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재가자의 것은 재가자에게, 스님들은 수행처로 돌아가시길

담마다사 이병욱 2015. 5. 5. 09:28

 

 

재가자의 것은 재가자에게, 스님들은 수행처로 돌아가시길

 

 

만물이 생동하는 신록의 계절입니다. 하늘은 청명하고 기온은 온화하고 습도는 적당합니다. 축복의 계절 오월에 우리 불교계에서 암울한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동국대 사태입니다. 스님들이 이사장을 하고 총장을 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편법과 탈법과 불법입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 보고 있는 불자들의 마음은 참담합니다.

 

스님들은 왜 출가하였는지요?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절을 빼앗기 위해 출가하였나요? 대학을 빼앗기 위하여, 병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재가단체의 기관을 접수하기 위하여 출가하였나요? 스님들이 출가할 때 큰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른바 출가이유입니다. 스님들의 출가이유는 무엇인가요?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부처님 가르침안에서 답을 찾는 것 입니다. 이럴 때 항상 부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경전을 찾아 보면 놀랍게도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마치 부처님이 미래의 불자들을 위해서 미리 설해 놓은 듯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출가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양가집 자제들이 주류를 이루였습니다. 대부호의 아들 야사의 출가를 보면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풍족하여 즐기는 삶이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온갖 감각적 쾌락을 즐겨 보았지만 참을 수 없는 무료와 권태에 이르자 “오, 괴롭다. ! 고통이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많이 가진 것이 반드시 행복이 아니라 결국 고통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출가자에게는 나름대로 출가이유가 있을 것 입니다. 부처님 당시 랏타빨라가 있었습니다. 장자의 아들로서 여러 명의 처를 거느린 남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있었던 그가 어느 날 출가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청정한 삶을 살아 가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보기 좋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눈물로서 말렸습니다. 그럼에도 랏타빨라는 모태에 들어 저 세상으로 가니 다른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윤회합니다.(M82)”라고 말하며 출가이유를 말 하였습니다.

 

어느 스님들이라도 출가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출가이유 없이 출가동기가 불분명하다면 가출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데 출가라는 것은 누군가 강요하여 이루어진 것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대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은 왕의 명령 때문도 아니고, 도둑에 쫓겨서도 아니고, 부채 때문도 아니고, 공포 때문도 아니고, 빈궁 때문도 아니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빠졌다. 괴로움에 빠졌고 괴로움에 사로잡혔다. 나는 이러한 모든 괴로움의 다발을 종식시키는 것에 대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이 아닌가? (M68) 라며 반문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출가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괴로움과 윤회의 종식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청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무소유를 실천하며 걸식하며 사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들은 “풀잎 끝의 이슬이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듯이 인간의 수명도 그와 같습니다 . 어머니, 저의 출가를 방해 하지 마십시요.(Ja.iv.122)”라고 말하며, 눌물로서 붙잡으려는 어머니를 뿌리쳤던 것입니다.

 

일련의 동국대 사태를 지켜 보면서 불자들의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권승들이 힘으로 밀어 붙여 교권을 탈취하려는 수법이 마치 육칠십년대 정화운동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정화운동은 명분이라도 있었습니다. 청정독신비구가 대처승을 몰아 낸다는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잘못이 있었더라도 수긍하는 점은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동국대 사태를 보면 명분이 없습니다.

 

동국대사태는 권승들이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한 탈취일 뿐입니다. 마치 마당에서닭들이 모이를 헤쳐 먹듯이, 한줌도 되지 않는 권승들이 헤쳐 먹기 위하여 저지른 범죄행위입니다. 그 결과 사바세계에서도 흔치 않는 편법, 탈법, 불법이 자행되었습니다. 그것도 머리 깍은 승려가, 그것도 법랍이 녹녹치 않는 승려들에 의하여 저질러졌다는 것에 대하여 충격입니다.

 

교육과 학문의 전당에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에 항의하여 학생들이 도보행진을 하고 고공에서 일인시위를 해도 쇠귀에 경읽기입니다. 불법으로 총장을 선정하고 난 후 행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막무가내로 서가모니불정근을 하는 스님들을 보면 쇠귀에 경읽기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학생들은 학생답게 스님은 스님답게 살아야 합니다. 학생의 본분사는 공부입니다. 스님의 본분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수행과 포교입니다. 스님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세속인들이나 하는 일에 열중한다면 스님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스님이 절뺐기에 열중한다면 조직폭력배나 다름 없습니다. 청사만 점거하면 성공한 쿠데타로 간주한다면 영역을 확보 하기 위하여 각목전쟁도 불사하는 조폭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도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을 기득권을 이용하여 힘으로 접수하였다면 역시 조직폭력배의 행위나 다름 없습니다.

 

부처님은 행위를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은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능인이 되며, 행위로 인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고용인이 됩니다.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전사가 되며, 행위로 인해 제관이 되고, 또한 행위로 인해 왕이 됩니다. (Sn3.9)”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총무원 스님들의 행위는 명백히 도둑질입니다. 제도와 시스템을 무시하고 편법과 탈법과 불법으로 동국대를 강탈해 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스님들을 불자들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스님들은 이제 동국대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여법하게 이사장과 총장선출이 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스님들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기를 바랍니다. 스님이 대학의 총장이 되고 단체의 이사장이 되고, 방송사의 사장이 되고, 신문사의 사장이 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만약 갈등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려 합니까? 조직을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인사문제와 재정문제 등 문제가 끊임 없이 발생하는데, 과연 스님들은 그런 갈등을 해소해 갈 능력이나 있습니까? 쇠귀에 경읽기 식으로 서가모니불이나 외친다고 해결될 것 같습니까?

 

조직이나 단체의 장은 재가자 맡아야 합니다. 조직이나 단체를 이끌어 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수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세상을 등지고 출가한 스님들이 맡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재가자의 것은 재가자에게 돌려 주어야합니다. 세속의 일은 재가자가 더 잘 풀어 나갈 수 있습니다. 스님들은 이제 스님의 본분사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그러기 위해 올바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듯이 위없이 청정한 삶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했다. 그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았다.”라는 정형구처럼 스님들은 이제 수행처로 되돌아가 본분사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201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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