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스님들 하루 한끼만 드시라!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25. 15:43

 

스님들 하루 한끼만 드시라!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오관게에서 나오는 말이다. 흔히 공양게라 한다. 사찰에 가면 공양식당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이어지는 게송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이다. 이는 승가 뿐만 아니라 재가에도 해당된다. 그래서 마음의 온갖 욕심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음식을 먹자고 하였다.

 

먹어야 사는데

 

어느 한생이 단식을 하고 있다. 학내 문제로 인하여 해 볼 것을 다 해 보았으나 마지막 수단으로 단식을 선택한 것이다. 최후의 수단이 분신이라 하지만 마지막 방법으로 단식을 선택한 것은 승가의 각성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종단의 권력을 거머쥔 스님들은 조금도 물러 설 기미를 버리지 않고 있다. 한 생명이 꺼져 가건 말건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제 3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장(컴)

 

 

출가자나 재가자나 먹어야 산다. 단 하루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져서 견딜 수가 없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 세 끼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수행만 하는 수행자는 하루 한끼만 먹기도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오후불식이라 하여 오전 탁발이 끝나면 일체 먹지 않았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테라와다불교 전통에서도 지켜 지고 있다.

 

먹는 자에게 시비 걸어서는 안 된다. 교계뉴스에 따르면 어느 절에서 스님이 식사하다 쫓겨 났다. 이유는 너희는 밥 먹을 자격도 없다.”라 하여 뒷덜미가 잡힌 채 공양식당에서 쫓겨 난 것이다. 그런데 스님에 의해서 쫓겨 났다는 사실이다. 스님이 스님을 쫓아 내고 더구나 폭행까지 하였다. 종단 최고 권력자 스님의 상좌스님이라 한다.

 

금과 은을 허용한다면

 

한국불교의 타락상에 대하여 연일 뉴스를 통하여 접한다. 세간을 떠들썩 하게 했던 도박사건에서부터 밤샘음주사건에 이르기까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세상사람 듣기에도 낯 뜨거운 성추문과 숨겨 놓은 처자식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불교 승가는 정상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소유일 것이다.

 

최근 조계종과 선학원 분쟁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있었다. 법원에서 조계종이 선학원을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을 각하한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소유에 대한 문제이다. 스님들이 일구어낸 재산을 보호 하기 위하여 선학원에 등록 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결국 재산다툼이다.

 

스님들이 소유해도 될까? 스님들이 재산을 가져도 될까?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이 세속에서와 똑같이 재산을 소유하고 증식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심지어 있는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면 또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상윳따니까야에 누군가 금과 은을 허용할 수 있다면 그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도 허용할 수 있습니다.” (S42.10) 라는 구절이 있다. 이어지는 부처님 말씀은 만약 누군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허용한다면 당신은 그를 수행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거나 싸끼야의 아들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고 확실히 여겨도 좋습니다.” (S42.10) 라 하였다.

 

결국 소유문제이다

 

한국불교에서 어느 스님도 소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날 동국대 사태나 용주사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소유로부터 비롯되었다. 부처님이 금과 은, 요즘 말로 돈과 재산을 가지지 말라고 하였건만 소유하는데서 문제가 시작 된 것이다. 금과 은을 소유하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따르고 이는 출가자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출가자에게 금과 은이 허용된다는 것은 재산소유가 허용된다는 것과 같다. 재산을 소유하면 개인사찰을 지어서 노후대책에 대비한다. 그런데 이런 절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대책을 마련한다. 다른 재단에 등록한다거나 새로 재단을 만들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조계종이라는 승적을 유지한채 재산을 지켜 내기 위한 방법이다. 후자는 탈종을 하여 재단을 지켜내는 방법을 말한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소유에서 비롯 되었다.

 

한국불교는 소유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른 재단에 등록하는 것도 소유에서 비롯되었고, 기존의 재단을 종단에 등록하지 않고 탈종이라는 초강수를 두는 것도 결국 소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개인이 일구어낸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탈종하여 새로운 재단을 만드는 것도 소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가장 비열한 것은 타인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이다. 이는 주어 먹을 건덕지가 있기 때문이다. 동국대사태가 대표적 케이스이다.

 

탁발문화의 실종으로

 

한 학생이 단식 40일을 넘기면서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관련 당사사들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한 생명을 꺼져 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스님은 하루 한끼만 먹는 일종식만 하는 것이 어떻느냐고 권유한다. 또 어떤 관련 스님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 한다. 이렇게 무관심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당사자들을 과연 스님이라 볼 수 있을까?

 

용주사와 동국대사태 관련 스님들은 구족계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족계대로 살까? 아마 수 백 가지나 되는 계를 지키고 사는 스님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계를 지키지 못한다면 율장정신대로 살려고 노력이라도 할까? 아마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계행이 사라지고 율장정신이 실종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탁발문화의 실종이 가장 큰 요인이라 본다.

 

한국불교 스님들은 탁발을 하지 않는다. 한국불교에서는 탁발문화가 실종 됐다. 출가자들의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하여 스님들 스스로 없애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하루 세 끼를 먹고 그것도 부족하여 간식도 먹는다. 심지어 음주도 하고 도박도 하고 몰래 처자식도 가지고 있다. 이 모두가 탈발문화의 실종에서 비롯되었다면 과도할까?

 

스님들 하루 한끼만 드시라!

 

모든 근본 원인은 계행을 지키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이는 율장정신의 실종이다. 그러다 보니 금과 은이 허용 되었고 이는 재산의 소유로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불교에서 모든 다툼의 원인은 결국 재산싸움이다. 재산을 지키려하는 측과 재산을 빼앗으려 하는 측의 싸움이다.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탈종도 불사한다. 이렇게 뺏고 뺏기는 싸움은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계나 다름 없다.

 

오늘날 용주사사태나 동국대 사태 모두 소유와 관련된 것에서 시작 되었다. 소유를 허용한 것이 오늘날 다툼을 낳았다. 그래서 소유를 허용하는 한국불교는 반승반속이다. 반승반속은 승가가 아니라 재가에 속한다. 이와 같은 반승반속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여러 해 된 오물 구덩이라거나 화장터에서 가져온 나무토막과도 같다고 하였다. 비구라고 주장하지만 비구가 아닌 것이 마치 소의 무리를 따르는 당나귀와 같다.”라고 하였다.

 

탁발도 하지 않고 하루 세 끼 먹으며 소유하고, 소유한 재산을 탈종이나 재단설립등으로 지켜 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요즘 스님들의 행태이다. 또 남의 재산을 가로 채려는 스님들도 있다. 모두 탁발정신이 실종된 반승반속이다. 마치 똥구덩이 똥이 쌓이듯 악취 난다. 그럼에도 깨어 있는 불자들이 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목숨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동국대에서 40일 넘게 죽음의 단식을 하고 있는 학생이 죽어 가고 있다. 탁발도 하지 않으면서 계행도 지키지 않으면서 배불리 양껏 세 끼 먹는 스님들이 있다. 소유에 열중하며 반승반속으로 살아 가는 스님들에게 할 말이 있다. 죽어 가는 학생을 위하여,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하여 하루 한끼만 드시라!

 

 

2015-11-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