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음식을 절제해야 하나? 공림사에서 본 오관당(五觀堂)
순례법회를 떠났다. 공식적으로는 올해 마지막 순례법회이다. 지난 4월 청암사-수도암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된다. 가을의 단풍이 절정에 이른 11월 3일 순례를 떠난 곳은 ‘공림사’와 ‘법주사’이이다.
공림사로 향하는 길에
공림사로 향하는 길에 본 산천은 단풍으로 울긋불긋 하다. 단풍이 중부와 남부지방까지 내려와 방송에서는 이번주가 절정에 이를 것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내륙 깊숙한 곳 공림사로 향하는 길에 본 단풍은 알록달록하고 일부 단풍나무는 불이 붙은 듯 진홍색이었다.
공림사에 도착하였다. 충북 괴산군에 소재하고 있는 공림사는 생소한 사찰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도착하여 사적기를 읽어 보니 전통사찰이었다. 신라 42대 경문왕 당시 왕명으로 874년 사원이 창립된 것으로 되어 있다.
공림사에서는 문화재가 보이지 않는다. 천년고찰임에도 문화재가 없는 것은 임진왜란과 육이오동란을 거치면서 가람이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라 한다. 특히 한국전쟁당시 빨치산 토벌작전 명목으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모두 전소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폐가로 있던 공림사를 다시 중창하게 된 것은 탄성대종사라 한다. 1981년부터 중창발원을 하여 현재와 같은 가람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그런 탄성대종사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엮임한 바 있다.
예술품을 보는 듯한 오층석탑
전에 들어 보지 못하였던 공림사는 매우 우람한 모습이다. 가람의 형태가 대찰의 격식을 갖춘 것이다. 특히 눈의 띄는 것은 거대한 탑이다. 마치 예술품을 보는 듯한 오층석탑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고정시키게 한다.
석탑 사면에는 부처님의 일대기가 조형되어 있다. 이런 형식의 탑은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다. 이런 탑이 오백년이나 천년이 지나면 문화재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
오층탑을 중심으로 가람배치가
공림사는 오층탑을 중심으로 하여 가람이 배치 되어 있다. 대웅전을 바라 보았을 때 우측은 종무소와 공양식당 등이 배치 되어 있고 좌측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선원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
종무소
선원
이렇게 공림사는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구도가 짜여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대웅전에 있는 불상이 중심이라기 보다 마치 국보급 문화재처럼 보이는 석탑이 중심으로 보인다.
공림사의 단풍
공림사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11월 3일의 충북괴산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공림사는 이제 단풍이 절정이다.
이곳저곳 붉게 또는 노랗게 물들었다. 심지어 이름 모를 식물도 따라 물드는 것 같다.
수행자의 한가로운 모습
사방을 보아도 온통 울긋불긋하다. 그런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선원이다. 선원 뒷편에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모양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 깊은 산속이어서일까 다섯 마치 손바닥처럼 다섯 갈래로 벌어진 단풍잎이 골고루 물들었다.
선원 뒷편에서 단풍나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지나던 스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일요일 오전 안개낀 산중에서 수행자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인다.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대웅전에서는 막재가
대웅전에서는 사십구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들어 보니 ‘막재’라 한다. 그래서일까 대웅전에는 유가족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대웅전에서 사십구재가 있게 되면 순례팀은 들어가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다른 법당으로 가게 된다.
순례팀은 바로 옆에 있는 관음전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사시예불이 진행 되고 있었는데 동참하는 형식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사시예불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8산사 순례단의 ‘평화의 불’
관음전 옆에는 또 하나의 석탑이 서 있다. 마치 불국사 석가탑처럼 생긴 삼층석탑이다. 대웅전 앞의 오층석탑과 함께 모두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삼층석탑 옆에는 조사당이 있다. 아직 단청이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로 옆에 하나의 표지석이 보였다. ‘평화의 불’이라고 되어 있다.
내용을 읽어 보니 선묵혜자 스님이 이끄는 ‘108산사 순례단’ 방문을 기념한 것이다. 날자가 9월 12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불과 한달 보름전에 108산사 순례팀이 다녀 간 듯 하다.
천년세월을 지켜 본 느티나무
공림사는 1981년부터 중창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전각이 모두 소실 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문화재가 없었다. 웅장한 모습의 가람은 모두 새로 지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천년세월을 지켜 본 것이 있다. 그것은 천년 된 느티나무이다.
표지석을 보니 보호수이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 되었는데 수령이 990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나무 둥치를 보면 천년 세월이 느껴진다.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가지만
천년고찰에는 오래 된 나무들이 많다. 전란중에 모든 것이 소실 되어도 절터를 지키고 있는 것은 나무들이다. 사람도 가고 세월도 가지만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절터를 지키고 있는 나무는 절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하다. 비록 문화재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절이지만 천년 묶은 느티나무가 절의 산역사를 대변해 주는 문화재가 아닐까?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절밥
점심공양시간이 되었다.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차에서 김밥한줄로 아침을 때웠지만 절에 가서 공양때가 되면 늘 강한 허기를 느낀다. 이때 공양식당에서 먹는 절밥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다.
오관당과 공양게송
새로 지은 공양식당은 사찰의 규모만틈이나 현대식이다. 주방용 조리기구를 갖추어 놓고 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사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양식당의 한 쪽 벽면에 시주자 명단과 함께 공양게가 보였다.
수행자는 먹을거리를 대할 때 모두 시주물이라는 것을 알고 꼭 다섯 가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공양게를 옮겨 보았다.
공림사 오관게
첫째, 먹을 것을 맞이 할 때 만들어 준 정성을 살피겠습니다.
둘째, 음식을 제공해 준 것에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셋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넷째, 좋은 약으로 지친 몸을 위로하듯 하겠습니다.
다섯째, 부처님이 되기 위해 이 음식을 먹겠습니다.
공림사 공양식당인 ‘오관당(五觀堂)’에서 본 공양게이다. 이와 같은 공양게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다음과 같은 오관게에서 근거한 것이라 보여진다.
오관게(공양게송)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나무석가모니불,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음식을 먹을 때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고 먹으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공림사의 오관당을 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이 추가 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음식을 대할 때 탐욕으로 먹는다거나 분노로 음식을 먹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 된다.
빠알리니까야에서 본 공양게
오관게와 유사한 공양게가 빠알리니까야에도 보인다. 아마 한문으로 된 오관게의 원형으로 보여지는 빠알리 공양게는 다음과 같다.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u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ṃ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iti purāṇañca vedanaṃ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ṃ na uppādessāmi,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 cā
이것은 놀이나 사치로나
장식이나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이 살아 있는 한
그 몸을 유지하고
해를 입지 않도록 하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불편했던 경험을 제거하고
새로운 고통을 초래하지 않겠다.
이것으로 나는 허물없이 안온하게 살리라.
(수레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9, 전재성님역)
빠알리니까야를 보면 유독 ‘음식절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숫따니빠따 라훌라의 경(Sn2.11)에서 “의복과 얻은 음식과 필수의약과 침구와 깔개, 이런 것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다시는 세속에 돌아 가지 말아라.(Sn2.11)”라고 단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 말씀 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왜 음식을 절제해야 하나?
이렇게 초기경전 도처에서는 음식절제에 대하여 수 없이 언급되어 있는데 왜 그럴까? 이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세 가지 원리를 갖춘 수행승은 바로 현세에서 즐겁고 기쁘게 지낸다. 모든 번뇌의 소멸에 근본이 되는 것도 그것에서 시작한다. 세 가지 원리란 무엇인가? 감각능력의 문을 수호 하는 것과 음식을 먹을 때에 알맞은 분량을 아는 것과 깨어 있음에 전념하는 것이다.
(수레의 비유에 대한 경, 상윳따니까야 S35:239,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세 가지 원리 중의 하나로서 ‘음식절제’를 들었다. 이렇게 음식절제를 강조한 이유는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지마니까야 ‘모든 번뇌의 경(M2)’에 따르면 “성찰에 의해서 이치에 맞게 미각능력을 잘 다스려 수호한다. 수행승들이여, 미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M2)”이라 하셨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미각에 집착하는 것은 다른 ‘오감’에 집착하는 것과 같다. 이는 맛을 탐착하는 것이 결국 시각, 청각 등 오감이 총동원 되기 때문이다. 음식을 봄으로서 형상에 대한 ‘인상’과 ‘연상’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고기 타는 냄새를 들음으로서 역시 ‘청각’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고기 냄새를 맡아 ‘후각’에 집착하게 되고, 고기를 씹을 때 맛을 느껴 ‘미각’에 집착하게 되고,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겼을 때 행복감을 유발하는 ‘촉각’을 느낀다. 이렇게 맛에 탐착하게 되면 결국 ‘오욕락’을 즐기는 것이 된다.
이는 ‘성욕’도 마찬가지이다. 성욕도 식욕과 마찬가지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다섯 가지 감각능력이 ‘총동원’ 된다. 그래서 번뇌를 야기하게 된다. 숫따니빠따에서도 “성적 교섭에서 떠나 온갖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 적대하지 말고, 애착하지도 말라. (Sn3.11)”라 하였다. 이렇게 초기경전에서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식욕과 성욕은 여의어야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찰 입구에선 간이 시장
공림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찰이다. 그럼에도 가람의 규모는 크다. 마치 대찰과 같은 격을 갖추었다. 그러나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사하촌’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사찰입구는 번잡하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럼에도 사찰 입구에는 간이 시장이 섰다. 부근에 있는 사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특산품을 팔고 있다.
사찰순례객과 등산객을 상대로 노점이 형성된 것이다. 감자, 고구마, 무우, 당근 등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대부분이지만 된장이나 버섯 같은 특산품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들 농산물을 판매하는데 있어서 대형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맛뵈기’를 보여 주고 있다. 고구마를 쪄서 시식하게 한다든가, 표고버섯을 잘라 기름장에 찍어 먹어 보라고 한다. 그러자 다들 시식에 참여한다.
맛만 보고 그냥 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농산물과 특산품을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 표고버섯을 샀다. 말린 것이다. 시식만 하기가 미안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샀다. 또 농산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샀다.
2013-11-0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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