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보통불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16. 7. 23. 08:36

 

보통불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것은 욕먹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익명의 사이버세상에서는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트집잡아 부정적인 글로 도배하기 일쑤 입니다. 심지어 욕설을 하고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중상모략도 합니다. 그저 그려러니 합니다. 구업짓는 것에 대하여 자비로 지켜 볼 뿐 입니다.

 

최근 미디어붓다에 마성스님의 글이 실렸습니다. “한국불교 망치려는가?”라는 자극적 제목의 글 입니다. 늘 그렇듯이 언론사에서 붙인 제목입니다. 눈길을 끌기 위한 일종의 미끼제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마성스님은 필명 진흙속의연꽃 글과 댓글놀이 하는 불자들을 질책 했습니다. 글이 게제 되자 부정적인 댓글이 난무 했습니다. 몇 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댓글1

진흙속연꽃이 읽고 참회하라고 쓰신 글입니다.

상식 없는 자가 초기경전 운운하며 억지 글을 난발하는 것이 초기불교를 망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이 설해진 동기 역사를 모르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수미산이니 33천이 어떻고 지옥과 천상이 실제로 있는 것으로 믿게 되고 귀신 천신이 돌아다닌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그대로 믿지 않는다고 도리어 이단이라고 힐란하는 연꽃 같은 바보가 없길 바랍니다...

 

2) 댓글2

아니라 다른종교도 그렇지만 종교의 가장 원천적인 문제인 이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일반재가자가 불교관련글을 쓰면서..

저는 이러한 우리나라의 불교적인 현실이 문득 슬퍼지더군요.

그렇게도 불교관련 블로그를 운영할 인재가 없나? 그래서 결국엔  이름도 가명에다가 얼굴도 공개를 않하는..일개 일반, 보통불자가  돈도 되지 않는다면서  ....은근슬쩍 불교블로그를 하면서, 스님도 비판하고, 학자들도 자신의 발아래로 보고, 그리고 어떨때는 바로 자신이 부처인양 그리 착각도 한다고 ,,,허심탐회하게 자신의 속을 털어 놓기도 하는 이러한 개탄할만한 우리나라 불교계의 현실이...너무 슬프고 화가 납니다.

 

3)댓글3

진흙도 나름대로 경전에 근거하여? 경전 어디에 '자비의 일환으로 라도 화를 내면 잘못'이라고 했는가? 진흙은 '자비의 일환으로 내는 화도 금해야 한다는' 경전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다.

 

 

미디어붓다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 편 올립니다. 작년 2월 부터 올렸는데 88회 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것중에 선별해서 올립니다. 블로그와 달리 언론에 올리는 글이라 책잡히는 내용은 없는지 사실에 어긋나는 것은 없는지 매우 신중한 입장 입니다. 그럼에도 보통불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댓글을 보면 사실과 다릅니다. 마치 남의 머리에 들어와 본 것처럼 글을 썼습니다.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성스님의 댓글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성스님의 진흙속의연꽃에 대한 인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테면 진흙속의연꽃의 글을 <미디어붓다> 메인으로 올리는 것도 진흙속의연꽃의 글이 훌륭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터넷언론의 노이즈마케팅(noise marketing)이다. 즉 완벽한 글보다는 무언가 부족하면서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글을 인터넷언론에서는 선호한다. 그래야 많은 댓글들이 달리고 조회 수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의 생명은 조회 수에 달려 있다. 조회 수에 따라 광고의 단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진흙연꽃의 목적과 <미디어붓다>의 목적이 서로 부합되었기 때문에 그의 글을 대문에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임은 말할 나위없다.

 

만일 진흙속의연꽃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글을 계속 연재했다면 순수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후자에 속한다면 그는 문자적인 지혜는 있는지 모르나 실제적인 지혜는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혜를 불교에서는 마른 지혜, 즉 건혜(乾慧)라고 부른다.

 

내가 볼 때, 진흙속의연꽃의 장점은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어떤 글감을 찾아 글을 쓰겠다는 그 열의와 정열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글이란 많이 쓴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단 한 편의 글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게 하는 것이 훌륭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도 실렸던 금아 피천득의 “낙엽을 태우며” 같은 글은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나는 진흙속의연꽃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고 혼자 생각해 볼 뿐이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충고를 한 번 해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조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진흙속의연꽃을 미워하지 않는다. 즉 사적인 분노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의 글로 인해 불교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하는 노파심에서 위의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마성스님)

 

 

우선 스님의 지적과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스님은 보통불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점잖게 비판 했습니다. 사실 마성스님과 인연은 오래 되었습니다. 수 년 전에는 칭찬도 하고 바로 잡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글에 대한 비판글을 한번 올린 후로 냉냉해진 것 같습니다. 오해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한 바 있습니다.

 

스님은 건혜(乾慧)’라는 말을 했습니다. ‘문자적인 지혜는 있는지 모르나 실제적인 지혜는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아마 쓴 글에서 일부 문제 되는 표현에 대한 판단인 듯 합니다. 또 스님은 어리석은 자라고도 했습니다. 미디어붓다에서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노이즈마케팅용으로 활용하는데 그것도 모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인기를 위해 글을 쓴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모두 빗나간 견해 입니다.

 

미디어붓다에 글을 쓰는 것은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허핑턴포스트를 지향하는 미디어붓다에서 다양한 필진을 찾고 있습니다. 스님, 학자, 과학자, 교육자 등 각계각층의 필진 중에 블로거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약속대로 일주일에 한 두 편 올리는 것을 성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 칼럼을 쓰지 않습니다. 만일 세상에 이름 석자를 알리려 한다면 실명을 써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필명을 쓰고 얼굴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때로 써서는 안될 불리한 것까지 쓰기도 합니다. 음주에 대해 쓰면 오계도 안지킨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없는 사실을 유포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부처님의 승리와 축복을 노래한 자야망갈라가타의 한 게송을 떠 올려 봅니다. 부처님을 음해 하려는 사람에게 부드러움과 고요함으로 섭수한 이야기 입니다. 자비만큼 큰 힘이 없습니다.

 

늘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좋은 글은 경전을 바탕으로 한 글 입니다. 상황에 맞게 게송 하나라도 실어 놓으면 품격이 달라집니다. 건질 것이 있는 글이 됩니다. 비록 올린 글이 스님의 법문도 아니고, 학자의 논문도 아니지만 보통불자가 보도 듣고 느낀 것을 경전을 인용하여 솔직하게 표현 하고 있습니다.

 

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통불자의 글쓰기는 철저하게 비주류, 비급, 삼류정신을 지향 합니다. 누가 뭐라 하건 말건 오늘도 내일도 쓸 뿐 입니다

 

 

 

2016-07-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