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동트는 새벽에

담마다사 이병욱 2015. 9. 4. 08:50

 

동트는 새벽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잠 못 이룰 때 가장 좋은 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마음이 편안할 때 잘 써진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쓸레야 쓸 수 없다.

 

글 쓰는 순간만큼은 착하고 건전한 마음이다. 물론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일 때도 글을 쓸 수 있다. 짧은 단문이다. 주로 해코지 하는 글이다. 폭력과 분노가 수반된 글을 말한다.

 

새벽에 일찍 깨이면 잠이 다시 오지 않는다. 아주 피곤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냥 누워 있기 쉽다. 그럴 경우 자리를 박차는 것이 낫다. 앉아서 좌선을 하든지 경행을 하는 것이다.

 

앉아 있으면 참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은 몸도 편안함을 말한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행복을 만끽한다. 이럴 때 주변 사람들이 생각난다. 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 일순위이다.

 

맛있는 음식을 대했을 때 가족생각이 난다고 한다. 자신이 편할 때 행복할 때 역시 가족생각이 난다. 그럴 때 “~가 행복하기를!”라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마음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이다.

 

동트기 전 새벽은 참으로 고요하다. 도시의 아파트이지만 잘 귀 기울이면 귀뚜라미 소리, 찌르레기 소리도 들린다. 일정한 주기를 갖는 소리를 들으면 삼매에 드는 것 같다. 가끔 지나가는 차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방해 될 정도는 아니다.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나와 가까운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자연스런 마음이 일어난다. 그것은 자애의 마음이다. 자애의 마음이 일어나면 동시에 연민의 마음도 일어난다. 이는 상대방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라고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애와 연민은 항상 함께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애의 마음을 낼 때는 내가 편안해졌을 때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대상이 떠 올려진다. 가족이 일순위이다. 그렇다고 아내나 연인은 대상이 아니다. 또한 죽은 자도 아니다. 왜 그런가? 자애가 애정으로 변질 되면 실패한다. 죽은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자애 있는 곳에 연민이 있다. 연민 역시 아내나 연인 그리고 죽은자를 대상으로 할 수 없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우선순위이다. 이런 연민의 마음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근심 걱정하면 안된다. 마음이 괴로워지면 실패하게 된다.

 

자애의 마음이 애정으로 변질 되고, 연민의 마음이 근심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정을 유지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 하는 것이다. 초기경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다.

 

 

뭇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그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입니다.

업이 뭇 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 (M135)

 

 

인생의 파란곡절을 겪었을 때 쉽게 낙담한다. 그렇다고 하여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럴 때 늘 나는 행위의 상속자, 업의 주인임을 잊지 않는다. 상대방의 불행도 업의 상속이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잠 못 이루는 새벽이다. 억지로 잠을 청하느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낫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보낸다. 멀리 떨어져 있는 거족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런 마음을 점차 확대하여 원한 맺힌 자에게도 보내라는 것이 자애수행이다. 이렇게 자애의 마음을 냄으로 인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고자 하는 것이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 이를 자심해탈(慈心解脫)’이라 한다.

 

한순간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내면 그 공덕은 매우 크다고 하였다. 초기경에 따르면 다시 태어날 근거가 되는 공덕을 만드는 토대들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 모든 것은 자애의 마음에 의한 해탈의 십육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It19)”라 하였다. 별이 아무리 밝아도 달빛의 십육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듯이 자애를 닦으면 그 어떤 공덕행 보다 수승하다고 하였다. 초기경에서는 자애공덕 열 한가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수행승들이여,

편안히 잠자고,

행복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에게 아낌을 받고,

귀신들에게조차 사랑을 받고,

신들이 보호해 주고,

불이든 독약이든 거의 해를 입지 않고,

빠르게 삼매에 들고, 안색이 맑고,

당황함이 없이 임종에 들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A11.15)

 

 

자애수행 열한가지 공덕중에 가장 처음 나오는 말이 잠에 대한 것이다. 자애를 닦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지극히 당연하다. 편안한 마음에서 자애의 마음이 나오기 때문에 잠을 절 자는 것은 이치에 맞다. 행복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애와 상극인 분노의 마음이 사라졌으니 가능한 일이라 본다. 이렇게 자애공덕은 다양하다.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 온다. 어둠에서 시작된 글쓰기가 두시간 가까이 된다.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것도 삼매일 것이다. 글쓰기 하고 있는 순간에는 악하고 불건전한 생각이 일어날 수 없다. 오늘 하루도 늘 이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2015-09-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