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험담하는가? 차라리 고귀한 침묵을, 마음에 새겨야 할 여섯 가지 수념(随念: anussati)
선거철인가
확실히 선거철이다. 그 동안 뜸 하였던 인터넷게시판을 들여다 보는 빈도가 많아 졌다. 불과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잊고 살았던 정치관련 뉴스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특히 댓글까지 챙겨 보고 있다. 또 정치관련 팟캐스트도 열심히 듣고 있다.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정치인의 탈당과 새로운 정당의 창당에 기인한다.
정치관련 뉴스와 게시판, 팟캐스트를 통하여 느낀 것이 있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여 아군이면 옹호하고 적군이라 생각되면 무자비하게 밟아 버리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특정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다. 싫어 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서는 막말이 난무한다. 더구나 갖은 욕설과 중상모략이 난무한다. 한번 보고 다시 쳐다 볼 필요 없는 쓰레기 같은 글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올리는 자들이 있다. 역시 쓰레기 같은 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팟캐스트방송을 열심히 듣고 있다. 그 중에 유명정치인들이 진행하는 방송에귀를 기울인다. 마치 라디오 듣듯이 가볍게 들으면 재미도 있을 뿐 더러 세상 돌아 가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나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단체에 이익이 되면 적극 옹호 하고 손해가 되면 내치는 방식이다. 특히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하여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 하였을 때 실망으로 바뀌게 된다. 결국 인터넷게시판에서의 쓰레기들과 그다지 다름이 없음을 느낀다.
최근 정치관련 뉴스, 뉴스와 관련된 댓글, 그리고 게시판과 팟캐스트를 보면서 동물세계를 떠 올렸다. 마치 사바나에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동물세계를 보는 듯 하다. 어떤 면으로 보면 동물세계 보다 못한 면도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입으로 짓는 ‘구업’때문이다.
입에 칼을 물고
구업과 관련하여 초기경전을 보면 “싸우고 다투고 논쟁하면서 서로 입에 칼을 물고 찌른다.” (Ud6.4) 라는 말이 있다. 이는 외도들이 “이러한 것이 진리이고 이러한 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러한 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러한 것이 진리이다.”라고 논쟁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봉사들이 코끼를 만져 보며 싸우는 것을 말한다.
눈먼자들이 서로 논쟁할 때 이를 지켜 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아마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선천적으로 눈먼 봉사들이 코끼리를 만져 보면서 코끼리를 설명하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입에 칼을 물고 다투는 자들은 때로 중상모략을 일삼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사람이 태어날 때 참으로 입에 도끼가 생겨난다.” (stn657) 라 하였다. 이는 악한 마음을 가진 꼬깔리야가 부처님의 상수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모함하려 한 것에서 말씀 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중상모략하려는 꼬깔리야에게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고 죄악 없는 사람을 미워하는 자, 그 어리석은 자에게, 바람을 거슬러서 미세한 먼지가 불어오듯, 반드시 그 악함은 되돌아 온다.” (stn662) 라 하였다. 누군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도끼를 휘둘렀을 때 자신의 발등을 찍을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이는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찍는다.” (stn657) 라 하였다.
중상모략과 이간질
뉴스의 댓글이나 인터넷게시판은 오물장과 같다. 유명인사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속한 조직이나 단체에 불이익이 간다고 생각해서일까 일제히 입에 칼을 물고 찌르고 있다. 마치 초원의 하이에나를 보는 듯 하다. 조직이나 단체의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없는 말이라도 만들어 내고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 중상모략도 불사하는 것이다.
중상모략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중상과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뜻한다. 뉴스의 댓글, 게시판의 험담, 팟캐스트의 일방적 보도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초기경전에서는 어떻게 정의 되어 있을까? 다음과 같다.
Pisunāvāco hoti ito sutvā amutra akkhātā imesaṃ bhedāya, amutra vā sutvā imesaṃ akkhātā amūsaṃ bhedāya. Iti samaggānaṃ vā bhettā bhinnānaṃ vā anuppadātā vaggārāmo vaggarato vagganandī vaggakaraṇiṃ vācaṃ bhāsitā hoti.
“이간질하니, 여기서 들어서 저기에 말하여 저들을 갈라놓고, 혹은 저기서 들어서 여기에 말하여 이들을 갈라놓으며, 분열을 조장하고, 불화를 좋아하고, 불화를 기뻐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말을 합니다.”
(쭌다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10.176, 전재성님역)
빠알리어 pisunāvāca가 있다. 이를 ‘malicious speech’라 하여 악의적인 말이다. Pisunā가 ‘slander; malicious speech’의 의미로 중상을 뜻한다. 그래서 초불연에서는 pisunāvāca에 대하여 중상모략이라 하였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이간질’이다. 초불연 대림스님은 “그는 중상모략을 한다. 그는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시키려고 저기서 말한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시키려고 여기서 말한다. 이처럼 화합하는 자들을 이간시키고 이간을 조장한다. 그는 불화를 좋아하고, 불화를 기뻐하고, 불화를 즐기며, 불화를 만드는 말을 한다.”라고 번역하였다. 전재성님은 pisunāvāca에 대하여 ‘이간질’이라 번역하였다.
없는데서 남말하는 사람
사람들은 모이면 잡담을 한다. 잡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경에 따르면 “군주에 대한 이야기, 도적에 대한 이야기, 대신에 대한 이야기, 군사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대에 대한 이야기, 꽃장식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족에 대한 이야기, 승차에 대한 이야기, 취락에 대한 이야기, 부락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성에 대한 이야기, 남성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우물에 대한 이야기, 망령에 대한 이야기, 만담에 대한 이야기, 세계에 대한 이야기, 해양에 대한 이야기, 유무에 대한 이야기,” (M41) 등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남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도 험담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남이 없을 때는 칭찬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헐 뜯는 말이 되기 쉽다. 이런 현상은 남녀노소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남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식당에서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치인 등 대부분 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런 현상은 NGO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짧은 기간동안 불교재가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한국불교의 타락한 모습에 자극받아 뜻 있는 재가활동가들이 모여 단체를 만든 것이다.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목적중의 하나이지만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나 비난 일색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남의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난도질 치는 행위를 말한다. 입에 칼을 물고, 태어나면서부터 입에 도끼를 가진 것처럼 난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지나쳐서 어느 법우님은 같은 도반에 대해서도 험담 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어 보니 틀림 없는 중상모략 또는 이간질이었다.
말 하는 것에 대하여 구업을 짓는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언어적으로 짓는 네 가지 부정한 것을 말한다. 그것은 거짓말 하는 것, 이간질 하는 것, 욕지거리 하는 것, 꾸며 대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를 한자어로 망어, 양설, 악구, 기어라 한다. 천수경에서는 십악참회라 하여 네 가지에 대하여 망어중죄금일참회, 양설중죄금일참회, 악구중죄금일참회, 기어중죄금일참회라 하여 중죄로 보고 매일매일 참회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남 이야기 한다. 이 세상에 남말 하는 것만큼 달콤한 안주가 없을 듯 하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받은 자가 퇴근후 저녁 술좌석에서 상사를 안주삼는 것도 말로서 짓는 구업에 해당된다. TV에서는 연예프로라 하여 인기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보도한다.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불자들 역시 만나면 남이야기한다. 없는데 남말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험담
남말 하다보면 양설이 되기 쉽다. 양설은 한결 같은 말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하여 ‘이간질’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있을 때 하는 말 다르고 상대방이 없을 때 하는 말이 다른 것이다. 만약 누군가 상대방이 없을 때 험담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방에 대하여 칭찬하면 어떻게 될까? 역시 상대방이 알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낫다. 말을 하여 상대방의 귀에 들어 갈 수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칭찬하는 말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험담을 한다. 상대방이 없는 데서 남말 하는 것이다. 대부분 부정적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렸을 때 어떻게 될까? 아마 이간질 또는 중상모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여기서 들어서 저기에 말하여 저들을 갈라놓고, 혹은 저기서 들어서 여기에 말하여 이들을 갈라놓으며, 분열을 조장하고, 불화를 좋아하고, 불화를 기뻐하고, 불화를 일으키는 말을 합니다.”와 같은 가르침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현명한 자의 칭찬
사람들은 하루에 일정단어를 말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한다. 어떤 종교인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하루에 만5천단어, 여자의 경우 2만5천단어를 내 뱉어야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말하는 것 대부분이 잡담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것이 많다. 그러다 보니 남말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역시 초기경전에 답이 있다. 말을 하되 청정한 말을 하는 것이다. 남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남말 할 수밖에 없다면 상대방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된다. 단점에 대해서는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없는 데서 남말하는 자는 비열한 사람이다. 등뒤에서 칼을 꼽는 것과 다름 없다. 반면 없는 데서 남말하긴 하지만 장점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은 현명한 자이다. 그런데 용기 있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상대방의 단점을 직접 대면하며 이야기하는 자를 말한다.
불교인이라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였다. 없는데서 험담을 하지만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한번 내 뱉은 말은 비밀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는 없는 데서 험담하는 자이다. 현명한 자는 없는데서 장점을 말하는 자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법담’을 하는 것이다. 이는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stn266) 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불교인이라면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이를테면 곧 소욕에 대한 이야기, 지족에 대한 이야기, 출리에 대한 이야기, 교제를 떠남에 대한 이야기, 정진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삼매에 대한 이야기, 지혜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이야기,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의 이야기” (M26) 라 하였다. 이와 같은 법에 대한 이야기는 밤을 세워도 좋은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제자들은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나눕니다.” (율장대품, 10장 꼬삼비다발) 라 하였다.
고귀한 침묵
부처님 가르침은 8만 4천가지나 된다. 이와 같은 방대한 가르침에 대하여 평생가도 모두 접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잡담으로 험담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부처님 제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잡담을 하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고 입만 다물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법담을 위하여 모였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수행승들이여, 모임은 두 종류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M26)
수행자들이 모여 있을 때 대화가 오갈 것이다. 그때는 법담을 해야 함을 말한다. 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을 때는 차리리 ‘침묵’을 지키라고 하였다. 이를 ‘고귀한 침묵’이라 한다.
고귀한 침묵에 대하여 상윳따니까에 따르면 ‘수행승이 사유와 숙고를 멈춘 뒤 내적인 평온과 정신의 통일과 무사유와 무숙고와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번째 선정에 들면 그것을 고귀한 침묵이라고 부른다.”(S21.1) 라 하였다.
고귀한 침묵이라 하여 입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선정에 드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맛지마니까야 주석에 따르면 고귀한 침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선정과 근본적인 명상주제가 모두 이 고귀한 침묵에 해당된다.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할 수 없는 자들에게 근본적인 명상의 토대를 닦게 함으로써 고귀한 침묵을 유도한다. (Pps.II.169)
(맛지마니까야 465번 각주)
고귀한 침묵에 대하여 두 가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선정 상태인 것과 근본적인 명상의 토대를 닦는 것이라 하였다. 여기서 근본적인 명상의 토대는 사마타 명상 주제 40가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마음에 새겨야 할 여섯 가지 수념(随念: ānussati)
청정도론에 따르면 40가지 명상주제가 설명되어 있다. 그 중에 ‘불수념(buddhānussati)’이 있다.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처럼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잘 길들이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이다.”(S11.3)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을 말한다.
불수념외 법수념(dhammānussati)과 승수념(saṃghānussati)도 있다. 삼보를 기억하며 되새기는 것을 말한다. 또 계수념(sīlānussati), 시수념(cāgānussati), 천수념(devatānussati)이 있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수념에 대한 것은 앙굿따라니까야 마하나마의 경(A6.10)을 근거로 한다. 여섯 가지 수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불수념(buddhānussati)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u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이처럼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잘 길들이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이다.
2) 법수념(dhammānussati)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ayiko1 paccattaṃ veditabbo viññuhī
세존께서 잘 설하신 가르침은 현세의 삶에서 현세의 삶에 유익한 가르침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가르침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가르침이며,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가르침이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가르침이다.
3) 승수념(saṃghānussati)
supaṭipanno1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ā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사람의 모임은 훌륭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사람의 모임은 정직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사람의 모임은 현명하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사람의 모임은 조화롭게 실천합니다.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사람의 모임은 조화롭게 실천합니다. 이와 같이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참사람의 모임은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참사람들로 이루어졌으니, 공양을 받을 만 하고 대접받을 만하고 선물받을 만하고 존경받을 만하고 세상에 가장 훌륭한 복밭입니다.
4) 계수념(sīlānussati)
akhaṇḍāni acchiddāni asabalāni akammāsāni bhūjissāni viññuppasatthāni aparāmaṭṭhāni samādhisaṃvattanikāni.
파괴되지 않고 균열되지 않고 잡되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현자가 칭찬하고 번뇌에 물들지 않고 삼매로 이끄는 것이다. (A6.10)
5) 시수념(cāgānussati)
lābhā vata me, suladdhaṃ vata me, yohaṃ maccheramalapariyuṭṭhitāya pajāya vigatamalamaccherena cetasā agāraṃ ajjhāvasāmi muttacāgo payatapāṇī vossaggarato yācayogo dānasaṃvibhāgaratoti.
내가 인색의 때에 사로잡힌 사람들 가운데서 인색의 때를 제거하여 관대하게 주고 아낌없이 주고 기부를 즐기고 요구에 응하고 베풀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며 집에서 사는 것은 참으로 나에게 좋은 일이고, 참으로 나에게 훌륭한 일이다.
6) 천수념(devatānussati)
santi devā cātummahārājikā, santi devā tāvatiṃsā, santi devā yāmā, santi devā tusitā, santi devā nimmānaratino, santi devā paranimmitavasavattino, santi devā brahmakāyikā, santi devā taduttariṃ. Yathārūpāya saddhāya samannāgatā tā devatā ito cutā tattha uppannā, mayhampi tathārūpā saddhā saṃvijjati, yathārūpena sīlena samannāgatā tā devatā ito cutā tattha uppannā, mayhampi tathārūpaṃ sīlaṃ saṃvijjati. Yathārūpena sutena samannāgatā tā devatā ito cutā tattha uppannā, mayhampi tathārūpaṃ sutaṃ saṃvijjati. Yathārūpena cāgena samannāgatā tā devatā ito cutā tattha uppannā, mayhampi tathārūpo cāgo saṃvijjati. Yathārūpāya paññāya samannāgatā tā devatā ito cutā tattha uppannā, mayhampi tathārūpā paññā saṃvijjatī
네 위대한 왕이 있는 하늘나라의 신들이 있고, 서른 셋 하늘나라의 신들이 있고, 축복받는 하늘나라의 신들이 있고, 만족을 아는 하늘나라의 신들이 있고, 창조하고 기뻐하는 하늘나라의 신들이 있고, 남이 만든 것을 지배하는 하늘나라의 신들이 있고, 하느님의 권속인 하느님 세계의 신들 등이 있다.
그 신들은 이와 같은 믿음을 갖추고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나에게도 역시 믿음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나는 그와 같은 믿음이 있다.
그 신들은 이와 같은 계행을 갖추고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나에게도 역시 계행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나는 그와 같은 계행이 있다.
그 신들은 이와 같은 배움을 갖추고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나에게도 역시 배움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나는 그와 같은 배움이 있다.
그 신들은 이와 같은 보시를 갖추고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나에게도 역시 보시를 갖추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나는 그와 같은 보시가 있다.
그 신들은 이와 같은 지혜를 갖추고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났다. 나에게도 역시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죽어서 그곳에서 태어나는 그와 같은 지혜가 있다.
(Mahānāmasutta-마하나마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6.10, 전재성님역)
청정도론에 소개 되어 있는 여섯 가지 수념에 대한 것은 모두 앙굿따라니까야 ‘마하나마의 경’을 근거로 하고 있다. 불자들에게 생소한 것은 계수념과 시수념과 천수념에 대한 것이다. 이중 천수념에 대한 것을 보면 모두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믿음(saddhā), 계(sīla), 배움(suta), 보시(cāga), 지혜(paññā)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계생천’과는 다르다.
수념을 하면 어떤 이익이
그렇다면 이와 같은 수념을 하였을 때 이익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경에 따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사로 잡힌 마음이 없어지고 ‘마음이 올바로 정초된다(Ujugatacitto)’고 하였다. 여기서 ujugata는 ‘straight; upright of life’의 뜻이다. 따라서 수념을 하면 곧게 펴진 마음이 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올곧아진다”라 하였다.
마음이 올곧아 지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이에 대하여 여섯 가지 수념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세존]
“마하나마여, 마음이 올바로 정초되면 고귀한 제자는 목표에 대한 감동을 얻고, 가르침에 대한 감동을 얻고, 가르침에 대한 기쁨을 얻습니다. 기쁨이 있으면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있으면 몸이 고요해지고, 몸이 고요해지면 지복이 체험되고, 지복이 있으면 마음이 집중됩니다. 마하나마여, 이 고귀한 제자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올바른 길로 가고, 폭력의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비폭력의 길을 가고, 진리의 흐름에 들어 깨달은 님에 대한 새김을 닦습니다.”
(Mahānāmasutta-마하나마의 경, 앙굿따라니까야 A6.10, 전재성님역)
이것이 여섯 가지 수념에 대한 이익이다. 고귀한 침묵이라 40가지 사마타명상 주제 중에 여섯 가지 수념을 닦으면 감동, 기쁨, 희열, 몸의 고요, 지복, 마음 집중 상태가 됨을 말한다. 그래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하고 비폭력의 길로 인도한다고 하였다. 최종적으로 진리의 흐름에 든 다고 하였다.
2016-02-0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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