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동아시아불자들의 성지, 법화경의 성지 깃자꾸따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 25. 22:30


동아시아불자들의 성지, 법화경의 성지 깃자꾸따

(인도성지순례 10)

 

 

보드가야에서 라지기르(라자가하)까지는 68키로미터의 거리로 차로 두 시간 가량 걸립니다. 1 3일 아침 일찍 마하보디호텔에서 출발하여 당일 첫 순례지 깃자꾸따(영취산)로 향했습니다.

 

 



인도에서 성지순례는 이동이 대부분입니다. 대륙 이곳 저곳에 성지가 있어서 보통 차로 이동하는데 길게는 대여섯 시간, 짧게는 두세시간 걸립니다. 성지에서 보내는 시간은 두 시간이 넘지 않습니다. 깃자꾸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깃자꾸따 가는 길에

 

인도대륙을 전세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끝없는 평원입니다. 1월이라 안개가 끼여서 지평선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깃자꾸따가 있는 라지기르(라자가하)가는 길에 산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수 천미터나 되는 기암괴석의 장대한 산이 아닙니다. 불과 이삼백미터에 불과한 구릉 같은 산입니다. 깃자꾸따로 올라 가는 산도 그랬습니다.

 

목적지는 깃자꾸따(Gijjha-kūa)입니다. 빠알리어 깃자(Gijjha)‘a vulture’의 뜻으로 독수리()입니다. 꾸따(kūa)‘the top, peak’의 뜻으로 봉우리입니다. 깃자꾸따는 독수리봉이라는 뜻입니다. 인도지도에서는 ‘Gridhkut Vulture Peak’라 표기 되어 있습니다. 한역으로는 영취산(靈鷲山)이라 합니다.

 

 



 




인도 어느 성지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걸인입니다. 그런데 유독 깃자꾸따 가는 길에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어린 아이를 대동한 걸인들입니다. 심지어 간난아기도 볼 수 있습니다. 피부는 새까맣고 키도 작아서 인도 내에서도 다른 인종처럼 보입니다.

 

 





 

걸인들과 원숭이 무리

 

깃자꾸따 가는 길에는 소도 보이고 원숭이도 보입니다. 특히 원숭이가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이 걸인들과 비교됩니다. 걸인들은 지나갈 때 마다 우리말로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며 정근하듯이 말을 건넵니다. 아마 우리나라 불자들이 많이 찾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들을 수 있는 말이 나무아미타포라는 말입니다. 중국불자들을 대상으로 구걸 행각할 때 쓰는 말입니다.

 



 

걸인들의 무리는 말을 건네며 돈을 달라고 불쌍한 모습을 보이며 말을 건넵니다. 그러나 원숭이 무리들은 단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 볼 뿐입니다. 그러나 방심하면 소지품을 도둑맞을 수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 길에는 원숭이 무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걸인들의 무리나 원숭이들 무리나 서로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동혈(洞穴)이 있는데

 

깃자꾸따 올라가는 길에 두 개의 동굴을 보았습니다. 아난다동굴과 사리뿟따동굴입니다. 동굴이라 하지만 앞은 툭터져 있어서 비를 막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동굴 바위에는 온통 금박이 붙어 있습니다. 들어가면 십여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마 부처님도 이곳에서 수행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출가 후에 어디로 갔을까? 아마 라자가하로 갔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부처님 당시 16대국 중에 가장 영토가 넓고 가장 강대한 나라가 마가다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향을 떠나면 서울로 향하듯이, 부처님도 가장 큰 도시인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로 향했을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의 라자가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세계 중심지 뉴욕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국내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을 때 유학을 떠납니다. 대게 선진국으로 갑니다. 부처님도 가장 큰 도시인 라자가하로 향했을 겁니다. 그러나 마땅히 머물 곳이 없기 때문에 라자가하 근교 산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산에는 동굴이 있습니다. 비바람을 피하기 좋고 수행하기도 적절한 장소이었을 것입니다. 깃자꾸따에서 보는 동굴도 그런 장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테라가타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베바라 산과 빤다바 산의 동혈에

번개가 연이어 내리친다.

하지만 그 비할 데 없는 님의 아들은

산의 동혈에 들어가 선정에 든다.”(Thag.41)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은 동혈이나 초막에서 살았습니다. 단지 비바람만 막으면 그만입니다. 초막에서 사는 수행자는 초암은 지붕이 이어졌고, 바람이 들이치지 않으니, 쾌적하다. 하늘이여, 비를 내리려거든 내리소서. 마음은 잘 집중 되었고, 용맹정진하니, 하늘이여 비를 내리소서.”(Thag.1)라고 노래 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가진 곳

 

베바라 산과 빤다바 산은 라자가하 근교에 있는 오악 가운데 두 산을 지칭합니다. 오악 중에 깃자꾸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라자가하(라지기르)와 깃자꾸따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지도를 보니 5키로미터 거리로 걸어서 1시간 10분 정도 거리입니다. 탁발하기 적당한 거리라 볼 수 있습니다.

 

 

지도


 

깃자꾸따 올라는 길은 가파르지 않습니다. 평지에서 불과 이백여 미터에 지나지 않아 평탄하게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입구 주차장에서 걸어서 이십분 가량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목적지는 독수리 바위 있는 곳입니다.

 

인도에서 산길을 걸으니 마치 한국에서 동네 뒷산에 오르는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산지로 되어 있어서 산의 지형이 매우 익숙합니다. 평원만 보다가 산길을 오르니 한국의 산사에 가는 듯 합니다. 더구나 수종을 보니 한국에서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가진 곳이 깃자꾸따입니다.

 

 






왜 독수리봉(Gijjha-kūa)이라 하는가?

 

아난다동굴과 사리뿟따 동굴을 참배한 순례자들은 목적지 깃자꾸따로 향했습니다. 동굴 바로 위에 가파른 곳에 독수리봉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독수리봉인가? 독수리 형상이 있어서 독수리 봉이라 합니다.

 

 



 

바위의 모습을 보니 독수리가 비상하려는 모양입니다. 이 바위 형상을 보고 독수리봉(Gijjha-kūa)이라는 명칭이 붙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위는 매우 작습니다. 어른 키 만한 높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독수리봉에 오르니 전망이 매우 좋습니다. 평원을 지날 때는 방향감각을 알 수 없어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는데, 높은 곳에 오르니 발 아래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인도의 1월 날씨는 안개로 자욱해서 가시거리는 길지 않습니다.

 

법화경 기사굴산(耆闍崛山)

 

독수리형상의 바위가 있는 곳에 작은 단이 설치 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디귿()형태로 되어 있는 작은 기단입니다. 벽돌로 된 유적지입니다. 그런데 이 곳이 그 유명한 법화경 영산회상의 무대라는 것입니다

 

법화경을 보면 서품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耆闍崛多山) 가운데서 큰 비구 대중 1 2천 인과 함께 계셨다.”로 경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기사굴산(耆闍崛多山)은 깃자꾸따를 음역한 것입니다. 산정상에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에 독수리가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독수리봉이라 합니다. 그런데 대승경전 법화경 영산회상 무대가 되기에는 턱 없이 작습니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백명도 앉을 수 없는 공간입니다.

 

 


 

원담스님과 진주선원 불자들 21명은 단 한켠에 자리잡았습니다. 주변에는 중국불자들이 흰 옷을 입고 단 주위를 돌며 커다란 목소리로 염불합니다. 티벳승려들과 티벳불자들도 이곳 저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이 법화경의 무대이어서일까 대승불교 불자들이 주로 찾는 것 같습니다.

 

  


 


 

상군(象軍)을 맡아 달라고

 

진주선원 순례자들은 빠알리 챈팅을 하고 출가의 경(Sn3.1)’을 독송했습니다. 숫따니빠따 출가의 경을 보면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이 손수 부처님의 동혈을 찾는 광경이 묘사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여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로 갔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전 어느 날 부처님은 라자가하로 탁발 나갔습니다. 이를 지켜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가다 국왕 빔비사라입니다. 빔비사라는 누각에서 탁발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대들은 저 사람을 보아라. 아름답고 건장하고 청정하고 걸음걸이도 우아할 뿐 아니라 멍에의 길이만큼 앞만을 본다.” (Stn.410)라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빔비사라는 수행자의 탁발하는 모습이 늠름한 장군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신을 시켜서 어디서 사는지 알아 보라고 했습니다. 대신이 보고 하기를 라가하 근교 빤다바산에 산다고 했습니다.

 

 빤다바 산은 라자가하를 둘러 싸고 있는 오악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도 동혈에 산다고 했는데 이에 대하여 대신은 대왕이시여, 그 수행승은 빤다바 산 앞쪽에 있는 굴속에  호랑이나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Stn.416)라고 보고 했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이 출가하여 라자가하 근교 산의 동혈에서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깃자꾸따에서 볼 수 있는 동혈 같은 곳입니다.

 

빔비사라왕은 수행자의 위의에 반했습니다. 마침내 수행자가 머물고 있는 동혈에 찾아 가고자 합니다. 찾아 가서 자신의 사람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혈을 찾아 가는 장면에 대하여 갈 수 있는 곳까지 달려간 뒤 전사의 왕은 수레에서 내려 손수 걸어서 다가가 그의 곁에 앉았습니다.”(Stn.418)라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매우 사실적입니다. 비록 배경은 빤다바 산이지만 깃자꾸따 가는 길에 있습니다. 왕의 수레가 더 이상 올라 갈 수 없을 때 손수 걸어서 동혈까지 갔습니다. 마치 삼고초려를 연상케 합니다.

 

빔비사라왕은 수행자에게 제안합니다. 이에 대하여 코끼리의 무리가 시중드는 위풍당당한 군대를 정렬하여 당신께 선물을 드리니 받으십시오.”(Stn.421)라 합니다. 빔비사라왕은 수행자에게 상군(象軍)’을 맡기겠다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수행자가 무사계급인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상군은 사군 중에 가장 강력한 군대를 말합니다. 고대 인도에서 사군은 코끼리부대(象軍, hatthikaya), 기마부대(馬軍, assakaya), 전차부대(車軍, ra-thakaya), 보병부대(步兵, pattikaya)를 말합니다. 빔비사라왕은 사군 중에서 가장 강한 상군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장군이 되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닙니다. 빔비사라왕의 제안에 대하여수행자는 자신의 가문을 밝히면서 그런 가문에서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 왕이여, 나는 출가한 것입니다.”(Stn.423)라 하여 욕망을 채우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고 욕망을 여의기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 출가했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서 재난을 살피고, 그것에서 벗어남을 안온으로 보고, 나는 정진하고자 합니다. 내 마음은 이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Stn.424)라 말하며 빔비사라왕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우주적 스케일의 영산회상(靈山會上)

 

오늘날 깃자꾸따, 영취산은 대승불교의 성지입니다. 법화경이 설해진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법화경 변상도를 보면 영산회상(靈山會上) 장면이 묘사 되어 있습니다. 또 법당의 후불 탱화에서도 영산회상 장면을 볼 수 있고, 궤불행사가 있을 때 걸어 놓는 커다란 탱화도 역시 영산회상장면입니다.

 


(통도사 영산회상탱, 보물 1353호)



경전에서 영산회상장면은 우주적 스케일입니다. 1 2천 비구대중 뿐만 아니라 하늘사람 등도 등장하여 수 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이 설법을 듣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부처님의 미간에서 백호상이 나오는데 이 광명으로 우주 끝까지 비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깃자꾸따는 법화경 성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영산회상은 한국전통 음악 가운데 하나입니다. 궁중이나 민간에서 연주되던 현악합주곡입니다. 그런 영산회상은 본래 불교음악입니다.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영산회상을 모티브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음악 영산회상은 영산회에서 불보살의 자비와 성덕을 찬양한 가사 영산회상불보살에 곡을 얹어 부른 것입니다. 그러나 가사를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음악만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1903년 오타니탐험대가 발견한 영취산

 

깃자꾸따에 가면 케이블카가 있습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케이블카가 놓여져 있는데 일본인들이 건설한 것이라 합니다. 꼭대기에는 일본 법화경을 종지로 하는 종파의 사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순례자들은 일본 사원이 있는 곳에 가지 않고 독수리 형상의 바위가 있는 봉우리로 향합니다.

 

깃자꾸따는 대승불교도들의 성지이고 동시에 법화경의 성지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매우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일본사원을  산꼭대기에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아 성지화 작업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순례기를 작성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검색 중에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서 성지화 작업의 단초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영취산(鷲山)과 관련하여 개요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現在ジギル東方にあるSaila-giri南面山腹にあり、北緯2507 852648 / 北緯25.00194 85.44667 / 25.00194; 85.44667座標: 北緯2507 852648 / 北緯25.00194 85.44667 / 25.00194; 85.44667にある。現在チャタ(Chataばれている。

在世したでは、マガダ首都だったジャグリハ)の東北、ナイランジャナ尼連=にれんぜんが)のにある小高である。

このらくの場所れられていたが、1903明治36114大谷光瑞いる1大谷探朝日らされたこの鷲山同一確定した。年後インド考古局3代目長官ジョシャル調査によって際的承認された。(, 일본어 위키백과)

 

 

(霊鷲山の山頂)



요지는 이렇습니다. 영취산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고 합니다. 마치 보드가야 대탑이나 룸비니 동산이 정글에 있어서 오랜 세월 잊혀져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03오타니탐험대(大谷探)’가 경전속에서만 알려져 있는 영취산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타니탐험대는 중앙아시아에서 문화재를 약탈해 간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타니탐험대가 약탈한 중앙아시아 유물은 현재 용산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오타니탐험대는 불전상의 영취산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 년 후에 인도고고국에서 이를 승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승인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 일본에서는 산 꼭대기 까지 케이블카 까지 설치 하고 일본 사원을 크게 지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かつてビンビサも、りてそのったとい라는 내용도 있어서, 빔비사라왕이 이 길을 통해서 손수 걸어가서 수행자시절의 부처님을 만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취산은 일본에서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의 성지가 된 것입니다.

 

초기경전 도처에서 보는 깃자꾸따

 

깃자꾸따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등장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쏘나의 경(A6.56)’에서도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깃자꾸따 산에 계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상윳따니까야 데바닷따의 경(S6.12)’에서는 한때 세존께서 데바닷따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라자가하의 깃자꿋따 산에 계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깃자꾸따와 관련된 구체적인 이야기는 상윳따니까야 바위의 경(S4.11)’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늘 반대편에 있는 악마와의 대화에 대한 것입니다. 경에서는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 시의 깃자꾸따 산에 계셨다.” (S4.11)로 시작 됩니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바깥에 앉아 계신 것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때 악마 빠삐만이 소름 끼치는 공포를 일으키려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와서는 커다란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이것은 악마 빠삐만이다.’라고 알아 채시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습니다.

 

 

그대가 모든 깃자꾸따 산을

통틀어 뒤흔들더라도

올바로 해탈한 깨달은 님은

결코 동요가 없다.”(S4.11)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속은 무서운 곳입니다. 더구나 칠흑 같이 어둡고 비까지 올 때 두려움은 더욱 클 것입니다. 그런데 산이 무너지는 굉음이 일어났을 때 그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악마 빠삐만은 부처님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을 내었지만 부처님은 결코 동요가 없었습니다. 이에 악마 빠삐만은 세존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즉시 사라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모르면 답답하고 두렵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에 비까지 내리고 기괴한 소리가 났을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악마는 모르는 자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만 악마의 정체의 아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알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데바닷따의 깃자꾸따 음모

 

깃자꾸따와 부처님의 인연은 많습니다. 특히 데바닷따와의 악연이 있는 곳이기도합니다. 상윳따니까야 돌조각의 경(S1.38)’을 보면 세존께서 돌 조각 때문에 발에 상처를 입으셨다.”라 되어 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부처님이 다친 이유는 데바닷따가 부처님을 살해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 장소가 바로 깃자꾸따입니다. 데바닷따가 부처님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큰 돌을 굴려 부처님을 살해 하려 했으나 실패 했습니다. 그일로 부처님은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율장소품에 실려 있습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세존께서 깃자꾸따 산의 그늘 쪽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때 데다밧따가 깃자꾸따 산에 올라가 이것으로 수행자 고따마의 목숨을 빼앗자.’라고 생각하고 큰 바위를 굴렸다. 그런데 두 산봉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그 바위가 부서졌다. 그래서 돌조각이 떨어져 세존의 발에 피가 나왔다.”(Vin.II.193, 율장소품)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하면 오역죄 중의 하나로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데바닷따는 부처님을 살해하여 교단의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습니다. 부처님은 돌조각에 맞아 피가 흘리는 상처를 입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상처는 컸던 것 같습니다. 돌 조각의 경에 따르면 세존께서는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마음을 가다듬어 상처받지 않으면서 참아 내셨다.”(S1.38)라고 묘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불자들의 성지

 

깃자꾸따는 마치 한국의 산같습니다. 산세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동네 뒷산과 같은 느낌이 들어갑니다. 인도에서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 깃자꾸따입니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순례자들이 빠짐 없이 찾는 곳이 깃자꾸따입니다. 또한 깃지꾸따는 법화경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중국불자들, 티벳불자들이 많습니다. 아마 동아시아 불자들이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이 법화경의 성지 깃자꾸따일 것입니다.

 










 

2018-01-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