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비난이나 비방에도 굴하지 말고, 마성스님으로부터 글을 받고
마성스님으로부터 글을 받고
마성스님으로부터 글을 받았다. 그 동안 넷상에서 불미스러운 논쟁에 휘말린 것에 대한 경책의 글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수 많이 올린 글 중에 일부 검증 되지 않은 내용에 대하여 바로 잡는 글도 올려 주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충고의 글을 남겨 주었다. 이런 스님의 글을 접하자 반가웠다. 스님이 올려 주신 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진흙속의연꽃님께!
먼저 팔리문헌연구소에 후원금을 보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불사의 단현 거사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인터넷에 공지함으로써 얼마나 창피하고 송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가능하면 제 개인적인 사생활은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하는데 세상에 알려 버려서 이제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습니다. 아무튼 팔리문헌연구소 후원회원이 되어 주신 분들에게 거듭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학기 중에는 바빠서 이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다 읽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원불사 카페의 실론섬 법사의 글도 읽어보았습니다. 두 분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두 분의 불교관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논쟁이 너무 지나쳐 상호 인신공격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지난 날 많은 학자들과 논쟁을 했지만, 서로 상처를 주는 상황에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상대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경상대 철학과 권오민 교수님과의 지상논쟁은 매우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정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서로 견해가 다름을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굳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진흙속의연꽃님과 실론섬 법사님 두 분 중 누구의 견해가 옳다 그름을 떠나 논쟁의 방법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같은 지면에서 상호 의견을 주고받으면 다른 독자들에게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매우 유익한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흙속의연꽃님 글을 원불사 카페로 가져가 그곳에 댓글을 다는 형식은 바람직한 토론 문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실론섬 법사님이 결례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의 글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언젠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 글을 다른 사이트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에 온갖 악성 댓글들이 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내 글을 마음대로 가지고 가서 희롱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도 잘못된 부분은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은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님으로 인해 제 글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던 것입니다.
진흙속의연꽃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너무 조급하게 매일 글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현재 국내외의 최고 칼럼니스트들도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의 칼럼을 일주일에 한 편 정도밖에 쓰지 못합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용됩니다. 우선 그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본 뒤 자신의 견해를 논리정연하게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오류를 줄일 수 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덜 비판을 받게 됩니다.
둘째는 문제가 있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논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연꽃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이를테면 「만인의 기적을 기대하며」에서 도올 김용옥의 강의 내용을 인용했는데, 그 내용은 이미 용도 폐기된 잘못된 학설입니다. 연꽃님이 인용한 부분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이 신의 역사에서 다신론에서 일신론으로 거기에서 제로로 만든 건 싯달타의 혁명이라는 겁니다. …… 다신론(polytheism)→일신론(monotheism)→영신론(sunya-theism). 종교의 진화는 제로신관에서 극상에 달한다. 그것이 곧 삿달타의 혁명이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다윈의 진화론을 원용하여 종교의 기원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종교는 사물에 깃들인 힘에 대한 신앙이든 주술이든 간에 결국에는 정령신양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차차 이 세상에 여러 신들이 있다고 믿는 다신교(多神敎) 단계로 발전하고, 다시 대표신교 혹은 유일신교(唯一神敎)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진화론적 도식은 곧 허물어지고 만다. 특히 유일신교의 특징인 최고신, 지고(至高)한 존재에 대한 신앙이 역사적 발전의 꼭대기 단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타나 치명타가 되었다. 극히 단순하고 유치한 수준의 문명에 머물고 있는 원시 사회에서도 유일신교의 신 관념에 상응하는 전지전능한 창조주이자 절대적인 최고신에 대한 신앙이 발견되었고, 더욱이 그것이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사상의 이해>(서울: 불교시대사, 1997), p.18)
이와 같이 종교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용도 폐기된 학설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연꽃님의 글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근거가 없는 글은 가능한 인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매일 한편의 글을 올리는 진흙속의연꽃님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그 부지런함에 고개 숙입니다. 이것은 거의 초인적인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하게 되고 그것이 꼬투리가 되기도 합니다. 비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시고 계속적으로 좋은 글들을 많이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합장
(마성 2014.01.07 00:03 )
오랜만에 접하는 스님의 글이다. 너무 오랜만에 접하다 보니 블로그를 멀리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다. 스님이 주신 글을 보면 “최근에는 거의 다 읽어보았습니다.”라고 말씀 하신 것으로 보아 매일 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판하려면 원글이 있는 곳에서
이런 글을 접하자 갑자기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동안 쓴 글 중에 혹시 비난받을 만한 것이 있었는지 빠른 속도로 스캔해 보았다. 그러나 자체검열 내지 자기검열을 늘 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비난 받을 글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혹시라도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바로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스크랩 된 것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다. 혹시 오류가 있다면 오류가 있는 채로 인터넷의 바다에 둥둥 떠다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우려해서일까 스님은 스크랩금지를 해 놓았다고 한다.
스님은 넷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미스런 일에 대하여 염려 하고 있다. 글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서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한다. 비판하려면 원글이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단 토론을 하되 뒤 끝이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욕설, 비아냥, 무안주기 등 인신공격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베사이트’도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논하는 담마토크에서 상호비방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스님의 지적이라면 글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아 보인다.
매일매일 글쓰기에 대하여
스님은 글에서 두 가지를 조언하였다. 그것은 매일 글쓰기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잘못된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매일 매일 글쓰기에 대하여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이유는 검증된 글쓰기를 위해서라고 한다.
200자 원고지 10매 가량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관련 자료를 찾고 인용문구를 검색하는 등 완성된 글을 만들기 위한 최소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말씀 하신 것은 전문적인 학술 논문수준이라 보여 진다.
보통불자의 일상적인 글쓰기는 논문도 아니고 법문도 아닌 ‘B급’ ‘삼류’ 글쓰기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쓰고 있다. 매일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하여 경전을 근거로 한 글쓰기를 말한다. 그래서 매일 글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스님의 권고를 받아 들이기 힘들 것 같다. 이미 글쓰기가 생활화 되어 있고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무언가 허전 하고 숙제를 하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임현담님의 홈페이지에서
한 때 임현담님의 홈페이지 (http://www.himal.kr/index.htm)를 열심히 본 적이 있다. 소설가 임현담님이 홈페이지에 매일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주로 불교에 대한 글이다.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인데 소설가의 글이서인지 읽는 맛이 났다. 더구나 한문경전의 문구를 인용하여 자신이 생각한 것을 글을 올려 놓아서 보고 나면 남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A4 두장 분량의 글로서 읽기에는 부담 없었지만 매일 그만한 분량의 글이 올려진 것을 보고 놀랐다.
매일 올려지는 임현담님의 글을 보고서 질려 버렸다. 아무리 작가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주옥 같은 글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경외감도 들었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 없이 꾸준히 올리는 것을 보고 질려 버렸다. 매일매일 따라가기도 바빴던 것이다. 그래서 이삼일에 한번 정도만 올렸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그러나 임현담님의 홈페이지 글은 이제 드문 드문 볼 수 있다. 영원히 매일매일 계속 될 것 같은 글도 멈추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글쓰기도 중독인가?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논문도 아니고 법문도 아니다. 그저 보통불자의 일상적 글쓰기이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보통 불자에게 글쓰기가 낙이다. 그래서 여백을 대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글을 완성하고 난 다음 순간적인 성취감을 느낀다. 이런 성취감이어서일까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글쓰기는 멈추어지지 않을 것 같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차가 질주 하듯이 그저 오늘도 내일도 쓸 뿐이다. 누가 뭐라고 하건 말건 오로지 쓸 뿐이다.
이렇게 글을 매일 쓰다 보니 글쓰기도 느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폰트 사이즈 12로 하여 A4 열장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경전이나 논문, 기사 등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글쓰기를 칠팔년 하다 보니 이제 글쓰기에도 힘이 붙은 것 같다. 마치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근육이 붙듯이 글쓰기를 매일 하니 ‘필력’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나는대로 자판을 두들긴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칠팔년 동안 매일 글을 쓰다시피 하다 보니 이제 글쓰기는 말하는 것과 같은 정도가 된 것 같다. 머리속에 있는 생각이 자판을 통하여 글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도 중독일 것이다. 글쓰기 중독을 말한다.
노는니 글을 쓴다
무엇이든지 중독이 되면 끊기 힘들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으면 금단 현상이 생긴다. 매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끊으면 몹시 허전 하여 어쩔 줄 모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글쓰기 중독에 걸려 있다면 글쓰기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좋은 취미라 본다. 주변에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글쓰기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 좋은 취미를 가졌다고 말한다. 사실 그런 것 같다. 불교공부를 해서 좋고 돈이 들어 가지 않아서 좋다. 무엇 보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좋다.
일인사업자로서 일하는 날 보다 노는 날이 더 많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노는 날에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도 잘 가고 공부도 되고 돈도 들지 않기 때문에 일석삼조 이상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매일 한다. 그러나 스님의 충고대로 인터벌을 두고서 좀더 심도 있는 글쓰기도 고려해 보고 있다.
용도폐기된 학설이라니
두번째로 스님은 올바른 정보에 바탕을 둔 글쓰기에 대하여 말씀 하였다. 이에 대한 예로서 도올 김용옥님의 동영상 강좌 내용에 대한 것을 들었다. 김용옥님은 동영상강좌에서 ‘영신론(sunya-theism)’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영신론은 이미 ‘용도 폐기된 잘못된 학설’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구체적인 논문의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불교사상의 이해’라는 책에 따르면 유일신론은 종교진화론적에 따른 종교발전단계에서 보는 도식화된 종교현상이 아니라 이미 다신교시대부터 있어 왔던 보편적인 종교현상이라 한다. 그래서 “종교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용도 폐기된 학설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연꽃님의 글 자체에 대한 신뢰성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라고 충고하고 있다.
사실 이런 지적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평소 존경하는 사람중의 하나인 김용옥님의 이야기이고 또 동서양철학을 넘나드는 철학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언젠가 불교TV사이트에서 김종욱 교수도 다신론-유일신론-무신론 순으로 종교진화학적 관점에서 강의를 한적이 있기 때문에 의심 없이 받아 들였다. 또 불교가 부처님 당시 브라만교를 비판하고 성립되었기 때문에 불교의 무아사상이 유일신관 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의 지적에 따르면 이미 용도폐기된 학설이라니 놀랍다.
그 어떤 비난이나 비방에도 굴하지 말고
끝으로 스님은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매일 한편의 글을 올리는 것과 부지런함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초인적인’ 이라는 말도 하였다. 매일 10페이지 가량의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하여 ‘초인적인 작업’이라 하였는데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숙달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없이 쓴다.
도올 김용옥님은 글을 쓸 때 ‘미친듯이 쓴다’라고 하였다. 일이 있어서 시간이 한정 되어 있을 때는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정신없이 미친듯이 쓴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이런 글쓰기가 남이 보기에는 초인적인 작업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스님은 “비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시고 계속적으로 좋은 글들을 많이 올려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그 어떤 비난이나 비방에도 굴하지 말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 가라.”라고 받아 들인다.
2014-01-0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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