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나면

담마다사 이병욱 2015. 6. 10. 20:35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나면

 

 

 

세상은 정보로 넘쳐난다. 검색창에 키워드만 입력하면 원하는 정보를 알아 낼 수 있다. 그래서 과거 수십년전과 비교하여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늘었다. 그렇다고 지혜가 뒤따른다고 볼 수 없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없고 지식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나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법구경 게송이 있다.

 

 

Yāvadeva anatthāya         야와데와 아낫타야

ñatta bālassa jāyati     냣땅 발랏사 자야띠

hanti bālassa sukkasa   한띠 발랏사 숙깡상

muddhamassa vipātaya     뭇다맛사 위빠따양.

(Dhp72)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다.

(Dhp72, 전재성님역)

 

 

かな念慮(おもい)がじても、

ついにかれには不利なことになってしまう。

その念慮好運(しあわせ)をぼし、

かれのく。

(Dhp72, 中村元)

 

 

어리석은 자에게는 어떤 생각이 떠올라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생각은 도리어 그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그의 행운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Dhp72, 법정스님역)

 

 

숙련되지 못한 기능과 지식은

어리석은 자를 도리어 해치나니

그는 자기의 능력으로써

스스로 복과 지혜를 파괴할 뿐이다.

(Dhp72, 거해스님역)

 

 

Only for his ruin

does renown come to the fool.

It ravages his bright fortune

& rips his head     apart.

 (Dhp72, Thanissaro Bhikkhu)

 

 

퇴락으로 이끄는 어리석은 자의 지식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이는 “ñatta bālassa jāyati”에 대한 번역어이다. ñatta‘Knowledge’의 뜻이다. Ñatta의 뜻은learning; something known’의 뜻이다. 따라서 어리석은 자(bāla)에게 아는 것(Ñatta)이 생겨난다(jāyati)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나까무라 하지메는 염려가 생겨나도(念慮(おもい)がじても)”라 하였고, 나까무라 하지메역을 중역한 법정스님은 어떤 생각이 떠올라도라 하였다. 거해스님은 숙련되지 못한 기능과 지식이라 하였다. 타닛사로 빅쿠는 renown come to”라 하여 명성을 얻어도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Ñatta의 뜻은 아는 것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아는 것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다. 이어지는 문구에서는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Yāvadeva anatthāya)라 하였기 때문이다. 앎으로 인하여 불익이 생겨난다면 아니 앎만 못할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하여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Yāvadeva anatthāya ñatta bālassa jāyati: DhpA.II.73에 따르면, 여기서 지식은 세속적인 기술이나 권위나 명예나 명성에 대한 앎의 힘을 말한다. 어리석은 자의 경우에 그의 기술이나 권위나 다른 지식은 오로지 그의 퇴락을 위한 것으로 변한다. 그것에 기초해서 자신을 해칠 뿐이다.

(736번 각주, 전재성님)

 

 

우리말에 알량한 지식이라는 말이 있다. 나름대로는 대견스러워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시시하고 보잘것 없는 지식을 말한다. 알량한 기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출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세속의 지식이나 기술은 알량한 것이다. 더구나 어리석은 자가 알량한 지식으로 권위나 명예, 명성을 추구한다면 자신을 해칠 수 있음을 말한다. 왜 그런가? 지혜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머리를 떨어뜨린다고 하였을까?

 

지혜롭지 않은 삶은 필연적으로 불익을 줄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문구에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다.(hanti bālassa sukkasa muddhamassa vipātaya)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머리라는 말은 ‘muddha’이다. 왜 머리를 떨어뜨린다고 하였을까? 이에 대한 주석을 보면 다음과 같다.

 

 

hanti bālassa sukkasa muddhamassa vipātaya: DhpA.II.73에 따르면, 머리라는 단어는 지식을 상징한다. 떨어뜨린다는 것은 퇴락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어리석은 자의 기술이나 권위나 다른 지식이 어리석은 자의 운명을 파괴할 때, 그의 머리, 즉 지식도 퇴락하고 황폐해진다.

(737번 각주, 전재성님)

 

 

주석에 따르면 머리(muddha)는 지식(ñatta)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머리로만 알 뿐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를 말한다. 지혜가 없이 세상을 살아 가는데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 그리고 권위나 명예나 명성을 추구하였을 때 추락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를 머리가 떨어진다고 하였는데, 이는 다름 아닌 지식의 퇴락과 황폐라 하였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도둑질도 일종의 집중이고 기술이다. 그러나 직업으로서 활용하면 머리가 떨어질 수 있다. 사기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는 사람들이 사기를 친다. 남 보다 더 많이 알아야 속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사기꾼 역시 나중에 머리가 떨어진다.

 

요즘에는 신종사기가 극성을 부린다. 인터넷 시대에 컴퓨터 해커들이 대표적이다. 해커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다른 컴퓨터에 무단 침입하여 저장된 정보나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이용하거나 바꾸고 없애는 사람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웠을 것이다. 남보다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금전적 유혹에 넘어가거나 기술의 과시에 집착 하였을 때 해커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알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이 결국 그 사람의 발목을 잡게 된다.

 

모루채-귀신과 관련된 이야기(Saṭṭhikūapetavatthu)

 

어리석은 자가 알량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자신을 해칠 수 있다. 게송과 관련된 인연담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루채-귀신과 관련된 이야기(Saṭṭhikūapetavatthu)가 그것이다.

 

 

한때 바라나씨에 투석기를 잘 다루는 불구자가 살았다. 그는 돌을 쏘아서 나뭇잎을 자를 수 있었는데, 그것도 아이들의 소원에 따라 코끼리 모양이나 말 모양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이었다.

 

왕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수다스런 사제의 입을 막기 위해 불구자에게 부탁해서 그로 하여금 멀리서 사제의 입으로 염소똥을 쏘아 줄 것을 부탁했다. 이 일이 성공하자 사제는 더 이상 감히 왕에게 입을 열지 못했다. 왕은 기뻐하여 많은 선물과 도시의 동서남북의 네 마을을 하사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그것을 부러워하여 불구자에게 투석기 다루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불구자는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간절하게 졸라대자 그 기술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세상에 나가 기술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불구자는 소나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시내로 들어가서 황소를 보고 암놈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한 사람을 보고 부모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쏘지 못했다. 그때 한 연각불이 지나자 그는 부모도 없고, 내가 쏘아도 벌금이 필요가 없다. 이 자에게 기술을 시험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연각불을 향해서 돌을 조준하여 쏘았다. 돌은 연각불의 오른 쪽 귀로 들어가 왼쪽 귀로 빠져나왔고 연각불은 심한 고통을 느끼며 초암으로 돌아와 죽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그를 붙잡아서 때려 죽였다. 그는 아비지옥에서 태어났다가 아직 악업의 과보가 다하지 않아 모루채-귀신으로 태어났다.

 

부처님께서는 이야기를 마치며 수행승들에게 수행승들이여, 어리석은 자에게는 기술이나 권세가 자신의 불익을 위해서 지식이 생겨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로서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다.

(Dhp72)

 

 

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든 경지 등을 성취했다.

 

(법구경 72번 게송 인연담, Saṭṭhikūapetavatthu, 모루채-귀신과 관련된 이야기, 전재성님역)

 

 

인연담을 보면 애써 배운 기술을 잘못 써 먹은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지나가던 역각승(paccekabuddha)을 대상으로 실험한 것이다. 연각승을 타겟으로 한 이유에 대하여 부모도 없고, 내가 쏘아도 벌금이 필요가 없다. 이 자에게 기술을 시험해보자.”라 한 것이다. 마치 산중에서 검술을 익힌 자가 하산하여 자신의 검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대상을 찾아 밴 것과 다름 없다. 이는 소매치기 기술을 배운 자가 소매치기 대상을 찾아서 훔치는 것과 같고, 해커기술을 습득한 자가 대상을 물색하여 범행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 더구나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하였다면 악처에 떨어질 정도로 무거운 업을 짓는 것이다.

 

홀로 깨달은 연각승을 투석기를 이용하여 죽였다. 깨달은 자를 죽였으므로 그 과보는 매우 컸다. 아비지옥에 떨어졌지만 그 과보가 끝나지 않아 모루채-귀신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인연담에서는 육만 개의 모루채가 끊임 없이 그의 머리위에서 올라갔다가 내리쳤습니다. 그의 머리는 벌겋게 달아 올랐습니다. 머리에 해골을 부수면 거듭 다시 솟아 올랐습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모루채는 대장간에서, 달군 모루 놓고 메어칠 쓰는 쇠메를 말한다. 연각승을 죽인 과보로 마치 대장간에서 벌겋게 달구어진 쇠를 모루위에 올려 치는 것처럼 고통받는 것에 대하여 표현한 것이다.

 

힘을 주체 하지 못하여

 

운전면허를 따면 운전을 하고 싶어 한다. 면허를 땄으니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힘을 가지면 그 힘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지식은 기술이나 권위나 명예, 명성을 얻는 것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가 활용하면 재앙이 된다. 어리석은 자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가 지식을 활용하면 이로움을 주지만 어리석은 자가 활용하면 해악이 된다. 전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가르침을 모르는 전쟁광들이 전쟁을 하면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최근 유튜브에서 태평양전쟁을 보았다. 일본에서 제작한 십여편에 이르는 다큐멘타리영상이다. 과달카날, 필리핀 등에서 처절한 전투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일본이 그 힘을 주체 하지 못하여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하였다. 무려 220만명이라는 군인이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측에서도 수십만명이 죽었다.

 

 

 

 

 

 

모든 전쟁이 다 그렇듯이 전쟁이 나면 대량살상이 벌어진다. 이 모두가 어리석은 자들이 지식과 기술을 잘못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 뜨린다.”라 하였을 것이다.

 

 

2015-06-1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