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Only don’t know & only doing it, 눈 푸른 납자들의 무상사

담마다사 이병욱 2015. 5. 24. 12:03

 

 

Only dont  know & only doing it, 눈 푸른 납자들의 무상사

 

 

불가에 눈 푸른 납자라는 말이 있다. 전 정종스님의 다비식에서 일생토록 좌복을 여의지 않으신 눈 푸른 납자의 본분표상이셨도다.”라 하였다. 눈 푸른 납자는 어떤 뜻일까? 납자(衲子)라는 말은 납의를 입은 사람이란 뜻으로 승려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눈 푸른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

 

눈 푸르다하였을 때 눈이 시퍼렇다는 말이다. 서슬 푸른 눈을 말한다. 다름아닌 눈이 살아 있다는 말이다. 화두를 들고 수행정진 하는 수행자의 기상을 표현한 말이라 볼 수 있다.

 

눈 푸른 납자들이 사는 곳이 있다. 기상으로서 눈이 푸를 뿐만 아니라 실제로 눈 푸른 납자들이 사는 곳이다. 충남 계룡시에 있는 무상사(無上寺)’이다.

 

무상사(無上寺)로 순례법회를

 

무상사로 순례법회를 갔다. 바른불교재가모임이 창립되고 난 후 처음 가는 순례법회이다. 이번 춘계순례법회는 23명이 참가 하였다. 미국 뉴욕에서 오신 법우님들도 있고 대구와 대전에서 법우님들도 있다. 멀리서 온 법우님들은 모두 무상사에서 합류하였다.

 

무상사로 순례가는 날은 양재역에서 출발하였다. 5 23일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에 떠났다. 그 동안 몇 차례의 모임을 가져서 낯익은 법우님들이 대부분이다.

 

자주 만나면 얼굴이 익숙해진다. 더구나 뚜렷한 목적을 가진 모임이기에 일종의 동지의식도 있다. 그렇다고 전투적이 아니다. 대척점에 있는 자들은 항상 진영논리로 몰고 가려 하지만 결코 그들의 생각과 같지 않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며 불교가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며 수행불교를 실천하는 순수한 풀뿌리 재가모임공동체이다.

 

팔작지붕형태의 여법한 가람

 

무상사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황금연휴의 시작으로 인하여 고속도로 사정은 좋지 않았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여 사시불공 참석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무상사는 전통사찰이 아니다. 숭산스님이 국외 포교에 큰 관심을 기울여 2000년 국제선원 무상사를 세운 것이 시작이다. 그래서일까 모두 눈 푸른 외국인 스님들 뿐이다. 20명 가량이라 한다.

 

외국인스님들이 사는 무상사는 한국 전통사찰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사찰에서 볼 수 있는 팔작지붕형태의 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약간 비탈길에 세워진 세동의 건물은 여법한 가람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스님들이 주방을 보고 허드렛일을

 

무상사에 너무 늦게 도착하였다.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하였기 때문에 공양식당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공양식당에서는 놀랍게도 외국인 스님들이 주방에 있었다. 한국의 절에는 공양주보살이 있어서 주방일을 보고 있으나 이곳 무상사에서는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주방일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바깥에서도 마찬가지 이었다. 외국인 스님이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사찰이라면 처사 또는 부목이라 불리는 남자가 해야 될 일이다. 그럼에도 머리를 깍고 승복을 입은 눈 푸른 외국스님들이 사찰의 잡일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스님들이 사는 절이지만 모두 한국식이다. 가람도 그렇고 입고 있는 승복도 그렇다. 더구나 먹는 음식도 한국식이다. 이날 공양식당에서는 비빔밥형식이었다. 절에서 재배한 채소와 묵은 김치 그리고 나물과 된장 등 한국의 사찰에서 맛 볼 수 있는 음식이다.

 

 

 

 

 

이곳에 사는 외국인스님들은 생긴 모습만 외국인일뿐 정신은 한국인스님들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스님상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스님들이 스님의 상()을 세우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래서 한국절에서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이어 스님상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선방에 앉아 보니

 

점심공양후 Y법우님의 안내로 선원에 가 보았다. 시간이 약간 남아서 몇 명이서 대웅전 아래에 위치한 선원에 간 것이다. 선방은 선원건물 2층에 있다. 이곳 무상사 약 칠 년 다닌 바 있는 법우님에 따르면 해제철에 이곳 선방에서 수행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해제철이다. 그래서일까 자유로이 들어 갈 수 있었다. 선방의 내부는 무척 넓다. 중앙 벽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벽을 바라보고 참선할 수 있도록 사방에 방석이 놓여 있다.

 

 

 

 

 

 

방석 위에 자리를 잡았다. 공양 후 잠시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이왕 온 김에 참선을 하고자 한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몇 해전 배운 위빠사나를 떠 올리며 호흡을 보려 노력하였다.

 

선방에 앉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흔히 선방문고리만 잡아도 큰 공덕을 짓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선방에 잠시라도 앉아 보니 큰 공덕을 짓는 것 같다. 청정한 수행자들이 수행하던 곳이어서일까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밖에서는 새소리가 들리고 한줄기 청아한 바람이 인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지만 아마 늘 수행하던 곳이라 청정한 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대봉스님과의 차담(茶談)

 

오후일정이 시작되었다. 선원 1층에서 대봉스님과의 차담이다. 커다란 방에 둥그렇게 둘러 앉았다. 먼 곳에 개별적으로 온 법우님들도 합류하니 방이 꽉찬 느낌이다.

 

 

 

 

 

 

법문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숭산스님은 외국인 제자들이 한국말 배우는 것을 금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말을 배운 스님은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유럽에 나가서 살고 있다. 한국말을 배우지 못하게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대봉스님은 시종일관 영어로 법문하였다.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천천히 말하였다. 그러나 영어가 짧은 사람들은 알아 듣기 힘들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법우님이 통역하였다. 영어가 되는 법우님은 직접 영어로 소통하였다.

 

 

 

 

 

 

둥그렇게 빙 둘러 앉은 방에 다과와 과일이 나왔다. 차는 대봉스님이 팽주가 도되어 직접 우린 차를 대접하였다. 노랑 색깔의 차맛은 달짝지근하여 특유의 차의 향과 맛이 났다.

 

 

 

 

 

 

 

다과는 외국인 행자스님들이 직접 서빙하였다. 한국의 사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귀한 손님을 대하듯 정성스럽게 준비한 과자와 과일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 측에서는 준비한 케익을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차와 과자와 과일과 케익이 어우러진 풍성한 자리가 되었다.

 

 

 

 

 

대봉스님의 다양한 표정

 

대봉스님은 엄격한 수행자이기도 하지만 표정은 매우 자애롭다. 그리고 때로 유머감각이 넘친다. 영어로 법문하는 중에 갖가지 표정을 보면 판토마임을 하는 것 같다. 연기자처럼 얼굴과 손짓으로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영어를 잘 알아 듣지 못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배려라 보여진다.

 

 

 

 

 

 

 

 

 

 

 

 

 

 

 

 

 

 

수행을 강조하는 대봉스님

 

대봉스님은 한국불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언론과 매스컴에서 종종 소개 되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수행과 관련된 이야기는 직접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날 대봉스님은 차담을 하면서 숭산스님과의 인연과 가르침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대봉스님이 말하는 숭산스님은 불자들이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스님에 따르면 사실상 부모나 다름 없다. 깨달음으로 인도해주는 스승인 동시에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대봉스님은 수행을 강조하였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 보다 수행이 중요함에 대하여 경허선사의 일화로 설명하였다. 강사로 이름을 날리던 경허스님이 전염병이 든 지역에 들어갔을 때 죽음의 두려움을 느낀 것에 대하여 예로 들었다.

 

스님이 강조한 것은 생사문제이다.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재가불자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수행이 없다고 하였다.

 

대봉스님에 따르면 무상사에는 한국식신도가 없다.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은 승속의 구별이 없어서 수행에 열중하는데 이런 점이 한국의 사찰과 다르다는 점이다.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 only doing it(오직 할 뿐)

 

숭산스님은 미국에서 수행공동체를 만들었다. 초기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보스턴 프로비던스에 수행공동체를 만든 것이 시초라 한다. 이후 미국 각지에 수행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5만명 배출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숫자이다. 전세계 곳곳에 숭산스님의 수행공동체가 있다고 한다. 대전에서 참석한 법우님에 따르면 전세계에 있는 수행처를 찾아 가는 여행을 한 바 있다고 하였다. 그런 숭산스님의 제자들은 백인 고학력 중산층 들이 대부분이다.

 

대봉스님은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잘 이어받고 있다. 그렇다면 숭산스님의 지도방식은 어떤 것일까? 놀랍게도 매우 단순하다.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그것은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  “only doing it(오직 할 뿐)”이다.

 

대봉스님에 따르면 특별한 가르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목구멍에 음식을 넘길 때 숟가락, 젓가락을 따지지 않는 것과 같이, 아픈 사람에게 맞추어 가르침을 펴는 것이지 가르침이 있어서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무언가 알려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 이라 한 것은 개념화 방지라 볼 수 있다. 명칭을 부여 하여 분별하여 따지면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을 말한다. 간화선 삼요체에서 대의심과 같은 말이다. “오직 할 뿐(only doing it)”이라 한 것은 정진을 말한다. 간화선 삼요체에서 대분심에 해당된다. 진리를 향한 구도의 열정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승속이 함께하여 일정기간 묵언수행하다 보면 본래면목을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깨달음 깨달음이라 한다. 대체 깨달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초기경전을 접하면 모든 것이 투명해진다.그 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 정리 되는 듯한 느낌이다. 깨달음도 그렇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명쾌하다. 그것은 사성제를 아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최초 설법이라 일컬어지는 초전법륜경에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괴로움을 아는 것부터 깨달음은 시작된다. 그 실천방법으로 팔정도가 제시 되어 있다. --혜 삼학을 닦아 깨달음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에서는 깨달음에 대하여 실체론내지 존재론으로 접근 하는 것 같다.

 

종교에 실재론인식론이 있다. 실재론은 존재의 근원내지 궁극적 실재를 가정한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 있어서 이 세상의 근원이 되고 변치 않는 어떤 원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인격화 하면 야훼, 알라, 브라흐마, 하나님, 참나 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실체론을 부정하였다. 이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확인 된다. 그대신 인식론적 가르침을 펼치셨다. 인식이라는 말과 동의어는 깨달음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인식론인가?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한다. 무엇을 깨닫는가?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는 실체론 내지 존재론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와 명백히 다르다. 부처님 당시 브라만교를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은 존재의 근원으로서 브라흐마(Brahma)와 개아가 있다는 아뜨만(Atman)을 비판하였다.

 

불교는 실체론 내지 존재론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식론이다. 이는 깨달음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호흡을 통하든 어떤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대상에 집중하고 관찰하였을 때 끊어지는 것이 있다. ‘까마부의 경(s41.6)’에 따르면 가장 먼저 언어적 형성인 사유와 숙고가 끊어진다. 다음으로 신체적 형성인 호흡이 끊어진다. 마지막으로 정신적형성인 지각과 느낌이 사라진다. 모두 끊어지고 사라졌을 때 이를 인식할 수 없다. 이를 상수멸정의 상태라 하고 상수멸정은 일반적으로 열반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런 경험은 어떤 것일까? 어떤 존재의 근원이나 궁극적 실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무상(無常)’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다(無我)’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래서 불교에 대하여 존재론을 논하는 종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앎과 봄(如實智見, yathābhūta ñāa dassana)’의 인식론적 종교라 한다.

 

궁극적 경험을 하였다 하여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미세한 번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수행과정에서 수 없이 궁극적 체험을 할지라도 남아 있는 번뇌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초기경에 따르면 일곱생 이내에 완전히 소멸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것이 불교의 깨달음이다.

 

숭산스님과의 인연

 

대봉스님은 1950년생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환갑이 지난 65세이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나이 들어 보인다. 그러나 자애로운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이다. 또 한편으로 유머러스하다. 말과 표정에 변화를 주면 훌륭한 연기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봉스님에 따르면 숭산스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7년이라 한다. 스님의 나이가 27세 되던 해이다. 그때 당시 소문을 듣고 찾아갔었는데 3일만에 , 이사람이 내 스승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제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대봉스님은 젊은 시절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길렀다고 하였다. 요즘말로 하면 히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숭산스님을 만나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바뀌었다고 하였다.

 

대봉스님은 1983(33)에 출가하였다. 미국에서 출가한 것이다. 초창기 공동체생활에서 회원들간에 부부의 연이 맺어지고 가족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이 생겼을 때 가족부양의 의무로 공동체생활에 전념하기 어려워 공동체 약화 되었다고 한다. 이에 스님은 공동체를 유지 하기 위한 방편으로 출가하였다 한다.

 

숭산스님의 영정

 

대봉스님은 현재 한국 무상사에 있다. 무상사에는 외국인 스님들만 있을 뿐이다. 한국인 스님들은 일체 보이지 않는다. 오후 늦은 시각 대웅전에는 염불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외국인스님이 목탁을 쥐고 서가모니불정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무슨염불인지 몰랐으나 가까이 다가가 들으니 서가모니정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웅전 한켠에는 숭산스님의 영정이 있다.

 

 

 

 

 

숭산스님의 영정은 무상사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대웅전은 물론 선원 1층 홀에서도 볼 수 있고 그 외 다른 장소에서도 볼 수 있다. 아마 숭산스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 , “only doing it(오직 할 뿐)”을 실천하기 위한 삶으로 본다. 그런 무상사는 숭산스님(1927-2004)이 입적하기 4년전인 2000년 만든 것이다. 숭산스님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에 무상사를 만든 것이다.

 

 

 

 

 

최근 무상사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 무상사를 넘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종단에서 절뺐기하듯이 무상사를 빼앗아 가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었을 경우 숭산스님 가르침의 맥은 단절 될 것이다.

 

뉴욕 조계사도 절뺐기의 대상?

 

뉴욕에서도 절뺐기가 진행중인 것 같다. 이와 관하여 뉴욕에서 어느 법우님이 이번 순례법회에 동참하였다. 숭산스님의 원력으로 만들어진 뉴욕조계사가 기성종단에 넘어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60년대 정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절뺐기가 21세기 미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미국교포불자가 이번 순례에 친구 2명과 함께 동참하였다.

 

교포법우님은 대봉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될지 물어 보았다. 교포법우님에 따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고 하였다. 국제선원이 있는 화계사에 갔더니 주지스님은 종단에서 임명 되었기 때문에 도와 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던 차에 바른불교재가모임이 창립된 것을 알고 연락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바른불교재가모임에서는 이 사건에 대하여 심도 있게 검토하였다. 미주불교뉴스에 따르면 뉴욕조계사와 관련된 문제가 실려 있다. 요지는 이렇다.

 

 

이번에 발생한 뉴욕 조계사 사태에 대해 조계사의 한 회원으로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저는 20 여년 넘게 숭산스님의 제자, 묘지스님의 법우, 제자로 지내면서 조계사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뉴욕 조계사는 숭산스님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맨하탄에 꼭 한국 절을 세우라" 는 말씀을 깊이 받든 묘지 스님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가꾸어 온 절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묘지스님께서 갑자기 이 생을 떠나가신 것이 조계사에서 숭산스님의 법 전통을 배우며 마음을 닦아오든 저희 모두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숭산스님 문중에서 출가하시고 묘지스님의 속가 친 동생이신 도암스님을 조계사 주지로 모실 수 있게되어 모두 행복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도암스님을 모신지 2년이 넘은 지금  뉴욕 조계사는 공동체의 분열이라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열 사태를 안타깝게 지켜본 저는 조계사를 사랑하는 한 도반으로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1.
뉴욕 조계사는 한국 조계종이나 미국 프로비덴스의 관음선원과 관계는 있지만 독립된 미국 법에 등록된 비영리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운영되며 주지 및 모든 회원들은 이사회의 결정을 따라야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지를 모시냐도, 또 그 분과 절의 방향이 안맞으면 주지를 바꾸는 것도 이사회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가 평화롭게 해결되려면 현 주지이신 도암스님께서 현존하는 이사회의 결정을 존중하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2.
제가 조계사 분열 원인을 깊이 숙고해보니 이것은 한국의 절 문화와 미국의 비영리 단체의 문화의 충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암스님께서는 한국식으로 주지의 권위를 가지고 절을 이끌어가시려는 것 같고 이사회는 이사회의 입장에서 본 조계사의 방향과 미래를 생각해서 이사회의 권위로 도암스님께 사임을 요청했다고 봅니다.

3.
이런 의견 충돌은 한 비영리단체의 성장과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이것이 절의 분열이라는 결과로 이어진것은  도암스님이 생각하시는 조계사의 정체성과 미래와 이사회가 생각하는 그것 사이의 의견의 차이를 좁힐수 없었다는데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4.
도암스님께서는 숭산스님의 가르침에 "뭔가가 답답하고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는 말씀을 도처에서 고백하셨고 "진제스님께 가셔서야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도 사람에 따라 다르니 개인의 입장은 존중되어야한다고 믿고 그 고백이 도암스님께는 진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도암스님께서 어떤 스승에게서든 분명한 답을 얻으셨다면 그것은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5.
그런데 문제는 숭산스님께로부터 충분한 선지식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숭산스님의 많은 제자들에게는 도암스님의 입장이 상처가 된 것 같습니다.

6.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인 입장이 구조적인 조정으로 연결되려할 때 숭산스님의 선지식을 따르는 현 이사회에서 도암스님의 사임을 요구한 것 같습니다. 그 근거에는 진제스님께서 미국에 한국 불교의 법을 포교하려는 의도가 계셨고 현재의 조그만 규모의 조계사를 팔아 그 돈과 진제스님 문중으로부터 오는 큰 포교 자금을 합쳐 큰 절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도암스님께서도 저와 대화하는 중에 진제스님의 미국 포교의도를 말씀하셨고 진제스님께서 "200억이면 되겠나?" 면서 자금 마련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7.
하지만 숭산스님의 법을 따르는 조계사 이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숭산스님의 유언을 따라 묘지스님께서 목숨과 바꾼 조계사를 팔아 진제스님의 도량과 합쳐야하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뉴욕 조계사 건물은 뉴욕 법 하에 렌트 콘트롤에 묶여 있어 팔기도 무척 어려운 빌딩입니다. 팔아보았자 모기지를 빼면 아마 20억 미만의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러니 이사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가지고 계신 도암스님의 사임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보여집니다.

8.
맨하탄 조계사의 설립부터 성장 과정을 지켜보아온 저의 소견으로는 진제스님과 도암스님께서 미국 포교의 큰 뜻이 있으시면  해인정사나 동화사의 자금으로 맨하탄에 새 포교원을 지으시고 그 새 절에 도암스님께서 주지로 가시면 모두가 행복한 Win-Win 의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 맨하탄 96가에 조계사가 있고 124가에 법륜스님의 정토회가 있으니 새 포교원을 뉴욕 대학이 있는 다운타운 14가 정도에 지으시면 한국 불교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펼쳐질 좋은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9.
현재 진제스님께서 한국 조계종의 종정으로 계시고 또 경제적인 능력도 있으시니 조계사는 숭산스님 도량으로 그 역사와 정체성을 존중해주시면서 이번 기회에 뉴욕에 한국 불교를 펼치실 청정 도량을 지어주신다면 불법의 은덕을 입은 저희들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은혜는 없을 것 같습니다.

10.
그래서 저의 소견은 도암스님께서 뉴욕 조계사 이사회의 뜻을 미국 법에 따라 또 큰 자비심과 법력으로 받아주셔서 사임을 하시고 조계사의 평화와 화합을 도모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모든 여건이 모여지면 맨하탄에 진제스님의 법을 따르는 도량을 마련하시고 거기서 주지로서 뜻을 펼치시면  모든 분쟁이 아름답게 해결될 것 같습니다.

불법의 광명한 힘으로 모든 것이 평화롭게 해결될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대광명, 정현경 모심
Professor of Interfaith Engagement
Union Theological Seminary
3041 Broadway
New York, NY 10027

 

(미주불교뉴스, 2014-11-08, <뉴욕조계사-2> 정현경 교수의 편지

 http://www.koreanbuddhism.us/zeroboard/view.php?id=budpress&no=104 )

 

 

미국 조계사사건은 최근 동국대 사건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종단에서는 절뺐기 하듯이 학교도 빼앗아 버린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뉴욕 조계사 역시 절뺐기 대상이라 볼 수 있다. 교포법우님은 현재 진행중인 문제에 대하여 대봉스님의 조언을 듣고자 이번 순례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봉스님과 대담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교포법우님은 유창한 영어로 대봉스님에게 설명하였다. 이에 대봉스님은 만족할만한 해법을 제시하였다. 이에 법우님은 크게 안도하고  바른불교가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며 말하고 다행스러워 했다. 마치 바른불교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기소개와 함께 신행이야기를

 

대봉스님과 차담이 끝난 후 별도의 모임을 가졌다. 무상사 또 다른 방에서 빙 둘러 앉아 차례로 느낌을 이야기 하였다. 전세버스가 아닌 개별적으로 온 법우님들도 있어서 다시 자기 소개시간을 가졌다. 자기소개와 함께 불교와의 인연 등 신행이야기도 곁들였다.

 

법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특이 경력자들도 많았다. 어느 법우님은 스님출신이었다. 십여년 스님생활하다 환속한지 십년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모임에 처음나온 어느 부부팀은 진흙속의연꽃의 글을 인연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부끄럽다고 말하였다. 올린 글이 내글이 아니라 경전를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내글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아마 글로서만 접하다고 보니 환상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마스크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장동건 외모가 아니라 소설가 이외수 외모 이미지’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 하였다. 

 

 

 

 

 

 

 

 

 

머리에 불이 붙은 듯 살아야 하리

 

눈 푸른 외국스님들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고향을 떠나 먼 나라에서 머리깍고 수행자로 살아 가는 것일까? 무엇이 평생수행자로 살게 하는 원동력일까? 그것은 누구에게나 걸려 있는 생사문제라 본다. 생사문제에 있어서 동서양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머리에 불난듯 수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존]

“사람의 목숨은 짧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그 목숨을 경시하라.

머리에 불이 붙은 듯 살아야 하리.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피할 수 없네.(S4.9)

 

 

죽음은 언제 닥쳐 올지 알 수 없다. 기대수명이 90세에 육박하여도 기대수명대로 살라는 보장이 없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올지 내생이 시작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해 놓지 안은 채, 아무런 공덕도 쌓아 놓지 않은 채, 아무런 수행도 하지 않은 채 지금 여기서 죽음을 맞이 한다면 악처에 떨어질 것임에 틀림 없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머리에 불난 것처럼 살아가라고, 그리고 수행하라고 말씀 하셨을 것이다.

 

 

2015-05-2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