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너무 행복해 죽겠다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19. 22:32

 

너무 행복해 죽겠다는데

 

 

조회수가 부쩍 늘었는데

 

요즘 조회수가 부쩍 늘었다. 평소 보다 50%는 늘어 난 것 같다. 지난 주 방문자를 보면 11,837명이다. 일평균 1,691명이다. 페이지뷰는 이 보다 배에 달한다. 왜 이렇게 조회수가 갑자기 급증하였을까? 아마 꾸준히 글을 올리는데 있다고 본다. 거의 매일 글을 올리고 어떤 날은 두 편 내지 세 편 올리기도 한다.

 

일이 바쁘다고 하여 빼먹지 않고 기분이 나쁘다고 하여 올리지 않는다. 일이 있으나 없으나 올리고, 기분이 좋아도 올리고 기분이 나빠도 올린다. 일과 기분에 따라 좌우 되지 않는다. 항상 가르침을 접하고 이 좋은 가르침을 공유하기 위해서 올린다. 그러다 보니 매일 올리게 됐다. 그리고 방문자도 꾸준히 늘어 평일 이천명을 바라 본다.

 

글을 올리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댓글에 대한 답글을 제 때에 못단다는 것이다. 바쁘기도 하고 적절한 생각이 떠 오르지 않아 달지 못한다.  그러나 매일 새로운 글을 올리는 것으로 답글을 대신한다. 또 올려 준 글에서 다음 글을 위한 소재로 삼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본문에서 답글 형식을 취하기도한다. 최근 받은 글이 그렇다.

 

어느 님으로부터 글을 받았다는데

 

어느 님으로부터 글을 받았다. 아마 초심자 같아 보인다. 블로그를 접한지 안되었는지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어투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단어 학식이 지 아무리 뛰어나도 사랑이 없으면 울라는 꽹가리와 같답니다.”라 하였다. 사실 글의 내용이 쉬운 편은 아니다. 그러나 블로그와 함께 수 년간 함께 성장해 온 법우님들은 다 따라간다.

 

글을 주신 님이 불자인지 알 수 없다. 올린 글로 보아서는 이웃종교인일 수 있다. 특히 사랑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그런 심증이 들어 간다. 그 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주었다.

 

 

우리들 각자는. 다들 진실한 삶을위해 미래를
향해 전진합니다. 저같은 주부는 아이둘을 키우면서 사랑의 위대함을 발견했고.큰아이는 사람들의병을치유허기위해의사가됐고 작은아이는
보스턴으로 내년에 대학을 갑니다.

사람에게 사랑을 주면 어떤일들이   일어나는지
기적같은 사실에 감탄할뿐입니다.

삶은 외로운 행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제입니다.그러기에
한마디의 사랑한다는 말은 영혼의위로와
자신감을 준답니다.

내작은공간이 천국이돼면 부러울것이 없어집니다.

지혜와 현명함은 만은지식과는 다릅니다.
살아오면서 만은일들을 겪고 경험에서온답니다.

신은인간이 행복하라고 온것입니다.
이순간 각자들 행복하세요~~~~~”

(E법우님)

 

 

E법우님은 사랑을 강조 한다. 글의 내용을 보아 신의 사랑으로 보인다. 신의 은총을 받아 매우 행복함을 말한다. 이로 보아 타종교인 것 같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으니 타종교인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 종교인이 신 또는 신의 사랑 운운하며 글을 남기는 케이스는 드물다.

 

처음 블로그를 접하는 E님은 블로그 본문내용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긴 글에 대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것은 시간낭비 인터넷을 어지럽히고~~~”라 하였다. 아마 인터넷 검색하다 글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 글을 읽어 보니 낯선 용어가 많고 뜻도 이해하기 어려웠던지 어려운 글이라 하면서 긴 글 쓰느라고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더구나 인터넷을 어지럽히 말라고 한다. 한마디로 쓸데 없는데 시간낭비 하지 말고 글쓰기를 중단하라는 말과 같다.

 

너무 행복해 죽겠다는데

 

한편 E님은 다음과 같이 행복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두딸과 사위까지 너무 행복해서 잡념따위눈 없고 봉사하면서 손지들키우고 에쁘게 늙어가는게 저에게는 최고의 삶이랍니다.ㅎㅎㅎ 님걱정붙들어매삼~~^우리사위는 스텐포드켐브리지런던정경대나온 수제아고 이번에50만불 대학에 후학을 위해 기증했군요.2의 저커버그 랍니다. 너무행복해서 하나님께 매일감사기도드립답니다.안됐네요.글쓰랴 주식시장에 굴쓰랴~구놈의돈이뭔지~~~~~”

(E)

 

 

E님은 행복해 죽겠다고 한다. 자식을 잘 키워 미국에 유학 보내고 또 의사 자식을 두었다고 했다. 사위는 미국에서 최고 명문대학을 나오고 조만간에 저커버그못지 않은 갑부가 될 것이라 한다. 그런 현재의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런 행복을 주신 하나님께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안되어 보인다고 한다. 주식시장 시세판이나 바라보고 일희일비 하는 사람으로 간주 하는 듯 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누구나 행복을 바란다. 지금 행복한 자는 더 행복하기를 바라고, 지금 괴로운 자는 행복하기를 바란다. 부처님도 행복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초기경전에 도처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처님 말씀을 볼 수 있다. 이는 테라와다불교의 예불문이자 수호경인 라따나경(보배경, Sn2.1)에서도 알 수 있다.

 

라따나경 후렴구를 보면 부처님 안에야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라 하여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다. 가르침 안에야 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라 하여 가르침을 찬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참모임안에야 말로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라 하여 승가공동체를 찬탄하고 있다. 이렇게 붓다, 담마, 상가 삼보에 의지하여 귀의처로 하고 피난처로 하는 것이 행복이라 하였다.

 

부처님이 행복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고 하여 불교를 행복의 종교라고 한정 지을 수 없다. 대승불교에서는 불교에 대하여 이고득락이라 하여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 종교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불교의 범위를 행복이라는 울타리로 한정 지어 버리는 결과로 된다. 부처님은 행복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이다.

 

남들이 행복이라 말하지만

 

불교에서 행복을 추구 하지만 그다지 매달리지는 않는다. 불교에서는 궁극적으로 열반을 지향한다. 이런 가르침은 타종교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불교만이 가지는 독특한 사상이고 또한 진리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열반도 행복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그런 행복에 대한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대부분 사람들이 식욕과 성욕, 안락욕, 재물욕, 명예욕과 같은 욕망으로 살아 간다. 이런 욕망을 누리는 것에 대하여 세속적 오욕락이라 한다. 또 사람들은 눈과 귀등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오감에 따른 오욕락으로도 살아간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오감에 따른 오욕락과 세속의 오욕락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때문에 오히려 괴로움으로 본다. 남들이 행복이라 말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세존]

 

형상, 소리, 냄새,

감촉, 사실의 모든 것들

원하는 것, 사랑스런 것, 마음에 드는 것,

존재라고 하는 모든 것.

 

그것들은 하늘사람과 인간의 세상에서

즐거운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들이 소멸될 때가 되면

그들은 그것들을 괴로운 것이라 여기네.

 

다른 사람들이 즐겁다고 하는 것

고귀한 님은 괴롭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이 괴롭다고 말하는 것,

고귀한 님은 즐겁다고 하네. (S35.136)

 

 

세상 사람들은 오감으로 느끼는 즐거운 것에 대하여 행복이라 한다. 이는 다른 말로 즐거움이고 또 다른 말로 재미이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괴로움이라 하였다. 왜 그런가?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으련만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이는 그들이 소멸될 때가 되면 그들은 그것들을 괴로운 것이라 여기네.라는 가르침에서 알 수 있다. 즐거움 또는 재미, 행복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일시적 느낌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조건이 바뀌면 언제든지 괴로움으로 변한다. 마치 청명한 날씨가 사흘 가지 않는 것과 같다. 쾌청한 날도 대기가 오염되면 흐려지고 구름이 형성되어 마침내 비가 내리고 만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행복한 기분일지 모르지만 조건이 바뀌면 좋았던 마음은 이전의 마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세존]

 

이 알기 어려운 원리를 보라.

무지한 자는 여기서 미혹되니,

미혹된 자에게는 암흑이며

보지 못한 자에게는 어둠이다.

 

참사람에게는 열려 있고

보는 자에게는 광명이라

위대한 가르침을 아는 자들은

가까이에서 그것을 인식하네.

 

존재의 탐욕에 굴복하여

존재의 흐름을 따라 흐르면

악마의 영토에 들어가

이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네.

 

거룩한 이를 빼놓고

누가 도대체 그 길을 잘 알아

번뇌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님은

길을 바로 깨달을 수 있으리. (S35.136)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이 있다. 이를 참사람, 즉 사쌍팔배의 성자들이라한다. 그런데 성자들은 알기 어려운 원리를 안다고 하였다. 그것은 일반사람들이 즐겁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거꾸로 괴롭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즐거운 형상 등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으로 분노로 살아 가는 세상 사람들은 소멸해 버리고 말 대상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래서 암흑속에 사는 미혹한 자라 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들만이 원리를 제대로 알아 깨달음을 이룸으로써 완전한 열반에 든다고 하였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삶의 과정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팔풍(八風)

 

행복에는 일시적 행복과 진정한 행복이 있다. 식욕, 성욕, 안락욕, 재물욕, 명예욕을 행복이라 하지만 일시적이다. 조건이 바뀌면 언제든지 사라지고 만다. 지금 예술품과 같은 음식을 접하지만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끝이다. 더구나 대여섯 시간만 되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된다. 이성과 보드라운 잠자리는 그때 뿐이다. 지금 재물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알 수 없다. 살다 보면 명예가 불명예로 바뀔 수도 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여덟 가지 원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획득과 손실, 명성과 악명, 칭송과 비난, 즐거움과 괴로움이다. 이런 일은 삶의 과정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마치 팔랑개비가 바람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다. 그래서 팔풍(八風)’이라 한다.

 

세상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 행복은 일시적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조건만 바뀌면 언제든지 행복이 불행으로 바뀐다. 오늘밤이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9)이라 하였다. 평정을 유지 하는 것이다. 행복 보다 평온 또는 평정이다.

 

행복 보다 평온

 

평정은 행복 보다 더 수승하다. 이는 네 가지 선정에서 최종적으로 평온함만 남기 때문이다. 선정에 들었을 때 희열, 행복, 평온이 함께 하지만 최종적으로 평정만 남게 되었을 때 마음이 고요해져 지혜가 생겨나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평정이라는 말은 사무량심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무량심에서 자애(Metta)’항상 행복하기를!”하기를 바라며 사랑의 마음을 내는 것이고, ‘연민(karua)’고통에서 벗어나기를!”하며 측은지심을 내는 것이다. 이렇게 자애와 연민을 합하여 한자어로 자비라 한다. 또한 상대방의 행복에 대하여 축하해 줄줄 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성공이나 복지, 행복에 대하여 축하하고 공감하는 것을 기쁨(mudita)’이라 한다. 인생의 파란 곡절을 겪을 때가 있다. 이때 업이 바로 나의 주인이고, 나는 업의 상속자이다.”라고 반조 하며 흔들리지 않는 침착과 평정을 유지한다. 이것이 평정(upekkha)이다. 이렇게 불교인들은 자애, 연민, 기쁨, 평정의 삶을 살아 간다.

 

 

2015-11-1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