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우중의 이사순례 태고사와 보석사
총무를 맡고 나서
어느 모임이든지 회장과 총무가 있다. 그래서 회장과 총무를 중심으로 하여 돌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회장과 총무를 맡지 않으려 한다. 동창모임이나 법회모임, 또는 단체 모임과 같이 이권이 없는 경우가 그렇다.
법회모임에서 총무를 맡게 되었다. 이제까지 한번도 소임을 맡아 본적이 없음에도 총무소임을 맡게 되다 보니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 진 것 같다. 그런 총무직은 무보수명예직이다. 잘해야 본전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는 것은 책임감과 의무감이다. 그러나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을 요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모두 맡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총무직을 맡게 되었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총무직이 내키지 않았지만 법우님들의 추천과 투표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법회 모임에 참여 하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11년 전 불교교양대학에 입교한 법우님들이 지금까지 교류해 오고 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서일까 하나 둘 떠나면서 현재 남아 있는 인원은 4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처음 발심을 한 이래 지금까지 모임이 유지 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 같은 일이다.
법회나 순례 등 각종 모임에는 빠짐 없이 참여 하여 왔다. 그리고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개근하다시피 하다 보니 모임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총무라는 직책을 맡게 된 것 같다.
총무의 역할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희생과 봉사라 본다. 법우님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불편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법우님들을 ‘향상(向上)’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는 모임이 단순한 친목모임이 아니라 종교모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교를 인연으로 하여 맺어진 인연이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을 통하여 서로 향상하는 계기로 만들어 가는 것이 모임의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이사순례와 약령시장 방문
총무를 맡고 나서 첫 번째 행사를 치른 것이 순례법회이다. 이번 춘계순례법회를위하여 많은 것을 준비 하였다. 가장 먼저 순례지를 정하는 것이다. 복수의 후보지를 선정하여 카톡이나 문자로 추천 받는다. 그러나 의외로 응답률은 저조 하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고 바빠서 일 것이다. 재차 통보해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 의욕이 상실된다. 답신을 받았으면 곧바로 알려 주면 좋으련만 모두 같은 마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어느 모임에서든지 볼 수 있다.
후보지가 선정되고 나면 버스를 대절해야 한다. 20명이 넘으면 40인승 대형버스가 좋다. 그러나 전세버스는 인원과 관계없이 봉사료를 포함하여 일정금액의 대여료가 지출되어야 한다. 탑승인원과 관계없이 버스비용은 그대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많이 참석해야 유리하다. 그러나 4월에 행사가 많아서인지 참여율이 저조하다. 이번 순례에 동참한 법우님과 초청한 사람을 합하여 24명에 지나지 않는다.
후보지가 선정되었다. 충남 금산에 있는 태고사와 보석사이다. 여기에 한 곳을 더 추가 하였다. 금산에 있는 약령시장이다. 이사순례와 시장방문을 하여 세 곳을 둘러 보는 일정으로 잡은 것이다.
사찰경제와 지역경제를 위하여
흔히 ‘삼사순례’라 한다. 불자들이 순례법회 갈 때 한 곳만 들르는 것이 아니라, 가는 김에 세 곳의 절을 본다 하여 삼사순례라 한다. 한때 삼사순례를 하였다. 그러나 이후 이사순례로 줄어 들었다. 삼사순례 하기에는 일정이 빠듯할 뿐 아니라 세 곳을 방문하는데 따른 피로감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순례에 시장방문을 추가 하였다. 지역에 있는 시장을 말한다. 이사순례를 함으로서 인하여 신심을 고취시키는 것도 좋지만 지역의 시장을 방문하여 지역특산품을 구매하는 것도 지역경제를 돕는데 작은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사찰순례를 함으로 인하여 ‘사찰경제’에 도움을주고, 지역시장을 방문함으로 인하여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에 뿌리가 없는 한국불교
우리나라 유명사찰은 전국에서 찾아 오는 불자들에 의하여 유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사찰은 전국구나 다름 없다. 지역에 사는 불자들이 찾아와 사찰경제가 유지 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서 오는 불자들에 의하여 사찰경제가 유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불자들은 전국의 사찰을 대상으로 하여 순례한다. 우리나라에 전통사찰이 900여곳이라 하니 매월 순례 간다고 해도 다 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전통사찰이 전국구처럼 되다 보니 불교가 지역에 기반을 두지 못하고 있다.
지역에 기반이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다는 것과 같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불교공동체를 건설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타종교와 매우 비교된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경우 철저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반드시 교회가 있다. 그래서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불교에는 사람사는 곳에 사찰을 중심으로 한 불교공동체가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절이 거의 대부분 산중에 있기 때문이다.
절이 산중에 있다보니 전국에서 불자들이 찾아 온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전국구이다. 지역구는 없고 전국구만 있을 경우 지역공동체가 형성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불교는 뿌리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전국구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사람 사는 곳에 절이 없다. 절에 가려면 산중으로 가야 한다. 그 결과 산중에 있는 전통사찰의 경우 전국에서 찾아 오는 불자들로 인하여 전국구화 되었다. 전국에 있는 수 백개에 달하는 전통사찰은 전국불자들의 사찰과 다름 없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불자들은 전국의 사찰을 대상으로 순례법회를 다닌다. 이런 점은 산중에 있는 사찰의 경제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전국구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트럭을 개조한 운송차량
날씨는 잔뜩 흐려 있고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처음 떠나는 순례이다 보니 비가 오는 것쯤은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태고사는 서울에서 약 186키로미터 거리에 있다. 시간상으로 약 2시간 40분 가량 걸린다. 주차장에 내려서부터는가파른 산길을 약 한시간 가량 걸어 올라가가야 한다. 그런 불편함을 해소 해주기 위해서일까 사찰측에서는 트럭을 개조한 운송차량을 상시 대기 시켜 놓고 있다.
트럭에 몇 명이 탈 수 있을까? 이번 순례에 24명이 동참하였는데 두 번 왕복으로 모두 해결 되었다. 운전석에 있는 앞좌석에 2명, 운전석 뒤에 좌석에 3명이 앉을 수 있다. 트럭 짐칸을 개조해서 만든 곳에는 9명이 앉을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래서 한번에 14명을 실을 수 있다.
트럭에 몸을 싣고 십여분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절 바로 입구는 아니다. 차에서 내려 다시 십여분 산길을 올라 가야한다.
하심(下心)으로 올라가는 길
요즘 대부분 산사의 경우 절의 입구까지 차가 들어 갈 수 있도록 도로가 닦여져 있다. 그러나 태고사의 경우 차를 이용하여 절에 들어 갈 수 없다. 누구든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와 같은 절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절로 올라 가는 길은 하심의 길이다. 발아래를 쳐다 보며 한걸음 한걸음 옮겨야 한다. 절의 입구까지 쉽게 차로 가는 것과는 다르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한걸음 올라 갔을 때 모두 평등하다.
산길을 올라 갔을 때 거대한 바위와 마주 하였다. 바위 사이로는 작은 틈이 보였다. 이름 하여 ‘석문(石門)’이라 한다. 천연으로 만들어진 출입구인셈이다. 그리고 일종의 일주문이다.
석문은 사람 하나 간신히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비좁다. 안내판을 보니 기암이 문처럼 생겼다고 석문이라 한다. 붉은 한자어로 석문이라 쓰여 있는데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친필이라 한다.
기적처럼 서 있는 전각들
석문을 통과하자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다. 문 이전 세계는 속세라면 문을 통과하고 난 후 세계는 불계와 같다. 멀지 않은 곳에 기적처럼 서 있는 전각들이 보인다.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곳에 전각이 세워져 있을까? 차도 오를 수 없는 험한 길임에도 안개비속에 신기루처럼 서있다. 주변을 보니 내린 비로 새싹이 돋아 나고 꽃이 피어 있다. 그리고 나이를 알 수 없는 느티나무는 바위를 통째로 먹고 있다.
대둔산 깊숙한 곳,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에 태고사가 숨어 있는 듯이 서 있다. 그런데 마치 성채처럼 보인다. 축대를 여러 단으로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에 전각을 지어 놓아서 ‘철옹성’을 보는 듯 하다.
대둔산 자락에 있는 절
태고사는 어떤 절일까? 백과사전에 따르면 충남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 대둔산 자락에 있는 절이다. 그래서 대둔산 태고사라 한다. 그런 태고사 역시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이 그렇듯이 유래를 보면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하는데 이곳 태고사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현재 태고사는 조계종 제6교구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되어 있다.
태고사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초하루이어서인지 초하루 법회가 열리고 있다. 태고사에 다니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주법당이라 볼 수 있는 극락보전에는 신도들로 꽉 차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 바로 옆에 관음전에 순례팀이 자리를 잡았다.
비는 계속 내린다. 빗줄기가 약해지면 저 아래 세상이 잠깐 보인다. 그러나 아래 세상은 구름에 쌓여 있다. 상당히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깨친 것이 없어 수미산(須彌山) 주인집으로 머슴 살러 갈거여”
순례팀이 관음전에 자리 잡으니 화주보살이 들어 왔다. 절의 살림을 맡고 있다시피하고 있는 화주 보살로부터 절의 유래와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화주보살에 따르면 현재 태고사는 도천스님이 중창불사한 것이라 한다. 수월스님의 손자뻘 되는 도천스님이 한국전쟁후에 이곳에 주석하면서 50여년 동안 불사를 이루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도천스님은 어떤 분일까? 검색해 보니 2011년 입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입적하였을 때 세수가 무려 ‘102세’ 이었다.
도천스님과 관련하여 언론에 난 기사가 있다. 입적하기 전에 도천스님은 “나는 깨친 것이 없어 수미산(須彌山) 주인집으로 머슴 살러 갈거여”라 하였다고 한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도천스님(1910년-2011년)
도천스님은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다. 도천 대종사는 1929년 19세의 나이에 금강산 마하연에서 묵언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49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20여년간 금강산 마하연사 만회암, 묘향산 선원사, 해인사 퇴설당, 도봉산 망월사 등 제방선원에서 참선수행하였다. 1962년에 한국전쟁으로 불타 폐허가 된 태고사터와 인연을 맺은 후 50여 년간 ‘머슴처럼’ 일하며 태고사를 일으켜 세웠다고한다.
태고사 법성행 화주보살
태고사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화주보살에 따르면 도천스님의 화장을 한 후에 22과의 사리를 수습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방광을 하였다는 것이다. 화주보살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이 많다.
초등학교 교사를 엮임한 바 있는 화주보살은 두 다리를 자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1년전 이곳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관음기도를 한 끝에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 기적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런 화주보살의 작은 방에는 상담하려는 불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화주보살과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총무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태고사의 접촉창구가 화주보살이기 때문에 화주보살의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화주보살의 방에는 신기한 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그것은 백중날 회향하면서 물건들을 태우면서 찍은 사진이라 하는데 사진속에는 놀랍게도 관세음보살의 형상을 한 불꽃이 보였다.
사진을 보면 화염속에 영락없는 관세음보살의 형상이다. 이 사진을 코팅처리하 신도들한테 나누어 주고 있는데 ‘2014년 8월 10일 태고사 정안스님 백중기도 회향’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누군가는 미신이라고 간주할지 모른다. 그러나 신심있는 불자들은 사실로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의미와 가치를 부여 하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청정한 식단의 점심공양
초하루날이어서인지 태고사신도들이 많다. 극락보전에서 주지스님의 예불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화주보살의 안내로 먼저 점심공양을 하기로 하였다. 미리 점심공양하기로 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순례팀은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공양을 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청정한 나물과 야채, 묵은 김치 등으로 이루어진 웰빙식단이다.
상추가 매우 푸짐하다. 상추에 된장을 발라 한입 무니 입안이 청정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잡념 없이 청정한 음식을 먹고 산다면 수행이 절로 될 것 같다.
자재창고에 가보니
이번 태고사순례는 화주보살이 이끌어 주고 있다. 화주보살의 안내로 절의 유래와 역사 뿐만 아니라 불사이야기도 들었다. 화주보살은 불사를 하기 위하여 자재를 쌓아 놓은 창고로 안내 하였다.
창고에는 각종 자재와 함께 공구 등이 보였다. 놀랍게도 원목이 창고 가득 쌓여 있었고 심지어 철도건설용으로 사용되는 철로도 보였다. 전기기계톱이 있는가 하면 집을 짓기 위한 여러 종류의 공구와 농기구 등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자재와 공구의 사용용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또 다른 전각을 짓는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아직 불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한다. 이런 자재와 공구는 도천스님이 사용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오늘날 심산유곡에 기적처럼 보이는 철옹성 같은 전각이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태고사는 결코 기적이 아니다. 한스님의 오십년 집념이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이다.
선방은 금지구역
자재창고를 지나면 선방으로 연결된다. 아래로는 절벽이고 위로는 산으로 막혀 있는 곳에 선방이 있다. 이런 선방이 위치한 태고사는 우리나라 10승지중에 하나라 한다.
태고사 절터를 원효대사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발견하고 나서 너무 기뻐서 3일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화주보살에 따르면 현재 최고의 선방의 터로서 이곳 대둔산태고사와 도봉산망월사, 그리고 경북 태조산도리사를 쳐 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수행이 잘 되는 곳이 태고사라는 것이다.
화주보살은 선방으로 안내 하였다. 요즘 해제철이라 스님들이 머물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순례팀을 위하여 공개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 선방은 불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어느 절이든지 선방은 금지구역이다. 어느 선방이든지 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이곳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곳이니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경고판이다. 그래서 재가자들이 절대로 들어 갈 수 없는 금지구역과도 같다. 그럼에도 화주보살은 순례팀을 위하여 특별히 선방으로 안내 하였다.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아래로는 절벽이고 위로는 산으로 가로 막혀 있는 선방은 입지조건이 좋은 것 같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반전의 희망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렇게 절벽 위에 있는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은 백척간두의 화두를 들었을 것이다.
선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수십명이 들어 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중앙에는 석가모니부처님상이 있고 좌우로 협시보살이 있다. 아마 이곳에서 스님들이 한철 먹고 자며 수행하며 보냈을 것이다.
선방한켠에는 ‘용상방’이 붙어 있다. 선방에서 한철 사는 스님들의 각자 역할이 적혀 있다. 조실은 ‘종산대종사’라 되어 있다. 회주는 ‘문월대선사’, 한주는 ‘원근’, 입승은 ‘효원’, 등의 문자가 보인다. 모두 23개의 소임으로 되어 있는 것이 용상방인데 이곳 선원에서는 총 9명의 법명이 올려져 있다.
재가자가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는 곳이 선방이다. 그럼에도 화주보살의 안내로 스님의 세계 깊숙히 들어왔다. 순례팀은 부처님에게 삼배를 올리고 선방을 나왔다. 그런데 화주보살이 “선방문고리만 잡아도 3대에 복이 온답니다”라고 말하자 법우님들은 너도 나도 문고리를 잡는 것이었다.
화주보살에게 삼배를 하고
화주보살 이름은 법성행님이다. 화주보살이 순례팀을 맞이 하여 이곳 저곳 소개하며 절의 유래를 들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행담도 알려 주었다. 그러다보니 마치 스님의 법문처럼 재미 있게 들었다. 이에 감동한 어느 법우님이 화주보살에게 삼배를 하자고 건의 하였다. 이렇게 화주보살에게 법문아닌 법문을 듣고 더군다나 삼배의 예까지 올리게 된 것은 순례법회 십일년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전나무행렬이 열병식하듯
순례팀은 태고사순례를 마치고 보석사로 향하였다. 태고사에서 45분 거리에 있는 보석사는 작고 고즈넉한 사찰이다. 비가 내리는 듯 마는 듯한 우중에 주변 풍광을 보니 원시 그대로이다. 일주문 입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나무행렬이 열병식하는 하는 것 같다.
이곳 저곳에 매혹적인 꽃이
보석사 경내는 한산하다. 비가 와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러나 내린 비로 인하여 산천초목은 활기가 넘친다. 이곳 저곳에는 매혹적인 꽃이 피어나 있어서 꽃잔치를 보는 것 같다.
저 멀리 천년 되었다는 은행나무도 보인다. 1990년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수령이 1,080년으로 되어 있다. 높이가 40미터이고 둘레가 10.4미터에 달한다. 지난 천년동안 이곳 보석사의 흥망성쇠를 지켜 보았을 것이다.
11년 지기 법우님들과 함께
순례팀은 보석사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모두 24명이 동참한 법우님들은 이제 11년 지기가 되었다. 일년에 네 차례 순례를 하고 여러 차례 법회를 하는 동안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2015-04-2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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