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즐겨 듣는 음악, 자야망갈라가타

담마다사 이병욱 2014. 1. 11. 11:43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즐겨 듣는 음악, 자야망갈라가타

 

 

 

하루 하루가 깨달음의 연속

 

하루 하루가 깨달음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하여 큰깨달음은 아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깨달음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종교인도 깨달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방송에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이야기 하기를 깨달았다하였을 때 대게 몰랐던 이치를 알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타종교인들도 깨달았다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그런 면으로 보았을 때 깨달음이라는 말이 불교의 전용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깨달음이라는 말은 불자들에게는 매우 친숙하다. 그것은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이를 초기불교에서는 37조도품으로 정리하고 있다. 사념처, 오근, 팔정도, 칠각지 등을 말한다. 그런데 37조도품을 구성하는 마음의 요소는 모두 14가지이다. 이중 정견(빤냐), 정진, 정념 등 여덟 가지가 팔정도에 해당된다.

 

사무량심이 있는데

 

그런데 14가지 마음의 요소에 들어 가지 것도 있다. ‘사무량심이다. 그렇다고 하여 사무량심이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사무량심을 포함하여 선법을 닦으면 마음이 청정하게 되어 깨달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해탈과 열반을 뜻한. 모든 오염원을 소멸하여 청정하게 되었을 때 이를 해탈이라 하고, 더 이상 생사를 거듭하지 윤회하지 않게 되었을 때 이를 열반이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다름 아닌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목적론일수도 있고 방법론일 수도 있다.

 

비록 사무량심이 37조도품의 항목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부처님이 강조하신 사항이다. 그래서 초기경전에는 수 없이 사무량심에 대한 정형구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애, 연민, 기뻐함, 평정으로 대표되는 정형구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애만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자애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초기경전에서 사무량심 정형구를 보면 항상 네 가지가 같이 나온다.

 

2000대 이후 테라와다 수행법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이때 자애명상도 함께 소개 되었다. 그래서 위빠사나수행과 함께 자애명상을 함께 수행하는 단체도 생겨났다. 또 자애명상만을 전문으로 하는 법사나 스님들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자애라는 말 보다 일반적으로 자비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자애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면서 사무량심도 함께 소개 되었다. 사무량심에는 자애 뿐만 아니라 연민, 기뻐함, 평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자애나 자비라는 말 보다 자비희사라고 불러야 더 정확할 것이다.

 

자애에 대한 글쓰기한 것을 보면

 

사무량심을 대표하는 것이 자애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멧따(metta)라 한다. 이 멧따에 대하여 여러 편의 글을 올렸다.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자애수행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자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청정도론에는 자애수행하는 방법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애에 대한 글쓰기한 것을 블로그내에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다.

 

 

1) 까라니야 멧따숫따(Karaniya Metta Sutta), 자애경이 나오게 배경은

2) 아눌라 스님의 ‘마땅히 해야 자비경(자애경)

3) 성내는 마음이 고통일까, Imee Ooi 자애경(Karaniya Metta Sutta)

4) 화가 때, 자신을 훈계하는 글과 절복진노경(折伏瞋怒經)

5) 바완뚜 수키땃따(모든존재가 행복하기를!)”독송용 까라니야멧따경(자애경)

6) 참을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7) 자애경(Sn1.8)번역 비교분석, 한글역과 일역 어떻게 른가

8) 자비송은 자애송(慈愛頌)이라 불러야, Imee Ooi 빠알리어 자막 버전

9)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가장 수승한 부처님의 자애사상

10) 증오와 적개심이 일어날 때, 청정도론의 자애명상과 Imee Ooi 자비송

11) 자애(metta)수행이 실패할

12) 자애수행도 기도의 대상인가, ‘100 소원성취 메타기도’를 보고

 

 

이 중 열번 째에 증오와적개심이 일어날 때, 청정도론의 자애명상과 Imee Ooi 자비송이 있다. 2010년 쓴 글이다.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자애수행에 대한 내용과 음악을 곁들여 쓴 것이다.

 

자애송(The Chant of Metta)과 청정도론

 

이렇게 자애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불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The Chant of Metta와 연결 짓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사를 보면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내용과 동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섯가지 제한없이 가득채운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일곱가지 한정적으로 가득채운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열가지 모든방향으로 가득채운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은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확인 하였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

 

 

 

다섯가지 제한없이 가득채운

모든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

악의가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모든 생명들이

모든 존재들이

모든 인간들이

몸을 가진 모든 자들이

일곱가지 한정적으로 가득채운

모든 여자들이

원한이 없기를!

고통이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모든 남자들이

모든 성자들이

모든 범부들이

모든 신들이

모든 인간들이

악도에 떨어진 모든 자들이

열가지 모든방향으로 가득채운

동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

고통이 없기를!

근심이 없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서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북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남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동남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서북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동북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서남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아래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출처; 청정도론,

진흙속의연꽃 편집(2010-08-11)

 

 

표에 실려 있는 청정도론의 내용은 The Chant of Metta 가사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The Chant of Metta음악이 청정도론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음을 확신 하였다. 그래서 The Chant of Metta 그 자체는 바로 자애수행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자애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음악을 곁들였다. 그리고 The Chant of Metta에 대한 음악을 적극적으로 보급하였다. 또한 음악동영상을 만들어 퍼지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득세하는 이유는?

 

음악은 감성에 호소한다. 그래서 말이나 문자로 알리는 것 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런 예를 기독교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득세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하여 기독교국가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기독교가 득세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용옥 교수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독교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찬송가 이죠.  기독교는 모이면 노래 부르는 거에요. 그리고 지금 어떤 종교도 기독교에 대항을 못하는게 찬송가 차원이 너무 말이 아니에요. 서양은 근세를 가치면서 엄청난 음악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 찬송가의 수준이 높아요. 그런 그 풍류가 천막에 들어 오면 남녀노소 같이 노래부르는 거에요. 한자리에서. 구한말에 유교사상에서 간(?)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가 우리 민족에게 급격하게 퍼진 거에요.

 

(김용옥 교수, 도올 김용옥 특강 역사를 말한다 4)

 

 

강연에 따르면 김용옥교수는 기독교집안에서 자랐다고 하였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하여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김용욕교수는 강연에서 오늘날 한국에서 급격하게 기독교가 확산 된 이유로 노래를 들고 있다. 모이면 남녀노소 할 것이 찬송가를 부르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수긍이 가는 말이다. 고등학교를 미션스쿨에서 다녔기 때문에 항상 기도와 예배와 찬송가는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창단의 화음을 들으면 그 분위기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신자가 될 정도이다.  

 

이렇게 노래는 감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에서 기독교가 득세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노래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강연에서 김용옥 교수가 한 말이지만 기독교의 교리가 우수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용옥 님의 표현에 따르면 교리로 말하면 미신이에요 사실은. 이게 인류사상 이렇게 유치한 미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미신이 천년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여기에 박애가 있고 인간의 평등에 대한 가르침이 있고 위대한 예술이기 때문에 그래요.”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자애송(The Chant of Metta)을 보급하기로

 

한편의 잘 만들어진 음악은 포교효과가 매우 크다. The Chant of Metta가 대표적이다. 중국계 말레이시아 불자가수인 Imee Ooi(黃慧音)가 부른 The Chant of Metta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음악은 입으로 포교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음악 The Chant of Metta도 감성적이다. 모든 노래가 다 그렇듯이 이성보다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노래는 백번 천번 법문 하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듣기만 하여도 자애의 마음이 일어 나는 것처럼 감동적이다. 거기에다 내용까지 알고 들으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보급하기로 하였다.

 

블로그내에 불교음악폴더를 만들어 전세계에서 유행하는 불교음악을 총망라 해 놓았다. 그런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2005년 우연히 불교방송 음악 프로를 듣고 나서 부터이다.

 

방송을 타게 되었는데

 

불교방송을 듣게 된 것은 순전히 불교와 인연을 맺고 나서부터이다. 2004년 불교 교양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불교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불교방송과 접하게 되었다. 특히 정목스님이 진행하는 마음으로 듣는 음악을 즐겨들었다. 그런데 스님의 방송을 보면 청취자의 사연을 읽어 주는 코너가 있다. 청취자들이 게시판에 올려 놓으면 이를 선별하여 방송해 주는 것이다.

 

언젠가 글을 한번 올렸다. 그런데 우연하게 올린 글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다. 아마 2005년 쯤으로 기억한다. 한창 황우석 박사 사건이 달아 올랐을 때이다. 그때 황우석 박사와 관련하여 불교적 입장에서 글을 올렸는데 이를 읽어 준 것이다. 그래서 실명과 함께 글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방송을 타게 되었다. 그때 당시 저녁 10시 넘어서 들었는데 참으로 감동하였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한 번 더 방송을 탔다. 올린 글에 대하여 이번에는 저녁 7시 퇴근 시간 차안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교방송과 인연을 맺고 스님의 방송을 즐겨 듣게 되었다.

 

이메일과 웹하드로 보급하고

 

언젠가 스님의 방송을 듣던 때이다. 방송에서는 외국 불교음악을 소개 해 주었다.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던 대비주옴마니반메훔이었다. 그것도 30분 가까운 곡을 틀어 주었다. 그런데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게시판에는 계속 틀어 달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자들이 관심을 가지자 하나의 생각이 떠 올랐다. 필요로 하는 불자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음반을 사서 줄수는 없고 그 대신 가지고 있는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게시판에 이메일 주소를 남겼다. 혹시 필요한 사람은 요청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다. 꼭 갖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메일로 파일을 발송해 주었다. 그러나 짧은 곡은 이메일 전송이 문제 없으나 30분 가량 되는 긴곡은 용량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별도의 웹하드 계정을 만들었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때가 2006년도이다.

 

불교음악방을 만들어

 

그러나 웹하드 방식 보다 더 나은 방식을 찾기로 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블로그에 음원을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음악방이라는 별도의 폴더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불교음악을 올려 놓았다. 물론 링크 시켜 놓은 것이다. 이때가 2007년도 이다. 중국사이트를 이잡듯이 뒤져서 하나 둘 올려 놓다 보니 수십곡이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The Chant of Metta이다.

 

현재 불교음악 폴더에 올려진 것 중에 링크가 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것을 보면 무상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제행무상의 법칙에 어긋 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올릴 당시에는 누구나 다운 받을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막히기도 하고 링크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먹통인 것이 많다. 그럼에도 아직 까지 살아 있는 것도 많다. 그래서 불교음악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운 받게 하였다. 이렇게 불교음악을 공유하는 것도 하나의 보시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불교음악 동영상을 만들고

 

다음으로 공을 들인 것이 불교음악 동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음원을 링크 해 놓은 것에서 더 발전된 형태라 볼 수 있다. 다운 받은 음원파일을 바탕으로 하여 동영상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완전한 동영상은 아니다. ‘유사동영상이라 볼 수 있다. 그동안 블로그 활동 하면서 수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선별하여 유사 동영상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The Chant of Metta에 대한 음악 동영상도 만들게 되었는데 배경화면은 ‘2007년 연등축제때이다. 더구나 빠알리 자막까지 넣어 만들었다. 그 음악 동영상은 아래와 같다. 그러나 음원링크는 오래 되어서인지 모두 막혀 있다.

 

 

 

 

자애송(2007년 연등축제를 배경으로)

원한이 없기를!고통이 없기를! 자애 음악동영상 다섯가지

 

 

  

중국사이트를 이잡듯이 뒤져서

 

자애송(The Chant of Metta)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Imee Ooi의 음성도 호소력 있지만 내용을 알고 들으면 더 감동적이다. 그래서 음악을 소개할 때는 항상 가사와 함께 싣는다. 그 가사 내용은 다름 아닌 청정도론에 그대로 실려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일까 현재 전세계적으로 자애명상은 모두 청정도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한다. 그런 청정도론의 자애수행에 대하여 음악으로 표현 한 것이 Imee OoiThe Chant of Metta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세대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음악씨디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동안 중국사이트를 이잡듯이 뒤져 다운 받아 확보한 음악파일이 있었기 때문에 씨디를 만드는 것은 문제 없었다. 수 많은 음악중에 선곡을 하여 씨디 한장에 담았다자애송(The Chant of Metta)을 비롯하여 라따나경, 자야망갈라가타. 옴마니반메훔 등과 같은 Imee Ooi음악이다. 그래서 표지 디자인을 하고 비매품이라 인쇄 하여 다수 만들었다.

 

음악씨디를 만들어

 

불교음악씨디를 가장 먼저 법우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불교교양대학 동기생들을 말한다. 처음 접하는 법우님들의 반응은 좋았다. 이제까지 천수경이나 금강경 테이프만 듣다가 선곡된 음악을 접하고 나서 모두 좋다고 하였다.

 

어떤 법우님은 천수경 테이프를 치우고 항상 음악씨디만 듣는다고 하였다. 또 어떤 법우님은 운전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전국각지를 다닐 때 마다 늘 제공된 음악씨디만 듣는다고 하였다. 주로  30분에 가까운 옴마니반메훔이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씨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함부로 주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타종교인에게 주었을 경우 그 가치를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거래처 사람들에게도 주었다. 이때 반드시 물어 보는 말이 있다. “일요일 산에 가십니까? 교회로 가십니까?”라고 물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로 간다고 하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설령 주었다고 하더라도 막말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제외하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것도 일종의 영업전략일 것이다. 동시에 포교활동이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음악을 듣고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언젠가 아는 법우님의 친구와 식사를 한적이 있었다. 두 번째 자리를 함께 하였을 때 준비해간 음악씨디를 주었다. 그것도 세 장 주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넌지시 혹시 그 음악씨디 잘 듣고 있나요?”라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잘 듣고 있다고 하였다. 틈나면 듣는다고 하였다. 더구나 딸이 가게를 하고 있는데 가게에서도 늘 틀어 놓고 있다고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음악씨디가 확실히 효과가 있음을 확신하였다.

 

말기암환자들에게도

 

음악씨디와 관련 하여 이런 경험도 있다. 언젠가 법우님에게 음악씨디를 여러 개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느 거사님 수중에 들어간 모양이다. 그 거사님은 불교교양대학에서 법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서 주로 임사체험 전문가이다. 그래서 이미 안면이 있는 K거사님이다.

 

어느 날 K거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이 말기암환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데 음악씨디를 틀어 주었더니 너무나 반응이 좋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기암 환자들에게 씨디를 주려 하는데 더 보내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주었다. 씨디는 다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며 하루 일과를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이런 글쓰기의 원동력이 아마도 음악의 영향인지 모른다. 하루도 빠짐 없이 불교음악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듣는 것은 라따나경자야망갈라가타이다. 이는 블로그의 프로필란에도 올려져 있다.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래서 마음이 우울하거나 속상하거나 분노하였을 때 음악을 들으면 누구러 진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즐겨 듣는 음악이 자야망갈라타이다.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Katvāna  kaṭṭham-udara  iva  gabbhiniyā     

깟와- 깟탐  우다랑  이와 갑비니야-

Ciñcāya duṭṭha-vacana jana-kāya-majjhe      

찐짜- 둣타  와짜낭  자나  - 맛제

Santena  soma-vidhinā  jitavā  munindo       

산떼나  소마  위디나- 지따와- 무닌도

Ta-tejasā  bhavatu  te  jaya-magalāni      

 떼자사-  바와뚜    자야  망갈라-

 

여인 찐짜가 자신의 배에 통나무 넣고
임신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모욕했을 때,
성자의 제왕 고요함과 부드러움으로 섭수하셨네.
이 위대한 힘으로 승리의 행운이 제게 임하길 바라옵니다.

 

(Jayamagala Gāthā-吉祥勝利偈-승리와 행운을 노래 하오니, 전재성님역)

 

 

 

 

2014-01-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