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새로운 인연과 함께 또 그렇게

담마다사 이병욱 2015. 5. 3. 11:18

 

새로운 인연과 함께 또 그렇게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살다 보니 거의 십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몇 일전 경비실에서 방송멘트가 들렸다. 늘 듣던 목소리이다. 이날 따라 평소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이교대로 근무하는 경비원 중에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은 경비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이번에 재계약규정에 따라 경비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함께 하였던 입주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방송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지난 십년동안 늘 함께 해 왔던 경비원이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라 생각하였다.

 

경비원의 멘트를 듣고 나니 약간은 아쉽고 서운하였다. 그렇다고 경비원하고 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경비원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아파트 주변을 자신의 집처럼 돌보았다. 그래서 늘 일하는 이미지이었다. 또 택배로 물건이 왔을 때 이를 기억하고 있다가 전달해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지난 십년동안 그랬듯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 떠난다고 하니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선물이라도 하나 준비 하여 전달할 예정이다.

 

언제나 함께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나 물건이 어느 날 사라질 수 있다. 경비원이 그랬듯이 사무실 책상도 그랬다. 최근 새로 사무용가구를 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테이블탁자를 책상대용으로 사용해왔다. 그것도 중고로 구입하였다. 가장 싼 가격으로 구입한 것이기에 한켠이 찢기고 중간 부분은 움푹 들어 가는 등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 책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사용 해 왔다. 지난 2007년 사무실 입주 당시부터 사용하여 왔으니 햇수로 9년째 사용한 것이다.

 

 

 

 

이번에 사무실 책상을 새로 들여 왔다. 들여온 김에 회의용탁자와 3단 책장을 두 개도 함께 구매하였다. 인터넷검색을 통하여 손품을 판 끝에 가장 저렴하고도 품격에 맞는 물건을 고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전과 전혀 사무실 배치가 되었다. 가장 아끼는 빠알리니까야 경전은 새로 산 책장으로 옮겼다. 의자만 돌리면 곧바로 열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전에는 사무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는 일 자체가 사람을 직접 대면 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이다. 일의 특성상 이메일과 전화로 소통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였다. 그러나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은 다른 이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나서부터이다.

 

방문한 사무실을 보면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손님접대할 수 있는 테이블정도는 갖추어져 있었다. 물론 탁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원형탁자가 있긴 하였지만 그다지 쓰임새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방치 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작업테이블을 책상으로 쓰고 있는 자리 옆에 의자 한 개를 가져다 놓고 손님접대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렇게 생활이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최근 생각이 달라졌다. 이런 방식은 손님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책상용으로 사용되던 작업테이블을 밖으로 내어 놓았다. 새로운 책상이 들어 옴에 따라 그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지난 9년 동안 사용하였던 테이블이 애착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 테이블 위에서 수 많은 일을 하였고 수 천개의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도가 다 된 것이다.

 

테이블과 함께 또 하나 버려진 것이 있다. 그것은 계산기이다. 계산기 역시 9년동안 사용하였다. 견적서를 작성한다든가 치수를 계산할 때 늘 옆에 있던 것이다. 그러나 사무실 리셋팅 과정에서 떨어뜨려 파손되고 말았다. 수명을 다한 것이다. 비록 9년을 한결같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으나 결국 버려지게 되었다.

 

거의 십년 동안 경비원도 떠날 때가 되니 떠나게 되었다. 거의 9년째 책상용으로 사용되던 작업테이블도 역할을 다하여 밖으로 내어 놓았다. 9년동안 손에 붙어 있다시피 하였던 계산기는 파손되어 쓰레기통속으로 버려졌다. 늘 함께 하여서  늘 함께 있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어느 날 사라지게 되었다. 아쉽고 아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애착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연과 함께 또 다른 도구와 함께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그렇게 살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201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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