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기녀에서 장로니로, 테리가타 암바빨리 19연 게송

담마다사 이병욱 2017. 4. 12. 16:37

 

기녀에서 장로니로, 테리가타 암바빨리 19연 게송

 

 

불교와 기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생 또는 유녀라 불리우는 기녀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초기경전에 등장합니다. 물론 대승경전에도 등장합니다. 대승경전 화엄경 입법계품을 보면 기녀가 등장하여 선재동자에게 가르침을 알려 주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대승불교에서는 기녀가 53선지식 중에 하나로 당당히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기경전에서도 기녀가 등장합니다.

 

기녀 암바빨리

 

초기경전에서 기녀는 암바빨리와 살라바띠가 유명합니다. 율장대품에 따르면 기녀의 사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하루밤에 벌어들인 돈이 상세하게 묘사 되어 있습니다. 기녀 암바빨리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층인사]

“폐하, 베쌀리 시가 번영하고 풍요로워 인구가 많고 사람이 붐비고 먹을 것이 많고, 거기에는 칠천칠백개의 전루와 칠천칠백개의 중각과 칠천칠백개의 공원과 칠천칠백개의 연못이 있습니다. 기녀 암바빨리가 아름답고 보기에 좋고 세련된 최상의 미모를 갖추고 춤과 노래와 연주에 능숙한데, 원하는 사람마다 모여들자, 하룻밤에 오십금을 벌고 있고, 그 때문에 베살리는 더욱 번창하고 있습니다. 폐하, 우리들도 기녀를 유치하면 좋겠습니다.

 

(지바까 꼬마라밧짜, 율장대품 640 Vin,I.269, 전재성님역)

 

 

율장대품에 따르면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이 베살리를 방문했을 때 대신이 기녀 암바빨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녀 암바빨리가 하루밤에 벌어들이는 돈이 오십금이라 했습니다. 오십금은 얼마나 되는 금액일까요? 주석에 따르면 하루에 50까하빠나(약 황소 네다섯마리의 값)을 벌었다는 뜻이다.”라 했습니다. 기녀 암바빨리는 황소 네다섯마리, 요즘 시세로 말하면 하루밤에 2천만원 가량 벌었다는 것입니다.

 

기녀 살라바띠

 

암바빨리와 쌍벽을 이루는 기녀가 있습니다. 살라바띠라 합니다. 빔비사라왕이 베살리를 방문하고 나서 마가다국에 공창을 만들었는데 살라바띠의 미모가 가장 뛰어 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녀 살라바띠가 번 돈은 얼마나 될까요? 율장대품에 따르면 원하는 사람마다 모여들자, 하룻밤에 그 대가로 일백금을 받았다.”(율장대품 641) 이라 합니다. 암바빨리 보다 두 배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하루밤에 4천만원을 번 것입니다.

 

율장대품에는 두 명의 기녀가 등장합니다. 한명은 암바빨리이고 또한명은 살라바띠입니다. 그러나 후대 암바빨리의 명성은 알려졌지만 암바빨리보다 화대가 두 배나 높았던 살라바띠는 오로지 율장 지바까 꼬마라밧짜이야기에만 등장합니다. 왜 이렇게 극명하게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암바빨리와 살라바띠는 출신성분이 다릅니다. 암바빨리는 특별한 미모로 인하여 왕자들이 공유하기 위해 기녀로 신분이 정해진 반면, 살라바띠는 빔비사라왕이 재정수입을 목적으로 만든 공창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차이 나는 것이 있다면 생명에 대한 태도입니다. 암바빨리는 빔비사라왕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잘 키웠습니다. 나중에 장로가 된 비말라 꼰당냐입니다. 비말라 콘당냐는 테라가타 64번 게송에 등장하는데 인연담에서 태생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창출신 살라바띠는 임신이 되자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 하여 낳자마자 쓰레기 더미에 버렸습니다. 그 아기는 나중에 부처님 주치의가 된 지바까 꼬마라밧짜입니다.

 

두 기녀의 결정적 차이는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 여부입니다. 암바빨리는 부처님에게 귀의했습니다. 또한 원림을 승가에 기증했습니다. 부처님의 교단에 귀의한 암바빨리는 수행자의 삶을 살아 거룩한 경지, 즉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자 마자 쓰레기더미에 버린 살라바띠의 행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기녀로서 일생을 보내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장로니 암바빨리

 

기녀 암바빨리이야기는 디가니까야 완전한 열반의 큰 경(D16)’에 등장합니다. 부처님이 마지막 여정 길에 베쌀리에 들렀는데 암바빨리 숲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똑 같은 이야기가 율장대품에도 병행합니다. 율장대품 약품의 다발에 실려 있는 기녀 암바빨리(ambapāligaikā)’가 그것입니다.

 

기녀 암바빨리 이야기는 디가니까야외 맛지마니까야나 앙굿따라, 상윳따니까야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쿳다까니까야를 이루고 있는 테리가타에 암바빨리에 대한 장문의 게송이 있습니다. 부처님 교단에 출가하여 장로니가 된 암바빨리가 읊은 19연시입니다.

 

한국에서 테리가타는 생소합니다. 그러나 최근 전재성박사가 주석과 함께 완역했습니다. 지난 2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사부니까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처님 제자들의 해탈과 열반에 대한 노래에 대한 것입니다. 그 중에 장로니 암바빨리가 읊은 게송이 있습니다.

 

테리가타에서 암바빨리장로니의 19개 시는 젊은 시절 신체부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 게송에서 네 번째 구절에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라는 후렴구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아무리 아름다운 미모도 무상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늙어짐에 따라 추하게 변함을 말합니다.

 

암바빨리 인연담

 

암바빨리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테리가타에서는 주석에 인연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암바빨리에 대한 것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도 이전의 부처님들 아래서 덕성을 닦고 이러저러한 생에서 공덕을 쌓으면서 씨킨 부처님의 교법에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고 수행녀의 학습계율을 지키며 어느 날 많은 수행녀들과 함께 탑묘에 계경하면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번뇌를 부순 장로니가 앞서 가는데, 그녀가 갑자기 침을 뱉어 가래덩이가 탑묘 마당에 떨어진 것을 번뇌를 부순 장로니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뒤에서 오면서 가래덩이를 보면서 그녀는 어떤 유녀가 여기에 가래덩이를 뱉었는가?’라고 꾸짖었다.

 

그녀는 수행녀였을 때에 계행을 지키면서 태생(胎生)을 싫어하여 화생(化生)에 마음을 두었다. 그래서 그녀의 최후의 생에는 고따마 부처님이 탄생할 무렵 베쌀리 시의 왕립유원에 있는 망고나무 아래 화생을 통해 태어났다. 그녀를 보고 유원지기는 도시로 인도했다. 망고나무에서 화생했기 때문에 그녀는 암바빨리라고 불렸다.

 

그런데 아름답고, 볼만하고, 매력적이고, 우아하고, 사랑스런 등의 특별한 덕성이 결합된 그녀를 보고 많은 왕자들이 각자가 차지 하고자 서로 싸움을 일으켰다. 그들 싸움을 종식시키고자 그들의 행위에 자극받은 재판관이 모든 사람의 소유가 되라.’라고 그녀에게 기녀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녀는 스승에게 믿음을 얻어 유원에 정사를 짓고 부처님을 비롯한 수행승의 참모임에 기증했다. 나중에 자신의 아들 비말라 꼰당냐 장로에게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여, 통찰수행을 닦으며 자신의 몸이 늙어서 늙은 상태가 된 것에 외경이 생겨나 형성된 것들에 대한 무상을 설명하면서 아래의 열아홉 편의 시(Thig.252-270)를 읊었다.

 

장로니는 자신의 몸이 무상한 것에 대하여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 일체의 세 가지 존재의 세계에서 무상을 관찰하면서 그 결과에 따라서 괴로움의 특징, 실체없음의 특징을 세우고, 통찰에 매진하면서 길을 차례로 성취하여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녀는 거룩한 경지를 얻고 나서,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고, 감흥어린 싯구로 이러한 시들을 반복했다.”

 

(Thig.252-270, 테리가타 암바빨리 인연담, 전재성님역)

 

 

인연담에 따르면 암바빨리는 화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태생(胎生)을 싫어하여 화생(化生)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망고나무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에 암바빨리라 합니다. 참고로 빠알리어 암바(amba)‘mango tree, mango fruit’로 망고나무 또는 망고열매라는 뜻입니다.

 

초기경전에서 암바빨리는 기녀의 대명사입니다. 기녀를 빠알리어로 가니까(gaikā)라 합니다. 영어로는 ‘harlot; courtesan’의 뜻으로 매춘부, 창녀의 뜻입니다. 그러나 인연담에서 보는 암바빨리는 고급매춘부에 속합니다. 그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에 왕자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암바빨리는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고급매춘부였습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왕자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자 모든 사람의 소유가 되라라며 기녀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밤에 번돈이 오십금, 즉 황소 네 마리 가격이라 했습니다.

 

암바빨리바나(ambapālivana)

 

암바빨리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젊음과 미모로 왕자들을 사로 잡아 하루 밤 화대가 황소 네다섯마리였다 하니 큰 돈을 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큰 돈을 벌었을까요? 암바빨리는 몸을 팔아 번돈으로 원림을 샀습니다. 그것이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암바빨리바나(ambapālivana)입니다. 암바빨리원림은 디가니까야에도 등장합니다.

 

부처님이 열반의 여정을 떠날 때 베쌀리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암바빨리가 소식을 듣고 공양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릿치비의 귀공자들이 공양권을 팔것을 권유합니다. 공자들은 암바빨리에게 그 공양을 십만금에 양도하십시오.”(D16)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암바빨리는 귀공자들이여, 베쌀리 영지를 다 준다고 하여도 저는 그 공양을 양도하지 않을 것입니다.”(D16) 라며 거절합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암마빨리가 엄청나게 부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양권을 십만금에도 팔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공양권 십만금은 얼마나 될까요? 암바빨리의 하루밤 몸값이 오십금이라 했으니 공양권은 2,000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오십금은 황소 네다섯마리에 해당되니 십만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이삼백억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암바빨리는 수백원을 준다고 해도 공양권을 팔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공양권을 따낸 암바빨리는 자신의 원림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극진하게 공양했습니다.

 

 

 

 

 

 

암바빨리의 공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디가니까야와 율장대품에 따르면 원림을 기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암바빨리는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자신의 처소로 초대합니다. 초대하고 나서 기녀는 세존이시여, 이 원림을 부처님을 비롯한 수행승의 참모임에 바칩니다.”(D16) 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부처님에 기부한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암바빨리원림(ambapālivana)입니다.

 

암바빨리바나와 관련하여 상윳따니까야에 암바빨리의 경(S52.9)’이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한때 존자 아누룻다와 존자 사리뿟따는 베쌀리 시의 암바빨리숲에 있었다.”(S52.9)라 되어 있습니다. 또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한때 세존께서는 베쌀리 시에 있는 암바빨리 숲에 계셨다.”(A7.66)라 되어 있습니다. 암바빨리가 기증한 숲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한 때 머물렀음을 말합니다.

 

초기경전에서 망고숲에 대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베쌀리에 있는 망고숲은 특별한 것입니다. 당대의 미모를 날린 기녀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조성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부처님은 이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기녀의 공양청에 응했고, 기녀의 원림 기부도 받아 주었습니다. 더구나 부처님은 기녀를 제자로 받아 주기까지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차별이 없습니다. 상윳따니까야에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S7.9) 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 앞에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귀하고 천하거나,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떠나 누구나 가르침을 실천하면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암바빨리 아들 비말라 꼰당냐 장로

 

암바빨리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했습니다. 인연담에 따르면 자신의 아들 비말라 꼰당냐 장로에게 가르침을 듣고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말라 꼰당냐는 빔비사라왕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입니다. 테라가타에는 비말라 꼰당냐 장로에 대한 게송과 인연담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망고나무의 이름을 지닌 여인을 어머니로

빤다라 깃발을 표지로 삼은 자를 아버지로 태어나,

자만의 깃발을 버리고 지혜의 깃발로

나는 악마의 큰 깃발을 부수어 버렸다.”(Thag.64, 전재성님역)

 

 

비말라 꼰당냐장로는 어머니에 대하여 망고나무의 이름을 지닌 여인이라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빤다라 깃발을 표지로 삼은 자아 했습니다. 여기서 빤다라 깃발은 흰 천으로 만든 깃발로 빔비싸라왕의 표식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비말라 꼰당냐는 어떤 인연으로 태어났을까요? 테라가타 인연담 후반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어떤 병으로 죽어서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늘나라(도솔천: Tusita)에 태어나 계속해서 공덕을 짓고 천상계와 인간계를 윤회하다가 고따마 부처님께서 탄생할 무렵, 빔비싸라 왕에 의해서 암바빨리의 태에 입태했다.

 

빔비싸라왕은 젊었을 때에 암바빨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듣고, 애욕이 생겨나 여러 수행원들을 데리고 모종의 변장을 하고 베쌀리 시로 들어가 하룻밤을 그녀의 거처에서 보냈다. 그때 그는 그녀의 태에 입태했다.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 왕은 자신도 자신에게 각인시키고 정당한 징표를 주고 그곳을 떠났다. 그녀는 태아가 성장하자 아들을 낳았고 비말라라고 이름지었는데, 나중에 비말라 꼰당냐라로 알려졌다.

 

그는 청년이 되자 세존께서 베쌀리 시에서 행한 깨달은 님의 위신력을 보고, 청정한 믿음의 마음이 생겨나 출가해서 먼저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통찰을 확립하고 머지 않아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는 거룩한 경지를 얻고 나서 궁극적인 앎의 관점에서 궁극적인 앎을 밝히면서 이 시를 읊었다.” (Thag.64, 비말라 꼰당냐 인연담, 전재성님역)

 

 

비말라 꼰당냐장로의 출생의 비밀을 보면 그다지 자랑스런 것은 아닙니다. 전인도 최고의 기녀와 최강 마가다국왕 사이의 로맨스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왕자로 불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녀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왕자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청년이 되자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암바빨리의 출가

 

기녀 암바빨리 출가동기는 아들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테리가타 암바빨리인연담에 따르면 나중에 자신의 아들 비말라 꼰당냐 장로에게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여라 되어 있습니다. 아들 비말라 꼰당냐가 출가해서 장로의 지위에 올랐을 때 출가한 것입니다. 초기경전에서 장로는 출가한지 10년 이상 되는 빅쿠를 말합니다.  

 

암바빨리는 출가하여 통찰수행을 닦았습니다. 출가자로서 암바빨리는 거룩한 님,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인연담에 따르면 장로니 암바빨리는 자신의 몸이 늙어서 늙은 상태가 된 것에 외경이 생겨나 형성된 것들에 대한 무상이 생겨나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젊었을 때 자신의 몸에 대한 아름다움과 늙어서 추하게 변해 버린 몸을 보고서 형성된 것들에 대한 무상을 지각하게 된 것입니다.

 

암바빨리 19연 게송

 

테리가타에는 암바빨리 19수 게송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각 신체 부위에 대한 설명을 보면 대단히 사실적입니다. 오로지 얼굴 하나 밖에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 신체를 자신의 모든 것처럼 여기는 자들, 즉 유신견을 가진 자들에게는 경종이 되는 시라 볼 수 있습니다.

 

 

1.

검은 색으로 말벌의 색깔 같은

나의 모발은 끝이 말려있었으나,

늙어서 대마의 껍질과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2.

좋은 향을 담은 상자와 같은

나의 머리는 꽃으로 덮여 있었으나,

늙어서 토끼털처럼 냄새가 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3.

잘 심어져 수풀처럼 무성하고

빗과 핀으로 나뉜 머리끝이 아름답게 장식되었으나,

늙어서 드문드문 희박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4.

유연하고 향내나고 금으로 치장된

땋은 머리가 장식으로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대머리가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5.

화가가 잘 그려진 그림처럼

예전에 나의 아름다운 눈썹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주름지고 축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6.

보석처럼 빛나고 반짝였던

나의 두 눈은 감청색으로 커다랬으나,

늙어서 흐리멍덩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7.

부드러운 산봉우리처럼,

젊음이 한창일 때에 나의 코는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말라비틀어진 식물줄기와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8.

잘 만들어지고 잘 마감된 팔찌처럼

참으로 나의 귓불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주름지고 축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9.

파초의 돋아난 새싹의 색깔과 같아

예전의 나의 이빨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부서지고 검게 변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0.

숲속 우거진 덤불을 날아다니는

뻐꾸기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지녔었으나,

늙어서 여기 저기 더듬거리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1.

잘 다듬은 부드러운 소라껍질처럼

예전의 나의 목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망가지고 굽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2.

둥근 빗장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에 나의 두 팔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빠딸리 꽃나무처럼 허약하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3.

섬세한 반지와 금으로 단장했으니

예전에 나의 두 손은 아름다웠으나,

늙어서 뿌리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4.

위로 둥글게 부풀러 올라 봉긋하여

예전에 나의 두 유방은 아름다웠지만,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5.

잘 연마된 황금의 기둥처럼

예전의 나의 몸통은 아름다웠지만,

쪼글쪼글한 주름으로 덮였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6.

코끼리의 코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에 나의 두 허벅지는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대나무의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7.

섬세한 발찌를 차고 금으로 장식해서

예전에 나의 두 정강이는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참깨의 마른 줄기처럼 되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8.

솜으로 가득 찬 것에 비유될 정도로

예전의 나의 두 발은 아름다웠지만,

늙어서 갈라지고 쭈그러들었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19.

이 집적의 몸은 이와 같아졌다.

노쇠했고, 많은 고통의 주처로서

회반죽이 떨어진 낡은 집과 같아졌으니,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Thig.252-271, 전재성님역)

 

 

19개의 게송은 모두 신체에 대한 것입니다. 머리에 대한 것이 4개로 가장 많습니다. 눈썹1, 1, 1, 1, 이빨1, 목소리1, 1, 1, 1, 유방1, 몸통1, 허벅지1, 정강이1, 1 입니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18가지 신체 부위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신체와 늙어 버린 자신의 몸을 여러 가지 비유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에 대하여

 

눈에 대해서는 보석처럼 빛나고 반짝였던 나의 두 눈은 감청색으로 커다랬으나 (Bhassarā surucirā yathā mai  Nettā'hesu abhinīlamayatā” (Thig.256) 라 했습니다. 눈색깔이 감청색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청색에 해당되는 빠알리어가 Abhinīla입니다. 이말은 ‘very black, deep black’의 뜻입니다. 빠알리-한자어사전에 따르면 또는 紺碧이라 합니다. 그런데 빠알리-일본어 사전에 따르면 紺碧 [三十二相]’라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32상 중의 하나인 눈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디가니까야 위대한 사람의 특징의 경(D30)’에서는 수행승들이여, 위대한 사람은 깊고 푸른 눈을 갖고 있다.”(D30) 라고 했습니다.

 

초불연에서는 눈동자가 검푸르다.”(D30) 라 했습니다. 타닛사로빅쿠는 “Radiant, brilliant like jewels, my eyes” 라 하여 눈부시게 빛나는 보석 같은 눈이라 하여 눈색깔은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번역자들은 부처님 눈의 색깔에 대하여 깊고 푸른 색깔을 뜻하는 감청이라 번역했습니다.

 

유방에 대하여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32상이라 한다면 최고의 미녀 암바빨리는 18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눈은 감청색으로 비슷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신체적 특징이 다릅니다.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가슴입니다. 당대 최고 미녀의 가슴에 대하여 테리가타에서는 위로 둥글게 부풀러 올라 봉긋하여 예전에 나의 두 유방은 아름다웠지만 (Pīnavaṭṭa sahituggatā ubho Sobhare suthanakā pure mama”(Thig.265) 이라 했습니다. 타닛사로빅쿠는 Swelling, round, firm, & high, both my breasts were once splendid” (Thig.265) 라고 번역했습니다.

 

빠알리어를 보면 두 유방의 모습을 매우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빠알리어 Pīnavaṭṭa‘Pīna(swollen) +vaṭṭa(round)’의 뜻으로 둥글게 부푼의 의미입니다. 이에 대하여 번역자는 위로 둥글게 부풀러 올라 봉긋하여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빠알리어 ‘suthanakā때문이라 봅니다. 빠알리어 suthanakā에서 thanakā小的乳房이라는 의미로 작은 유방을 말합니다. 게송에서는 눈부시게 빛나는(sobhā) 아름다운 작은 유방(suthanak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방은 위로 봉긋이 부풀어 오른 것(Pīnavaṭṭa sahituggatā)이라 합니다.

 

유신견 때문에

 

암바빨리에 대한 게송을 보면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왕자들이 전쟁을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공유할 수 있도록 기녀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빛나는 육체도 늙음에는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늙어짐에 따라 추한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부처님은 말씀 했습니다. 그래서 각 게송 말미에 후렴구로서 진리를 말하는 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다. (Saccavādivacana anaññathā)”라 한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육체도 늙어지면 볼품이 없습니다. 깊고 푸른 눈에 대하여 늙어서 흐리멍덩해졌으니라 하여 눈이 빛이 잃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작은 유방이 위로 봉긋 솟아 올라 아름다웠으나 늙어짐에 따라 물 없는 물주머니처럼 늘어졌으니라 했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게송을 보면 자신의 몸 전체에 대하여 회반죽이 떨어진 낡은 집과 같아 졌으니라 하여 낡고 퇴락한 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인들의 특정신체 부위에 집착합니다. 여인들은 자신의 신체 부위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습니다. 내세울 것이 신체의 특징 부위 밖에 자신이 없는 자들은 그 부위를 자아와 같게 여깁니다. 그래서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S22.1)라고 여깁니다. 만일 눈에 대하여 자신 있는 사람은 나는 눈이고, 눈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길 것입니다. 이는 속박된 것입니다. 신체의 특징부위를 자아와 동일시 했을 때 묶이는 것입니다. 다름 아닌 유신견입니다.

 

기녀와 불교

 

기녀와 불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기녀 이야기는 많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황진이와 지족선사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십년 공부한 생불의 딱지를 떼 준 여인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최근의 일을 들라면 길상사 창건을 들 수 있습니다.

 

길상사자리는 이전에 요정이었습니다. 기생들이 지체 높은 자들의 시중을 드는 고급술집이었던 것입니다. 매일 여인들의 웃음과 교태로 넘쳐 나는 곳이 사찰로 변모한 것은 요정 여주인의 결단에 따른 것입니다. 요정 여주인은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법정스님에게 요정을 기부했습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 마치 암바빨리가 부처님에게 원림을 보시한 것이 연상됩니다.

 

암바빨리는 타고난 미모로 기녀로서 일생을 마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대전환점을 이룬 것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나서부터입니다. 디가니까야와 율장대품에 따르면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기녀 암바빨리를 세존께서는 진리에 대한 이야기로 교시하고, 독려하고, 고무하고, 기쁘게 하셨다.”(D16, 율장대품566)라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설법을 듣고 인생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희열에 가득찬 기녀 암바빨리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암바빨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부처님은 사람에 따라 그때 그때 형편에 맞게 적절한 설법을 합니다. 기녀 암바빨리에 대해서는 몸의 무상함에 대해 설법했을 것이라 봅니다. 이는 인연담에서 몸이 무상한 것에 대하여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온에 속박되지 않을 때

 

신체를 자아와 동일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굴을 자아와 동일시 한다면 얼굴에 잡티 하나만 나도 신경이 쓰일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몸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늙어 몸이 무너져 갈 때 삶의 의욕을 잃을지 모릅니다. 젊은 시절 빛나게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는 사람이 늙어서 쭈글쭈글하고 볼 품 없어진 몸을 보면 살 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몸을 자아와 동일시 했을 때 몸에 묶인 것입니다. 이는 느낌, 지각, 형상,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온을 자신의 것이라 여겼을 때 오온에 묶이게 됩니다. 오온에 집착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온에 속박되지 않을 때  해탈이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물질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고 속박되지 않습니다.”(S22.1)

 

 

 

2017-04-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