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경청할 줄 알아야
좋은 생각이 떠 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메모해 놓지 않으면 달아나 버립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시대입니다. 떠오른 생각을 달아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마트폰 ‘메모’기능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메모에 키워드 몇 개만 써넣어도 나중에 글을 쓸 때 큰 도움이 됩니다.
학의천을 걸어 가면서 스마트폰에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했습니다. 오늘 주제는 ‘경청’으로 해 보았습니다. 경청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생각이 떠 오를 때마다 키워드를 메모해 두었습니다. 일터에 도착할 때쯤 되면 어느 정도 글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있습니다.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몇 일 전 니까야 강독모임에서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화합하는 모임에서는 눈빛 마저 사랑스럽다는 말입니다. 이를 불화하는 모임과 대비하여 설한 것인데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불화합 모임은 어떤 것인가? 그 모임의 수행승들이 세상에서 다툼을 하고, 싸움을 하고, 논쟁을 일으키며, 서로 입에 칼을 물고 다툰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모임을 불화합의 모임이라고 한다.
“수행승들이여, 화합 모임은 어떤 것인가? 그 모임의 수행승들이 세상에서 화합하고, 기뻐하고, 논쟁을 하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화합하여,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대한다면, 수행승들이여, 그 모임을 불화합의 모임이라고 한다.”(A2.42. 전재성님역)
이 가르침에서 핵심은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입니다. 화합하는 모임의 특징을 잘 표현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 전에 나열한 말이 있습니다. 화합하는 모임의 특징은 “기뻐하고, 논쟁을 하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화합하여”라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열식과 점증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화합과 불화합이라는 이분법적 설명이 아니라 누구나 알기 쉽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맞춤설법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은 쉬운 가르침부터 시작해서 차츰 심오한 가르침으로 이끌어 가는데 있습니다. 이를 ‘차제설법’이라 합니다. 순차적 설명을 말합니다. 듣는 이의 수준에 맞추어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초심자에게는 ‘보시하고 지계하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는 ‘시계생천’ 등의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처음부터 사성제와 같은 심오한 가르침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율장대품에서 ‘야사’에게 설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야사는 요즘으로 말하면 재벌 2세와 같습니다. 야사는 즐기는 삶에 넌더리가 났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야사에게 “보시에 대한 이야기, 계행에 대한 이야기,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타락-오염과 욕망의 여읨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했다.”(Vin.I.1)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차제설법입니다. 특히 야사에게 닥친 괴로움과 관련하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타락-오염과 욕망의 여읨에서 오는 공덕에 대하여 설명했다’라 했는데, 이는 듣는 사람에 현실에 근거한 ‘맞춤설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야사에게 절실하게 필요로 한 설법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위험’입니다. 감각적 욕망에 넌더리가 난 야사에게 적합한 설법을 해주자 야사는 감각적 욕망에서 재난을 보고 출가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점증적입니다. 누구나 알기 쉽게 설해 줍니다.
한국불교에서는 초심자에게 심오한 가르침을 설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은 초심자가 이해 하기 어렵습니다. 초기경전을 잘 이해한 자가 또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대승경전입니다. 그럼에도 대뜸 ‘본래 없는 것’이라든가, ‘A는A가 아니다. 그 이름이 A일 뿐이다’라 한다면 큰 혼란을 줄 것입니다. 불교를 잘못 이해하면 삿된 견해를 가지게 되어 “모든 것이 공한 것이여”라고 말하게 될지 모릅니다.
천박한 자들의 모임
부처님의 가르침은 잘 전승되어 왔습니다. 경으로, 게송으로, 응송 등 구분교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빠알리니까야입니다. 그 중에 앙굿따라니까야가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는 재가자를 위한 일종의 ‘생활경전’이기도 합니다. 모두 11권으로 되어 있는 앙굿따라니까야를 한권으로 모아 놓은 책도 있습니다.
한권으로 요약되어 있는 책에서는 ‘불화합의 모임(A2.42)’하나만 소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둘의 모음’에서 ‘모임의 품’이라 하여 여러 개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나열해 보면, 천박한 모임의 경, 비속한 모임의 경, 비천한 모임의 경, 찌꺼기와 같은 모임의 경, 미사여구에 이끌리는 모임의 경, 재물을 중시하는 모임의 경, 삿된 모임의 경,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모임의 경, 법답지 않게 논의하는 모임의 경 등 이 세상의 모임의 종류가 총 망라 되어 있는 듯 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외로운 섬에 홀로 살지 않는 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출가한 자의 경우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긴장과 갈등이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대게 성향이 부류의 모임이 형성됩니다. 이런 현상은 일반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면 안다고 모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을 보면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천박한 자들은 천박한 자들과 어울립니다. 대게 그들의 모임을 보면 “산만하고, 불손하고, 동요하고, 수다스럽고, 지껄이고, 새김이 없고, 알아차림이 없고, 집중이 없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관이 거칠다면”(A2.41) 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모였다 하면 잡담을 하고, 욕지거리를 하는 등 거친 모임을 말합니다. 여기에 음주라도 하게 되면 상사를 안주삼아 마구 씹어 대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 진중한 모임이 있습니다. 천박한 모임과는 정반대입니다. 경전에서는 “산만하지 않고, 불손하지 않고..”등으로 표현됩니다.
천박한 자들은 대체로 화합하지 못합니다. 만나면 잡담을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잡담을 하다 보면 남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게 험담이기 쉽습니다. 특히 이득을 바라고 모임에 참여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탈퇴해 버립니다. 반면 화합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어떤 이득을 가지고 모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향상과 성장을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이해득실을 떠나 있기에 서로 다투는 일이 없습니다. 향상과 성장이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화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에서는 “우유와 물처럼 화합하여,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대한다면”라 하여 매우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술이나 한잔 하자는데
사랑스런 눈빛은 반드시 연인관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화 할 때 눈을 응시하듯이 동시에 사랑스런 눈빛을 보인다면 포근해 할 것입니다. 서로 견해가 다르더라도 잘 경청해서 듣는다면 다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유와 물이 서로 다른 성분이지만 서로 섞어 놓으면 하나가 되듯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잘 들어 준다면 화합할 것이라 봅니다.
만나면 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게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큰 그릇과 같은 사람입니다. 말을 하려 하기 보다 잘 경청하는 사람은 다 품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잘 들어 주는 사람은 넉넉하고 풍요로운 사람입니다. 말하면 무엇이든지 들어 주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차라도 한잔 같이 하고픈 사람입니다.
종종 만나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면 의례히 술집으로 향합니다. 한상 가득 시켜 놓고 기름진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십니다. 차가운 술을 마시면 정신은 점차 혼미해집니다. 목소리는 높아지고 해서는 안될 말도 하게 됩니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 실수도 합니다.
술을 하게 되면 과음을 하게 되고 말이 많아 집니다. 술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손해가 많습니다.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시간이 마구 흘러서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다음 날 컨디션은 엉망이 됩니다. 평소 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반 이하라 뚝 떨어집니다. 자신의 정신적 향상과 성장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술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술이나 한잔 하자는 친구는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주(酒)보다 차(茶)
차가운 술은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속된 말로 서로 ‘개가 되어야’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따듯한 차는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 차를 마시면 마실수록 몸을 정화시킵니다. 한주전자 가득 차를 마시고 시원하게 소변을 보면 몸속의 노폐물이 모두 씻어 내려 가는 듯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차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차담하자고 하면 피합니다. 마치 맹물 마시는 것처럼 밋밋해서일 것입니다.
요즘 술은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예의상 입에 대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차가운 술을 가까이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이 많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차를 가까이 하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주(酒)와 함께 하는 것 보다 차(茶)와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차와 함께 하면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주와 함께 할 때 역시 대화를 많이 하긴 하지만 거친 말이기 쉽고 대부분 가십이나 잡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험담하고, 이간질하고, 중상모략까지 하게 됩니다. 주와 함께 하여 이득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차와 함께 하면 30분 대화 할 것이 3시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누는데 있습니다.
작은 찻잔이 비면 팽주가 다시 따라줍니다. 차는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는 행위 자체가 대화를 연장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차를 나누다 보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게 됩니다. 따끈한 차맛을 음미하며 이야기 할 때 거친 말이나 해코지 하는 말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대신 법에 대한 이야기 등 건전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왜 경청해야 하는가
차와 함께 이야기할 때 이를 ‘차담’이라 합니다. 차담을 하면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동등합니다. 주와 함께 하면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듣기만 하지만, 차와 함께 하면 잘 경청하기 때문에 동등하게 이야기합니다. 사실 잘 경청하는 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대화라는 것이 반드시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듣는 것도 대화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침묵도 대화일 수 있습니다.
잘 경청함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지식이나 상식을 상대방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것을 수용한다면 힘들이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잘 경청하는 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차담을 하면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게 되는데 눈을 마주치며 경청합니다.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한다는 것은 신뢰가 있음을 말합니다.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을 때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스런 눈빛으로 경청한다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대화를 잘 하는 자는 남의 말을 잘 듣는 자입니다.
화합하는 모임에서는
불화합 하는 모임에서는 서로 다툽니다. 그것도 ‘입에 칼을 물고’ 찌릅니다. 그러나 화합하는 모임에서는 우유와 물처럼 화합합니다. 그것도 ‘사랑스런 눈으로’ 대합니다. 불화합하는 모임에서는 ‘잡담’을 하지만. 화합하는 모임에서는 ‘법담’을 합니다.
불화합하는 모임에서는 차가운 주(酒)와 함께 할 수 있지만, 화합하는 모임에서는 따듯한 차(茶)를 서로 나눕니다. 불화합하는 모임에서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지만, 화합하는 모임에서는 잘 경청할 줄 압니다.
불화합하는 모임에서는 이득과 손실을 따집니다. 이득이 있으면 모이고 조금이라도 손해일 것 같으면 모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늘 다툼이 있습니다. 그것도 입에 칼을 물고 상대를 찌르려 합니다. 그러나 화합하는 모임에서는 이해 관계를 떠나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정신적 ‘향상’과 ‘성장’을 위한 모임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우유와 물처럼 화합하여,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대한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2017-01-1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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