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암사의 아주 특별한 콘서트 ‘오세암공연’
수트라 경전 명상 콘서트
아주 특별한 콘서트에 초대받았다. 알고 지내는 법우님이 다니는 절에서 경전낭송회겸 음악회 겸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이름 하여 ‘제1회 수트라 경전 명상 콘서트’라 하였다.
강남 율원동 덕암사
법우님은 불교교양대학동기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불자들이 그렇듯이 절을 한 곳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여러 곳에 다니기 때문에 초파일이 되면 보통 두 세 곳에 등을 단다고 한다. 알고 지내는 법우님 역시 다니는 절이 여럿 된다. 그 중에 한 곳이 강남 율원동에 있는 ‘덕암사’이다.
덕암사는 전통사찰이 아니다. 그렇다고 조계종 소속도 아니다. 그럼에도 도심속의 도량 덕암사는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수서역에서 세곡동 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가든파이브가 보이는 사거리에 있다. 새로 신축된 보금자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야트막한 야산이 있다. 그 야산 가운데 자그마한 절 덕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
지하에 너른 공간이 있는데
덕암사는 보기에는 대웅전 하나 밖에 없는 작은 사찰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 가면 꽤 큰 넓다. 지하에 너른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 공양식당겸 법당으로 사용된다. 명칭은 ‘비로전’이라 한다. 그래서일까 바위로 조성된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절에서 먹는 밥은
공연은 10월 19일 1시부터 3시 까지 두 시간 동안 열렸다. 공연이 열리기 전에 점심공양을 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절에서 먹는 밥은 맛이 있다. 고기는 일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나물과 채소로만 이루어져 있는 식단을 보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소화가 잘 된다.
공연내용을 보면
공연명칭이 ‘수트라 경전 명상 콘서트’이다. 이렇게 거창한 제목의 공연은 어떤 것일까? 팜플렛에 쓰여진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부
여는 노래/무소유의 노래 : 김현성
낭송- 불교영어 법구경 : 지혜성
덕암사 통기타 동아리 “시그마108”2곡
덕암사 지선스님 이야기와 낭송
2부
레 밴드 작은 음악회(5곡)
1. 가을아침-양희은
2. 풍경-레밴드
3. 쓸쓸한 사랑-한돌
4. 가을을 만나다-레밴드
5. 하얀민들레-진미령
3부
1)오세암공연
원작: 정채봉
대본-연출:김진휘
작곡:김현성
음향:오디아이 사운드
노래와 연주:김현성과 움직이는 꽃, 배우 김진휘
2)무소유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김현성 작사-곡)
가을 우체국 앞에서(김현성 작사-곡)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김현성 작사-곡)
(덕암사 제1회 수트라 경전 명상 콘서트)
내용을 보면 덕암사신도들의 공연과 오세암공연이 함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공연을 위해서 덕암사에서는 많은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신도들이 통기타연습을 하고 경전낭송을 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콘서트를 위하여 오세암공연팀을 초청하였다는 사실이다. 주지스님과 신도들이 홍대앞 공연장에서 김현성님이 이끄는 오세암공연을 보고서 초청한 것이라 한다.
문화포교에 소홀한 한국불교
개별 사찰에서 그것도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사찰에서 큰 비용을 들어 유명공연팀을 초청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콘서트에서 사회겸 공연을 주도한 ‘김현성’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사회를 본 김현성님은 문화포교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절에 가면 기도 위주이지만 잘 만든 노래 하나가 기도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불교에서는 문화포교에 대하여 소홀한 듯 하다. 기도위주의 신행생활을 하다 보니 젊은 사람 보기가 힘든 것이다. 이는 교회와 대조적이다. 교회에서는 공연이 자주 열려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한국의 절에서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포교의 힘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노래불사를 한 성운대사의 불광산사, 가패뢰(Ke Peilei)의 불타의 자비(2010-02-10)’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대만에서 불광산사를 창립한 성운대사의 이야기기이다.
문화포교의 힘, 불광산사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대만의 불교는 오늘날의 한국불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절에는 나이 든 사람만 있고, 더구나 젊은 사람이 절에 가면 “집에 문제가 있는 것 아냐?” 또는 “애정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의심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가 절에 가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는 것이 그 때 당시의 분위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운대사는 이런 분위기를 바꾸었다. 문화포교에 주목한 것이다.
BTN에 따르면 45년 전의 성운대사는 “불교교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포교방법은 시대에 발 맞추어 나가야 해요. 요즘시대는 노래로 불사를 해야 해요. 노래로 불법을 알려야 하죠. 그래서 저는 합창단을 설립 했어요. 노래를 통해 많은 청년들이 불광산사에 들어 왔어요.”라고 말하였다.
성운대사가 문화포교를 위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이 합창단을 조직한 것이다. 그래서 절이라는 곳이 단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성운대사가 젊은이들이 절에 나올 수 있도록 합창단을 조직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자 많은 젊은이들을 절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성운대사는 어린이들에게는 사탕을 주어 절에 자주 나오는 습관을 들이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 나오면 노래도 하게 하고, 먹을 것도 주고, 이야기도 들려주어서 자연스럽게 절과 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늘의 불광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문화포교의 힘이라 볼 수 있다.
홍대앞 인디밴드를 보는 듯
덕암사 ‘수트라 경전 명상 콘서트’는 작은 공연이다. 덕암사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지하에 있는 비로전 작은 법당에서 열린 것이다. 참가한 신도들은 백명이 안된다. 약 육칠십명에 지나지 않은 사람들이 공연을 지켜 보았지만 마치 홍대앞 인디밴드를 보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영어법구경을 낭송하고
콘서트 첫 번째 순서는 덕암사신도들의 무대이다. 김현성님이 여는 노래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김현성님의 사회로 시작 되었다. 이날 콘서트의 이름이 ‘수트라’인 것처럼 경전낭송이 있었다. 덕암사에 20년 다녔다는 지혜성님의 법구경 영어낭송이다. 전에 교사이었던 지혜성님은 법구경 쌍서품에서 네 개의 게송에 대하여 한글과 영어로 낭송하였다.
지혜성님은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며”로 시작 되는 법구경 쌍서품을 낭송하였다. 이어서 “The mental natures”로 시작되는 영어법구경을 낭송하였다. 이처럼 영어로 된 게송을 낭송하는 것을 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대부분 절에서는 한문으로 된 것을 낭송하지만 영어로 된 것을 낭송하는 경우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글로벌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불자들이 이제 초기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졌다. 예전에는 불자들이 오로지 천수경과 금강경만 독송하였으나 지금은 법구경이나 숫따니빠따와 같은 초기불교 경전을 접하는 사람들도 많아 졌다. 그런 이유로 부처님의 원음에 대한 관심도 높아 졌다.
이왕이면 빠알리어로 낭송하였더라면
부처님당시 부처님이 민중어로 말씀 하셨다 하는데, 빠알리어로 낭송하면 부처님이 말씀 하시던 것이 연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구경 쌍서품 1번 게송에 대하여 빠알리어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Manopubbaṅgamā dhammā, 마노뿝방가마 담마
manoseṭṭhā manomayā, 마노셋타 마노마야
Manasā ce paduṭṭhena 마나사 쩨 빠둣테나
bhāsati vā karoti vā, 바사띠 와 까로띠 와
Tato naṃ dukkham-anveti 따또 낭 둑캉 안웨띠
cakkaṃ va vahato padaṃ. 짝깡와 와하또 빠당
정신이 사실들의 선구이고
정신이 그것들의 최상이고 그것들은 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만약에 사람이 오염된 정신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르리.
수레바뀌가 황소의 발굽을 따르듯. (dhp1, 전재성님역)
불자들이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빠알리니까야가 우리 말로 번역된 영향도 클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에 이왕이면 빠알리로 낭송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머지 않아 불자들이 빠알리어로 낭송하는 시대가 곧 닥칠 것이라 여겨진다.
기타동아리 ‘시그마108’
콘서트 제1부는 덕암사 신도들의 무대이다. 이날 덕암사의 기타동아리의 공연이 있었다. 알고 지내는 법우님 역시 이 기타 동아리 소속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습하였다고 한다.
기타 지도는 이날 홍대앞에서 활약하고 있는 레밴드의 리더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기타동아리의 명칭이 예사롭지 않다. 동아리 명칭이 ‘시그마108’이라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 홍대앞 ‘인디밴드’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평균연령60세의 동아리 모임이라 한다. 이날 기타반주와 함께 부른 노래는 ‘내가 만일’이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어어허- 이런 나의 마음을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대 위해 비가 되겠어
더운 여름날에 소나기처럼 나 시원하게 내리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워-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어어허- 이런 나의 마음을 워어어허- 이런 나의 마음을
(내가 만일, 작곡 김범수 · 작사 김범수 · 노래 안치환)
‘내가 만일’을 기타반주와 함께 부르고 있다. 그런데 스님도 포함되어 있다. 주지스님이 신도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이렇게 스스럼 없이 신도들과 함께 하며 문화포교를 하는 것은 비구니스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활불교를 표방하는 덕암사
덕암사는 조계종소속이 아니라 한다. 어느 종단에도 소속이 되지 않는 ‘생활불교’를 표방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조계종속이 아니지만 신도들은 매우 많다. 들은 바에 따르면 초파일 등을 단 숫자가 천명에 달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 방생법회를 하면 전세버스가 네 대가 동원될 정도로 한다. 이렇게 작은 절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스님의 리더십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1부 행사에서는 지선스님의 이야기도 있었다. 신도회장을 맡고 있는 분이 나와서 법화경 사경한 이야기를 하였다. 신도회장에 따르면 법화경 일곱권에 달하는 법화경 사경을 하였지만 내용은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화택의 비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모르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겸손이라고 보여진다.
스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준비해 간 씨디를 전달 하였다. 이제 까지 만들었던 여러 종류의 불교음악씨디를 모아 전달 한 것이다. 이에 스님은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들어 보겠다고 하였다.
레밴드의 ‘하얀 민들레’
공연이 끝나고 2부가 시작 되었다. 홍대앞에서 활동한다는 ‘레밴드’이다. 레밴드의 맴버는 인디밴드로서 세 명으로 구성 되어 있다. 남주 둘에 여자 한명이다. 남자 둘은 형제라 한다. 이날 레밴드에서 부른 노래는 자작곡을 포함하여 여러 곡이다.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진미령의 하얀민들레는 호응이 좋았다.
나 어릴때 철부지로 자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떠나는 것을 엄마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안녕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민들레 민들레 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 처럼
나 옛날에 사랑을 믿었지만 지금은 알아요
믿지 않아요 눈물이 아무리 쏟아져 와도
이제는 알아요 떠나는 마음
조용히 나만 혼~자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민들레 민들레 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하얀민들레, 진미령)
이날의 하이라이트 오세암공연
3부는 오세암공연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이다. 주지스님이 홍대앞에서 오세암공연을 본 후 신도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큰 비용을 들었다고 한다. 작은 사찰에서 이렇게 문화에 대한 관심을 아끼지 않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비록 법당 지하에서 육칠십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 관중에 지나지 않았지만 호응은 컸다. 때로는 함께 따라 부르고 박수쳤기 때문이다.
김현성님의 오세암공연은 노래와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배우 김진휘님이 동화작가 정채봉님이 쓴 오세암을 읽는다. 도중에 노래가 나오고, 또 나레이션이 나오고 하는 식이다.
오세암공연의 ‘오프닝’
오세암공연은 배우를 포함하여 모두 여섯명이다. 이 중에서 네 명은 김현성님의노래패이다. 노래패의 두 명은 젊은 여자 가수이다. 그런데 목소리를 들어 보니 맑고 투명하다. 요즘 걸그룹들의 모습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걸그룹의 경우 댄스로 승부하지만 노래패의 멤버들은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의자에 앉아서 목소리로만 전달한다. 오세암공연의 ‘오프닝’이라 볼 수 있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오세암 오프닝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스님 눈썹에
하얀 눈송이가
스님콧등에도
하얀 눈송이가
스님입가에
초승달 같은
웃음이 걸려 있다.
하얀 눈송이가 웃고,
초승달이 웃고,
스님이 웃으면
나도 누나도 웃네.
마음 가득히
하얀 눈이
마음 가득히
웃음이.
(김현성 작사-작곡)
노래가사는 정채봉님의 오세암을 근거로 한 것이다. 김현성님이 작사하고 곡을 붙인 것이다. 이 노래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스님 눈썹에도 눈송이가 떨어졌는걸.”
스님의 손이 눈 위로 올라가자 아이가 다시 말했다.
“콧등에도야.”
장님 소녀가 아이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누구니?”
“스님이야. 머리에 머리카락씨만 뿌려져 있는 사람이야.”
“머리카락씨만 뿌려져 있다고? 고녀석 참…….”
스님의 입가에 초승달 같은 웃음이 물리었다.
(오세암-정채봉)
오세암은 어떤 내용일까?
오세암은 어떤 내용일까? 이번 오세암공연을 보면서 오세암을 읽어 보았다. 내용은 두 오누이와 스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티없이 맑은 아이들의 마음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과도 같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길손이와 감이, 머리카락씨만 뿌려진 스님을 만나다!
눈을 감은 소녀 감이와 다섯 살 길손이에겐 서로가 세상의 전부다. 엄마의 기억이 없는 길손이의 평생 소원은 한번이라도 엄마를 가져 보는 것. 둘은 어디 있는지 모를 엄마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막 추운 겨울이 시작되려는 즈음 한 마을에서 머리에 머리카락씨만 뿌려진 설정 스님을 만난다.
사고뭉치 길손이, 조용한 절집을 뒤집다!
"아저씨 이름이 스님이야? 참 재밌는 이름이네!" 스님을 스님 아저씨라 부르며 절집 생활을 시작하게된 두꼬마. 그러나 순진 발랄이 도를 넘어 엽기적이기까지 한 길손이는 순식간에 조용한 절집을 뒤집어버린다. 이불에 오줌싸는 일은 사흘에 한번 꼴, 조용해야할 선방으로 날짐승을 몰아와 우당탕거리는 일은 이틀에 한번 꼴, 법회때 한가운데 앉아있다 방귀를 뽕 소리가 나게 뀌질 않나, 법회중인 스님들 신발을 몽창 가져다 나무에 달아놓지를 않나. 바람 소리와 풍경소리가 전부이던 조용한 절이 순식간에 길손이의 활기로 가득 찬다.
마음을 다해 부르면... 그러면 엄마가 온단 말이지?
그러나 밝음 그자체인 것 같은 길손이에게도 밖으로 내보이지 못하는 슬픈 소원이 하나 있다. 한번이라도 엄마를 가져 보는 것. '엄마..'라고 큰 소리로 마음껏 불러 보는 것. 길손이는 설정 스님을 따라 겨우내 작은 암자에서 마음의 눈을 뜨는 공부를 하기로 한다. 정말 마음의 눈을 뜨면 엄마를 볼 수 있을까? 마음을 다해 부르면... 엄마가 내게 와줄까?
설정 스님이 마을로 내려가 길손이 혼자 암자에 남은 어느 밤. 한바탕 하얀 폭설이 온 산하와 암자를 가득 덮은 그 밤. 암자에서 혼자 잠든 길손이는 자신을 품에 안고 정성스럽게 토닥거려주는 손길을 느낀다.
이런 따뜻함이... 엄마의 품일까? 지금 눈을 뜨면 엄마를 볼 수 있을까?
미디어 다음 영화에 실려 있는 줄거리이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던 오세암은 엄마를 찾는 내용이다.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말이 있듯이 어린 아이가 엄마를 찾아 떠나는 일종의 구도영화와도 같은 것이다.
구연동화(口演童話)를 읽어 주듯이
오세암공연은 배우의 나레이션과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배우가 동화 오세암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준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구연동화(口演童話)를 읽어 주듯이 표정과 감정까지 넣어 읽는다. 그래서 들어 보면 마치 라디오에서 연속극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배우는 스님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혼자 소화해 낸다. 배우 김진휘님이 읽는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만 마리의 하얀 나비들이 나는 듯 눈발로 가득한 바다를 보고 있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누나, 눈이 바다보다 넓게 내린다."
스님이 돌아보니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장님 소녀의 손목을 잡고 소나무와 나란히 서 있었다.
작은 나무 그릇을 하나씩 든 것으로 보아 얻어먹고 다니는 아이들이 틀림없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스님은 아이 옆으로 다가서며 말을 걸었다.
아이가 고개를 들어서 빤히 스님을 쳐다보았다. 가을 아침 물빛처럼 시린 눈총이었다.
스님은 아이들의 머리에 붙은 지푸라기를 떼내면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길손이야. 누나 이름은 감이구."
"길손이와 감이라아…… 거참 흔치 않은 이름이구나."
"내 이름은 향교 문지기야 아저씨가 지어 주었어. 떠돌이라는 뜻이래. 감이 누나 이름은 내가 지었구."
"감이라는 뜻은 무엇인데?"
"아이, 스님도 답답하다. 감이는 그냥 감이라는 뜻이야. 눈을 감았으니까. 그래서 감이야."
(오세암-정채봉)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장면
오세암을 읽어 보면 가슴이 찡하다. 고아가 된 오누이가 엄마를 그리워 하는 장면이 그렇다. 특히 남자 아이 길손이가 관음암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상을 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장면이 그렇다. 관련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 얼굴도 모르는 걸요. 정말이어요. 내 소원을 말할께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약속하지요? 내 소원은…… 내 소원은…… 저…… 엄마를…… 엄마를 가지는 거예요. 저…… 엄…… 마…… 엄마……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오세암-정채봉)
설악산 마등령 깊은 산중에 홀로 남겨진 아이는 관세음보살을 애타게 찾는다. 스님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관세음보살님을 찾거라. 알았지?"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 하는 아이는 벽화속의 관세음보살을 어머니로 알고 있는 것이다.
모친을 여읜 아이의 슬픔‘타박네야’
이와 관련하여 공연에서는 두 여가수가 ‘타박네야’를 부른다.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어드메 울고가니
우리엄마 무덤가에 젖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서 못간단다 물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서 못간단다 산높으면 기어가지
명태주랴 명태싫다 가지주랴 가지싫다
우리엄마 젖을다오 우리엄마 젖을다오
(타박네야)
“우리 엄마 무덤가에”라는 구절이 인상적인 ‘타박네야’는 함경도 민요라 한다. 서유석이 불러서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일찍이 모친을 여읜 아이의 슬픔을 보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오세암공연에 삽입된 것이라 보여진다.
부처가 된 아이
동화 오세암에서 다섯살 짜리 아이는 부처가 되었다. 어떻게 부처가 되었을까? 이는 추운 겨울날 깊은 산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기인한다. 장난이 심한 남자 아이를 깊은 산중의 관음암에 데려다 함께 살던 스님이 일을 보러 아래 큰절에 갔다가가 폭설로 인하여 돌아 가지 못함으로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관음암에 남겨져 있는 길손이를 찾아 한달하고 스므날 째, 무려 ‘오십일’만에 찾아 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죽어 있었다. 아니 죽은 것이 아니라 부처가 되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한 동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어린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이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나를 위로하기 위하여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까지도 얘기해 주었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꽃이 피면 꽃아이가 되어 꽃과 대화를 나누고, 바람이 불면 바람아이가 되어 바람과 숨을 나누었다. 과연 이 어린아이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오세암-정채봉)
이는 관세음보살이 한 말이다.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길손이를 가만히 품에 안으며 한 말이다. 홀로 산중에 남겨진 아이는 스님이 당부한 것처럼 관세음보살만 찾았기 때문이다.
오세암콘서트 피날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아이가 부처가 됨으로서 동화는 끝이 난다. 마찬가지로 오세암공연 역시 끝이 난다. 이 마지막 부분과 관련하여 김현성님은 작사와 작곡한 노래를 부른다.
흰눈으로 왔다가
바람으로 가고
꽃으로 왔다가
꽃구름으로 가네
어린 부처가 사는
깊은 산 곳에 가네
염불소리를 노래로
세상에 가득 번지네.
(김현성 작사-작곡)
오세암콘서트의 마지막 부분은 어린 부처에 대한 노래이다. 이 노래가 끝날 때 출연자들은 나지막하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며 정근한다.
김현성님은 누구일까?
오세암공연을 이끄는 김현성님은 누구일까? 이날 공연장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네 명으로 이루어진 노래패의 리더라 한다. 노무현추모음악회나 연등회에서 노래를 선보였다고 하였다. 특히 연등회와 관련하여 지난 8년 동안 참가하여 불교음악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김현성님과 관련 하여 검색하여 보니 BBS뉴스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에 앞서 또 다른 즐거운 볼거리가 생길 전망입니다. 조계종 봉축위원회는 25일 “불기 2553년 부처님오날을 맞아 연등축제 음악과 연희단 공연이 어우러지고 불교적인 향기가 가득한 고 정채봉씨의 동화 ‘오세암’을 노래극으로 표현한 ‘연등축제와 북 & 송(Book & Song 콘서트)’을 다음달 6일 오후7시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봉축위는 이번 노래극에 대해 연등축제의 즐거움과 산사음악의 고요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으로 기존의 산사음악회에 다양성을 시도했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이번 노래극에는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가수 겸 작곡가 김현성씨가 참여했고, 정호승 시인의 불교적인 시각이 담긴 노래들이 무대에 채워질 예정입니다. 봉축위측은 이번 행사가 줄거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첫 음악회여서
앞으로 기획되는 산사음악회에서 활용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세암 노래극으로 본다, BBS 2009-02-25)
기사에 따르면 김현성님은 ‘이등병의 편지’를 작사하고 작곡하였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가수 김도현이나 작고한 김광석이 부른 노래도 작사-작곡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작사자이자 작곡가인 김현성님은 노래도 부른다. 그래서일까 어느 기사에서는 ‘음유시인’이라는 표현까지 하였다.
부처님말씀에 곡을 붙이면
이날 콘서트의 하이라이트인 오세암공연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김현성님의 ‘무소유의 노래’가 있었다. 이날 사회를 보고 공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한 김현성님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를 불렀다. 사실상 이날 공연의 피날레라 볼 수 있다. 김현성님이 경전을 보고 작사하고 작곡하였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는 다음과 같다.
홀로 걸어가고 게으르지 않으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거센 바람을 뚫고 산을 넘어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서 간다
눈물 흘리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김현성 작사-작곡)
경전문구를 이용하여 노래를 만들어 낸 것을 보면 불교경전에 실려 있는 게송은 모두 노래가사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누구든지 경에 실려 있는 부처님말씀에 곡을 붙이면 노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김현성님이 보여 주는 것 같다.
원문을 보면
김현성님이 작사한 노래는 법정스님의 숫타니파타에서 일부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경전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라는 말이 일치한다. 이 부분과 관련된 원문은 다음과 같다.
Sīho ca saddesu asantasanto
Vāto va jālamhi asajjamāno,
Padumaṃca toyena alippamāno
Eko care khaggavisāṇakappo.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stn71, 전재성님역)
소리에 놀라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고 물에 때묻지 않는 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 게송에 대한 인연담을 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이 시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연각불이 지은 것이다. 그는 한 때에 베나레스의 왕이었다. 그는 유원에서 노닐다가 아침 일찍일어나 유원을 나가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세수를 하려고 했는데, 그 곳에서 암사자가 새끼를 낳고는 먹이를 구하러 갔다. 왕의 부하가 이것을 보고 왕에게 ‘사자의 새끼가 있다’는 것을 말했다.
왕은 ‘사자의 새끼는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시험하고자 큰 북을 두드렸다. 사자의 새끼는 그 소리를 듣고도 똑같이 누워있었다. 세 번 큰북을 울렸으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왕은 어미가 오기전에 그곳을 떠나며 ‘언젠가는 나도 갈애나 견해의 두려움이 생겨나더라도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명상하다가 다시 어부를 만났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아 나무 가지에 걸고 그물을 펼쳤는데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고 가는 것을 보고는 ‘언젠가는 나도 갈애나 견해나 어리석음의 그물에 걸리지 않고 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유원의 석축으로 된 연못가에 앉았다.
그는 바람이 불어 연꽃이 흔들리다가 물에 닿았는데도 물에 오염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도 세상에 태어났지만 세상에 오염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통찰을 닦아 연각불이 되어 그 감흥으로 이 시로 읊은 것이다.
(숫따니빠따 248번 각주, 인연담, 전재성님)
사자는 어떤 소리에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사자의 경에 따르면 “수행승들이여, 모든 짐승들은 짐승의 왕인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 대부분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진다. 동굴에 사는 자는 동굴로 들어가고, 물에 사는 자는 물에 들어가고, 숲에 사는 자는 숲으로 들어가고, 새들은 허공으로 날아 오른다.(S22.78)”라 하였다. 사자가 어떤 소리에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모든 짐승들의 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자가 포효를 하면 모든 짐승들은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에 빠진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사자후는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을 준다. 그런 부처님의 사자후는 누구에게나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을 주는 당당하고 의미 있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다’라 한 것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어리석은 견해의 그물에 걸리지 않음을 말한다. 디가니까야 ‘브라흐마잘라경(D1)’에 따르면 62가지 사견이 있다. 62가지 사견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미래를 생각하는 자로서 어떠한 수행승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갖고 과거와 미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망설을 주장한다면, 모두가 이러한 예순 두 가지 그물코를 가진 그물에 사로 잡혀, 거기에서 빠져나가려고 오르락내리락 하면 할수록, 거기에 갇힌 채 그물에 조여 발버둥치게 될 것이다. (D1)”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삿된 견해를 가지게 되면 그물코에 걸리게 됨을 말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걸림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다’고 한 것이다.
물에 때묻지 않는 연꽃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는 상윳따니까야 ‘브라흐마야짜나경(S6.1)’에 따르면 “어떤 무리의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는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서 수면을 벗어나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S6.1)”이라는 말이 있다. 또 법구경에서 “연꽃에서 물방울이 떨어져나가듯 그에게 근심이 떨어져 나간다(Dhp336)”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갈애를 극복한 자는 연꽃잎에 떨어진 물방울이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윤회의 뿌리가 되는 슬픔이 떨어져 나간다라는 뜻이다. 갈애가 소멸된 번뇌 다한 자는 더 이상 세상에 오염 되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다’라 한 것이다.
시끌벅적한 산사음악회보다 내실 있는 오세암공연이
전에 보지 못하였던 아주 특별한 콘서트가 끝났다. 이런 콘서트가 작은 사찰에서 개최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는 문화에 대한 안목이 있는 주지스님의 원력이 작용한 것이라 본다. ‘생활불교’를 표방하는 비구니스님의 원력에 따라 신도들이 함께 보고 즐기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불교도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날 특별한 콘서트를 보면서 이런 콘서트가 다른 사찰에도 퍼지기를 희망해 본다. 이제까지 한국의 절에서는 오로지 기도만 할 줄 알았지 문화에 대한 안목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에서 문화행사라고 해 보야야 산사음악회가 고작이다. 부처님오신날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가수를 초청하여 고요한 산사가 떠날 듯이 시끌벅적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산사음악회이다. 그러나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 단지 보고 즐기는 수동적 참여가 아니라 스스로 즐기는 능동적 참여를 말한다.
덕암사에서 신도들이 스스로 참여 하여 경전을 낭송하고 기타를 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더구나 주지스님과 신도들이 어우러져 공연하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다. 이처럼 문화에 대한 비용을 아끼지 않고 가장 불교적인 오세암공연을 작은 사찰에서 가졌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시끌벅적한 산사음악회보다 내실 있는 오세암공연이 좋아 보이는 이유이다.
“진짜 ‘진흙속의연꽃님’이 맞으세요?”
공연이 끝난 후 기타동아리 멤버들에게 준비한 씨디를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어디에 갈 때 늘 준비한 씨디를 나누어 주고 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불교교양대학동기님이 블로거 ‘진흙속의연꽃’이라 소개한다. 이 말을 들은 어느 법우님이 깜짝 놀라며 “진흙속의연꽃을 매번 보고 있어요”라며 말하고, “진짜 진흙속의연꽃님이 맞으세요?”하고 묻는다. 이런 말을 듣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세상이 좁다고 느꼈다. 이렇게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도 네트워크를 통하여 알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매일 글을 보고 있다고 하니 아마 이 글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필명으로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사진 등 일체 개인정보를 올려 놓지 않는다. 특별하게 내 세울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올린 글을 매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 불자에서부터 스님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타종교인도 보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다. 글을 공개로 설정해 놓으면 언제 어느 때고 볼 수 있는 것이 글이다. 그래서 글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네트워크가 깔려 있다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일터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방도 놀라워 하지만 본인도 놀란다.
오프라인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갑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다. 글을 통하여 내면의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었는데, 누군가 알아 봄으로 인하여 외면도 노출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면과 내면이 모두 노출 되었을 때 마치 벌거숭이가 된 듯 하다.
오프라인에서 필명에 대하여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반갑다 못해 감격할 지경이다. 비록 넷상에서 보통상식을 가진 불자가 보통의 글을 쓰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
2014-10-2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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