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자가 실천할 수 있는 자비의 차제걸이(次第乞已)
일인사업자로 살며 점심 때 늘 ‘혼밥’합니다. 이전 직장에 다닐 때 늘 함께 먹었던 것과 대조적 삶입니다. 점심 때 같이 밥먹으로 갈 사람도 없으면 왕따라 합니다. 그러나 혼자 일하다 보니 거의 대부분‘혼밥(혼자 밥먹는 것)’합니다.
혼밥할 때도 법칙이 있습니다. 일감이 없을 때는 간단히 때우기식입니다. 점심특별가라 하여 2900원짜리 햄버거 세트시키면 거의 반값에 점심이 해결됩니다. 일감이 있어서 힘을 써야 될 필요가 있을 때는 육천원에서 팔천원짜리 갈비탕이나 곰탕을 찾게 됩니다.
갈비탕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중앙시장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세 정거장 정도 되지만 걸을만한 합니다. 머리도 식힐 겸 작열하는 햇빛을 받으며 걸어갔습니다. 걸어 가다가 신호를 받았는데 ‘한식부페’라는 간판을 발견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여기 한번 들어가볼까?”라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가급적 주변의 많은 식당을 이용하자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들어갔습니다.
올라가보니 작은 부페식당입니다. 그러나 너무 보잘것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동그란 그릇에 밥과 반찬 이것저것을 담았습니다. 마치 순례법회갈 때 절에서 점심공양하는 것 같습니다. 가격은 오천원입니다. 주변을 둘러 보니 근처 원룸에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사람들도 허름에 보이고 식당도 허름해 보입니다. 이왕 들어 왔으니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수 많은 식당이 있는데 이용해 주지 않으면 몇 개월 못 버티고 문닫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사무실 주변 식당들을 보면 일년 단위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번 문을 닫으면 엄청난 손해가 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주변식당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를 탁발과 연계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탁발할 때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차례대로 탁발하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집을 가려 가는 것이 아니고 순서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부모집에 탁발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윳따니까야를 보면 어느 수행승이 탁발나갔는데 “싸밧티 시에서 집집마다 탁발을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이르렀다.”(S6.3) 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탁발하는 것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탁발자의 입장에서 “무소유의 이상과 겸허한 자아완성을 위한 수도행각의 일단이다.” (Prj.II.118) 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보시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시주에게 복을 짓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Prj.II.118)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탁발은 수행과 공덕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탁발이라는 것은 청정한 삶의 실현도 되지만 동시에 강력한 사회참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도 공덕지을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애용하는 식당만 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맛있는 집만 골라 간다면, 단골집만 이용한다면 주변 식당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자유경쟁시대에 있어서 맛과 서비스와 청결로 승부해야 하나 모든 식당이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처지면 손님은 떨어져 나가고 결국 몇 개월 못 버티고 문을 닫게 됩니다.
혼자 밥을 먹다 보니 점심시간에 일반 식당에 잘 가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이 대목인데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으면 영업방해 하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식당들은 테이블 채우기가 벅찹니다. 이럴 경우 주변 식당을 한번씩 순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단골집만 갈 것이 아니라 비록 맛이 떨어지더라도 서비스가 좋지 않더라도 덜 청결해 보여도 한번씩 가서 먹어주는 것입니다. 마치 수행승이 탁발나가는 것처럼 한번씩 가 보는 것입니다.
단골식당만 가지 말고 주변식당도 한번씩 이용해 준다면 서민경제가 활성화 될 듯합니다. 대형마트만 갈 것이 아니라 종종 재래시장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점에서도 물건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서로 도움이 됩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 했다”는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노점 입장에서는 생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서로서로 좋은 것입니다. 마치 수행승이 탁발하듯이, 자비의 마음으로 주변 식당에 가서 차례로 밥을 먹고, 종종 재래시장에 가고, 종종 노점에서 물건을 사준다면 복 짓는 것 아닐까요? 재가불자가 실천할 수 있는 자비의 ‘차제걸이(次第乞已)’입니다.
2016-07-2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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