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큰일 났습니다, 기자회견장 천막설치를 보고
“성직자를 뽑으려하느냐?” 요즘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말입니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작성, 세금탈루 등 결함이 있는 공직자 후보를 향하여 검증의 칼날을 세운 야당의원들을 성토하는 말입니다.
성직자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깨끗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성스런 직업을 가진 자라는 뜻을 가진 성직자는 우리사회의 마지막 보루와 같습니다. 그것은 무소유와 청정한 삶을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직자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져서도 안되고 재산을 축적해도 안됩니다. 천주교의 신부나 수녀가 해당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님들은 성직자에 속할까요?
천주교 신부보다 못한 스님위상
스님들을 성직자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 말하는 성직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불교의 스님은 성직이라기 보다 ‘수행자’로 보아야 합니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브라흐마나(brāhmaṇa)와 사마나(samaṇa)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브라흐마나는 브라만 카스트의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한 브라흐마나는 브라만교의 성직자로서 제사를 주관하는 자를 말합니다. 초기경전에서 사마나는 사문 또는 수행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브라흐마나에 대응하는 또는 대항하는 개념입니다. 사마나는 브라흐마나와 달리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가정도 이루지 않고 소유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성직자라 하면 대개 목사, 신부, 스님을 말합니다. 인사청문회 할 때 “성직자를 뽑으려 하느냐?”라며 볼맨 소리를 높이는 것은 종교인들의 도덕성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종교인들의 신뢰도는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닙니다. 이는 종교인들이 세속화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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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회연구소가 2015년 작성한 ‘한국의 사회-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3대 종교에서 천주교 신부가 가장 신뢰도가 높습니다. 천주교 신부의 신뢰도는 51.3%로 1위이고, 다음으로 불교의 스님이 38.7%로 2위, 3위는 개신교 목사로서 17%입니다. 누군가 “성직자를 뽑으려 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마 천주교 신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스님의 대사회적 위상은 천주교 신부보다 못함이 분명합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천주교가 불교보다 더 청정한 종교이고 천주교 신부가 불교 스님 보다 더 신뢰가 높은 것으로 발표 되고 있습니다. 이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무소유와 청정한 삶으로 특징으로 하는 스님의 위상이 천주교 신부 보다 못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큰일 낼 사람들이구나”
6월 7일 오후 4시에 조계사 일주문 앞에 스님들과 재가활동가들이 모였습니다. ‘한국불교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한 날입니다. 이름하여 ‘청정승가공동체 구현과 종단개혁 연석회의 출범기자회견’입니다. 오후 4시에 교계신문 기자들을 불러 놓고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회견을 열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조계사 일주문 계단 앞에는 천막이 쳐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자회견을 위한 천막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기자회견 시간에 맞추어 설치된 조계사 천막입니다. 천막안에는 승보공양 등 홍보전단지가 비치 되어 있고 젊은 청년 두 세 명이 서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기자회견을 방해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은 천막을 피해서 조계사 일주문 비좁은 통로에서 열렸습니다. 스님들과 재가활동가들이 선언문을 읽는 등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기자회견이 끝나자 마자 천막이 철거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서 기자회견을 방해 하기 위하여 시간에 맞추어 천막이 설치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기자회견장 천막설치사건을 보고 대단히 놀랐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큰일낼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한다면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집단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아니 이미 큰일 낸 사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적광스님 폭행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승원장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스님을 백주대낮에 납치하여 감금하고 폭행한 사건입니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끌려 가는 적광스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백양사도박사건을 비롯하여 마곡사인근 태화산 수련원에서 밤샘승려술판 사건 등 세간을 놀라게 한 사건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은처승의 용주사와 돈선거의 마곡사사건은 매우 파렴치하고 뻔뻔한 범죄행위입니다.
조계종에서는 기자회견장에 천막을 설치했습니다. 이것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기에 그 어떤 부끄러움과 창피한 일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은처, 도박, 술판, 폭력, 횡령, 돈선거, 매관매직 등 일반사회의 도덕적 평균치에도 미달되는 집단이라는 사실입니다.
미래를 예측한 경이 있는데
초기경전 앙굿따라니까야에는 미래를 예측한 경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경이라는 제목으로 네 개의 경이 있습니다. 그 중 세 번째 경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수행승들은 미래에 신체를 닦지 않는 자, 계행을 닦지 않는 자, 마음을 닦지 않는 자, 지혜를 닦지 않는 자가 될 것이다. 그들 신체를 닦지 않는 자, 계행을 닦지 않는 자, 마음을 닦지 않는 자, 지혜를 닦지 않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구족계를 준다. 그들은 보다 높은 계행, 보다 높은 마음, 보다 높은 지혜로 이끌 수 없다. 그들도 신체를 닦지 않는 자, 계행을 닦지 않는 자, 마음을 닦지 않는 자, 지혜를 닦지 않는 자가 될 것이다. 그들 신체를 닦지 않는 자, 계행을 닦지 않는 자, 마음을 닦지 않는 자, 지혜를 닦지 않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구족계를 준다. 그들도 그들을 보다 높은 계행, 보다 높은 마음, 보다 높은 지혜로 이끌 수 없다. 그들도 신체를 닦지 않는 자, 계행을 닦지 않는 자, 마음을 닦지 않는 자, 지혜를 닦지 않는 자가 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가르침이 오염되면, 계율이 오염되고, 계율이 오염되면, 가르침이 오염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첫 번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으니 미래에 생겨날 것이다. 그대들은 이것들에 대하여 깨우쳐야 한다. 깨우치고 나서 그것들을 끊어 버리기 위해 정진해야 한다.”(A5.79)
참으로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현실을 그대로 예언한 듯합니다. 한국불교를 장악하고 있는 권승들의 행태를 보는 것 같습니다.
경에 따르면 계행, 마음, 지혜를 닦지 않는 자가 구족계를 주었을 때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마치 불량품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개발한 제품이 설계가 잘못 되었을 때 불량품만 쌓여져 가게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계행이 엉망인 자가 상좌를 받으면 그 상좌의 계행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닦지 않는 자나 지혜가 없는 자가 제자를 받았을 때 스승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 출가하여 배운 것이 절 뺏으러 다닌 것 밖에 없는 승려가 상좌를 두었을 때, 상좌들이 사고만 일으킬 것은 명확관화합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 큰일 났습니다
한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6월 8일 오후 ‘청정승가공동체 구현과 종단개혁 연석회의 출범기자회견’ 현장에서 본 천막설치사건은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중상모략과 권모술수 등 사회의 어두운 집단에서 보여 주는 행태를 말합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집단에서 또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불교 큰일 났습니다.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S9.14)
2017-06-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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