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산곡성(山谷城) 기립바자 라자가하 오악(五岳)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 28. 14:14

 

 

산곡성(山谷城) 기립바자 라자가하 오악(五岳)

 

(인도성지순례 11)

 

 

 

 

 

부처님 당시 16대국이 있었습니다. 앙가(Aga), 마가다(Magadha), 카시(Kasi), 코살라(Kosala), 밧지(Vajji), 말라(Malla), 체띠(Ceti), 방사(V asa). 쿠루(Kuru), 판찰라(Ppañcāla), 맛챠(Maccha), 수라세나(Surasena), 앗사카(Assaka), 아반띠(Avanti), 간다라(Gandhāra), 캄보자(Kamboja) 입니다. 이중에서 가장 강대한 두 나라는 마가다와 꼬살라였습니다. 초기경전에서도 이 두 나라와 두 나라의 왕이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마가다의 빔비사라왕과 꼬살라의 빠세나디왕입니다.

 

 

 

마가다의 수도는 라자가하입니다. 요즘에는 라지기르 또는 라지거라 합니다. 그런데 초기경전을 보면 라자가하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산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베뿔라(Vepulla)산은 어디에

 

 

 

상윳따니까야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모음(S15)’ ‘사람의 경(S15.10)’을 보면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깃자꾸따 산에 계셨다.” (S15.10)로 시작됩니다. 부처님은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고 말씀 하시면서 어떤 사람이 일 겁의 세월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는 동안 그가 남긴 유골을 한 데 모아 놓고 사라지지 않게 한다면, 그 유골의 더비는 베뿔라 산만큼이나 클 것이다.”(S15.10)라 했습니다. 대체 베뿔라산은 어디에 있고 얼마나 높은 산일까?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경전상에 나오는 지명은 온갖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직접 보지 않으면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베뿔라산도 그런 산 중의 하나입니다.

 

 

 

베뿔라산은 크지 않습니다. 이번 인도순례에서 본 베뿔라산은 구릉진 형태로 돌출 되어 있는데 남산보다 약간 더 높은 산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평원에 돌출되어 있어서 높게 보일 뿐입니다. 산세도 그다지 험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경전에서는 이런 게송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일 겁의 세월만 윤회하더라도

 

한 사람이 남겨 놓은 유골의 양은

 

그 더미가 큰 산과 같이 되리라고

 

위대한 선인께서는 말씀하셨네.”

 

 

 

그런데 큰 산은 이처럼

 

베뿔라 산이라고 불리우니

 

깃자꾸따 산의 북쪽에 놓여 있고

 

그곳에 마다다의 산성이 있네.”(S15.10)

 

 

 

 

 

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베뿔라산(vepullo pabbata)은 독수리봉이라 불리우는 깃자꾸따(gijjhakūa) 북쪽에 있습니다. 깃자꾸따는 작은 산이기 때문에 꾸따(kūa)라 하고, 베뿔라는 암벽으로 된 큰 산이기 때문에 빱바따(pabbata)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베뿔라 산에는 산성(山城)이 있다고 했습니다.

 

 

 

라자가하 오악(五岳)

 

 

 

초기경전에 따르면 마가다의 수도 라자가하는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에 있었습니다. 마치 남한산성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천연 요새와도 같았습니다. 이처럼 라자가하를 둘러 싸고 있는 산이 다섯 개라 합니다. 이를 라자가하 오악(五岳)이라 하는데 경전에서는 베바라(Vebhāra), 베뿔라(Vepulla), 빤다바(Pandava), 깃자꾸따(gijjhakūa), 이시길리(Isigili)라 합니다.

 

 

 

베뿔라산은 라자가하 북쪽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비뿔라(Vipula)산이라 합니다. 베바라산은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오늘날 바이바라(Vaibhara)산이라 합니다. 빤다바산은 북동쪽에 있는데 라뜨나(Ratna)산이라 합니다. 빤다바 산아래 깃자꾸따가 있습니다.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만나 뵙기 위해 수레에서 내려 손수 걸어 올라간 것으로 출가의 경에서는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이 길은 빔비사라왕의 길이라 합니다. 이시길리산은 남서쪽에 있는데 오늘날에는 소나(Sona)산이라 합니다.

 

 

 

 

 

 

 

 

 

 

 

경전에서 라자가하 오악과 현재 오악은 정확하게 일치 하지 않습니다. 가장 일치하지 않는 것이 깃자꾸따입니다. 경전에서는 깃자꾸따가 오악에 포함 되어 있지만 현재는 라뜨나산(빤다바산) 아래 봉우리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명의 근거는 인터넷 검색결과 The five mountains that surround the old part of the city are now called Vaibhara, Vipula, Ratna, Sona and Udaya, while the names given in the Tipitaka are Vebhara, Vepulla, Pandava, Gijjhakúta and Isigili”라는 구절에 따른 것입니다.

 

 

 

지도를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라자가하는 다섯 개의 큰 산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북쪽에 비뿔라(베뿔라), 북서쪽에 바이바라(베바라), 남서쪽에 소마(이시길리), 동남쪽에 우다야, 북동쪽에 라뜨나(빤다바)입니다. 그러나 부처님당시 오악은 동남쪽 우다야 대신에 깃자꾸따였습니다.

 

 

 

우다야산은 초기경전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 당시 라가가하 시를 둘러 싸고 있는 오악은 북쪽에 베뿔라, 북서쪽에 베바라), 남서쪽에 이시길리), 북동쪽에 빤다바와 깃자꾸따라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다섯 개의 봉우리가 라자가하를 둘러 싸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좀 더 영역이 넓어져서 깃자꾸따 대신 남동쪽에 있는 우다야가 포함된 것이라 보여집니다.

 

 

 

북서쪽에 베바라(Vebhāra)산이

 

 

 

북서쪽에 베바라산이 있습니다. 빠알리사전에서는 베바라산과 관련하여 “One of the five hills surrounding Rājagaha (E.g., M.iii.68). At its foot was the Sattapanniguhā, where the first Convocation was held (Vin.ii.76; W. 159; Sp.i.10, etc.). The river Tapodā rose in a lake at the foot of Vebhāra. SA.i.30f.”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베바라산은 라자가하 주위에 있는 오악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삿따빤니구하 (Sattapanniguhā)라 하여 칠엽굴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한 후에 오백명의 아라한이 결집한 장소입니다. 이를 역사적으로 제1차 결집이라 합니다.

 

 

 

베바라산에는 온천이 있습니다. 이를 따뽀따온천이라 합니다. 이 온천과 관련하여 상윳따니까야 싸밋디의 경에서는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 시의 따뽀따 온천승원에 계셨다.”(S1.20)라고 되어 있습니다.

 

 

 

경을 보면 그때 싸밋디가 아직 어두운 첫 새벽에 일어나 몸을 씻으로 따뽀따 온천으로 갔다. 그는 따뽀따 온천에 몸을 씻고 나와서 가사를 걸치고 몸을 말리기 위해 서 있었다.”라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몸을 매우 청결하게 관리 하는 빅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악마가 유혹합니다.

 

 

 

악마는 수행승이여, 그대는 향락없이 걸식하네. 향락을 누리고 나서 걸식하지 않네. 수행승이여, 시절이 그대를 지나치지 않도록 향락을 누리고 걸식하시오.”(S1.20) 라고 유혹합니다. 이에 싸밋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말하는 시절을 나는 모르네.

 

그 시간은 감춰져 있고 볼 수도 없으니,

 

시절이 지나치지 않도록

 

나는 향락 없이 걸식하네.” (S1.20)

 

 

 

 

 

부처님 제자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삶은 불확실하지만 죽음은 확실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에서 향락으로 살았을 때 악처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제자는 악마의 유혹을 거부합니다. 이천 수 백 년 전 베바라산 온천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북동쪽에 빤다바(Pandava)산이

 

 

 

북동쪽에 빤다바산이 있습니다. 오늘날 라뜨나산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깃자꾸따 바로 위에 있는 산입니다. 빤다바 산과 관련하여 빠알리 사전에는 “A hill near Rājagaha, tinder the shadow of which the Buddha ate his meal when he begged alms in Rājagaha, soon after leaving home. J.i.66; SN.vs.414; DhA.i.85; Thag.vs.41, 1167; Mtu.ii.198, etc.”라고 소개 되어 있습니다.

 

 

 

빤다바산은 빔비사라왕과 관련이 있습니다. 숫따니빠따 출가의 경을 보면 부처님이 출가하여 마가다국 라자가하로 왔을 때 빤다바 산에서 머물렀습니다. 이는 출가의 경에서 왕의 사신이 빔비사라왕에게 대왕이시여, 그 수행승은 빤다바 산 앞쪽에 있는 굴속에 호랑이나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Stn.416)라고 보고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빤다바 산 앞쪽에 있는 굴속은 깃자꾸따 바로 아래에 있는 사리뿟따 동굴이라 불리우는 곳입니다.

 

 

 

빔비사라왕은 늠름한 기상을 가진 수행승을 만나기 위해 빤다바산으로 갔습니다. 숫따니빠따에서는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수레에서 내려 손수 걸어서 다가가 그의 곁에 가까이 앉았습니다.”(Stn.418)라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고대인도 16대국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마가다 왕 빔비사라왕이 누추한 동굴로 찾아 것입니다.

 

 

 

남서쪽에 이시길리(Isigili)산이

 

 

 

남서쪽에 이시길리산이 있습니다.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산입니다. 그것은 빅쿠들의 자살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도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이시길리의 검은 바위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빠알리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Isigili:

 

:One of the five mountains round Rājagaha and one of the beauty-spots of the city (D.ii.116). There was, on one side of it, a black stone called the Kālasilā. This was a favourite haunt of the Buddha and the members of the Order. See e.g., Viii.ii.76, where Dabba Mallaputta is asked by monks to provide for them accommodation there; see also Vin.iii.41.

 

 

 

It was also the scene of the suicide of Godhika and Vakkali (S.i.121; iii.121f) and of the murder of Moggallāna by the brigands (J.v.125f; DhA.iii.65).

 

 

 

In the Isigili Sutta (M.iii.68-71) the Buddha is represented as saying that while the other mountains round Rājagaha - Vebhāra, Pandava, Vepulla and Gijjhakūta - had changed their old names, Isigili retained its former name and designation. (빠일리사전)

 

 

 

 

 

이시길리산과 관련하여 맛지마니까야에 이씨길리의 경(M116)’이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오백 명의 연기법을 깨달은 님들이 이 이씨길리 산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사람들은 이산이 선인들을 삼켜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선인들을 삼키다(isi gilati)’라 하여 이시길리(Isigili)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시길리의 검은 바위

 

 

 

초기경전에서 이시길리산은 비극의 산입니다. 부처님 제자들이 자결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고디까(S4.23), 박깔리존자(S22.87)가 이곳에서 자결했습니다. 또 목갈라나 존자가 이교도에게 살해 당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고디까 존자는 일시적 마음의 해탈에 따른 퇴전 때문에 자결했습니다. 박깔리존자는 중병으로 자결했습니다.

 

 

 

고디까존자의 자결과 관련하여 상윳따니까야에 고디까의 경(S4.23)이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그 때 존자 고디까가 이씨길리 신 중턱의 검은 바위 위에 있었다.”(S4.23)로 시작됩니다. 고디까존자는 “이제 나는 여섯 번이나 일시적 마음에 의한 해탈에서 물러났다. 나는 차라리 칼로 목숨을 끊는 것이 어떨까?(S4.23)라며 자결했습니다.

 

 

 

부처님은 고디까 존자의 자결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 장면에 대하여 경에서는 그래서 세존께서는 많은 수행승들과 함께 이씨길리 산 중턱에 있는 검은 바위에 도착하셨다.”(S4.23)라고 묘사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대단히 인간적인 부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의 자살 현장에 나타난 부처님에게 제자들에게 수행승들이여, 양가의 아들 고디까는 의식이 머무는 곳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S4.23)라 했습니다. 죽음과 동시에 아라한이 되어 열반에 든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한번에 두 가지를 성취하는 것에 대하여 사마시시(samasīsī)라 합니다.

 

 

 

고디까의 경에서 검은 바위(kāasilā)’가 나옵니다. 고디까존자가 자결한 현장입니다. 검은 바위는 초기경전 도처에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목갈라나 존자도 이교도에게 살해 당했다고 합니다.(J.v.125f; DhA.iii.65f; ApA.i.206) 박깔리 존자도 중병으로 이곳에서 자결했습니다. 박깔리 존자 역시 죽음과 함께 동시시에 아라한이 되어 완전한 열반에 들었습니다.

 

 

 

깔라실라, 검은 바위는 어디에 있을까? 이시길리산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깔라실라와 관련하여 무념스님의 인도불교성지순례가이드에 따르면 독수리봉(깃자꾸따) 반대쪽 산아래 있다고 합니다. 소나산(이시길리산)을 말합니다. 깔라실라의 위치에 대하여 깊은 웅덩이와 폭포가 있어 여름에도 시원하고 또한 그늘이 많아서 비구들이 머물며 수행하던 곳이라 합니다.

 

 

 

이시길리산의 검은 바위는 인도에 다시 한번 간다면 꼭 한번 찾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혼자 가기에는 위험한 곳이라 합니다. 책에서는 지금은 외진 곳이라서 안전한 보호자 없이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라고 소개 되어 있습니다.

 

 

 

기립바자(giribbaja), 산위성(山圍城) 또는 산곡성(山谷)

 

 

 

라자가하를 둘러 싸고 있는 오악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마가다국의 초창기 수도는 산으로 둘러 쌓인 천연요새에 있었습니다. 산에는 산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을 방지했습니다. 그래서 기립바자(giribbaja)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이는 산의 요새라는 뜻으로 산위성(山圍城) 또는 산곡성(山谷城)을 뜻하는데 왕사성과 동의어입니다. 영어로는 기립바자에 대하여 ‘name of a former capital of Magadha’라 합니다.

 

 

 

산위성 또는 산곡성이라 불리우는 기립바자는 구왕사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왕사성은 현재 라지기르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신왕사성은 마가다국이 강성해지자 산곡에서 벗어나 산 바로 북쪽 평야지대에 건설 되었습니다. 빔비사라왕이 터를 닦고 그의 아들 아자따삿투가 완성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기립바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When you stand on the top of Mount Vulture Peak (Gijjhakuta) and look down four or five hundred feet to the plain below enclosed by a ring of hills, you see only scrubby jungle and rocks, the site of the ancient city of Giribbaja.” (Collected Wheel Publications Volume XVI: Numbers 231–247)

 

 

 

 

 

 

 

 

 깃자꾸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 약 사오백 피트 가량의 평지가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옛날 라자가하(구왕사성)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글과 바위덩어리들만 볼 수 있는 고대도시의 터입니다. 구왕사성지역과 관련한 곳을 위성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빔비사라 감옥터

 

 

 

원담스님과 진주선원 인도성지순례자들은 깃자꾸따를 참배 한 후에 빔비사라 감옥터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한국가이드는 우측 창문 보이는 쪽이 망고동산이라 합니다. 지바까의 망고동산을 말합니다. 그러나 일정에 없었기 때문에 차창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산위성 또는 산곡성이라 불리우는 기립바자는 부처님 당시에는 16대국 중에 가장 강성했던 마가다국의 수도이었으나 지금은 초목만 무성한 정글입니다.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 쌓인 천연의 요새 구왕사성 한켠에는 아들에게 갇혀 죽은 비극적 장소 빔바사라 감옥이 있습니다.

 

 

 

 

 

 

 

 

 

 

 

 

 

 

 

 

 

빔비사라 감옥터는 넓은 공터에 사각형모양으로 돌무더기담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유적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입구에는 걸인들이 있어서 구걸합니다. 돌담 한켠에는 주인 없는 소 두 마리가 유유히 걸어 다닙니다. 저 멀리 안개 속에 희뿌였게 보이는 베뿔라 산이 보입니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초기경전 도처에 등장하는 지명은 익숙합니다. 그러나 이번 순례에서는 다 보지 못했습니다. 초기경전에 등장하는 장소를 모두 순례 하려면 여러 날이 소요될 것입니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천천히 여유있게 모든 곳을 빠짐 없이 보고 싶습니다. 현지에서 바람과 열기와 땅 냄새를 접했을 때 경전 속의 그 장면을 접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2018-01-2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