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러려고 회장했나”
TV로 청문회를 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보지 않지만 촛불집회 영향으로 인하여 인터넷으로 보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저녁 늦게 까지 국회방송으로 봅니다. 청문회 3일 째 되는 날 고위 공직을 지냈던 인물들이 줄줄이 불려 나와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어떤 이는 낙담한 듯한 절망적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표정에서 ‘권력무상’을 보았습니다.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자가 증인석에 앉아 전국민을 대상으로 자신의 민낯을 보였을 때 망연자실한 모습입니다. 아마도 속으로 “내가 이러려고 차관했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2일 째 청문회날에는 재벌회장들이 나왔습니다. 재벌 2세 또는 3세들입니다. 답변을 들어 보니 요즘 말로 ‘버벅’거리는 것 같습니다. 마치 바보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봅니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까워 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이었던 그들이 증인석에서 앉았을 때 심정은 아마 “내가 이러려고 회장했나”였을 겁니다.
청문회장에서 고위공직을 지냈던 자들과 재벌회장들의 모습을 보면서 권력무상과 명예무상을 봅니다. 아무리 세상의 원리가 명예와 불명예, 이익과 불이익,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라는 여덟 가지 원리에 의해서 작동된다고는 하지만 증인석에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면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상함을 느낍니다. 어느 것도 지금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 세계는 불안정하여 사라진다”
누구나 증인석에 설 수 있습니다.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일지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 같지만 반드시 끝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그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에서는 양가집 자제들이 줄이어 출가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출가이유서로 가장 유명한 랏타빨라가 있습니다. 양가집 자제 랏타빨라는 출가이유에 대하여 네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 네 가지는 “이 세계는 불안정하여 사라진다.”라 했고, “이 세계는 피난처가 없고 보호자가 없다.”라 했고, “세상에는 나의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버려져야 한다.”라 했고, “이 세계는 불완전하여 불만족스럽고 갈애의 노예이다.”(M82) 입니다. 이런 이유로 출가 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랏타빨라의 네 가지 출가이유에 대한 것을 보면 한마디로 무상한 것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부도 무상한 것이고, 지위도 무상한 것이고, 이 몸도 무상한 것이라 합니다. 이런 사실은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랏타빨라가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듣지 않았다면 재가에서 감각적 쾌락을 누리며 공덕짓고 살았을 것입니다.
“오! 참으로 괴롭습니다. 오! 참으로 고통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율장대품에서 야사와 야사의 친구이야기를 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바라나시에 대부호의 아들 야사가 있었습니다. 경에서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 유복한 부호의 아들”이라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재벌 2세의 위치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야사는 온갖 감각적 쾌락을 다 누리고 살았습니다. 이는 경에서 세 개의 궁전이야기로 알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겨울궁전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궁전이 있고, 우기에는 우기의 궁전이 있어서 오욕락에 탐닉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질펀한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티장의 모습은 혐오 그 자체이었습니다. 경에 따르면 여기 저기 퍼져 자는 시녀들에 대하여 “눈앞에 시체더미를 보는 것 같았다.” (Vin.I.15) 라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야사는 궁전을 탈출합니다. 시체 같은 시녀를 보면서 “그에게 재난에 대한 위험이 생겨나 싫어하여 떠남에 마음이 확립되었다.”(Vin.I.15) 라고 표현 되어 있습니다. 야사는 궁전을 뛰쳐 나갔는데 “황금신발”을 신고 나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야사가 대부호의 자제임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이른 아침에 궁전을 뛰쳐 나간 야사는 숲에서 경행하는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부처님에게 “오! 참으로 괴롭습니다. 오! 참으로 고통입니다.”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대부호의 아들이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재벌 2세 정도 된다면 항상 즐거운 일만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음을 말합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감각적 쾌락의 추구가 재난이 된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괴로워하는 야사에게 “여기에는 괴로움이 없고, 여기에는 고통이 없습니다.”라며 위로의 말을 합니다. 이 말에 야사는 한줄기 희망을 발견한 듯 합니다. 경에서는 ‘환희용약’하는 것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야사에게 쉬운 가르침부터 알려 주었습니다. 차제설법입니다.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여읨의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야사에게 꼭 필요한 법문이었습니다.
“여자를 보았습니까?”
야사는 부처님에게 출가했습니다. 그런데 율장대품에 따르면 야사친구의 출가이야기가 나옵니다. 야사친구는 모두 고관대작의 아들이거나 대부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경에 따르면 “바라나씨의 대부호들과 부호들의 가문의 젊은이들”이라거나, “이 나라의 첫째가거나 버금가는 훌륭한 젊은이들”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초기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양가집 자제들 또는 훌륭한 가문의 아들로 표현 됩니다.
부처님 당시 초창기에는 양가집 자제들이 주로 출가했습니다. 그 중에 ‘지체높은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체높은 친구들이란 주석에 따르면 ‘왕자들’이라 합니다. 경에서는 공자들이라고 합니다. 공자들이 부인을 동반하여 숲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명은 기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놀다 보니 기녀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녀를 찾아 숲을 헤메이다가 명상에 잠겨 있는 부처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보았습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공자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에게 어떠한 것이 더 훌륭한 일인가?
여자를 찾는 것인가?
자기자신을 찾는 것인가?”(Vin.I.23)
부처님은 여자를 찾는 것 보다 자기자신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기자신을 찾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주석에 따르면 자기자신(attā)은 등불(dīpa)의 의미라 했습니다. 이는 법구경에서 “오, 어찌 웃고, 어찌 즐기는가? 언제나 세상은 불타고 있고, 그대들은 어둠에 덮여 있는데, 등불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Dhp146)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불타고 있는데
공자들이 여자를 찾아 헤메일 때 부처님은 자기자신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음의 등불을 밝혀야 함을 말합니다. 여자들과 웃고 즐기는 것에 대하여 세상이 불타는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오온에서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으로 불타는 세상입니다.
불타는 세상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11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 탐욕, 2) 성냄, 3) 환상, 4) 질병, 5) 늙음, 6) 죽음, 7) 슬픔, 8) 비탄, 9) 고통, 10) 절망, 11) 과도한 노력” (DhpA.III.103) 을 말합니다. 여기서 과도한 노력이 눈길을 끕니다. 아마도 ‘허망한 정열’을 의미하는 것이라 봅니다.
오온의 세상은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무명을 타파할 수 있는 불을 밝혀야 알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아는 것과 무명의 불을 밝히는 것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여자들을 찾는 공자들에게 “자기자신을 찾는 것인가?”라 했는데 법구경에서는 “등불을 구하지 않을 것인가?”로 바뀐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등불로 비유한 것입니다.
더 이상 여자를 찾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찾는 것은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등불은 어둠을 몰아 냅니다. 어둠은 의혹을 말합니다. 법구경 주석에서는 여덟 가지 의혹에 대하여 “1) 부처님에 대한 의혹, 2) 가르침에 대한 의혹, 3) 참모임에 대한 의혹, 4) 생성에 대한 의혹, 5) 소멸에 대한 의혹, 6)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의혹, 7) 연기에 대한 의혹, 8) 조건으로 일어난 것들(緣生)에 대한 의혹”(DhpA.III.78) 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몰랐을 때 어둠에 있는 것과 같아 의혹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불, 법, 승, 삼보에 대한 의혹에서부터 시작 하여 연기에 대한 의혹에 이릅니다. 한마디로 가르침에 대한 의심입니다.
자기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을 때 모든 의혹은 사라집니다. 마치 캄캄한 방에 등불을 켜면 일시에 밝아지듯이 모든 의혹이 사라집니다. 더 이상 웃고 떠들고 즐기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가르침을 알게 되면 더 이상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타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여자를 찾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재벌 3세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최근 출간된 테라가타 해제에 따르면 테라가타에 등장하는 제자들 상당수가 양가집자제들로 되어 있습니다. 리스 데이비스 부인의 분석에 따르면 테라가타에 등장하는 260명의 제자 중에 바라문출신이 118명, 왕족과 대신출신이 60명, 지주가 7명, 부호가 54명으로 구성되어 총 239명으로서 91%에 해당됩니다. 초기경전에서 “양가의 자제들이 당연히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 했듯이”(S7.9) 처럼 정형구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당시 초기에는 대부호, 왕족, 공자, 대신 등 양가집 자제 또는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주로 출가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요즘 말하는 재벌 2세와 같은 자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재난을 보고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랏타빨라의 경에서는 네 가지를 이유로 들어 출가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증인석에 앉아 있는 재벌들의 청문회를 보면서 천문학적 재산이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함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을 모면하면 자유의 몸이 되겠지만 그 재산으로 인하여 묶이는 삶을 살았을 때 결코 행복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율장대품에서 야사도 그랬을 것입니다. 야사는 이른 아침에 황금신발을 신고 궁전을 탈출했습니다.
이번 재벌 2세와 3세 청문회를 보면서 야사같은 재벌들의 모습을 역력히 보았습니다. 특히 재벌 3세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야사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마 재벌 3세도 틀림 없이 야사처럼 “오! 참으로 괴롭습니다. 오! 참으로 고통입니다.”라 했을 겁니다.
2016-12-0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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