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면 악작죄(惡作罪)를 짓는 것이다”노래를 금한 부처님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지난 3월 세텍에서 불교박람회가 있었다. 매년 열리는 박람회에 참석하여 기록을 남겼다. 기록 중에 가장 많이 비중을 차지 하는 것이 스님들에 대한 것이다. 스님들이 부스에 앉아 있는 것을 비판하였다. 스님들의 ‘본분사’가 있음에도 부스에 앉아 있는 것에 대하여 본분을 다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스님이 그림을 그린다든가 차를 만든다든가 음식을 만드는 등의 행위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을 하였다.
비판글에 대하여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어느 스님은 시의 적절하게 지적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스님들이 본본사를 떠나 부업에 더 열중하는 듯한 모습에 대하여 한탄하듯이 말하였다. 그런데 불교박람회장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등축제를 하면 춤추는 스님도 있고 달마도를 파는 스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교TV사이트를 보면 스님이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어느 스님은 음반까지 내기도 하고 산사음악회에서 표정과 감정을 넣어서 멋드러지게 노래도 한다.
우리나라 스님들은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승복을 입고 세상사람들도 그다지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일에 올인한다. 본업이 있음에도 부업에 열중한다면 사실상 속인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스님들은 승보로서 대우받고 세상사람들이나 하는 일을 다 한다.
수행자들이 가르침을 노래할 수 있단 말인가?
부처님은 오늘 한국에 계신다면 부업에 열중하는 스님들을 보며 뭐라 하실까? 특히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하여 어떤 말씀을 하실까? 자료를 찾다가 율장소품에서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발견하였다.
율장소품에 ‘사소한 일의 다발(Khuddakavatthukkhandhakaṃ: 小事犍度)’이 있다. 그 중에 노래(gāyana)가 있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때 여섯 무리의 수행승들이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했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하여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했다.
[사람들]
“어찌 싸끼야의 아들인 수행자들이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할 수 있단 말인가?”
수행승들은 그 사람들이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것을 기회로 이것을 원인으로 수행승들의 참모임을 불러 모아 수행승들에게 물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여섯 무리의 수행승들이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한 것이 사실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사실입니다.”
존귀하신 부처님께서는 견책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 어리석은 자들은 적절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고, 알맞지 않고, 수행자의 삶이 아니고, 부당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어찌 그 어리석은 자들이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 할 수 있단 말인가?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청정한 믿음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를 더욱더 청정한 믿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오히려 아직 청정한 믿음이 없는 자를 불신으로 이끌고, 이미 청정한 믿음이 있는 자 가운데 어떤 자들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율장소품, 제5장 사소한 일의 다발, gāyana-노래, 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에 가르침은 구전 되었다. 필기구도 책도 없던 시절 오로지 암송에 의존해야 했다. 그런데 어떤 빅쿠들은 마치 노래하듯이 구성지게 낭송하였던 것 같다. 여섯무리의 빅쿠들이 모여서 합송하였으므로 요즘말로 하면 그룹으로 부르는 합창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음조에 대하여 경에 따르면 “길게 끄는 가락 (āyatakena gītassarena)”이라 하였다. 이 구절과 관련하여 각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Tena kho pana samayena chabbaggiyā bhikkhū āyatakena gītassarena dhammaṃ gāyanti : 이것에 대해서는 AN,III.271을 참조하라. : ‘수행승들이여, 자신도 그 소리에 애착되고, 타인도 그 소리에 애착되고, 재가자들은 ‘우리가 노래하듯, 똑같이 이 수행자 싸끼야의 아들들도 노래한다.’라고 비난하고, 음조에 매혹되어 삼매를 잃고, 다음 세대들이 범례를 따르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법문을 길게 끄는 장조의 노랫소리로 암송하면,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재난이 있다.’
(339번 각주, 율장소품, 전재성님)
가르침을 낭송할 때 길게 끌어 노래 가락 처럼 부르는 것에 대한 경고라 볼 수 있다. 세속사람들이나 부르는 노래처럼 가르침을 길게 뽑아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각주에서는 ‘AN,III.271을 참조하라’라 하였다. 이는 ‘AN,III.251’의 오타이다.
다섯 가지 재난이 있는데
앙굿따라니까야 노랫소리의 경(gītassarasutta, A5.209)의 내용은 율장소품의 내용과 일치한다. 수행승들이 가르침을 노래 부르듯이 구성지게 낭송하는 것에 대하여 다섯 가지 위험(pañca ādīnavā: 五災)이 있다고 하였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pañcime, bhikkhave, ādīnavā āyatakena gītassarena dhammaṃ gāyantassa. Attanāpi tasmiṃ sare sārajjati, parepi tasmiṃ sare sārajjanti, gahapatikāpi ujjhāyanti, sarakuttimpi nikāmayamānassa samādhissa bhaṅgo hoti, pacchimā janatā diṭṭhānugatiṃ āpajjati – ime kho, bhikkhave, pañca ādīnavā āyatakena gītassarena dhammaṃ gāyantassa. Na, bhikkhave, āyatakena gītassarena dhammo gāyitabbo. Yo gāyeyya, āpatti dukkaṭassā”
수행승들이이여,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1) 자기가 그 음성에 집착하고,
2) 다른 사람이 그 음성에 집착하고,
3) 재가자들이 비난하고,
4) 음조를 추구하여 삼매를 방해하고,
5) 후인들이 사견의 길에 떨어지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율장소품, 제5장 사소한 일의 다발, gāyana-노래, 전재성님역)
노래를 부르면 자아 도취된다. 그것은 자신의 음성에 취하는 것이다. 가르침의 내용보다는 목소리와 음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질을 잊어 버리게 된다. 가르침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잃어 버리고 음성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된다.
세 번째 항을 보면 “재가자들이 비난하고(gahapatikāpi ujjhāyanti)”라 하였다. Gahapatikā는 a householder를 말하며 한자어로 거사(居士)라 한다. Ujjhāna는 ‘taking offence; complaining’의 뜻으로 ‘비난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사람들은 그들에 대하여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했다.”라는 구절로 알 수 있다. 출가한 빅쿠들이 세속의 가수들처럼 노래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다. 그런 비난에는 혐오감과 분노가 포함 되어 있다.
오인조 그룹사운드 스님밴드
한국불교에서는 스님들이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하여 관대한 것 같다. 스님들이 콘서트를 열고 노래교실을 열어도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중생을 위하여 보살행을 하는 것으로 보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종종 TV에서는 스님이 출연하여 노래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젠가 TV에서 스님들이 그룹을 이루어 밴드를 조직하여 노래 하는 것을 보았다. 화면을 보면, 드럼을 치는 스님, 색소폰을 부는 스님, 전자기타를 치는 스님등 다섯 명의 스님이 팀을 이루고 있다. 오인조 그룹사운드 이다. 이에 대하여 방송에서는 국내 최초로 결성된 ‘스님밴드’라 하였다. 늘 특종만 찾는 방송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룹을 조직하여 마치 그룹사운드처럼 노래하는 스님들을 보았다. 머리 깍고 승복만 입었을 뿐 가수들과 조금도 다름 없다. 더구나 흘러간 유행가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고 멋지게 불렀다.
방송에 따르면 스님밴드의 경우 공연을 많이 다닌다고 한다. 공연을 요청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찾아 가서 ‘음성공양’을 하고 항상 중생과 함께 하고 있음을 강조 하였다. 또 참선 수행장면도 보여 주면서 수행과 방편을 적절히 구사함을 알려 주었다.
은사스님이 노래 불렀다면
율장소품에 따르면 빅쿠가 노래를 불러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더구나 ‘재난(ādīnavā)’이라는 표현까지 하였다. Ādīnavā는 disadvantage의 뜻으로 ‘불익’을 의미한다. 불익 다섯 번째 항을 보면 “후인들이 사견의 길에 떨어지는 것이다.”라 하였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각주에 따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pacchimā janatā diṭṭhānugatiṃ āpajjati: Smp.1202에 따르면, “후세사람들이 ‘우리의 궤범사들이나 친교사들이 이와 같이 노래를 불렀다.’라고 말하며 같은 방식으로 노래부를 것이다.”라는 뜻이다.
(341번 각주, 율장소품, 전재성님)
이른바 가수스님들이 있다. 음반을 내고 산사음악회나 방송에서 노래 부른 스님들을 말한다. 이런 스님들은 매우 인기가 있어서 청중을 몰고 다닌다. 그래서 모르는 불자가 없을 정도로 인가만점이다. 그러나 후세에 그다지 좋은 평판은 받지 못할 것이다. 이는 주석에서 표현된 것과 같이 “우리의 궤범사들이나 친교사들이 이와 같이 노래를 불렀다.”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스승을 따를 것이므로 나쁜 사례가 돤다. 그런 의미로 본인 뿐만 아니라 후학을 위해서도 불익이다.
“노래하면 악작죄를 짓는 것이다”
부처님은 빅쿠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금하였다. 가르침을 노래가락으로 넣어 길게 뽑아 불렀을 때 가르침의 내용 보다 자신의 음성에 도취 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더구나 재가자들이 혐책하고 분노하고 비난하는 것을 염려 하였다. 또 감성적인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삼매에 들기 힘들다. 무엇 보다 후학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 해서는 안 된다. 노래하면 악작죄를 짓는 것이다.(Vin.II) ”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여기서 악작죄는 dukkaṭa에 대한 번역어이다. Dukkata는 ‘badly done. (nt.) wrong action.’의 뜻으로 한자로 악작(惡作)이라 한다. 나쁜 행위를 뜻한다.
부처님은 빅쿠들이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하여 나쁜 행위라 하여 금하였다. 이는 부처님의 명령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낭송 그 자체를 금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경에 따르면 “그때 수행승들이 읊조리는 것 조차 의구심을 내었다.”라 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읊조리는 것은 허용한다. (Anujānāmi, bhikkhave, sarabhañña)”라 하였다. 여기서 읋조린다는 뜻이 sarabhañña이다. 영어로 ‘intoning; a particular mode of recitation.’라 설명된다. 각주에서는 영창이라 하였다. 또 “기억하여 읊는 것(Vin.I.196)”이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가르침을 낭송하는 것에 어느 정도 억양을 주는 것은 허용된다.
2015-06-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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