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발우에 떨어진 나병환자의 손가락

담마다사 이병욱 2017. 5. 18. 10:37

 

발우에 떨어진 나병환자의 손가락

 

 

좌판에서 산 된장

 

아파트와 연립주택으로 이루어져 있는 수도권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늘 지나다니는 곳 한켠에 작은 좌판이 있습니다. 야채, 두부, , 나물 등 찬거리를 파는 곳입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보는 것 같습니다.

 

좌판은 오로지 저녁 한때만 펼쳐집니다. 허리가 구부러져서 간신히 걸어다니는 할머니는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에는 볼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씨는 좌판 벌리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좌판에서 종종 먹거리를 삽니다. 쌈배추, 깻잎, 상추 등 쌈 싸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사곤 했는데 품목당 일이천원에 불과합니다. 종종 생선도 팔기도 합니다. 좌판을 보니 된장이 눈에 띕니다. 마침 된장이 다 떨어져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된장 가격을 물어 보니 2,500원입니다. 두 말 없이 샀습니다. 사실 팔아 주고 싶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된장은 누렇습니다. 집에서 먹던 까만 된장, 이른바 시골된장의 색깔보다 연한 빛깔입니다. 된장국을 끓여 보았습니다. 된장 한스푼을 넣고 그동안 노점좌판 이곳 저곳에서 산 여러 가지 재료를 넣었습니다. 된장국 맛을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생계를 이어가는 노점할머니의 물건을 팔아 주었다는 것에 가슴이 채워졌습니다.

 

얼굴에 사마귀가 없어졌는데

 

약 한달여전 얼굴에 사마귀가 없어졌습니다. 거의 일년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사마귀가 갈수록 커져 갔습니다. 얼굴에 신경쓰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나 두달여전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혹처럼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때문이었습니다.

 

사마귀는 만지면 마치 길쭉한 콩만한 것이 손에 잡힐 정도이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피부과에 갔습니다. 의사는 레이져로 수술하면 없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좀더 상황을 지켜 보다가 적당한 때에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얼굴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식단을 완전 채식으로 바꾸자 얼굴의 사마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불과 이삼주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된장국을 먹으면서부터

 

한달여 전만해도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가슴통증때문입니다. 거의 한 두 달 간격으로 아랫배가 땡기면서 배 전체로 통증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통증이 시작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치 편두통이 시작 되면 편안히 쉬는 것이 약이듯이, 배와 가슴통증이 시작되면 찜질팩을 이용하여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된장국을 먹으면서부터 이런 증상도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사마귀와 배의 통증은 사라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잘못된 식습관이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커피를 많이 마셨습니다. 봉지커피는 마시지 않습니다. 프림과 설탕이 들어가 있는 봉지커피를 마시면 마치 독극물 마시는 것처럼 속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로 원두커피를 마셨습니다. 볶아진 원두를 사서 기계에 갈아서 종이필터를 사용하여 물을 부어 마신 것입니다. 그것도 하루에 여러 차례 마셨습니다. 그러나 식습관을 바꾸고 나서부터 일체 마시지 않았습니다. 커피의 영향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대신 차를 많이 마셨습니다.

 

문제는 인스턴트 식품영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빵이나 라면, 과자 등을 말합니다. 고기나 알코올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 많이 먹으려 한 것이 탈이었던 것 같고 때 아닌 때 먹었던 것이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음식절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한달여전에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가급적 채식위주로 하고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식재료는 주로 노점좌판에서 샀습니다. 이왕이면 어렵게 사는 할머니들을 도와 주자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래 보았자 품목당 이삼천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삼천원어치 사면 일주일을 먹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밥한끼에 칠팔원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주로 된장국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렇게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었더니 불과 삼사주만에 얼굴의 사마귀도 없어지고 배의 통증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주변에서도 놀랍니다.

 

청정한 식재료로 몸세탁을

 

사람의 몸은 늘 변합니다. 제행무상의 법칙이 있듯이 어느 것 하나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은 백일이면 모두 다 바뀐다고 합니다. 심지어 머리의 골수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교체된다고 합니다. 위장의 경우 더 빨리 바뀐다고 합니다. 위장병이 났을 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삼일만 지나면 궤양은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이 자라고 손톱이 자라듯이 우리 몸은 늘 바뀝니다. 세포 역시 생겨났다가 사라집니다. 궤양은 단식하면 없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먹거리와 매우 관계가 깊습니다. 대게 기름진 음식이나 인스턴트 식품이 치명적이라 봅니다. 가공된 음식에는 방부제 등 유해한 성분이 있어서 몸안에 들어가면 독소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암에 걸린 자가 수술하지 않고 자연에서 나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채식으로 체질을 바꾼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가 몸을 청정하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로 봅니다.

 

좌판할머니들에게서 산 식재료를 이용하여 된장국을 삼주가량 먹었을 때 확실히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몸이 변하고 보니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몸이 바뀐 상태에서 고기나 알코올을 접했을 때 마치 몸살 앓는 것처럼 몸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된장국을 이용한 식사로 소식하며 때 아닌 때 먹지 않고 음식절제 했을 때 다시 회복됩니다. 몸도 가볍고 동시에 마음도 경안해집니다. 몸이 세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이 세탁되면 다시 이전 상태로 되돌아 가기 힘듭니다. 이전몸과 지금의 몸은 다른 몸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제행무상의 법칙과도 같은 것입니다. 특히 음식으로 몸을 변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음식이 우리 몸안에 들어 가면 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놀랍게도 물질이 또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태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음식을 섭취했을 때 물질이 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이 열번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었을 때 신체 각 부위의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밥이 물질로 바뀌고, 그 물질이 또 물질을 만들어 내어서 신체 각부위의 세포가 교체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만일 중금속 등에 오염된 음식을 먹는다면 궤양이나 암과 같은 나쁜 물질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러나 청정한 음식을 접했을 때는 청정한 물질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주려고

 

시장좌판할머니들에게서 식재료를 삽니다. 대형마트에서 한카트 가득 사는 것이 아니라 동네나 재래시장 좌판에서 주로 삽니다. 그래 보았자 이삼천원입니다. 찾아 가서 일부로 팔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머니들도 좋고 나도 좋은 것입니다. 할머니들의 물건을 팔아 주어서 기분좋고, 할머니들은 물건을 팔아서 기분좋은 것입니다. 마치 누이 좋고 매부 좋듯이, 서로 윈윈하는 것입니다.

 

좌판에서 사면 비록 한끼 점심값도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일주일 이상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입니다. 청정한 음식을 먹어서 체질개선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좋은 것은 이웃을 도와 주고 있다는 뿌듯함입니다.

 

좌판에서 주로 먹거리를 사고 있습니다. 아니 일부로 팔아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눈높이가 낮아졌습니다. 이전에는 좌판을 쳐다 보지도 않고 오로지 대형마트만 찾아 갔으나 이제는 눈높이가 낮아져서 좌판만 보입니다. 좌판만 보이면 무엇이든지 사려 합니다. 서로 돕고 사는 것입니다.

 

주변에는 불행하고 가난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애써 피하려 합니다. 먹고 즐기려는데는 돈을 펑펑쓰지만 주변사람들에게는 매우 인색합니다. 오로지 위만 보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눈을 아래로 돌리면 보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도 있고 동물도 있듯이, 잘살고 부자만 있는 것이 아나라 불행하고 가난한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이 판 음식을 먹고 몸세탁했다면, 할머니들 음식을 팔아 줌으로 인하여 마음세탁한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좌판에 눈길이 자주 갑니다.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주기 위하여 좌판에 갑니다.

 

복전으로 공덕을 짓게 하고자

 

좌판을 보면 어떤 것이든지 팔아 주려 합니다. 그래 보았자 이삼천원입니다. 그러나 파는 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고마워할 것입니다. 사는 자와 파는 자 모두 기분이 좋습니다. 아마 탁발하는 것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테라가타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Senāsanamhā oruyha,

nagara piṇḍāya pāvisi;

Bhuñjanta purisa kuṭṭhi,

sakkacca ta upaṭṭhahi.

 

처소에서 내려와서 나는,

시내로 탁발하러 들어왔다.

음식을 먹고 있는 나병환자를 보고

공손하게 그의 곁에 섰다.”(Thag.1060)

 

 

마하깟싸빠 존자가 탁발하는 장면입니다. 탁발은 차제걸이라 하여 차례로 일곱 집 앞에 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병환자는 집이 없습니다. 나병환자가 어디선가 구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마하깟싸빠 존자는 그 나병환자 앞에 말 없이 섰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그 나병환자에게 크나큰 성취를 얻게 하기 위해 걸식을 청원하는 자로 맛있는 탁발음식을 보시하는 자에게 가는 자처럼 다가섰다.”(ThagA.III.139)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전으로서 공덕을 지어 주게 하고자 함입니다.

 

발우에 떨어진 나병환자의 손가락

 

마하깟싸빠존자는 일부로 나병환자에게 다가갔습니다. 나병환자에게 커다란 공덕 짓게 하기 위함입니다. 복전으로서 다가간 것입니다. 성자에게 보시하면 그 공덕이 무량하다고 했는데 복지을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So me pakkena hatthena,

ālopa upanāmayi;

Ālopa pakkhipantassa,

aguli cettha chijjatha.

 

문드러진 손으로 그는,

나에게 그의 음식의 일부를 건넸다.

음식의 일부를 발우에 던질 때에

그의 손가락도 그 곳에 떨어졌다.”(Thag.1061)

 

 

사람들은 나병환자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은 나병환자를 보면 문둥병자야하며 돌팔매를 하여 쫒아내려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님이 된 마하깟싸빠존자는 자비의 마음으로 문둥병 환자 앞에 말 없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탁발할 때는 집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앞에서 말 없이 서 있는 것이라 합니다. 마하깟싸빠존자 역시 탁발하는 것과 똑 같은 자세로 나병환자 앞에 선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가 건네 준 음식에는 손가락도 따라 왔다고 합니다. 문둥병환자는 몸이 썩어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다

 

문둥병환자는 성자에게 보시했습니다. 아무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었습니다. 깟싸빠존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참하게 사는 자에게 밥을 얻어 먹은 것입니다. 그것도 얻은 것을 또 얻어 먹은 것입니다. 걸인에게 밥을 얻어 먹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썩은 손가락이 음식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는 게의치 않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어지는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Kuṭṭamūlañca nissāya,

ālopa ta abhuñjisa;

Bhuñjamāne vā bhutte vā,

jeguccha me na vijjati.

 

담장의 아래에서 나는,

그 음식을 한주먹 먹었는데,

먹으면서도 먹고나서도

나에게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다.” (Thag.1062)

 

 

마하깟싸빠존자는 나병환자에게 손가락이 떨어진 음식을 발우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담장아래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혐오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나병환자를 쳐다 보지도 않고 가까이 오면 내쫓으려 하지만, 번뇌 다한 성자는 자비심으로 다가가서 복 지을 기회를 주었습니다. 싫어하는 마음 없이 자비의 마음으로 먹은 것입니다.

 

장로는 손가락 떨어진 음식을 받고 나서나 먹고 나서나 일체 혐오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에 대하여 혐오스럽지 않은 것처럼 혐오스럽지 않은 지각이 일어나는, 고귀한 신통의 탁월성에 도달했기 때문에, 장로는 그것을 먹는데 혐오를 일으키지 않았다.” (ThagA.III.139)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손가락도 먹었을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음식을 덜어 줄 때 썩은 손가락도 떨어졌는데 그렇다고 손가락만 골라 내고 음식을 먹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썩은 문둥병환자의 손가락도 먹었을 때 전혀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주석에 따르면 신통의 힘이라 했습니다. 무아의 성자에게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두타행에 대한 게송

 

마하깟싸빠존자는 두타제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먹는 것과 입는 것, 자는 것과 관련하여 열 세가지 두타행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테라가타에는 마하깟싸빠존자의 두타행에 대한 게송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Uttiṭṭhapiṇḍo āhāro,

pūtimuttañca osadha;

Senāsana rukkhamūla,

pasukūlañca cīvara;

Yassete abhisambhutvā,

sa ve cātuddiso naro.

 

남겨진 탁발음식을 음식으로,

썩은 오줌을 의약으로,

나무 아래를 처소로,

분소의를 의복으로 삼아,

이러한 것들을 수용하는 님이

실로 네 방향을 지닌 님이다.” (Thag.1063)

 

 

탁발음식에 대한 것을 보면 남겨진 음식이라 했습니다. 먹다 남은 것을 얻어 먹는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앞에 공손히 말없이 서 있었을 때 먹고 남은 것을 발우에 넣어 달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썩은 오줌을 의약이라 했습니다.이를 한역으로 진기약이라 하는데 소의 오줌에 미로발란 나무의 쓰디쓴 열매를 재어서 썩힌 것으로 치료제나 강화제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탁발하여 음식을 얻어 먹다 보면 식중독 등 병에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필수품의 하나로서 썩은 오줌으로 만든 약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두타행을 한 이유는?

 

두타제일 깟싸빠존자는 나무아래서 잤고 시체를 싼 옷을 입었습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산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타행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윳따니까야 깟싸빠의 모음(S16)’에 따르면, 깟싸빠 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자신의 바로 현세에서의 행복을 보면서,

그리고 후세의 뭇삶들에 대한 자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후세의 뭇삶들은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할 것입니다.”(S16.5)

 

 

 

 

 

깟싸빠존자가 두타행을 한 것은 현세에서의 행복과 후세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라 했습니다. 또 하나는 후대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청정하게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산 자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본보기로 따라 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깟싸빠존자의 두타행을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후대의 귀감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깟싸빠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상속자(dhammadayado), 즉 전법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깟싸빠여, 그대는 내가 입고 있는 삼베로 된 분소의를 받아라.”(S16.11)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스승으로부터 가사와 발우를 물려 받았을 때 전법제자라 하는데 초기경전에서도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 보았을 때

 

이른 아침 학의천 길을 걷다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생태하천으로 변모한 학의천에는 물고기와, 물오리, 백로들이 살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수 많은 생명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보입니다. 사람 사는 곳에 행복하고 부유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동차로 늘 대형마트에서 가서 카트에 가득 물건을 삽니다. 그러나 눈을 아래로 내리면 좌판을 깔고 장사하는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량식품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웰빙식품입니다. 불과 이삼천원 밖에 하지 않는 웰빙식품을 먹으면 일주일 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체질이 개선됩니다. 우리 몸은 항상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된장국을 즐겨 먹고 있습니다. 체질 개선되는 것 같고 몸세탁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팔아 주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마치 수행자처럼 늘 그 자리에 앉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들 물건을 팔아 주는 것입니다. 물건을 팔아 주면 매우 고마워 합니다. 마치 마하깟싸빠 존자가 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나병환자 앞에 서는 것 같습니다.

 

마하깟싸빠 존자는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자 앞에 공손하게 서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존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나병환자의 손가락 빠진 음식을 얻어 먹었습니다. 깟싸빠존자처럼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 보았을 때 또 다른 세상이 보입니다

 

 

2017-05-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