 대화를 담은 삐야경(Piyasutta, 사랑스런 이의 경,  S3:4)’이 있다. 경에서는 남보다 왜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든 신체적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언어적으로 나쁜 행위를 하며 정신적으로 나쁜 행위를 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스런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자기가 자신을 사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겠습니까? 그들은 미워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삐야경-Piyasutta-사랑스런 이의 경, 상윳따니까야 S3:4(1-4), 전재성님역)

 

 

부처님과빠세나디왕의 대화에 대한 것이다. 빠세나디왕이 남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하자 부처님이 추인하는 식으로 답한 것이다.

 

경에서는 두 가지 반대되는 개념이 등장한다. 삐야(piya, 사랑하는)와 아삐야(apiya,사랑하지 않는)이다. 이 두 용어는 능동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수동적 의미(사랑받는, 사랑받지 않는) 의미 모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구의 삼업을 짓지 않을 것이라 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 신구의 삼업을 짓는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를 것이라는 말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악한 자는 자신이 믿지 않더라도 자기가 자신의 적이다. 선한 자는 반대로 자신의 친구이다”라고 설명 되어 있다. 그래서 표를 만들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

(piyo atta)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

(apiyo atta)

신구의 삼업으로 선업을 짓는 자

신구의 삼업으로 악업을 짓는 자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의 친구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 의 적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선업을 짓는 자로서, 자기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악업을 일삼기 때문이며, 이는 자신을 ‘적’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신구의 삼업이 청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사랑하는 자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말리까 부인이 “나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실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도 사랑할 수 있어서, 빠세나디 왕도 사랑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애명상에서도

 

이와 같이 부처님은 자기자신이 사랑스런 것이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자격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자애명상을 할 때 반드시 자신부터 시작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신부터 시작하여 부모, 형제, 친구, 스승 등 가까운 사람들이 행복하기를!”라고 명상하고, 다음으로 이웃 등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 심지어 원한 맺힌 자에게도 행복하기를!”하고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렇게 자애의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부터 시작 되기 때문에 부처님은 자기와 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Natthi attasama pema)”라 하였다.

 

아들 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

 

그래서 부처님은 말리까경(S3.8)에서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Sabbā disā anuparigamma cetasā
Nevajjhagā piyataramattanā kvaci,
Eva
piyo puthu attā paresa
Tasmā na hi
se para attakāmoti. 2

 

[세존]

마음이 어느 곳으로 돌아다녀도

자기보다 더 사랑스런 님을 찾지 못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사랑스러우니

자신을 위해 남을 헤쳐서는 안되리.”

 

(말리까의 경, 상윳따니까야 S3.8, 전재성님역)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헤칠 수 없음을 노래한 것이다. 이는 반대로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헤칠 수 있음을 말한다. 폭력, 성폭행, 살인 등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발생된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남을 헤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남보다, 아들 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라고 하였다.

 

게송에 대한 각주를 보면

 

아들과 같은 것은 없음의 경(S1.13)에서 하늘사람이 소떼만한 재산이란 없으며라 하였을 때, 부처님은 왜 곡식만한 재산이란 없으며 (natthi dhaññasama dhana)라 하였다. 또 태양과도 같은 밝음에 대하여 지혜와 같은 밝음이라 하였고, 바다는 흐름가운데 으뜸이라 하였는데 부처님은 비야말로 흐름가운데 으뜸이라 하였다. 이에 대한 전재성님의 각주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와 같이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Natthi attasama pema

사람들이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돌보지 않더라도 자신을 돌보기 때문이다. (Srp.I.32)

곡식과 같은 재산이 없으며

natthi dhaññasama dhana

사람들이 굶으면 금이나 은이나 다른 것을 버려서라도 곡식을 얻기 때문이다.

(Srp.I.32)

지혜와 같은 밝음이 없고

Natthi paññāsamā ābhā

지혜는 백천의 세계를 밝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리는 어둠을 부수기 때문이다.

(Srp.I.33)

비야말로 흐름 가운데 으뜸이리

vuṭṭhi ve paramā sarāti

비가 오지 않으면, 커다란 바다도 말려버리고, 비가 계속 오면 세계는 커다란 바다로 변하기 마련이다.

(Srp.I.33)

 

 

성전협 전재성님의 각주를 보면 Srp.I.32 32의 주석을 참고 하였다. 그런데 초불연의 각묵스님의 각주를 보면 SA.i.33으로 되어 있다.  명칭이 다르긴 하지만 페이지가 같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같은 주석을 참고한 것이라 본다. 게송에 대한 초불연의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자신을 향한 애정만한 것이 없다. 기근이 생기면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나 가축을 팔아서라도 곡식을 마련하려고 곡식을 가진 자에게 다가간다. 그러므로 곡식만한 재산이 없다.

 

태양 등은 특정 지역만을 비추고 그것도 지금의 어둠만 몰아낸다. 그러나 통찰지는 하나의 광명으로 수만의 세계(loka-dhatu)를 밝힐 수 있고 삼세의 모든 암흑을 몰아낸다. 그러므로 통찰지와 같은 광명이 없다.

 

만일 비가 오지 않으면 큰 바다도 말라버리고, 비가 많이 내리면 광음천(Abhassara)까지도 물바다가 된다. 그러므로 비는 흐르는 물 가운데서 최상이다.’”(SA.i.33)

 

(초불연 각주)

 

 

편의상 문단을 구분하였다. 전재성님의 각주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문장구성이 CDB의 빅쿠 보디의 각주와 매우 유사하다. CDB에서 빅쿠 보디의 각주를 보면 다음과 같다.

 

 

Spk: There is no affection like that for oneself because people,

even if they discard their parents and neglect to care for

their children, still care for themselves (see v. 392). There

is no wealth equal to grain because people, when famished,

will give away gold and silver and other assets in order to

obtain grain.

 

There is no light like wisdom because wisdom

can illumine the ten-thousandfold world system and dispel

the darkness concealing the three periods of time,

which even the sun cannot do (see AN I1 139-40).

 

Among the waters the rain is supreme because if the rainfall were to

be cut off even the great ocean would dry up, but when

the rain continues to pour down the world becomes one

mass of water even up to the Abhassara deva world.

 

(빅쿠 보디 각주, CDB 349 page)

 

 

편의상 문단을 구분한 것이다. 빅쿠보디의 각주를 보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재성님의 각주 내용과 크게 차이가 없다. 같은 주석서를 참고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혜와 같은 밝음이 없다

 

빅쿠 보디의 각주를 보면 ‘(see v. 392)’라고 되어 있다. 게송 392번을 보라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된 말리까경(S3.8)에 실려 있는 게송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지혜와 같은 밝음이 없고에 대하여 see AN I1 139-40’라 하였다.

 

AN I1 139-40는 어떤 경일까? 검색해 보니 PTS본 앙굿따라니까야 2권 139페이지에 Vādīsutta이다. 이는 4로 시작 되는 법수인 Catukkanipāta에서 Puggalavaggo에 실려 있는 것이다.  140 페이지에 “지혜와 같은 밝음이 없고(Natthi paññāsamā ābhā)”와 관련된   경이 보인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Cattārome bhikkhave obhāsā. Katame cattāro?

Candobhāso, suriyobhāso, aggobhāso, paññobhāso.

ime kho bhikkhave cattāro obhāsā. Etadagga bhikkhave imesa catunna obhāsāna yadida paññobhāsoti.

 

[세존]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광휘가 있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달의 광휘, 해의 광휘, 불의 광휘, 지혜의 광휘가 있다. 이 네가지가운데 지혜의 광휘가 최상이다.”

 

(Obhāsasutta -광휘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4.144, 전재성님역)

 

 

빛을 발하는 것으로서 해와 달을 들 수 있다. 또 불을 볼 수 있다. 이런 빛이나 불은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있으니 그것으 지혜의 빛이라 한다. 그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이 지혜의 빛(paññobhāso)’이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면 범죄를 저지르고 쫒기고 있는 자가 공중전화통에 매달려 애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주고 싶어서 전화했다.”라는 대사를 접한다. 또 어떤 드라마에서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하며 화룰 벌컥 내는 여인을 볼 수 있다. 또 외국 드라마를 보면 말끝마다 “아이 러브 유(I love ypu)”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모두 가식적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범죄도 저지를 수 없고 화를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죄를 지은 자가 애인에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 화를 낸 것이다. 그리고 입발린 소리를 한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결코 상대방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는 빠세나디왕이 말리까왕비에게 그대에게는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다른 사람이 있소?”라고 물어 본 것에서 알 수 있다. 빠세나디는 모든 것을 가진 왕이기에 당연히 왕비가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혜롭고 향기로운 왕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대신 왕에게 나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런데 전하께서는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굳이 왕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랑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있는 말과 같다.

 

이렇게 말리까왕비가 자신을 더 사랑한다라고 답하자 빠세나디왕도 “말리까여, 나에게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다른 사람은 없소.(S3:8)”라고 말하였다. 빠세나디왕이 왕비에게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결국 왕비를 사랑한다는 말과 똑 같은 말이 되었다. 그래서 왕과 왕비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하는 셈이 되었다.

 

  

2013-10-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