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의 가르침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교단분열의 대명사 데바닷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6. 14. 20:35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교단분열의 대명사 데바닷따

 

 

상윳따니까야 브라흐마상윳따에 데바닷따의 경이 있다. 데바닷따라는 이름이 처음 오기 때문에 각주에서는 긴 설명을 해 놓았다. 데바닷따는 교단분열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그리고 악인의 대명사이다. 이런 데바닷따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는 가혹하리 만큼 냉정하다. 관용과 자애의 지혜의 종교 불교에서 데바닷따는 왜 이렇게 철저하게 미움과 배척을 당하고 있을까? 상윳따니까야에서 데바닷따와 과련된 게송은 다음과 같다.

 

 

[싸함빠띠]

파초와 대나무와 갈대는

자신의 열매가 자신을 죽이네.

수태가 노새를 죽이듯,

명예가 악인을 죽이네.”

(데바닷따의 경, 상윳따니까야 S6.12, 전재성님역)

 

 

a mule

 

 

이 게송은 니까야에서 여러 번 등장한다. 데와닷따의 이득과 명예의 추구에 따른 교단분열에 대하여 파초, 대나무, 갈대 등으로 비유하였다. 대나무는 꽃이 피어 열매를 맺으면 모두 죽는다. 이런 류의 식물로서 파초(야자나무)와 갈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노새가 수태하면 죽는다고 하였다. 여기서 노새는 수말과 암당나귀의 잡종이다. 각주에 따르면 노새는 생식능력이 없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새끼를 배면 죽는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민속적인 세계관에 따라 새끼가 잉태하면 노새는 죽는다고 표현한 것이다.”라 하였다

 

율장소품 참모임분열의 다발(破僧犍度)’에서

 

게송에서 데와닷따는 대나무, 파초, 갈대, 암노새로 비유되었다. 특히 암노새로 비유되었다. 그런 암노새는 수말과 암당나귀의 잡종으로서 수태를 못하게 운명지워져 있다. 그럼에도 수태하게 되었을 때 죽음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을 운명이라는 것이다. 악인의 대명사 데와닷따가 그런 케이스라 볼 수 있다. 초기경전에서 데와닷따는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고 교단분열을 꾀하고 심지어 부처님을 살해 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 하였다. 그런 데바닷따는 어떤 인물일까?

 

데바닷따와 관련하여 초불연 번역서에서는 분열경(S17.31)을 참고 하라고 하였다. 해당경을 찾아 보면 이득과 존경과 명성에 압도 되고 전도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승가를 분열시켰다. (S17.31)”라고 되어 있다. 데바닷따는 악인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승가분열의 대명사라 볼 수 있다. 초불연번역서에 따르면 데바닷따와 관련하여 율장을 참고 하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Vin.ii.189’라하였다. 이는 PTS본 율장 2 189페이지를 열어 보라는 뜻이다.

 

데바닷따와 관련된 율장을 찾아 보았다. 율장소품에 참모임분열의 다발(破僧犍度)’이 있다. 두 번째 이야기가 데바닷따와 아자따삿뚜이다. 경에 따르면 데바닷따가 꼬삼비의 고시따라마 승원에 있을 때 내가 누구를 믿으면 그 믿음에 의해서 많은 이득과 명예를 얻을 것인가?”라는 생각이 떠 올랐다고 하였다. 악인의 대명사가 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이득과 명예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데바닷따는 자신의 이득과 명예를 위하여 누구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승려가 이득과 명예를 쉽게 추구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정치권과 가까이 하는 것이다. 특히 최고권력자와 친분을 쌓았을 때 이득과 명예가 자동적으로 따라 온다. 그래서일까 선거때만 되면 유력 대권후보자에게 줄을 서는 스님들이 있다. 부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 이었다. 데바닷따는 나이 어린 왕자 아자따삿뚜에게 접근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 되어 있다.

 

 

[데바닷따]

내가 왕자 아자따쌋뚜가 아직 어리지만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 내가 왕자 아자따삿뚜를 믿으면 어떨까? 내가 그를 믿으면, 많은 이득과 명예가 생길 것이다.’

 

(데바닷따와 아자따삿뚜, 율장소품 7장 참모임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데바닷따는 마가다국의 왕자 아자따삿뚜를 꼬드겼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8년전의 일이다. 데바닷따는 한동안 교단에서 커다란 존경을 받았고 부처님이 칭찬한 11번 째의 장로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을 질투하였다. 교단을 이끌어 갈 목적으로 아자따삿뚜를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고자 한 것이다.

 

신통으로 아자따삿뚜의 마음을

 

데바닷따는 어떻게 하여 아자따삿뚜의 마음을 사로 잡았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신통이었다. 데바닷따는 신통으로 왕자 앞에 나타났다. 경에 따르면 왕자의 모습으로 나투어 뱀허리띠를 착용하고 아자따쌋뚜의 무릎에 나타났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상윳따니까야 각주에서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율장에서는 데바닷따가 왕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 왕자가 아자따삿뚜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분위기로 보아 아자따삿뚜와 똑 같이 닮은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난 듯 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자따삿뚜는 몹시 두려워 하였다. 경에서는 두려워하고, 근심하고, 의심하고, 전율했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의심이라는 말이 걸린다. 아마 아자따삿뚜와 똑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아자따삿뚜 앞에 데와닷따는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었다. 경에따르면 아자따삿뚜는 이런 신통변화에 기뻐하며 오백대의 수레로 아침 저녁으로 맞으러 가고, 오백 솥분량의 음식을 공양했다.”라고 되어 있다. 아자따삿뚜는 데와닷따의 신통의 힘을 믿고 신뢰한 것이다.

 

승단을 탈취하고자

 

데와닷따가 아자따삿뚜에게 접급한 것은 승단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자따삿뚜를 교사하여 왕위를 탈취하도록 하였다. 일종의 쿠데타이다. 그래서 아자따삿뚜는 마가다국의 왕이 되고 데바닷따는 교단을 이끄는 수장이 되고자 했단 것이다. 경에 따르면 데바닷따는 내가 수행승들의 참모임을 이끌겠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각주를 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DN.II.100에 따르면,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했다. “여래는 이와 같이 내가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간다.’라든가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여래가 수행승의 승단과 관련하여 어떤 공표를 하겠는가?”

 

(824번 각주, 율장소품, 전재성님)

 

 

부처님은 내가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간다.”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은 디가니까야 마하빠리닙바나경(D16)에 나온다. 부처님이 마지막 유훈에서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사권은 없다라고 말씀 하시면서 승단의 지도자에 대하여 말씀 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각주에 따르면 교단을 탈취하려고 했던 데바닷따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 수 있다.(1067번 각주, 디가니까야)”라 되어 있다.

 

데바닷따가 아자따삿뚜를 교사하여 승단을 탈취하고자 마음 먹었다. 이는 이득과 명예를 위한 것이다. 이득과 명예를 위하여 신통을 부려 아자따삿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경에 따르면 이러한 마음이 생겨남과 동시에 신통력이 사라졌다라 하였다. 신통에 대하여 사적인 이익과 명예를 추구하는데 사용하였을 경우 효력이 상실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데바닷따는 신통으로서 아자따삿뚜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하였으나 승단을 장악하려는 삿된 욕심으로 신통이 사라졌다. 이런 사실을 까꾸다로부터 알게된 목갈라나는 부처님에게 알린다. 그러나 부처님은 목갈라나여, 그대는 하늘아들 까꾸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읽고 하늘아들 까꾸다가 일체가 말한 바와 같아서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아는가?”라 말하며 이말을 비밀로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그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낼 것이다.(Idāni so moghapuriso attanāva attāna pātukarissati.)라 하였다. 부처님은 왜 비밀로 하라고 하였을까?

 

스승을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

 

부처님은 데와닷따와 관련하여 그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낼 것이다.”라 하여 관여하지 말라고 하였다. 반면 언행이 일치 되지 않는 스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세존]

목갈라나여, 여기 어떤 스승은 계행이 청정하지 않으면서 계행이 청정한 척, 자신의 계행이 청정하고 결백하고 오염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자가 이와 같이 이 존경하는 스승은 계행이 청정하지 않으면서 계행이 청정한 척, 자신의 계행이 청정하고 결백하고 오염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라고 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재가자들에게 알린다면 그가 좋아하지 않을 텐데, 우리가 그 좋아 하지 않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그는 의복과 발우와 처소와 필수약품을 받는 것에 동의했다. 자신이 행한 것은 그것으로 자신이 알 것이다. 목갈라나여, 이와 같이 제자들은 계행과 관련하여 스승을 수호해야 한다. 또한 목갈라나여, 그러한 스승은 제자들로부터 계행과 관련하여 수호를 기대해야 한다.”

 

(데바닷따와 아자따삿뚜, 율장소품 7장 참모임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데와닷따는 승단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때 신통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이득과 명성을 위하여 쿠데타를 계획하였을 때 신통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비밀로 하라고 한 것이다. 쿠데타계획과 신통이 사라진 것을 알려 줄 필요가 없음을 말한다. 스스로 자기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런데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스승에 대해서는 다른 말씀을 하시고 있다.

 

낮에 한말 다르고 밤에 행동하는 다른 큰스님이 있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자를 말한다. 이런 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잘 안다. 또 따르는 제자들도 잘 안다. 이런 불일치에 대하여 재가자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만일 재가자들이 안다면 혐책하고 분노하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제자들은 계행과 관련하여 스승을 수호해야 한다.”라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잘못을 알려 주어야 함을 말한다. 포살이나 자자를 통하여 알려 주는 것이다. 또 부처님은 스승은 제자들로부터 계행과 관련하여 수호를 기대해야 한다.”라 하였다. 누군가 지적해 주면 참회하며 고쳐 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부처님은 왜 비밀로 하라 하였을까?

 

데바닷따는 아자따삿뚜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아자따삿뚜는 데바닷따와 그를 따르는 수행승들에게 오백대의 수레로 오백대 분량의 음식을 아침 저녁으로 공양하였다. 이런 소식을 듣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데바닷따가 가진 이득과 명예와 칭송이 그 자신을 파멸시키고, 데바닷따가 가진 이득과 명예와 칭송이 그 자신을 쇠망하게 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자멸하고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쇠망하듯이, 수행승들이여, 데바닷따에게 생겨난 이득과 명예와 칭송이 그 자신을 파멸시키고, 데바닷따가 가진 이득과 명예와 칭송이 그 자신을 쇠망하게 할 것이다.”

(데바닷따와 아자따삿뚜, 율장소품 7장 참모임분열의 다발, 전재성님역)

 

 

이득과 명예와 칭송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특히 세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출가자가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바란다면 재앙이 될 가능성이 많다. 대표적으로 데바닷따를 들 수 있다.

 

데바닷따는 신통의 힘으로 아자따삿뚜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승단을 장악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신통이 사라졌다. 그런 사실을 안 부처님은 비밀로 하라고 말씀 하시면서 그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낼 것이다.”라 하였다. 데와닷따에게는 알려 주어 보았자 중단할 것이라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섯 종류의 스승에 대한 법문에서는 이와 반대로 제자들이 계행과 관련하여 스승을 수호해야 된다고 하였다. 잘못을 알려 주어 바로 잡게 하는 것이다. 또한 스승도 제자들로부터 계행과 관련하여 수호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서로 연계 되어 있고 맞물려 있는 초기경전

 

초기경전에 따르면 데바닷따는 교단을 분열시키고 부처님을 위험에 빠뜨린 악인이다. 그래서 온정적이지 않다. 더구나 법구경 인연담을 보면 땅이 열려 아비지옥에 떨어졌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상윳따니까야 각주를 보면 데와닷따가 죽어 갈 때 부처님 외에는 귀의처가 없다.”고 고백한 것으로 되어 있다. 데와닷따는 죽을 때 부처님에게 귀의 한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데와닷따가 아비지옥에서 빠져 나왔다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법화경에서는 초기경전에서 가혹해 보이는 듯한 표현과는 전혀 다르다. 법화경 제바달다품을 보면 이 제바달다는 한량없이 오랜 겁을 지나서 반드시 성불하리니, 그 이름은 천왕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며, 그 세계의 이름은 천도이리라.(법화경 제바달다품, 운허스님역)”라 되어 있다. 마치 대승경전에서 데와닷따를 복권 시켜 준 듯 하다.

 

사부니까야 이곳 저곳에 실려 있는 데바닷따와 관련된 이야기는 율장에 자세히 실려 있다. 율장소품에 실려 있는 참모임분열의 다발(破僧犍度)’이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니까야만 볼 것이 아니라 위나야도 함께 보아야 함을 알 수 있다. 초기경전은 이렇게 서로 연계 되어 있고 맞물려 있다.

 

 

2015-06-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