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정법(正法)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이유

담마다사 이병욱 2017. 5. 17. 13:02

 

정법(正法)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이유

 

 

한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습니다. 소년의 머리는 이제 반백이 되었습니다. 지난 수 십 년 세월에 나이만 먹어 가는 것 같습니다. 기대수명이 갈수록 늘어나고 이제 백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불과 삼사십년전만 해도 이렇게 오래 살지 몰랐습니다. 예상 했던 것 보다 두 배 오래살게 됨에 따라 노후자금은 바닥나고 대부분 가난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이는 들어 늙어감에 따라 병고에 시달리고 경제사정은 좋지 않아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인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무 하는 일 없이 숨만 쉬고 사는 삶에 나이만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종국에는 중환자실에서 죽어 가는 줄도 모르고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났습니다. 하루를 일생처럼 살아간다면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 미소지으며 죽을 것입니다.

 

찰나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

 

부처님의 제자들의 깨달음에 대한 게송 테라가타와 테리가타가 있습니다. 대부분 경전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것이지만 부처님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부처님제자들 생각도 부처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실천하여 부처님 경지에 이른 자들의 노래는 해탈과 열반에 대한 기쁨입니다. 부처님의 제자중의 하나인 말룽끼야뿟따는 가르침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Karotha buddhavacana,

khao vo mā upaccagā;

Khaātītā hi socanti,

nirayamhi samappitā.

 

깨달은 님의 말씀을 행하라.

찰나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찰나를 헛되이 보내는 자는

지옥에 떨어져 비탄해 하기 때문이다.”(Thag.403, 전재성님역)

 

 

게송을 읊은 말룽끼야뿟따(Mālunkyāputta)는 한역이름으로 만동자(鬘童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테라가타에는 말룽끼야뿟따가 두 번 등장합니다. 한번은 육련시집 Thag.399에서 Thag.404까지 6개의 게송이고, 또한번은 이십련시집 Thag.794에서 Thag.817까지 23개의 게송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전자의 6개 게송은 말룽끼야뿟따가 깨닫기 이전의 게송이라 합니다. 그래서일까 위에 소개 되어 있는 Thag.403게송은 부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Thag.399에서 Thag.404까지 6개의 게송은 법구경과 병행합니다. 후자의 23개의 게송은 말룽끼야뿟따가 깨닫고 난 다음 읊은 게송이라 합니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말룽끼야뿟따의 경(S35.95)’에서 세존이시여, 제가 늙고 연로하고 나이가 들고 만년에 이르러 노령에 달했을지라도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간략하게 가르침을 설해 주십시오.”(S35.95) 라고 청원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말룽끼야뿟따는 맛지마니까야에서도 등장합니다. 맛지마니까야에서는 말룽끼야뿟따의 작은 경(M63)’말룽끼야뿟따의 큰 경(M64)’이라는 경의 이름으로 소개 되어 있습니다. 경에서 말룽끼야뿟따는 세계는 영원한가?” 등의 열 가지 형이상학적 질문을 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테라가타 말룽끼야뿟의 따인연담에 따르면, 말룽끼야뿟따는 부처님 당시에 꼬쌀라왕의 감정평가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이름이 말룽끼야(Mālunkyā)인데, 말룽끼야의 아들(putta)이라 해서 말룽끼야뿟따라 합니다. 그는 원래 종교적이어서 어려서 출가했습니다. 어느 날 친지들이 그에게 맛있는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주고 재물로 유혹하며 환속에서 처자식을 키우면서 공덕을 쌓으라고 말합니다. 장로는 이런 의도를 뒤집으면서 Thag.399에서 Thag.404까지 6개의 게송을 읊었는데, 위에 언급된 게송은 그 중에 하나입니다.

 

정법만나기 좋지 않은 시기

 

테라가타 Thag.403게송에 따르면 찰나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khao vo mā upaccagā)”라 했습니다. 법구경 Dhp.315번 게송과도 병행하는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을 보면 네 가지 행복한 찰나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1) 깨달은 님이 태어나는 찰나, 2) 세계의 중앙지역에 태어나는 찰나, 3) 올바른 견해를 얻는 찰나, 4) 흠없이 완전한 여섯 감역을 획득하는 찰나,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찰나를 헛되이 버렸을 때는 지옥에 떨어져 비탄해고 하고 그곳에 태어날 것이라 합니다.

 

현시대를 정법시대라 합니다. 빠알리경전이 전승되어 내려오고, 팔정도의 수행이 있고,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에서 성자가 출현한다면 정법시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법시대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질되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설령 정법시대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가르침이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앙굿따라니까야에 좋지 않은 시간의 경(A8.29)’이 있습니다.

 

정법을 만나기 어렵다고 합니다. 경전에서는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라는 게송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맹구우목의 비유를 들어 말하기도 합니다. 정법 만나기 어려운 것에 대하여 앙굿따라니까야(A8.29)에서는 여덟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옥에서 태어나는 것.

둘째, 축생으로 태어난 것.

셋째, 아귀의 영역에 태어나는 것.

넷째, 수명이 긴 신들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

다섯째, 무지한 야만인들 사이에 태어나는 것.

여섯째, 잘못된 견해와 잘못된 관점을 가지는 것.

일곱째, 지혜가 없어 둔하고 어리석은 것.

여덟째, 세존이 출현하지 않은 것.

 

 

위에 언급된 여덟 가지 중에서 첫째부터 일곱째 까지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의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여덟 번째는 부처님이 출현하지 않았을 때를 말합니다.

 

왜 천상에서 정법만나기가 어려운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정법을 펼치거나, 정법이 살아 있더라도 지옥이나, 축생, 아귀로 태어난다면 정법을 접할 수 없습니다. 지옥은 고통스럽고 너무 괴로운 시간만 있기 때문이고, 축생은 우둔할 뿐만 아니라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이기 때문이고, 아귀는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세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상의 세계가 왜 정법 만나기가 쉽지 않을까요?

 

천상에서 정법만나기가 어려운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 즐겁고 행복한 나머지 공부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구족된 자는 대부분 즐기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즐기는 삶에는 위험이 있습니다. 부자들이 풍족하게 살지만 잘못하면 유혹의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식욕과 성욕을 충족하는 삶이나 마약 등과 같이 쾌락에 탐닉하는 것입니다. 또한 천상에서 삶은 고통은 없고 오로지 즐거움만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부처님은 고()와 고의 소멸을 말씀하시면서 사성제를 설했지만, 천상의 존재들은 괴로움을 모르기 때문에 정법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천상의 존재들이 정법만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정법이 머무는 기간이 매우 짧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정법이 머무는 것도 무상합니다. 부처가 출현하여 정법을 펼치지만 변질되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량 없는 수명을 가진 천신들이 수명과 공덕이 다하여 인간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정법이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팔만사천대겁을 산다는 비상비비상처정의 존재는 한겁 주기의 우주가 팔만사천번이나 성주괴공하는 시기를 살아야 합니다. 설령 그 사이에 부처가 출현하더라도 결국 변질되어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정법을 만날 수 없습니다. 천상에 태어나 오래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반드시 축복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이띠붓따까에서 “수행승이여, 인간의 상태가 천신들이 좋은 곳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수행승이여, 인간으로 있으면서 여래가 설한 가르침과 계율에 믿음을 성취한다면, 그것이 천신들의 행복이라고 일컫는 것이다.(It.76)라 말씀 했습니다.

 

변경에서 태어났을 때

 

초기경전에 따르면 가장 수행하기 좋은 환경이 인간세계라 합니다. 그러나 정법이 살아 있는 인간세계라 하더라도 후진국가에 태어난다면 정법만나기가 힘들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나 아마존 정글에서 태어나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도 정법이 미치지 않는 변경에서 살기 때문에 정법을 만나기 힘듭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러나 이 사람이 그 곳에서는 수행승, 수행녀, 재가의 남자신도, 재가의 여자신도도 없는 변경지역의 무지한 야만인들 사이에 태어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A8.29)라 한 것입니다.

 

사견을 가지고 있을 때

 

정법이 있는 시대에 중앙에 태어나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부처님당시 인도의 중부지역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앙에 태어나더라도 정법을 받아 들일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사견과 어리석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법시대라 하지만 비법도 동시에 성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육사외도가 대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45년 동안 설법하면서 가르침을 펼치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잘못된 견해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유행하던 무작론 , 우연론 , 숙명론 , 단멸론 , 존우론 등과 같은 삿된 견해를 말합니다.

 

부처가 출현하여 정법이 있고 그것도 중앙에 태어났음에도 사견에 잡혀 있다면 좋지 않은 시기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무주의를 예로 든다면  그러나 이 사람이 중앙에 태어나더라도 이와 같이 ‘보시도 없고, 제사도 없고, 헌공도 없고,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화생하는 뭇삶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세상에서 올바로 살고 올바로 실천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도 없다.’라는 잘못된 견해와 관점을 갖는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8.29) 라고 설명됩니다. 

 

우둔하고 지혜가 없을 때

 

정법시대에 살며 중앙지역에 사는 자가 있습니다. 행운아라 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부처님의 정법을 알리는 수행처가 있고 법문을 하고 있으나 받아 들일 조건이 되어 있지 않다면 불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에서는 그러나 이 사람이 중앙에 태어나더라도 지혜가 없어 둔하고 어리석어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모른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첫 번째 좋지 않은 시간, 좋지 않은 시기이다.” (A8.29)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대, 좋은 장소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우둔하고 어리석어 법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즐기는 삶을 살다가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정법이 없는 세상에서는

 

정법만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법사들은 맹구우목의 비유를 들어 정법만나기가 백천만겁지나도 힘든 것임을 강조합니다. 설령 정법이 살아 있더라도 지옥 등과 같이 악처에 나거나, 천상과 같이 긴 수명을 가졌을 때 불운한 것입니다. 설령 정법시대라 하더라도 영원주의나 허무주의와 같은 견해를 가졌다면 허사입니다.

 

정법시대라 하여 모두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법을 받아 들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지혜가 없어서 정법이 정법인줄도 모른다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운한 것은 정법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출현하지 않아 정법이 없는 캄캄한 암흑의 시대가 그것입니다.

 

정법이 없는 암흑의 시대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도, 그것도 중앙에서 지혜를 갖추어 태어났다고 해도 세세생생 윤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이 중앙지역에 태어나 지혜를 갖추어 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별할 줄 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여덟 번째 좋지 않은 시기이다.”(A8.29)라 하신 것입니다.

 

청정한 삶을 사는데 단 하나 올바른 시기는?

 

앙굿따라니까야 좋지 않은 시간의 경의 경에서는 여덟 가지로 부처님 정법을 만날 수 없는 좋지 않은 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법만나기 좋은 시기는 어떤 조건일까요?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청정한 삶을 사는데 단 하나의 올바른 시간, 올바른 시기가 있다. 하나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여기 이렇게 오신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길들이시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이신 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리고 고요로 이끌고 평화로 이끌고 깨달음으로 이끌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에 의해 선포된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리고 이 사람이 중앙지역에 태어나 지혜를 갖추어 둔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데 단 하나 올바른 시간, 올바른 시기이다.”(A8.29,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단 한가지 정법을 만나는 올바른 시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부처가 출현해야 하고, 부처가 출현해서 정법을 펼쳐야 하고, 정법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앙지역에 태어나서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만족했을 때 괴로움의 소멸과 윤회의 종식을 이룰 것입니다.

 

한국은 정법만나기 좋은 나라

 

부처님은 찰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님의 말씀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순간 정법이 살아 있을 때 수행하여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고 윤회의 종식을 이루어야 함을 말합니다. 마치 새들이 봄이 되면 짝짓기를 하여 알을 낳아 자신의 할 일을 다하듯이, 새끼가 어미가 물어준 먹이를 먹고 폭풍성장을 이루어 비상하듯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법이 살아 있을 때 정법을 만나는 것입니다.

 

정법이 살아 있을 때 정법을 행해야 합니다. 정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음에도 방일한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했습니다. 한량 없는 윤회의 과정에서 삼계와 육도를 윤회할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지옥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정법을 만나서 괴로움과 윤회의 종식을 이루었을 때 부처의 세계로 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은 참 수행하기 좋은 나라입니다. 쉬운 우리말로 번역된 빠알리 경전이 있는가 하면, 도처에서 수행처가 있다는 것은 중앙지역에 태어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여기에 잘 설해진 것과 잘못 설해진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바른 가르침이 설해질 때에

올바른 시기를 얻지 못하면

그 시기를 지나치네.

 

길을 방해하는

좋지 않은 시기들은 많다.

세상에 여래는

언젠가 어디선가 출현하는가?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을

눈앞에 보는 자

인간으로 태어남과

올바른 가르침의 교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자라면

마땅히 그것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리.

 

어떻게 올바른 가르침을 이해하고

올바른 시기를 놓치지 않을까

올바른 시기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다네.

 

이 세상에서 올바른 법이 주는

해탈의 길을 잃은 자는

이익을 실현하지 못해

오랜 세월 후회하는 상인과 같네.

 

무명에 덮인 사람은

올바른 가르침을 어기고

생사의 윤회를

오랜 세월 겪어야 하리.

 

인간으로 태어나

올바른 가르침의 교시를 만나

스승의 말씀을 행했으니

미래에 행할 것이고 현재에 행하네.

 

여래가 선포한 길을

걷는 자는

올바른 시기를 알고

위없는 청정한 삶을 꿰뚫었네.

 

빛에서 생겨난

눈 있는 자가 가르쳐 준

수호 속에서 제어하여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번뇌 없이 지내네.

 

악마의 세계로 이끄는

모든 경향을 자르고

번뇌를 여윈 님들은

세상에서 피안에 도달하리.(A8.29)

 

 

 

2017-05-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