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마음의 밭을 갈기에 바쁘다
일이라는 것이 언제 들이 닥칠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식당에서 손님이 들이 닥치듯이, 택시손님이 갑자기 콜하듯이 불시에 고객이 찾습니다. 고객들은 대게 급합니다. 오늘 주문하며 내일까지 해달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지금 당장 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설계일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님에도 고객들은 참을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밤 늦게까지 일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뿌듯했습니다. 마치 도서관에서 늦게 까지 공부한 학생이 도서관 문을 나서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렇게 일을 하면 생계에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큰 일감이든 작은 일감이든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만일 일에 대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 할겁니다.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보람 있는 것은 글쓰기입니다. 일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지만 글쓰기는 불특정다수를 위한 것입니다. 인터넷공간에 올려 놓으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또한 글쓰기는 마음의 수양에 도움이 됩니다. 글쓰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깨끗해 집니다. 마음이 더럽다면 굳이 힘들게 글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쓰기도 일종의 수행입니다. 부지런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모든 수행은 부지런함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사람들은 탁발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수행자에 대하여 게으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루를 들고 빌어먹기 위해 집앞에 서 있는 탁발자를 이해 못하는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도 이런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테리가타 로히니경을 보면 로히니비구니가 출가하기전 아버지와 대화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문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빌어 먹는 게으른 자들로 본 것입니다. 이에 로히니는 “그들은 일하기를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훌륭한 일을 하며 욕망과 성냄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Thig.275) 라고 설명 합니다. 사문도 일한다고 했습니다. 대체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농번기 때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바쁘게 일합니다. 이렇게 바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이 대신 농사를 지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혼자 힘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바쁜 것 입니다. 수행자도 바쁘기는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남이 대신 농사를 지어 주지 않듯이 남이 대신 내 번뇌를 없애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기경전에 농사짓는 농부와 수행하는 수행자를 비교한 가르침이 종종 보입니다. 숫따니빠따에서 농사짓는 바라문 까시 바라드자와가 부처님에게 “그대는 밭을 가는 자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대가 밭을 가는 것을 보지 못했네.”(stn76) 라고 말합니다. 농부는 소와 쟁기를 이용하여 밭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지만 수행자들에게 그런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Saddhā bījaṃ tapo vuṭṭhi
paññā me yuganaṅgalaṃ,
Hiri īsā mano yottaṃ
sati me phālapācanaṃ.
“믿음이 씨앗이고 감관의 수호자가 비며
지혜가 나의 멍에와 쟁기입니다.
부끄러움이 자루이고 정신이 끈입니다.
그리고 새김이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입니다.” (stn77)
부처님도 농사를 짓고 있음을 말합니다. 바라문이 소와 쟁기를 이용하여 밭농사를 짓는다면 부처님 역시 소와 쟁기를 이용하여 마음의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게송에서 믿음(saddhā)을 씨앗으로 비유했습니다. 믿음의 씨앗을 뿌려 놓아야 마음농사를 지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 믿음은 주석에 따르면“진리에 대한 완전하고 확고한 확신, 확신에 대한 희열,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열망”을 말 합니다. 믿음을 공덕의 어머니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성취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감관의 수호자(tapo)를 비로 비유했습니다. 비가 와야 농사가 잘 지을 수 있듯이 여섯 감각의 대문을 잘 단속해야 믿음의 씨앗이 성장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지혜(paññā)를 멍에와 쟁기로 비유했습니다. 소에 멍에를 메어 쟁기질 하듯이, 마음의 밭을 간다는 것은 지혜를 계발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hiri)이 자루라고 했습니다. 곡식은 자루에 담아 두듯, 부끄럽고 창피한 행위 등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멀리 해야 함을 말합니다. 정신(mano)이 끈이라 했습니다. 소를 몰 때 줄로 제어 합니다. 농부가 이리 가자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자 하면 저리 갑니다. 법구경 1번게송에서 “정신이 사실들의 선구이고”라는 말이 있듯이 정신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갑니다. 정신, 즉 의식이 느낌이나 지각보다 선구하기 때문에 착하고 건전한 법들이 일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띠(sati)입니다. 게송에서는 “새김이 나의 쟁깃날과 몰이막대입니다.”라 했습니다. 쟁기가 지나갈 때 흙이 뒤집히면서 밭고랑이 형성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몰이막대로 소를 잘 다루어야 합니다. 집중을 요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밭을 갈 때 역시 고도의 집중과 알아차림을 요합니다.
농부의 밭갈이는 소와 쟁기 등 도구를 이용하여 잡초를 제거하고 농작물을 더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 수행자의 마음갈이는 착하고 건전한 법들로 마음속에 뿌리 박고 있는 악하고 불건전 법들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올라오는 것이 잡초입니다. 잡초를 제거 하듯이 마음의 번뇌를 제거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남이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한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입니다.
2016-07-2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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