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이루려면 먼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부터
초기경전을 접하면서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수십권에 달하는 방대한 빠알리경전을 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보면 볼수록 가르침은 완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우리들이 모르고 있었을 뿐 2500년 전부터 면면히 전승되어 온 가르침입니다.
초기경전에 근거하여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늘 좋은 문구는 기록해 놓습니다. 게송의 한구절에 끌렸을 때 기록해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송 한구절을 근거로 하여 글을 하나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초기경전의 특징은 서로 연계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경전에서 한 이야기가 저 경전에서도 나오는데 어떤 경우는 더 상세하게 나오기도 합니다. 그것은 들은 자가 여럿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머리에 다 기억해 둔다면 얼마나 좋을까?
테라가타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미 테라가타를 한번 읽은 바 있습니다. 작년 테라가타 교정작업에 참여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석까지 모두 남김 없이 읽었습니다. 오자와 탈자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 많은 초기경전 중에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주석까지 남김없이 다 읽은 것은 테라가타가 처음입니다.
테라가타를 처음부터 다시 읽은 것은 이전에 읽었던 문구를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게송에서인가 보았는데 기억 나지 않아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읽는 과정에서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사유는 많아졌습니다. 더구나 노트에 기억해 둘만한 구절을 필기해 두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석에 노트되어 있는 참고문구까지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테라가타를 두 번째 읽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건지는 것이 많습니다. 읽는 도중에 문구에 감동받아 글을 쓰기도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이럴 때는 “머리에 다 기억해 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사띠를 기억으로 보아야
최근 원담스님의 섭세일기를 읽었습니다. 하안거에 들어가서 처음 공개하는 섭세일기에서 사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최봉수 교수의 초기불교 강의를 들으니 sati를 ‘기억’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느낀다. 초기불교 승가에서는 부처님 법문을 듣는 즉시 외워서 기억해야만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에, 법문을 기억한다는 것은 모든 승려들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다. 그리고 법문들은 것을 기억하기에 편리하도록 분류하고 조목조목 정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후 상관관계를 가지며 서로 서로 유기적으로 짜여서 해탈 열반이란 결론으로 인도되도록 배치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4념처라든가 7각지, 나아가 37보리분법이라고 정리했을 것이다. 사실 아비담마가 모두 이런 맥락에서 정리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불교공부는 기억할 것이 강력히 요청된다. 이것을 진주선원 학생들에게 강력히 주지시켜야 하겠다. (원담스님, 수행일기 2017년 하안거 1)
사띠를 기억으로 보아야 한다는 원담스님의 견해에 공감합니다. 유튜브에서 최봉수교수의 초기불교강좌에 따르면 사띠를 기억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 다음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깨달음의 첫 번째 조건은?
사띠를 기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여러 차례 글로 올린 바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사띠(sati)는 ‘바른 기억(正念)’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2015-10-14)’입니다. 사띠의 제1의 뜻이 ‘memory’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또한 경전적 근거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늘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실 것을 강조했습니다. 칠각지에서 염각지에 대한 것을 보면 “수행승이 멀리 떠나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면, 그 때 새김의 깨달음의 고리가 시작한다.(S46:3)”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단지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 기억한 것을 사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초기경전에 수 없이 등장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 ‘뿐니야의 경(A8.82)’에 따르면, 부처님은 여덟 가지 조건이 만족되지 않으면 가르침을 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 “찾아 오지 않으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A8.82)라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 삼보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라 하더라도 청하지 않으면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만일 청하지도 않았는데 법을 설한다면 피곤하게 할 것입니다. 길거리 전도사들이 좋은 예입니다. 여덟 가지 중에 여섯 가지 조건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찾아 오지 않으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둘째, 가까이 앉지 않으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셋째, 질문하지 않으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넷째,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듣지 않는다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다섯째, 가르침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여섯째, 기억한 가르침의 의미를 탐구하지 않으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
여섯 가지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다섯 번째 항 “가르침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때까지 여래는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다.”입니다. 이는 가르침을 받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말합니다. 만일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려 버린다면 목만 아프고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노트도 없고 녹음기도 없던 시절 제자들은 스승이 말한 것을 잘 귀담아 듣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들은 것을 조용한 곳에 가서 되새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칠각지의 염각지에 대하여 “멀리 떠나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면”이라 했습니다.
염각지(satisambojjhaṅga)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여럿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칠각지입니다. 칠각지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염각지(satisambojjhaṅga)입니다. 염각지에 대하여 상윳따니까야 ‘계행의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는 이와 같이 멀리 떠나서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이 멀리 떠나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면, 그 때 새김의 깨달음 고리가 시작된다. 수행승이 새김의 깨달음 고리를 닦으면, 그 때 수행승의 새김의 깨달음 고리는 닦임으로 원만해진다. 이와 같이 새김을 닦으면서 그는 그 가르침을 지혜로 고찰하고 조사하고 탐구한다.”(S46.3, 전재성님역)
칠각지는 새김의 깨달음 고리, 즉 염각지를 닦으면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시작은 바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흘려 듣지 않고 조용한 곳에 가서 되새기는 것입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학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초가 되는 것을 외워야 합니다. 산수를 잘 하기 위해서는 구구단을 외워야 하고, 영어를 할려면 알파벳을 외워야 합니다. 미적분을 잘하려면 수학공식을 외워야 하고, 화학을 잘 할려면 주기율표를 외워야 합니다.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은 가르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가지 깨달음의 고리에서 가장 첫번째로 나온 것이 염각지로서 부처님은 “가르침을 기억하고 사유하라. (dhammaṃ anussarati anuvitakketi)” (S46.3) 라고 했습니다.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운동을 하면 근력이 생겨납니다. 근력이 생겨나면 월등한 힘을 발휘합니다. 수행을 하면 마음의 힘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를 ‘마음의 근육’이라 합니다. 오래 수행을 한 사람들은 마음의 힘이 있어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매일 그것도 수 년간 쓰면 필력(筆力)이 생겨납니다. 필력이 생겨나면 역시 월등한 힘을 발휘합니다.
무엇이든지 한분야에서 오래 종사하면 달인이 된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아닌 힘을 의미합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을 갖기 까지 인내와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이루는데 있어서도 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힘이 뒷받침 되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를 오력(pañcabala)이라 합니다.
오력은 다섯 가지 정신적인 힘을 말합니다. 즉, 믿음의 힘, 정진의 힘, 새김의 힘, 집중의 힘, 지혜의 힘입니다. 이런 힘이 있어야 깨달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새김의 힘(satibala)’이 있습니다. 새김의 힘에 대하여 “최상의 기억과 분별을 갖추어 오래 전에 행한 일이나 오래 전에 행한 말도 기억하고 상기하며 새김을 확립한다.” (A5.14)라 했습니다. 깨달음을 이루려면 먼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수행승이 믿음을 갖추었고, 찾아와서, 가까이 앉아, 질문하고, 귀를 기울여 가르침을 듣고, 가르침을 기억하고, 기억한 가르침의 의미를 탐구하고, 의미를 알고 원리를 알아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한다면, 여래가 가르침을 기꺼이 설한다. 뿐니야여,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원리를 갖출 때, 오로지 여래가 가르침을 기꺼이 설한다.”(A8.82, 전재성님역)
2017-05-2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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