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기쁨의 정원 벨루바나(竹林精舍)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 29. 23:23


쁨의 정원 벨루바나(竹林精舍)

(인도성지순례 12)

 

 

죽림정사(竹林精舍), 참으로 오래 전부터 들어 오던 말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처음 들었습니다. 종립중학교에 불교시간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은 죽림정사입니다. 대나무가 많이 있는 절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정사라 하는 것이 생소했습니다. 죽림사라고 불러야 할텐데 왜 정사라 했을까라며 의문했습니다.

 

벨루바나는 어디에

 

원담스님과 진주선원 인도성지순례팀은 빔바사라감옥에서 죽림정사, 벨루바나(Veluvana)로 향했습니다. 빔비사라 감옥은 그다지 볼 것이 없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한번 들러서 단체사진이나 찍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연상케 하는 흙먼지 풀풀나는 듯한 길을 따라 가다보니 금새 죽림정사에 도착했습니다.

 



 

빔비사라감옥에서 벨루바나(죽림정사)까지는 1.6키로로 자동차로 6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기립바자(Giribbaja)라 불리우는 산곡성, 즉 구왕사성에서 산곡을 벗어난 평야지대에 있는 신왕사성에 위치해 있습니다. 빔바사라왕 초창기때는 산곡성에 있었으나 후반기 때 산곡을 벗어나 평야지대에 신도시를 건설한 것으로 보입니다. 벨루바나는 신왕사성 입구에 있습니다.

 

벨루바나 가는 길에

 

벨루바나 가는 길은 산뜻했습니다. 정오가 가까워져 감에 따라 기온은 상승하여 마치 따스한 봄날씨 같습니다. 산천에 초목은 푸르러서 성하의 여름 같기도 합니다. 인도에서는 낙엽이 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늘 푸르름만 유지되는 듯합니다.

 

인도는 세 계절만 있습니다. 우기와 건기와 혹서기입니다. 우기는 7월부터 10월까지 4계월이고, 건기는 11월부터 2월까지 4계월, 그리고 혹서기는 3월부터 6월까지 4계월입니다. 인도에는 겨울이 없습니다. 가장 춥다는 1월의 날씨는 아침에 영상 10도 가량이고 낮이 되면 25도 가량 됩니다. 전형적인 봄날씨입니다. 더구나 산천은 푸르러서 별세계에 온 듯 합니다. 벨루바나 들어 가는 길이 그랬습니다.

 

인도에서는 벨루바나를 ‘Venu Van’이라 합니다. 현재는 공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벽돌만 남아 있는 유적지만 보다가 우거진 숲에 들어 오니 자연스럽게 상쾌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꽃도 피어 있어서 잘 꾸며진 공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공원 같은 죽림정사

 

벨루바나(Veluvana)는 대나무를 뜻하는 벨루(velu)와 숲을 뜻하는 바나(vana)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벨루바나는 대나무숲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대나무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나무는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이곳이 대나무가 있던 정사라는 뜻에서일까 대나무가 몇 무더기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보는 대나무와 다릅니다. 인도에서 볼 수 있는 인도대나무이니다.

 





 



 

대나무를 보니 이곳이 죽림정사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그러나 죽림정사를 뜻하는 ‘Venu Van’는 잘 가꾸어진 공원입니다. 폐허의 흔적은 볼 수 없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오월 신록을 연상케 하는 공원입니다. 순례팀은 흰가사로 갈아 입고 큰 연못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아름다운 연못 수마가다(Sumāgadhā)

 

연못에 도착했습니다. 연못보다는 더 크고 호수보다는 작은 규모입니다. 네모난 연못이 마치 축구장 반정도의 크기입니다. 연못 저편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불상이 있습니다. 연못 주위로는 산책로가 나 있어서 한바퀴 둘러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위성지도에는 ‘Karanda Tank’라 표기 되어 있습니다.

 






까란다탱크는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검색해 보니 벨루바나비하라는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위하여 만든 것인데 최초로 기증된 것이라 합니다. 특히 까란다 탱크와 관련하여 where Lord Buddha was taking bath”라 되어 있는데 부처님이 이곳에서 목욕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까란다 탱크의 또 다른 이름은 수마가다(Sumāgadhā)입니다. 이 말은 ‘A lotus pond near Rājagaha’의 뜻인데 연꽃이 피는 아름다운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상윳따니까에 이 연못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

이 보게들 여기 나는 라자가하 시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하여 생각해야겠다고 쑤마가다 연못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갔네. 그리고 쑤마가다 연못의 언덕에 앉아 세상에 관해 생각했는데, 쑤마가다 연못의 언덕에서 네 종류의 군대가 연꽃 뿌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네, 나는 참으로 돌아버렸네. 나는 참으로 미쳐 버렸네. 세상에 없는 환상을 보았네.”(S56.41)

 



 

상윳따니까야 생각의 경(S56.4)’에 실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수마가다 연못에서 네 종류의 군대가 연꽃 뿌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 볼 수 없는 현상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자신이 정신이 돈 것이 아닌지, 미친 것이 아닌지 의문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틀림 없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 사람은 진실을 본 것이지 환상을 본 것이 아니었다.”(S56.41)라고 말합니다. 마치 누군가 숲속에서 야차를 보았는데 그 야차가 환상이 아니라 진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이렇게 말씀 했을까? 이는 신들과 아수라들 사이에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들이 패했습니다. 패한 아수라들은 신들을 당혹하게 하면서 연꽃의 뿌리에 있는 아수라의 성으로 들어갔다.” (S56.41)라 합니다. 여기서 부처님이 진실이라 한 것은 주석에 따르면, 아수라의 제왕 쌈바라의 환술에 대한 목격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환술을 보고서 자신의 눈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연못 언덕에 앉아 있다가 목격한 것입니다.

 

기쁨의 정원 벨루바나

 

빠알리사전에 따르면 ‘Venuvan Vihara’라는 유쾌한 곳입니다. 그래서 A park near Rājagaha, the pleasure garden of Bimbisāra”라고 소개 되어 있습니다. 라자가하에 있는 빔비사라왕의 기쁨의 정원이라는 것입니다. 빠알리사전에 실려 벨루바나에 대한 것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Veluvana

:1. Veluvana. A park near Rājagaha, the pleasure garden of Bimbisāra. When the Buddha first visited Rājagaha, after his Enlightenment, he stayed at the Latthivanuyyāna (Vin.i.35). The day after his arrival, he accepted the king’s invitation to a meal at the palace, at the end of which the king, seeking a place for the Buddha to live ”not too far from the town, not too near, suitable for coming and going, easily accessible to all people, by day not too crowded, by night not exposed to noise and clamour, clean of the smell of people, hidden from men and well fitted to seclusion” decided on Veluvana, and bestowed it on the Buddha and the fraternity. This was the first ārāma accepted by the Buddha, and a rule was passed allowing monks to accept such an ārāma. Vin.i.39f.; according to BuA. (19; cf. ApA.i.75) the earth trembled when the water - poured over the Buddha’s hand by Bimbisāra in dedication of Veluvana - fell on the earth. This was the only ārāma in Jambudīpa, the dedication of which was accompanied by a tremor of the earth. It was the dedication of Veluvana which was quoted as precedent by Mahinda, when he decided to accept the Mahāmeghavana, at Anurādhapura, from Devānampiyatissa (Mhv.xv.17).

 

The Buddha at once went to stay there, and it was during this stay that Sāriputta and Moggallāna joined the Order. Vin.i.42.

 

Kalandakanivāpa (q.v.) is the place nearly always mentioned as the spot where the Buddha stayed in Veluvana. There many Vinaya rules were passed - e.g., on the keeping of the vassa (Vin.i.137), the use of food cooked in the monastery (Vin.i.210f), the picking of edible (kappiya) fruit in the absence of any layman from whom permission to do so could be obtained (Vin.i.212), surgical operations on monks (Vin.i.215f), the eating of sugar (Vin.i.226), the rubbing of various parts of the body against wood (Vin.ii.105), the use of the kinds of dwelling (Vin.ii.146) and the use of gold and silver (Vin.ii.196).

 

During the Buddha’s stay at Veluvana, Dabba Mallaputta, at his own request, was appointed regulator of lodgings and apportioner of rations, (Vin.ii.74. The Buddha was at Veluvana when Dabba also decided to die. He went there to take leave of the Buddha, Ud.viii.9) and Sāriputta and Moggallāna brought back the five hundred monks whom Devadatta had enticed away to Gayāsīsa (Vin.ii.200). The Buddha spent the second, third, and fourth vassas at Veluvana. BuA.3; it was while the Buddha was at Veluvana that Devadatta attempted to kill him by causing Nālāgiri to be let loose against him (J.v.335). It was a very peaceful place, and monks, who had taken part in the first Convocation, rested there, in Kalandakanivāpa, after their exertions. It was there that they met Purāna, who refused to acknowledge the authenticity of their Recital (Vin.ii.289f).

 

Numerous Jātakas were recited at Veluvana - e.g., Asampadāna, Upahāna, Ubhatobhattha, Kandagalaka, Kālabāhu, Kukkuta, Kumbhila, Kurunga, Kurungamiga, Giridanta, Guttila, Culladhammapāla, Cūlahamsa, Cūlanandiya, Jambu, Tayodhamma, Thusa, Dummedha, Dūbhiyamakkata, Dhammaddhaja, Nigrodha, Parantapa, Pucimanda, Mangala, Manicora, Manoja, Mahākapi, Mahāhamsa, Mūsika, Romaka, Rohantamiga, Ruru, Lakkhana, Latukika, Vānara, Vānarinda, Vinīlaka, Virocana, Saccankura, Sañjīva, Sabbadātha, Sarabhanga, Sāliya, Sigāla, Sīlavanāga, Suvannakakkata, Hamsa and Hāritamātā. Most of these refer to Devadatta, some to Ajātasattu, and some to Ananda’s attempt to sacrifice his life for the Buddha.

 

The books mention, in addition, various suttas which were preached there. Among those who visited the Buddha at Veluvana were several devaputtas: Dīghalattha, Nandana, Candana, Sudatta, Subrahmā, Asama, Sahali, Ninka, Akotaka, Vetambari and Mānavagāmiya; also the Dhanañjanī brahmin; the Bhāradvājas: Akkosaka, Asurinda, Bilangika, Aggika, Acela Kassapa, Susīma; the thirty monks from Pāvā (S.ii.187); Theras, like Mahākappina Aññākondañña (just before his death); Sonagahapatiputta, Samiddhi, Moliya Sīvaka, Tālaputa, Manicūlaka, Mahācunda (during his illness), (S.v.181) Visākha (after his visit to Dhammadīnnā, who preached to him the Culla Vedalla Sutta), Abhayarājakumāra, Gulissāni, Vacchagotta, Bhūmija, Samiddhi, Aciravata, Sabhiya, Vassaka, Suppabuddha, Pilindavaccha, Jānussoni and the princess Cundī; also Bimbisāra’s wife, Khemā, who went to Veluvana because she had heard so much of its beauty. Sāriputta and Ananda visited the Buddha there on several occasions, sometimes alone, sometimes in the company of others, and Ananda lived there for some time after the Buddha’s death, and during his stay there preached the Gopakamoggallāna Sutta.

 

Sāriputta is mentioned as having held discussions there with, among others, Candikāputta and Lāludāyī. A sermon preached by Mahā Kassapa to the monks at Veluvana is given at A.v.161ff.; for other suttas preached by the Buddha, see also S.i.231; ii.32, 183, 242, 254; iv.20; v.446; Ud.iv.9.

 

It is said that Māra visited Veluvana several times (E.g., S.i.106f ) in order to work his will on the Buddha. The Buddha was there when three of the monks committed suicide - Vakkali, Godhika and Channa - and he had to pronounce them free from blame. News was brought to the Buddha, at Veluvana, of the illness of three of his disciples - Assaji, Moggallāna and Dīghāvu - and he set out to visit them and comfort them with talks on the doctrine. Near Veluvana was a Paribbājaka Rāma, where the Buddha sometimes went with some of his disciples in the course of his alms rounds. Two of his discussions there are recorded in the Cūla- and Mahā Sakuladāyī Suttas.

 

During the Buddha’s lifetime, two thūpas were erected at the gate of Veluvana, one containing the relics of Aññā Kondañña (SA.i.219), and the other those of Moggallāna (J.v.127).

 

Veluvana was so called because it was surrounded by bamboos (velu). It was surrounded by a wall, eighteen cubits high, holding a gateway and towers (SNA.ii.419; Sp.iii.576).

 

After the Buddha’s death, Dāsaka, Upāli’s pupil, lived at Veluvana, and there ordained Sonaka with fifty five companions. From there Sonaka went to the Kukkutārāma. (Mhv.v.115 f, 122; Dpv.iv.39).

 

The dedication of Veluvana was among the scenes depicted in the Relic Chamber of the Mahā Thūpa (Mhv.xxx.80).

 

On one side of the main building of the Veluvana vihāra was a building called Ambalatthika (MA.ii.635). There was also a senāsana, built for the use of monks practising austerities (MA.ii.932).

 

It is said that, after death, Vassakāra was born as a monkey in Veluvana and answered to his name. He had been told during his lifetime that this destiny awaited him, and therefore took the precaution of seeing that the place was well supplied with fruit trees (MA.ii.854).

 

According to Hiouen Thsang (Beal, op. cit., ii.159), the Kalandaka nivāpa (Karandavenuvana, as he calls it) lay one li to the north of Rājagaha.

 

2. Veluvana. A bamboo grove inKajangalā, where the Buddha once stayed. The upāsakas of Kajangalā, having questioned the Kajangalā-Bhikkhunī, went to the Buddha there and asked him to verify her answers. A.v.54f

 

3. Veluvana. A bamboo grove in Kimbilā, where the Buddha stayed and was visited by Kimbila. A.iii.247, 339: iv.84.

 

4. Veluvana. A monastery in Ceylon, built by Aggabodhi II. It was given by him to the Sāgalikas (Cv.xlii.43). It probably lay between Anurādhapura and Manihīra, and Sanghatissa once lay in hiding there disguised as a monk (Cv.xliv.29; Cv.Trs.i.77, n.2). Jetthatissa III. gave to the vihāra the village of Kakkalavitthi. Cv.xliv.99.

 

5. Veluvana. A monastery erected by Parakkamabāhu I. in the suburb of Vijita in Pulatthipura. It consisted of three image houses, each three storeys high, a thūpa, a cloister, a two storeyed pāsāda, four gateways, four long pāsādas, eight small ones, one refectory, one sermon hall, seven fire hoses and twelve privies. Cv.lxxiii.152, lxxviii.87f.; see also Cv.Trs.ii.113, n.1.

 

 



벨루바나에 대한 모든 것이 다 나와 있습니다. 경전에 기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언급 된 것이 빔비사라왕과의 인연입니다.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위하여 최초로 숲을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율장대품 빔비사라왕의 귀의에 대한 이야기(Vin.I.35)’에 실려 있습니다.

 

빔비사라왕의 다섯 가지 소원

 

부처님이 라자가하 랏티바나 숲(laṭṭhivana)에서 머물 때의 일입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거룩한 님을 친견하는 것은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Vin.I.35)라며 부처님을 만나 뵙기를 열망했습니다. 부처님이 깟싸빠 삼형제를 교화 시키고 나서 제자들이 천명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마침내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우르벨라 깟싸빠 등 천명의 제자들과 유행하다가 라자가하에 까지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빔비사라는 부처님을 맞이 했습니다. 이는 빔비사라가 태자였을 때 다섯 가지 소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율장대품에서는 이렇게 소개 되어 있습니다.

 

 

1)참으로 나를 왕위에 관정시켜 주면 좋겠다.

2)참으로 나의 영토에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출현하면 좋겠다.

3)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을 모시면 좋겠다.

4)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께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다.

5)참으로 내가 세상에 존귀한 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면 좋겠다. (Vin.I.37)

 

 

빔비사라는 부처님에게 귀의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머물 숲을 기증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율장대품에서는 세존께서는 어디에서 지내는 것이 좋을까?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고, 왕래가 편하고, 원하는 사람들이 오기 쉽고, 낮에는 번잡하지 않고, 밤에는 조용하고 소음이 없고, 인적이 없고, 사람을 여의고, 홀로 명상하기에 알맞은 곳일 것이다.” (Vin.I.37)라 했습니다. 그래서 선정된 곳이 현재 위치의 벨루바나입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과 천명의 제자들을 위하여 숲을 기증했습니다. 빔바사라는 세존이시여, 나는 이 벨루바나 숲을 부처님을 비롯한 참모임에 기증하겠습니다.” (Vin.I.39)라 했습니다. 빔비사라는 부처님 개인에게 기증한 것이 아니라 상가에 기증한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승려들이 점유하고 있는 사찰과 문화재는 개인의 소유나 문중의 소유가 아니라 사방승가의 소유물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천명의 제자들은 빔비사라왕이 제공한 벨루바나 숲에서 지냈습니다. 숲에서 자고 난 다음 탁발은 라자가하 시내로 나갔습니다. 그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합류했습니다. 이로써 금강경에서 보듯이 천이백오십명의 아라한이 된 것입니다.

 

현재와 미래의 사방승가에 봉헌하십시오

 

벨루바나는 대나무숲이라는 뜻입니다. 빔비사라왕이 숲을 제공해서 천이백오십명의 아라한들은 숲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율장소품 정사건립의 인연(Vin.II.146)’을 보면, 부처님과 제자들은 숲속이나 나무밑, 무덤 등에서 지냈습니다.

 

그때 어느 대부호가 위의 있는 제자들을 보고서 마음에서 기쁨이 넘쳐나고 마음이 청정해졌습니다. 이에 대부호는 “제가 정사를 짓는다면 저의 정사에 거주하시겠습니까? (Vin.II.146)라고 수행승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수행승들이 부처님에게 알리자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다섯 가지 방사, , 정사, 평부옥, 전루, 누옥, 동굴을 허용한다.(Vin.II.146) 라 했습니다.

 

여기서 정사라는 말은 비하라(vihāra)를 번역한 말압니다. 비하라는 ‘a dwelling place’라 하여 단지 거주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오늘날 웅장한 절의 형태가 아닙니다. 이는 그러자 라자가하 시의 대부호가 단 하루 만에 예순 개의 정사를 세웠다.”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비바람을 막는 곳 정도를 말합니다. 오늘날 정사라 했을 때 여법한 가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초암 정도의 개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대부호의 제안을 받아 들여 정사건립을 허용했습니다. 나중에는 평부옥, 전루, 누옥 등의 형태로 발전합니다. 오늘날 절이나 사원과 같은 형태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비바람을 막는 정도의 초막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사의 소유를 어떻게 해야 할까? 율장소품에 따르면 대부호는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그 정사들을 제가 어떻게 조치하면 됩니까?” (Vin.II.146) 라며 물어 봅니다. 이에 부처님은 장자여, 그렇다면, 그 예순 개의 정사는 현재와 미래의 사방승가에 봉헌하십시오. (Vin.II.146)라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은 빔비사라왕이 벨루바나 숲을 기증할 때도 상가에 봉헌하라고 했고, 대부호가 초막과도 같은 정사를 지어 기증 할 때도 상가에 봉헌하라고 했습니다. 불교의 모든 재산은 상가에 있음을 말랍니다. 사방승가의 재산은 어느 개인이 자신의 소유물처럼 또는 문중의 소유물처럼 독차지 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케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부처님 당시 벨루바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이는 법구경 347번 인연담 케마와 관련된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 빔비사라왕의 왕비였던 케마는 최상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을 흠모하던 빔비사라왕은 케마왕비가 부처님에게 법문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름다움의 허물을 말한다는 소문을 듣고 가기를 꺼려 했습니다. 이에 빔비사라왕은 벨루바나 숲의 아름다음을 노래로 만들어 배우 들에게 찬양하게 했습니다.

 

케마는 배우들이 노래하는 벨루바나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케마는 그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그 장소가 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고 싶어 졌습니다. 마침내 케마왕비는 부처님을 만나 법문을 들었습니다.

 

빔비사라왕이 케마왕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벨루바나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런 벨루바나는 부처님 당시에는 다람쥐 보호구역, 공작부호구역, 수마가다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수마가다 연못 만이 공원화 되어 남아 있습니다.

 




바람은 살랑이고 온도와 습도는 적당하고

 

라자가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벨루바나 수마가다 연못 언덕에 순례팀이 자리 잡았습니다. 계단 아래 물가 가까이 너른 터에 자리 잡았습니다. 바람은 살랑이고 온도와 습도는 적당합니다. 마치 오월의 아침처럼 상쾌하고 기분 좋은 오전입니다.

 

먼저 빠알리 챈팅부터 했습니다. 빠알리어로 예경을 하고 오계를 하고 삼보예찬을 했습니다. 이어서 벨루바나와 관련 있는 교리문답의 작은 경(M44)’을 함께 독송했습니다. 이 경은 부처님이 라자가하 시의 벨루 숲의 깔란다까니바빠(Kalandaka-nivāpa: 다람쥐 보호구역)에 계실 때 재가신도 비싸카와 수행녀 담마딘나의 교리문답에 대한 것입니다.

 

 



 

 

경전 독송을 마치고 순례팀은 입정에 들어갔습니다. 10분 가량 눈을 감고 현지에서의 공기를 마셨습니다. 얼굴에 닿는 바람의 감촉을 느겼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상쾌한 날씨입니다. 부처님 당시 부처님과 제자들도 이런 공기를 마셨을 것입니다. 이런 느낌을 당일 다음과 같이 적어 보았습니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양가집 자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은 가고 없지만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이곳이 벨루바나, 죽림정사라고.

 

벨루바나는 봄날씨 같습니다.

초목은 푸르고 꽃도 피어 있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입니다.

순례자들이 부처님 자취를 찾아 왔습니다.

 

예경문을 읽고 경을 독송했습니다.

십분간 입정에 들어 갔습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부드럽습니다.

너른 연못에 청정한 기운이 감돕니다.”

 



 

벨루바나 연못에는 청정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연못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바로 옆에는 커다란 보리수가 있습니다. 인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깨달음의 나무입니다. 오전이어서일까 다른 순례팀은 보이지 않습니다. 검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승려들이 연못을 한바퀴 돌고 있습니다.

 

인도인들과 단체사진을

 

명상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순례지를 방문할 때 마다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여행사 사장은 구호를 요구합니다. 대개 파이팅합니다. 이날 단체사진에는 염주목걸이를 파는 청년 둘도 합세했습니다. 그리고 공원을 청소하는 아줌마도 함께 했습니다. 여행사 사장이 마마도 이리 오세요라며 불렀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고 나니 청년이 염주를 사라고 합니다. 염주를 일불 주고 한다발 팔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 더 팔아 달라고 합니다. 버스 타는 곳까지 따라 다니며 끈질기게 요구합니다. 가격은 점차 내려가고 일불에 두 다발 주겠다고 합니다. 벨루바나에서 유쾌한 경험을 뒤로 하고 순례팀은 또 다시 이동했습니다.

 

 

2018-01-29

진흙속의연꽃