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존재를 윤회하게 하는 네 가지가 식사가 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16. 7. 20. 11:50

 

 

존재를 윤회하게 하는 네 가지가 식사가 있는데

 

 

 

생명은 매우 질긴 것 같습니다. 어떤 악조건에서도 살아 남고자 합니다. 식물도 생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유정물이 아닌 무정물이긴 하지만 살아 성장하는 것을 모면 마치 생명을 보는 것 같습니다. 흙이 조금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냅니다.

 

 

 

 

 

 

 

사는 곳 주변에 무성한 식물을 보았습니다. 마치 거리의 가로수처럼 큰 나무입니다. 그런데 아래를 보니 네모난 플라스틱 화분입니다. 커다란 나무와 아주 작은 화분이 대조를 이룹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피자가게 앞에 오동나무가 있습니다. 매년 이맘 때쯤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아스팔트 틈새를 뚫고 솟아 나온 오동나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잘리고 나면 매년 그 자리에 솟아 납니다.

 

 

 

 

 

 

 

 

오동나무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 기세가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입니다. 커다란 잎을 가진 오동나무는 급속하게 성장하는 듯 합니다. 베어진 그 자리에 또 다시 얼굴을 내미는 것 같습니다.

 

 

 

 

 

 

 

오동나무는 도심에서도 잘 자랍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바닥을 뚫고 솟아납니다. 쓸모 없다고 베어 버려도 다음해가 되면 또다시 솟아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실 주변에 있는 모텔옆 오동나무가 그렇습니다.

 

 

 

 

 

 

 

 

모텔옆 오동나무가 올해도 나왔습니다. 매년 칠월달에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작년에도 나왔으나 더 높이 자라기전에 잘렸습니다. 그 이전에도 그랬습니다. 매년 되풀이 됩니다. 이런 현상을 관찰하여 베인 자리에서 환생하듯이 솟구치는 오동나무(2015-06-22)”라는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하느님도 윤회할 밖에 없는 존재, 바까하느님을 굴복시킨 부처님(2014-07-14)”라는 글에서 언급했습니다.

 

모텔옆 오동나무는 2013년부터 목격했습니다. 모텔주인이 자르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면 성장속도로 보아 아마 모텔높이까지 자랐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 키 보다 훨씬 크게 자라면 예외 없이 잘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남아 있는지 매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오동나무가 올라 옵니다.

 

오동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면서 여러 편의 글을 썼습니다.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는 한 계속 나오는 오동나무를 보면서 번뇌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는 한 재생할 수밖에 없는 유정물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앙웃따라니까야에서 “바라문이여, 내가 모든 번뇌를 제거하지 못했다면, 신이 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내게 그 모든 번뇌는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A4.36) 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뿌리를 제거 하지 않는 한 아무리 자른다 해도 매년 이맘때쯤 솟구쳐 있을 겁니다. 그런 오동나무를 보았을 때 강한 생명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존재하기 위한 갈망, 존재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입니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이다. 살기 위하여 먹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 먹는데는 열심입니다. 요즘 먹방프로가 인기 있는 것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있을 겁니다.

 

카페테리아에서 꼬부랑노인의 식판을 보면 갖가지 음식으로 가득합니다. 거의 쓰러질 듯한 노인의 밥먹는 모습을 보면 먹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만일 노인이 밥맛이 없다고 하여 일주일 또는 열흘 굶은다면 아마 죽음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매끼 거르지 않고 먹기 때문에 체력이 유지되어 존재합니다.

 

유정체는 먹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접촉식도 하고, 의도식도 하고, 식식도 합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가 아침에 근사하게 밥상 한상 차렸는데 이를 받아 먹고 있는 남편에게 , 이 도둑놈아! 밥만먹고 사냐?”라고 소리쳤을 때 이는 접촉식이 부족한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자양분의 경을 보면 (1)먹을 수 있는 자양분(麤細食, 추세식), (2)느낌을 위한 접촉의 자양분(觸食, 촉식), (3)새로운 존재의 생성을 위한 의도의 자양분(意思食, 의사식), (4)정신-신체를 위한 의식의 자양분(識食, 식식) 이렇게 네 가지가 식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식사를 필요로 합니다. 오동나무의 경우 땅과 물과 바람과 공기가 필요 하겠지만 사람과 같은 유정물의 경우 먹는 것외 접촉하지 않으면 늘 배고프고, 의도하지 않으면 늘 배고프고, 하루라도 알지 않으면 늘 배고픕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실 윤회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접촉의 식사, 의도의 식사, 알음알이의 식사는 업을 형성하기 때문에 미래 태어날 요인이 됨을 말합니다.

 

뿌리가 제거 되지 않은 오동나무는 매년 솟아납니다. 보기에 근사해 보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거목으로 성장하여 보기에도 좋아 어느 날 삭둑 잘려 있는 것을 보개 됩니다. 그러나 또 다시 솟아 오를 겁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번뇌가 소멸되지 않는 한 계속 유전하고 윤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2016-07-20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