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뻐꾸기의 탁란(托卵)과 밀어내기를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27. 15:17

 

 

뻐꾸기의 탁란(托卵)과 밀어내기를 보며

 

 

뻐꾸기의 생존본능

 

자연다큐프로를 보면 언제나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 중에서도 새의 부화와 비상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최근 EBS자연다큐프로 생존을 보았다. 그것은 뻐꾸기의 탁란(托卵)에 대한 이야이기이다. 탁란이란 알을 위탁한다는 말이다. 뻐꾸기가 대표적이다.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심어 놓고 사라지는 것으로부터 자연다큐는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뻐꾸기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 간 새가 있다. 뻐꾸기 둥지라는 드라마도 있었다. 하지만 뻐꾸기 둥지는 없다. 뻐꾸기는 둥지를 갖지 않고 탁란하기 때문이다. 번식기에 가짜 어미새의 지저귐을 주의 깊게 관찰한 다음 가짜 어미새의 둥지에 알을 하나 낳는다. 가짜 어미새는 멧새이다. 그런데 멧새의 작은 둥지를 보면 멧새의 알 세 개와 탁란된 뻐꾸기의 커다란 알이 있다. 크기가 작은 멧새는 커다란 뻐꾸기알을 자신의 알로 착각하고 부화시킨다. 그런데 뻐꾸기가 알에서 나오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가장 먼저 알에서 나온 새끼 뻐꾸기는 아직 부화중인 멧새알을 등으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비정한 생존본능이 작동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제 갓 부화한 작은 몸집의 멧새새끼 역시 등으로 밀어내기하여 둥지 밖으로 떨어 뜨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둥지가 독차지 되었을 때 가짜어미새인 멧새로부터 먹이를 먹고 자란다.

 

뻐꾸기가 자라는 속도는 폭발적이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끊임 없이 먹이를 달라고 보채면 가짜 어미새는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도 준다. 마침내 둥지가 비좁을 정도로 커다랗게 자란 뻐꾸기는 가짜어미새 보다 몸집이 몇 배 크다.

 

 

 

 

뻐꾸기탁란에 대한 자연 다큐는 여러 차례 보았다. 볼 때 마다 참으로 세상은 비정하다고 느꼈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평화로워 보이지만 숲속에서는 비극적인 생존경쟁이 연일 매순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뻐꾸기의 탁란장면을 보면 생존경쟁의 절정처럼 보인다. 이제 갓 부화환 눈도 떠지지 않은 뻐꾸기 새끼가 둥지를 독차지 하기 위하여 알을 밀어내기 하고 심지어 어린 멧새새끼를 밀어내기 하였을 때 생존경쟁의 비정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뻐꾸기새끼는 단지 본능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탁란자연다큐를 보면서 두 가지 사실에 주의 하였다. 하나는 폭발적 성장이고 또 하나는 밀어내기에 따른 생존본능이다. 폭발적 성장에 대하여 아비담마논장에서 물질에 관한 설명이 연상되었고, 밀어내기에 따른 생존본능에 대하여 한국불교의 권승들의 행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폭발적 성장에 대하여

 

둥지를 독차지한 뻐꾸기새끼는 가짜 어미새인 멧새가 물어다 주는 벌레 등의 먹이를 먹고 자란다. 그런데 자라는 속도가 가히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알에서 부화한지 불과 20-23일 동안 다 자라 버린다. 20여일 만에 자란 뻐꾸기 새끼는 날개가 달려서 비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먹이를 먹고 마치 폭발하듯이 자라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아비담마논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부의 영양소는 외부에서 받아 유지가 되는데 그 음식을 삼키는 순간부터 머무는 순간에 물질을 생기게 한다. 음식에서 생긴 물질의 무리(깔라빠) 가운데 있는 영양소는 그 다음의 순수한 팔원소(suddhatthaaka)를 생기게 하며, 그 순수한 팔원소에 있는 영양소는 다시 그 다음의 순수한 팔원소를 생기게 한다. 이렇게 팔원소는 열 번이나 열 두 번 까지 생긴다.

 

(āhara samuṭṭhāna rūpa-음식에서 생긴 물질, 아비담마, 대림스님역)

 

 

초불연에서 번역된 아비담마 길라잡이에 따르면 음식에서 생긴 물질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음식을 먹었을 때 먹은 음식만큼만 물질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연쇄작용을 하여 연쇄폭발을 일으키듯이 열 번이나 열 두 번까지 생긴다.”라고 하였다. 바로 이것이 음식에 따라 몸이 자라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그래서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였을 때 이는 성장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폭발에 가깝다.

 

태내에서 성장할 때

 

어미새가 부지런히 벌레 등을 새끼에게 물어다 주었을 때 새끼새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부화한지 불과 몇 일 지나지 않아 날개가 생성 되는 등 몰라 보게 자란다. 이런 현상은 아기가 자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단지 우유만 먹을 뿐인데 자라는 속도는 하루가 다르다. 태내에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아비담마 논장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임신한 어머니가 섭취한 음식은 태아의 몸에 퍼져 들어가서 태아의 물질을 생기게 한다. 몸에 발라진 음식도 물질을 생기게 한다. 다른 세 원인들에 의해서 생긴 몸속의 깔라빠들에게 있는 영양소도 역시 잇달아서 여러 번 순수한 팔 원소들을 생기게 한다. 하루에 섭취한 음식은 칠 일 동안 몸을 지탱할 수 있다고 한다.

 

(āhara samuṭṭhāna rūpa-음식에서 생긴 물질, 아비담마, 대림스님역)

 

 

임신을 하여 태아를 갖게 되었을 때 자라는 모습을 보면 생명의 전 과정이 다 담겨 있다고 하였다. 그 시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부터 분열이 시작 된다. 말이 분열이지 사실 폭발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런데 폭발은 태아기 내내 지족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알에서 부화한 새끼새가 어미새가 물어 주는 먹이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아기를 낳을 정도가 되면 불과 아홉달만에 사람형상을 갖추어 태어난다.

 

업에서 물질이 생겨난다

 

태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질의 특성에 따른다. 이를 음식에서 생긴물질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질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아비담마논장에 따르면 , 마음, 온도, 음식이렇게 네 가지로 보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업에서 물질이 생겨나고, 마음에서도 물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업에서 생겨나는 물질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재생연결식과 관련이 있다. 죽었을 때 죽는다고 다 끝이 아니다. 이전에 지은 행위로 인하여 그 과보에 따라 또 다시 태어나게 되어 있다. 업에서 생겨나는 물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업은 과거의 마음에 있었던 유익하거나 해로운 의도를 뜻한다. 25가지의 유익하고 해로운 업은 12가지 해로운 마음과 8가지 큰 유익한 마음과 5가지 색계의 유익한 마음의 의도를 뜻한다.

 

(에서 생긴 물질, 아비담마, 대림스님역)

 

 

업에서 생긴 물질이란 행위와 관련이 있다. 불선한 행위를 하면 불선과보로 인하여 악처에 태어난다. 선한 행위를 하면 선한 과보로 선처에 태어난다. 그래서 아비담마 논장에 따르면 의도적인 행위의 업은 자신의 흐름(상속)에서 재생연결의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매순간 업에서 생긴 물질을 생산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아비담마 길라잡이에 따르면 업은 마음이 일어나고 머물고 무너지는 매 아찰나마다 물질을 일어나게 하는데 이것은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는 아찰나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직전의 17번째 심찰나까지 전 삶의 과정에서 일어난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행위가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말이다.

 

업의 차별에 따라

 

아비담마논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 법을 설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근기를 고려하지 않은 설명이라 볼 수 있다. 경장에 쓰여 있는 부처님 말씀을 근거로 하여 법에 대하여 분석해 놓은 것이 아비담마 논장이다. 아비담마라는 말 자체가 법에 대하여라는 말이므로 난해 할 수밖에 없다.

 

논장에 따르면 물질은 업에 의해서 생겨난다고 하였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부모로부터 이 몸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을 뛰어 넘는다. 우리의 몸이 부모로부터 형성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업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마음이 형성된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철저하게 경전적 근거를 따른다.

 

맛지마니까야에 업자성정견에 대한 구절이 있다. 이는 “뭇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입니다. 이 뭇 삶들을 차별하여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 (M135)라는 구절이다.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해야 함을 말한다.

 

업자성정견에서 여기서 주의를 끄는 말이 있다. 그것은 업의 차별이다. 귀하거나 천하게 태어나는 원인이 업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말은 아비담마 논장에서 원인과 관련된 재생연결식으로 설명되어 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 그런데 죽기 전에 이생과 다음생을 연결하는 식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재생연결식이라 한다. 그런데 재생하는 조건을 보면 이전 생에서 지었던 행위가 태어 날 세상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악행을 하여 악과보를 받으면 악처에 태어나고, 선행을 하여 선과보를 받으면 선처에 태어난다는 것이 업자성정견이다. 그래서 업(행위, 깜마)가 뭇삶들을 차별하여 귀하거나 천하게 태어난다고 하였다.

 

귀하게 태어나고 천하게 태어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아비담마에서는 재생연결과정에서 다음생을 결정하는 세 가지 또는 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한다. 어떤 원인일까? 이는 다름 아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수행을 좀 했다는 사람은

 

최근 일묵스님의 아비담마강좌를 듣고 있다. 유튜브에 올려져 있는 동영상강좌이다. 봉녕사 승가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올려 놓은 것이다. 아비담마 강좌 8강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원인이 두 개가 되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육근이 골고루 갖추어집니다. 그 대신 지혜가 부족합니다. 이 생에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재생연결식에서 원인이 세 개가 되야 삼매도 들 수 있고, 선정에도 들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죽기 전에 원인 세 개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생에서 수행을 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묵스님ㅣ봉녕사 아비담마 8)

 

 

이 이야기를 보면 매우 인정사정 없는 비정함 같은 것을 느낀다. 이는 대승에서 말하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말과 반대 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사람마다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어서 누구나 자신이 본래부처임을 알아 자신이 본래부처인 것을 증명만 하면 누구나 이 자리에서 성불할 수 있다는 선종의 논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에서는 차별을 인정한다. 이는 맛지마니까야에서 업에 의하여 귀하거나 천한 차별을 인정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래서 원인이 세 개가 되야 삼매도 들 수 있고, 선정에도 들 수 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 하였다. 그렇다면 원인이 세 개 또는 두 개라는 무슨 뜻일까?

 

임종순간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이때 원인을 세 개 갖는 자는 태어나는 곳에서도 원인을 세 개 갖고 태어난다고 하였다. 여기서 원인 세 개라는 것은 무탐, 무진, 무치를 말한다. 이는 수행과 관련이 있다. 평소 수행을 하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약화시키거나 소멸시킨 자가 이에 해당된다.

 

원인이 두 개로 태어나는 자가 있다. 이는 무탐과 무진이라는 원인이다. 그런데 무치에 해당되는 지혜가 결여 되어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원인을 가지고 재생연결식으로 태어 났을 때 역시 지혜가 결여 된 채로 태어나게 된다. 없던 지혜가 이생에서 생겨나지 않음을 말한다. 이렇게 지혜가 결여 된 채로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을 때 선정도 깨달음도 이루기 힘든 것임을 말한다. 이는 대승에서 말하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말과 정 반대 되는 말이다. 이렇게 초기 불교에서는 업에 의한 차별을 인정한다.

 

생이지지(生而知之)

 

업에 의한 차별을 인정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그래서 선종에서 말하는 누구든지 자신의 안에 있는 불성을 보면 단박에 깨닫게 된다는 돈오돈수는 성립하지 못한다. 있다면 돈오점수가 있다. 점진적으로 지혜가 향상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여러 생을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 깨달음을 이룬 사람들은 사실 이전 생에서 닦은 사람들이다. 아비담마 논장을 보면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 그것이 원인 세 개에 해당된다. 이전 생에서 무탐, 무진, 무치의 수행을 한 자는 다음 생에서도 세 개의 원인이 그대로 유지 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생이지지(生而知之)로 설명할 수 있다.

 

생이지지는 태어날 때부터 지혜를 갖추고 태어난 자를 말한다. 이는 학습에 의해서 습득된 학이지지와는 다른 것이다. 생이지지와 관련된 게송이 있다. 청정도론 오프닝테마 게송이라 볼 수 있는 게송으로 청정도론 제1장 제1절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등장한다.

 

 

Sīle patiṭṭhāya naro sapañño

citta paññañca bhāvaya,
Ātāpi nipako bhikkhu

so ima vijaaye jaanti.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

열심히 노력하고 슬기로운 수행승이라면,

이 매듭을 풀 수 있으리. (S1.23)

 

 

게송을 보면 계--혜 삼학을 갖춘 수행자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갖춘 사람이 얽힌 매듭을 풀 수 있다고 하였다.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한다.

 

게송에서 지혜를 갖춘 사람(naro sapañño)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바로 이 말이 원인 세 개를 가지고 태어난 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빠알리어 사빤냐(sapañña)’有智慧者, 具有智慧的로 설명된다. 이는 지혜를 갖춘 자또는 지혜를 구족 한 자라는 뜻이다.

 

지혜를 갖춘 자라는 뜻이 나로 사빤냐(naro sapañño)’이다. 이는 전생에 수행을 한 자를 말한다. 수행을 하여 무탐과 무진과 무치의 세 개의 원인에 따른 행위를 하였고, 세 개의 원인에 따른 큰 과보로 다음 생애 지혜를 가지고 태어난 자를 말한다, 이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지혜를 갖추고 태어난 자를 나로 사빤냐,  생이이지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지혜를 갖춘 자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사는 자들은

 

아비담마 논장을 읽어 보면 냉철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이야기도 있는 그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 중의 하나가 지혜가 결여 된 채로 태어나는 케이스이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원인을 세 개로 태어나는 자가 가장 수승하다. 그런데 원인이 두 개로 태어나는 자는 지혜가 없다고 하였다. 선정에 들기도 깨닫기도 힘들다고 하였다. 그런데 원인을 갖지 않고 태어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개의 원인이 아니라 원인 제로인 것을 말한다.

 

원인이 제로인 채로 태어난 자는 전생에 전혀 수행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마치 동물처럼 식욕과 성욕에 따라 본능처럼 산 자를 말한다. 이처럼 탐욕과 분노로 산 자들에게 지혜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원인 제로로 태어난 자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인과를 믿지 않는 것이다. 보시를 하면 과보를 받는다는 과보를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사공덕이라든가 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윤회를 부정하는 자들도 해당된다.

 

이번 생에서 오로지 본능대로 사는 자는 죽으면 끝이다.’라는 단멸론적 행태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생은 한번뿐이라 하여 즐기는 삶을 지향한다. 이렇게 즐기는 삶은 행복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이는 지혜가 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평소 본능대로 산 자는 임종시에 원인을 제로로 하는 과보를 받는다. 이는 악처에 떨어지는 요인이 된다. 이는 이 세상에 어떤 여자나 남자는 화를 잘 내고 우울해서, 사소한 말에도 화내고 성내고 노하여 저항하고, 분노, 미움, 불만을 나타냅니다. 그는 그 행동과 그와 같은 행동의 결과로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납니다.”(M135) 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무탐, 무진, 무치의 원인이 제로인 자로 태어난자들은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낮은 지위를 갖는다. 또한 선천적 불구로 태어나기도 한다. 눈이 멀거나 귀가 멀면 깨달음을 이루기 힘들다. 정신적 장애를 가져도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 이처럼 무탐, 무진, 무치 세 가지 원인 중에 아무런 원인을 갖지 않는, 원인 제로로 태어나는 자에 대하여 경에서는 그 어리석은 자는 오랜 세월이 지나 언젠가 어느 곳에선가 인간의 몸을 얻는다면, 그때마다 비천한 가문 즉 짠달라의 가문, 사냥꾼의 가문, 죽세공의 가문, 수레공의 가문, 백정의 가문과 같은 가난하고 음식이 모자라고 곤궁하게 사는 가문에 다시 태어난다. 그곳에서는 음식과 의복을 얻기도 힘들다. 그는 용모가 악하고 모습이 추하고 왜소하고 질병이 많고, 눈멀거나 팔병신이거나 절름발이이거나 반신불수이고, 음식, 의복, 수레, 화환, 향료, 크림, 침대, , 등불을 얻지 못한다.” (M129) 라 하였다. 이것이 업의 법칙이다.

 

어떻게 마음에서 물질이 생겨나는가?

 

물질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업에서 생겨난 물질, 마음에서 생겨난 물질, 음식에서 생겨난 물질, 온도에서 생겨난 물질이다. 특히 음식에서 생겨난 물질은 놀랍게도 폭발적이다.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 먹은 만큼만 물질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연쇄반응을 일으켜 또 다른 물질이 생겨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팔원소를 열 번 또는 열 두번 생겨나게 한다고 하였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업과 마음에서 물질이 생성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이제까지 부모로부터 몸이 생겨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상식을 깬다. 업에서 물질이 생성된다는 것은 연기법에 따라 설명된다. 이는 십이연기에서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물질의 생성 조건이 식이고, 식은 행위()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이 연기법이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생명현상은 연기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마음에서 물질에서 생겨난다고 하였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에 대하여 아비담마논장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에서 생긴 물질은 재생연결식 바로 다음의 첫 번째 바왕가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생긴다. 재생연결식은 물질을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재생연결의 순간에 생기는 물질은 업에서 생긴 것이며 이 재생연결식은 그 생에 처음 온 일종의 신입생이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생긴 물질, 아비담마, 대림스님역)

 

 

마음에서 물질이 생겨난다는 것은 재생연결 다음이라 하였다. 매순간 매찰나에 마음이 일어날 때 마다 물질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행위에 따라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는데 이후 전개 되는 과정은 십이연기에 따른다. 즉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식은 마음을 뜻한다. 그래서 마음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의도적 행위에 따라 매순간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마음에서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명상중에서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명상 중에 보는 을 말한다. 호흡관찰을 하였을 때 어느 순간 호흡이 보름달 같은 빛으로 바뀐다고 하였다. 마음의 대상이 호흡에서 빛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후 빛을 대상으로 명상하게 되는데 이를 선정삼매로 들어 가는 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명상 중에 빛, 니밋따(nimitta)가 생겨나는 것에 대하여 보편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마음이 만들어낸 물질이 빛인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탁란을 본다

 

자연다큐 탁란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하였다. 하나는 폭발적 성장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생존을 위한 밀어내기에 대한 것이다. 알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가 단지 벌레를 먹는 것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비담마 논장에 따르면 물질이 또 물질을 만들어 열 번에서 열 두 번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폭발적 성장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

 

뻐꾸기는 둥지를 갖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알을 남의 둥지에 슬쩍 놓아 탁란한다. 이런 행위자체가 비열하지만 더욱 더 비열한 것은 알에서 부화한 뻐꾸기새끼의 행위에 대한 것이다. 부화한지 하루 이틀 밖에 되지 않는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멧새의 알을 등으로 밀어내기 한다. 또 멧세새끼를 역시 등으로 밀어내기하여 둥지 아래로 떨어뜨린다. 비정해 보이지만 이는 뻐꾸기가 생존하는 전략이다. 거의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탁란하고 밀어내기 하는 비정한 현상을 한국불교에서 보고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권승들이 모든 것을 독차지 하고 있다. 총무원은 물론 종회, 교구본사 주지 등 이권이 되는 것이라면 모조리 차지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국대 총장과 이사장 까지 장악하였다. 이처럼 이권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태가 뻐꾸기와 너무 유사하다.

 

어느 스님은 권승들의 행태에 대하여 절대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렇게 말한 것은 어렸을 때 절에 들어 왔기 때문이라 한다. 소년기 또는 청소년기에 절에 맡겨져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스님이 되었을 때 절대 공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원인을 보니까 한결같이 총무원에 있는 사람들 99.99가 다 그런 사람들이에요. 절대로 어릴 때 들어온 사람들입니다.”라 하였다.

 

어릴 때 절에 들어 온 사람들이 모두 비뚤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체로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출가한 것이 아니라 절에 맡겨져 자랐기 때문이다. 마치 뻐꾸기가 알을 탁란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절에 맡겨져 자란 아이들이 스님이 되었을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마치 새끼뻐꾸기가 멧새 알을 밀어내기 하고 멧새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기 하듯이, 권승들은 요직을 장악하고 청정한 스님들을 몰아 냈다. 뻐꾸기의 행태와 너무 유사한 것이다. 

 

어느 스님은 젊은 날 선방에서 수행 할 때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스님에 따르면 밤새 뻐뻐꾹, 뻐뻐꾹하며 울어 대는 뻐꾸기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 이었다고 한다. 마치 피를 토하듯이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가 어느 순간 이뭐꼬, 이뭐꼬하는 소리로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뻐꾸기 소리를 듣고 이뭐꼬 화두, 시심마로 바꾸었다고 한다.

 

뻐꾸기가 뻐꾹 뻐꾹 하며 우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타락하고 권승들의 독차지가 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권승들의 행태에서 뻐꾸기의 탁란행위와 밀어내기를 본다.

 

 

 

2015-11-2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