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대로, 13년만의 봉암사 순례
불자들 최대의 즐거움은 아마 순례일 것입니다. 타종교와 달리 불교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풍부한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찰일 것입니다. 주로 산중에 있는 산사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비록 물질문명시대를 맞이하여 가람이 커지긴 하였지만 그래도 고풍스런 전각과 이끼낀 석탑을 보면 천년의 향기를 맛볼 수 있습니다.
봉암사를 향하여
봉암사순례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순례를 겸한 토론회입니다. 전국선원수좌회에서 재가단체를 초청함에 따라 4월 29일 토론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자들은 토론회도 참석하고 순례도 가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 불교계에서는 조계종총무원장직선이 큰 이슈입니다. 기득권을 지켜 내려는 권승들과 변화를 요구하는 측과의 긴장과 갈등이 고조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승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지금 이대로 영원히!”그들끼리 이익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권승들은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불온시하고 끊임 없이 방해공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그동안 은인자중하던 수좌스님들이 나섰습니다. 이에 힘을 실어 주고자 재가단체에서도 봉암사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직선실현사부대중모임에서 처음부터 참여 했습니다. 작년 100인 대중공사가 시발점입니다. 처음에는 뜻을 같이 하는 스님들과 재가활동가들 소수가 참여한 작은 시작이었지만 점차 뜻을 함께 하는 단체와 불자들이 참가하여 직선실현이라는 단일 목표로 결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미 네 차례 촛불법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좌회에서 직선실현을 위하여 적극나서게 되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현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직선모임에서 허정스님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직선제의 당위성에 대하여 교계신문에 기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권승들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종단에 쓴소리 했다고 하여 천장사주지 연임이 좌절된 것입니다. 그 후 미얀마 등지로 떠돌았습니다. 현재 일정한 거처가 없어서 인연 있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봉암사모임은 4월 29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임을 앞두고 많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몇 개 카톡방에 호소문형식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장사카톡방에 이번 토론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허정스님에게 힘을 실어 줍시다.”라며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천장사일요법회팀이 7명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총무를 맡고 있는 작은 법회모임 카톡방에도 호소의 글을 올렸습니다. 대부분 무관심하고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그 중에 한 법우님이 참석했습니다.
차가 밀릴 때
4월 29일 날이 밝았습니다. 봉암사순례법회의 날입니다. 동시에 어쩌면 역사적인 현장이 될지도 모르는 봉암사토론회의날입니다. 한국불교 백년대계를 위하여 출가자와 재가자의 대토론회가 있는 날입니다.
이날 전세버스가 두 대 출발했습니다. 하나는 28인승으로 용주사신도비대위가 수원용주사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또하나는 45인승으로 사부대중직선모임이 서울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외 승용차를 이용하여 개별적으로 출발하는 법우님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합하면 거의 80명가량 됩니다.
45인승 전세버스에는 35명이 탑승했습니다. 오전 8시 10분 사당역 1번 출구 주차장에서 봉암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날씨는 화창하여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입니다. 그러나 연휴가 시작되어서 인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경에 도착을 목표로 했으나 한시간이 늦은 11시 40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차가 밀릴 때 “왜 차가 밀리지?”라며 궁금해 합니다. 대부분 사고가 났을 것이라 여깁니다. 이날도 예감이 들어 맞았습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정체와 지체와 반복한 원인을 알고 보니 갓길에 사고 차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살다보면 흔히 있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밀릴 때가 있습니다.
고속도로는 흐름입니다. 누군가 차선을 급하게 바꾸면 뒤에 차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다음차도 밟고, 그 뒤차도 밟아 연쇄적으로 밟게 됩니다. 그 결과 속도는 점점 늘어져서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사람들은 “왜 막히지?”라며 영문도 모르는 체 답답해 합니다. 그러나 정체가 풀리면 왜 막혔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사람의 욕심이, 한사람의 분노가 흐름을 바꾸어 놓습니다. 끼여들기, 태평운전 등으로 인하여 이유 없는 정체를 일으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관계속에서 한사람의 욕망이나 분노는 흐름을 바꾸어 놓습니다. 마치 호숫가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이는 것처럼 주변으로 퍼져 갑니다. 반면 한사람의 미소는 세상을 밝게 합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행복바이러스’라 합니다. 부처님이 자애와 연민, 기뻐함, 평정이라는 사무량심을 말씀 하신 이유라 생각됩니다.
자기소개시간
정체가 시작되면 답답해집니다. 그럴 때 기분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날 전세버스안에는 여러 단체에서 온 법우님들이 있었습니다. 또 참여를 권유받고 온 법우님들도 있었습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초면인 경우도 많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님이 사회를 보았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가장 먼저 박광서교수님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교수님은 참여불교재가연대를 창립하고 교단자정센터 등의 활동을 하는 등 재가운동의 산증인과도 같습니다. 교수님은 “한국불교 이대로 좋은가?”와 “한국사회 이대로 좋은가?”를 화두삼아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우희종교수님은 오늘 토론회에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이렇게 만나는 것만 해도 큰진전이라 했습니다. 직선제가 스님들문제이지만 동시에 한국불교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불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재가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한만수교수님은 동국대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작년 권승들과 권승들을 따르는 무리들로 인하여 해직이라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현재는 복직되어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그런 동국대는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동국대에 들어 오면 불교안티가 된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어이 없고 어처구니 없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라 합니다. 그것은 권승들이 학교를 장악함으로 인하여 발생된 것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또한 스님들이 계행을 지키지 않고 막행막식하는 것도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동국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스님들의 행태에 실망하여 한해 수 천명씩 불교안티가 생겨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말은 송위지 교수님의 서원입니다. 송위지 교수님은 이번 토론회에 성원정사의 여러 명의 법우님들과 함께 참여 했습니다. 송위지 교수님에 따르면 신림동 고시촌이 있는 곳에 성원정사라는 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시생들을 위한 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8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금액으로 따지면 4억원 가량 된다고 합니다. 성원정사를 거쳐간 사람중에는 사법시험 29명, 행정시고시에 14명이 합격 했다고 합니다. 이외 각종 공무원과 전문직 시험에 170여명이 합격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봉암사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참가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성원정사에서는 기도비 등 일체 돈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수입은 이웃을 위해 회향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송위지교수님은 하나의 소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스리랑카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스리랑카 중산층 가정에 태어나 9살이나 10살에 동진출가하여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한국에 와서 전법하는 것이라 합니다.
또 다시 봉암사에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정체는 풀리고 어느덧 봉암사 입구로 접어 들었습니다. 봉암사에 도착하니 11시 40분 가량 되었습니다. 원래 11시 20분부터 점심공양시간입니다. 이날 점심공양은 용주사신도비대위에서 준비했습니다. 비대위 소속 김대식법우님이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을 위하여 메밀국수 200인분을 공양올린 것입니다.
봉암사는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금지구역입니다. 조계종에서는 1982년 부터 봉암사를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현재 조계종 종립선원으로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행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는 수행승들의 요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봉암사가 공개될 때가 일년에 한번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당일에 한하여 하루만 공개됩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이날 하루 3만명 가량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좌회주최 토론회에 초대받아서 봉암사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특별케이스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선제 토론회는 1시에 시작 됩니다. 1시 이전까지 봉암사 이곳저곳을 돌아 보았습니다. 13년전 보았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희양산의 우뚝 솟은 큰바위입니다. 바위산이 너무 강렬해서 봉암사 하면 무엇보다 바위산이 떠 오릅니다.
봉암사 입구에 이르자 무엇보다 큰 바위산이 압도합니다. 그런 바위산은 2004년에 본 바 있습니다. 2004년 가을에 봉암사 순례갔었기 때문입니다. 2004년 10월 3일 능인선원 금강회 순례가 그것입니다. 그때 당시 거의 칠팔백명에 달하는 대규모순례단이 윤필암을 순례한 후 봉암사로 향했습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지만 사전에 이야기 되어서 들어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봉암사 이곳저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계곡을 따라 마애불을 보았는데 봉암사 순례의 하일라이트라 볼 수 있습니다.
또다시 봉암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가기 힘든 곳이 봉암사라 하여 토론회 보다는 순례의 목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 봉암사는 예로부터 구산산문 중의 하나이고 1947년에는 성철스님 등이 “부처님법대로 살자!”라며 봉암사결사한 유서 깊은 곳입니다.
부처님법대로
봉암사에는 보물도 많습니다. 석탑과 비문등이 그것입니다. 천년을 그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돌로 만든 것은 천년 이상 유지 됩니다. 목조로 된 전각은 전란이나 화재등으로 불타 버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지만 돌로 만들어 놓은 것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 높은 바위산만 못할 것입니다.
봉암사 하면 희양산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천년전에도 수행자들이 저 바위산을 보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천년 후에도 누군가 저 바위산을 보며 기운을 느낄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은 사라져 없어지지만 저 높은 바위산은 천년 만년 계속 그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 없이 변해 갑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은 세월에 따라 남는 것 없습니다. 바위로 만들어 놓은 것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 큰바위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한국불교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봉암사에서 결사하는지 모릅니다. 구호는 ‘부처님법대로’ 입니다. 이번 토론회도 역시 “부처님 법대로 살자”가 될 것입니다.
2017-04-3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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